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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125화 (12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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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탈피(脫皮)(1)

김선혁과 롤랑의 전투는 금세 전선 전체로 퍼져나갔다.

수많은 병사들이 무지막지한 괴수들의 난동에 휩쓸려 죽거나 다쳤지만, 그보다 많은 이들이 살아남아 그날의 결투에 대해 떠들어댔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목책이 쓰러지고, 병사들이 날아다니고 난리도 아니었지.”

생존자들은 그날의 전투를 회상하기를 마치 신화 속의 한 장면과도 같았노라 말했다.

오직 지상에 발을 붙인 채 모든 것을 이루어왔던 사람들에게 하늘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드라흔과 창공의 기사는 그런 성역을 정복한 초인들이었다.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위용이었다.

“너무 빨라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는 확실했어.”

하지만 그런 초인들에게도 격차가 있었으니,

“드라흔이 질풍의 롤랑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거.”

창공의 기사는 드라흔의 상대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리핀 라이더들의 기념비적인 첫 출격이 패배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롤랑은 도통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저 때문에 창공의 기사라는 이름이….”

듣기 싫어도 들려오는 소리가 온통 그날의 결투에 대한 이야기뿐이니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소한 이 녹테인 서부에서만큼은 창공의 기사들이 드라흔에 미치지 못한다는 소문이 사실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소문은 금방 서부전선을 넘어 전 대륙으로 퍼져나가게 되리라.

“네 잘못이 아니다.”

라파예트는 창공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한 롤랑을 질책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대단했을 뿐이지.”

자신이 롤랑 대신 결투에 나섰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롤랑을 나무랄 수 없었다.

“면목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라파예트 경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쯤….”

롤랑이 뒤늦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롤랑을 살린 것은 라파예트가 아니었다.

드라흔 스스로가 마지막 순간 창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친애하는 셋째 기사의 목숨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약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애초부터 라파예트가 방관자로 남은 것은 만에 하나 있을 롤랑의 패배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그날의 결투를 생생하게 지켜보고 드라흔의 힘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약점이 있었습니까?”

롤랑은 그 괴물 같은 드라흔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물었다.

“드라흔의 약점은 와이번이다.”

롤랑은 패배했지만 그의 그리핀 드본은 패배하지 않았다.

그 끔찍한 광풍에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끝끝내 제 기수를 지켜낸 드본은 만약 부상만 아니었다면 필시 와이번을 압도했을 것이다.

“롤랑, 넌 차라리 드라흔이 아닌 와이번을 노렸어야 했어.”

그간 실전을 대비해 창공의 기사들끼리 해왔던 대련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아군을 상대로 한 대련, 혹시라도 귀하디귀한 그리핀이 상해서는 곤란했다. 그 과정에서 롤랑의 검은 무의식중에 탈것을 배제한 채, 오직 기수만을 노리는 식으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라파예트가 본 롤랑의 패인이 바로 그것이었다.

“잊지 마라. 날개가 잘린 날짐승은 추락하기 마련, 기수는 홀로 하늘을 날 수 없다.”

“하지만 국왕 폐하께서 반드시 와이번을 생포해오라고….”

롤랑의 말에 라파예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상대가 우리보다 약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네가 보기에 드라흔이 우리보다 약하던가.”

롤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였을 뿐이었다.

“탓하려는 것이 아니니 고개를 들어라. 여긴 그리핀도르가 아니다. 네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 놈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틈을 보이지 마라.”

하늘을 나는 그리핀은 가히 창공의 제왕이라고 해도 좋을 존재였지만, 상처 입고 추락한 그리핀은 비열한 승냥이 떼를 당해낼 수 없었다.

드본과 그 기수가 딱 그 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냥이들이 아직까지 이를 드러내지 않은 것은 드라흔이라는 흉폭한 짐승이 아직까지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만나는 날이야말로 오늘의 치욕을 되갚아주는 날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청산해야 할 빚이 있었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 감당할 수 있었다. 지금은 땅에 떨어진 창공의 기사의 명예를 되찾는 것만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그날의 결투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은 자신들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창공의 기사들이 상대했던 강적, 드라흔은 자신의 승리에 만족하지 않고 그날의 전투를 곱씹어보고 있었다.

레드번은 아직 약하다.

레드번은 속도, 힘, 모든 면에서 그리핀에 비해 열세였다. 기수의 기량을 제외하고 그리핀과 와이번만을 기준으로 둔다면 패배한 쪽은 레드번이었다.

“하아.”

하지만 레드번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레드번이 부족했던 만큼 스스로 역시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처음으로 치러본 공중전이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게 도리어 이상했다.

김선혁은 이제껏 강력한 한 방을 적에게 때려 박고는 전장을 이탈하는 방식을 선호해왔다. 윈드 피어싱과 풍아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적은 없었고, 그에게 두 번의 공격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롤랑에게는 그가 이제껏 필요로 하지 않았던 두 번째 공격이 필요했다.

비록 온몸에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그리핀은 끝끝내 추락하지 않고 풍아를 견뎌냈고, 롤랑 역시 치명적이지 않은 부상만을 입었을 뿐이었다.

그로서는 레드번을 테이밍한 이후 처음으로 겪는 상황이었고, 풍아를 사용하고도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 첫 전투였다.

