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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134화 (13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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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아데스덴의 보물 (1)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콜 드래곤 스킬이었지만, 효과를 확인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 콜 드래곤 스킬이 발동했습니다.

- 용기병대에 소속된 모든 아룡들이 현 시간부로 하던 일을 멈추고 용기병대장의 호출에 응합니다.

- 식사 중이던 드레이크(골드레이크)가 호출에 응했습니다.

- 사냥 중이던 와이번(레드번)이 호출에 화답했습니다.

골드레이크와 레드번은 즉각적으로 콜 드래곤 스킬에 반응을 보였다. 밖에서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창문 너머로 금빛 괴수의 거대한 머리통이 보였다.

빼애애애액!

잠시 텀을 두고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레드번의 울음소리였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블루곤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진 탓인지, 그도 아니면 블루곤이 호출을 무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라는 놈은 안 오고.”

창밖에서 뭔가를 질겅거리며 씹어대는 골드레이크와 정신없이 빽빽거리며 하늘을 배회하는 레드번을 보며 김선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스킬이 실패한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는 블루곤이 응답을 해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기다려 마지않던 메시지가 들려왔다.

- …중이던 씨 서펜트(블루곤)가 호출에 마지못해 응했습니다.

염려와는 달리 블루곤은 호출을 거부하지 않았다. ‘마지못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기는 올 모양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즉각적으로 호출에 화답하여 모여든 다른 아룡들과는 다르게 블루곤은 꽤나 먼 곳에 있었다. 도착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끄응. 기다려야 하나.”

그대로 떠나자니 또다시 블루곤을 두고 떠나는 꼴이고, 그렇다고 해서 기다리자니 왕도로 향하는 일정이 2주 이상 밀릴 판국이었다.

가급적이면 왕도에서의 일정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던 김선혁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블루곤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주인의 건망증 탓에 적진에 홀로 남겨져야 했던 가엾은 해룡에 대한 미안함의 발로였다.

다행스럽게도 기다림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블루곤이 굽이진 강줄기를 단 5일 만에 주파하여 영지에 도착한 것이다.

크르르르르.

다시 만난 해룡은 만신창이였다. 어디서 그렇게 상처를 입은 것인지 푸르게 번쩍이던 비늘은 온통 흠집투성이였고, 채 아물지 않은 상처로 가득했다.

크아아아아!

그런 엉망진창의 꼴을 하고서 블루곤은 사납게 포효했다.

“너 대체….”

생각지도 못한 몰골에 놀란 그가 블루곤의 상태를 확인했다.

- 분노, 원망.

예상대로 블루곤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블루곤의 분노는 주인의 무관심과 방치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살벌했다. 마치 적을 향한 맹렬한 살의와도 같았다.

김선혁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블루곤의 목덜미 부근에 검이 꽂혀 있었다. 단단한 해룡의 비늘 사이에 꽂힌 장검의 손잡이가 하나도 아닌 여러 개였다.

“이런….”

적진에 홀로 남겨져 있던 블루곤이다. 저 검이 누구의 것인지는 굳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혼자 싸우고 있었던 것인가.”

메시지는 블루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마지못해 호출에 응했다고 말해주었다. 김선혁은 그게 블루곤이 자신에게 화가 난 탓에 억지로 화답을 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해룡은 주인에게 화가 나서 호출에 늦게 답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적과 싸우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적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응답이 늦어졌을 뿐이었다.

크아아아아아!

블루곤이 포효했다. 마치 왜 하필이면 그때 자신을 호출했냐고 따지는 듯한 기색이었다.

주인을 향한 원망, 그리고 끝내 말살시키지 못한 적에 대한 살의. 블루곤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부르르르.

한참을 울어대던 해룡이 몸을 부르르 몸을 떨더니,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 블루곤이 거대한 육신을 이루고 있던 생명력을 일부 속성력으로 변환시켰습니다.

- 블루곤이 자의로 변태에 들어갑니다.

- 비정상적인 계기로 인해 블루곤의 탈피 과정에 변형의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그가 미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블루곤이 탈피를 위한 잠에 빠져들었다.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블루곤이 탈피의 과정에 들어간 이후 하루를 더 라인펄에 머물던 김선혁이 마침내 영지를 나섰다.

“영지를 잘 부탁합니다.”

어차피 영지에 머문 시간보다 외부에 나가 있던 시간이 길었던지라 새삼 영지를 부탁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고개까지 숙여가며 부탁의 말을 건넨 것은 영주로서 면목이 없었던 탓이다.

“영지일랑 걱정 마시고 왕도까지 무사히 다녀오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안토인 몽테뉴를 비롯한 영지의 인사들은 그런 그의 내심을 짐작이라도 한 듯 그늘 없는 표정으로 배웅해주었다.

“걱정 마시고, 어서 다녀오십시오.”

“고생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최대한 많이 뜯어내십시오.”

“이 기회에 왕실의 곳간을 텅텅 비게 만들어버리세요.”

“올 때 선물 꼭 사다 주십시오.”

클라크를 비롯한 기병들의 투박한 인사말, 그는 웃는 낯으로 기꺼이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트레일 경. 줄리앙.”

이미 레드번에 탑승하고 있던 두 여인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준비가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지체 없이 레드번에 올라탔고, 레드번이 이내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레드번은 셋이나 되는 기수를 태우고도 크게 힘든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힘들어한 것은 태운 쪽이 아니라 올라탄 쪽이었다.

“트레일 경.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 우웩!”

아샤 트레일은 이따금씩 레드번이 휴식을 위해 땅에 내려설 때면 속을 게워내기 바빴다. 땅에서라면 못할 게 없어 보이던 강인한 여기사가 하늘에서만큼은 유달리 가냘픈 모습이었다.

줄리앙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괘, 괜찮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김선혁이 괜찮냐고 물을 때마다 어린 종자는 추위로 파랗게 질려버린 입술을 파들파들 떨어대며 애써 괜찮다 대답했다. 하지만 혹독한 환경을 버텨내기에는 무리였는지, 결국 나중에 가서는 그의 품에 안겨 가다시피 해야 했다.

힘든 건 아샤 트레일과 줄리앙뿐만이 아니었다. 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기수들을 신경 쓰느라 그 역시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차라리 미치광이 마법사 아리아 아이젠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기수들의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레드번은 쉬지 않고 나아갔고, 목적지는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 겨우 도착했네.”

지평선 저 멀리 보이는 왕도 아데스덴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김선혁은 서서히 고도를 낮췄다.

“음?”

문득 기이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는다 싶더니, 저 멀리서 펑 하고 불꽃이 터졌다.

“뭐지?”

습격의 조짐이나 위협은 아니었다.

아덴버그에서도 가장 철통 같은 방어 시스템을 자랑하는 아데스덴, 그런 왕도에 이변이 생겼을 리는 없었다. 실제로 멀리서 점멸하듯 번쩍이는 섬광은 위협적이라기보다는 그저 눈에 거슬릴 정도의 요란함만을 담고 있었을 뿐이다.

흡사 신호라도 보내는 듯했다.

“가봐야 합니다.”

여전히 비행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창백한 낯빛을 한 채, 아샤 트레일이 불쑥 말을 걸어왔다.

“트레일 경?”

“저건 긴급을 요하는 구조 신호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왕도를 바로 코앞에 둔 곳에 무슨 위험이 있어 저렇게 긴급 구조 신호까지 보낸다는 말인가.

“저 신호를 본 왕실 기사단 소속의 모든 기사들은 즉각적으로 하던 일도 멈추고 달려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도통 이해를 하지 못해 인상만 찡그리는 그를 아샤 트레일이 설득했다.

“저건 왕실에서만 쓰는 특수 신호탄입니다.”

“아….”

깜짝 놀란 김선혁이 고삐를 잡아채다 뒤늦게 이상함을 느끼고는 되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느긋합니까?”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왕가 수호대에서도 왕녀의 초근접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던 아샤 트레일이다. 아무리 라인펄로 파견을 나왔다고 해도 왕가에 대한 충성심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왕가의 구조 신호를 보고 눈이 뒤집혔어야 할 충성스러운 기사는 어쩐지 그리 급해 보이지 않았다.

“긴급 신호탄은 맞지만, 위력을 조절했습니다.”

그녀는 저게 만약 정말 구조 신호라면 구조요청의 섬광으로 왕도의 하늘 전체가 정신없이 번쩍이고, 신호를 받은 중앙 기사단이 최소한 1개 기사단 이상을 급파했을 거라며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왕도의 하늘도 잠잠하고, 중앙 기사단의 요새는 문조차 열리지 않았군요.”

아샤 트레일의 말 대로였다.

“그럼 저건….”

“아마 누군가를 불러들이기 위한 신호일 겁니다.”

왕도 아데스덴에 인접했을 때 느껴진 장막을 통과하는 듯한 감각, 그리고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온 구조 신호. 김선혁은 그 누군가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가봐야겠군요.”

왕실과 관계된 누군가가 피워 올린 섬광은 자신에게 보내오는 신호가 분명했다.

**

아샤 트레일과 김선혁의 예상이 맞았다. 그들이 방향을 틀기가 무섭게 발광하던 신호가 뚝, 하고 끊긴 것이다. 마치 목적을 다해 소용을 잃은 섬광이 스스로 사그라지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드라흔 백작.”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한 그는 레드번의 고삐를 당겨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거센 날갯짓에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이들 중 몇몇의 후드가 날아가 얼굴이 드러났다.

“왕가 수호대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입니다.”

한때 그들과 같은 소속에 몸담았던 여기사가 그들을 알아보고는 김선혁에게 귀엣말을 건넸다. 놀라울 것은 없었다. 왕실의 긴급 구조 신호탄이 터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왕실과 관계가 된 이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사실이다.

“가장 앞에 선 기사는 국왕 폐하의 근접 경호를 담당하는 레버쿠젠 경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이들이 단순한 기사가 아닌 테오도르 국왕의 최측근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뜻밖의 인물들을 보고 잠시 머리가 복잡해진 사이 레드번이 완전히 땅에 내려섰다.

“드라흔 경. 반갑습니다. 왕가 수호대의 압실링거 드나우 레버쿠젠입니다.”

압실링거 드나우 레버쿠젠은 양옆으로 뻗어 나간 콧수염이 멋들어진 중년의 기사였다. 레인하르트 후작처럼 압도적인 존재감은 보이지 않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거대 괴수를 눈앞에 두고도 전혀 흔들림 없는 눈빛은 왕가의 기사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반갑습니다. 드라흔입니다.”

안장에서 훌쩍 뛰어내린 김선혁이 짧게 자신을 소개하고는 곧장 물었다.

“혹시 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

중년의 기사는 부정하지 않고, 선선히 그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맞습니다. 드라흔 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왕도로 곧 들어설 텐데, 그때 찾으시지 왜….”

도대체 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해가면서까지 왕도로 향하는 길목에서 자신을 불러들인 것인지 그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국왕 폐하의 명이 있었습니다.”

김선혁은 가만히 압실링거 드나우 레버쿠젠이 상황을 설명해주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볼일이 있으니 곧 일의 전모를 알려줄 거라 여겼던 것이다.

“국왕 폐하께서는 드라흔 경이 최대한 조용하게 왕도에 입성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조용하게 말입니까?”

압실링거 드나우 레버쿠젠이 힘주어 다시 강조했다.

“네. 아무도 모르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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