전투는 시종일관 그의 우세였다. 아니, 차라리 압도에 가까울 정도로 롤랑을 몰아붙여 댔다.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번번이 승부를 결정할 중요한 순간을 놓쳐야 했다.

그때는 단지 롤랑이 끈질기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신의 공격은 지나치게 단조롭고 직선적이었다. 그저 단순히 돌격만을 반복하며 상대가 거꾸러지기를 바랐으니 바보짓도 그런 바보짓이 없었다.

그때 그는 자신이 가진 치명적인 문제점을 깨달았다.

자신은 집단전에 특화된 존재였다. 다수를 상대로 진을 무너트리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데는 능숙하지만, 경지에 오른 기사와의 일대일 전투에는 다소 취약한 면이 있었다.

그것이 이제껏 그가 치러온 전투가 대부분 그런 양상이었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용기병대장의 능력 자체가 그런 쪽으로만 특화된 것인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창공의 기사들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기가 요원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라파예트라고 했던가….”

김선혁은 붉은 머리에 사내다운 얼굴을 한 호방한 기사를 떠올렸다. 그는 기사로서도 기수로서도 롤랑보다 완숙해 보였고, 그의 그리핀 역시 롤랑의 것보다 더 크고 강해 보였다.

실제로도 패배한 롤랑은 창공의 기사들 중 셋째였다. 라파예트는 그보다 위인 둘째였다. 서열이 나이순이 아니라면 라파예트가 롤랑보다 강자일 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 번 끼어들었는데 또 끼어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

만약 상대가 하나뿐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창공의 기사는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하. 괜히 살려줬나.”

차라리 기회가 있었을 때 처리할 것을 괜히 살려줘서 후환이 생겼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창을 찔러 넣었다면 라파예트의 검이 그대로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을 테니까.

승리는 달콤하지만 그 대가가 자신의 목숨이라면 절대 사양이었다.

“레드번이 성장하면 조금은 안심일 텐데 말이야.”

지맥의 기운을 먹고 골드레이크가 성장했듯이 레드번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흠.”

한창을 궁리하던 김선혁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아리아 아이젠을 찾았다.

“무슨 일이세요?”

요새에까지 와서 뭐가 그리 바쁜지, 노골적으로 귀찮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아리아 아이젠에게 용건을 밝혔다.

“레드번이 먹을 만한 독이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던 그녀는 이어진 말에 금세 태도를 달리 했다.

“드레이크가 땅의 기운을 먹고 성장한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요.”

아리아 아이젠은 언제나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 했고, 그의 가설에 큰 흥미를 보였다.

하기야 용기병이 아니면 누가 있어 드레이크를 길들일 생각을 하고 그 속성을 파악해내겠는가.

그녀는 드레이크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몹시도 만족한 기색이었다.

“마침 실험해볼 만한 물건이 있긴 한데.”

기분 나쁜 빛깔의 액체가 든 유리병을 흔들며 그녀가 말했다.

아리아 아이젠이 말한 실험이 레드번에게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가엾은 와이번에게 미리 애도를 표했다.

**

예상은 빗나갔다. 아리아 아이젠의 실험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레드번은 그 어떤 고통도 호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레드번은 그녀가 내민 정체불명의 액체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까지 했다.

- 속성 지배력(毒)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레드번이 두 병째 독액을 들이마셨을 때 즈음, 기다렸던 메시지가 들려왔다.

김선혁은 신이 나서 아리아 아이젠을 채근했고, 그녀는 다섯 개의 유리병을 레드번의 주둥이 속으로 던져 넣었다.

- 속성 지배력(毒)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 속성 지배력(毒)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계속해서 속성 지배력이 상승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속도와 폭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고작 4 정도의 수치가 올랐을 뿐이었다.

“흠.”

그가 다소 실망한 얼굴을 해 보이자 아리아 아이젠이 웃으며 말했다.

“진짜는 지금부터예요.”

그녀는 지금까지 사용한 액체들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비교적 순한 것들을 사용했을 뿐이라며, 처음의 것들보다 몇 배는 위험스러워 보이는 유리병들을 꺼내 보였다.

“대신 백작님께서도 아셔야 해요. 만약 와이번이 독성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에 생길 일들을 저는 책임지지 않아요. 이것들은 해독을 한다고 해도 부작용이 남을만한 극독들이예요. 만약 내키지 않는다면 지금 멈춰야….”

아리아 아이젠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레드번이 불쑥 주둥이를 내밀고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유리병들을 낚아챈 것이다.

“야!”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김선혁은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 당황해서 소리쳤다.

칵!

하지만 레드번은 제 먹이를 빼앗기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꿀떡, 하고 유리병들을 한꺼번에 삼켜버렸다.

“이런 망할 놈! 뱉어!”

그는 레드번의 목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댔지만, 식탐 강한 와이번은 입을 꽉 다물고는 버텨댔다.

- 속성 지배력(毒)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 속성 지배력(毒)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 속성 지배력(毒)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 속성 지배력(毒)이 1만큼 상승했습니다.

그때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메시지가 울려댔다. 그는 이미 레드번이 집어삼킨 독액들이 흡수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물은 엎질러졌다. 이제는 부디 레드번의 식성이 극독들을 소화시켜낼 정도로 탐욕스럽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울려대던 메시지가 어느 순간이 되자 뚝, 하고 그쳤다.

스테이터스를 확인해보니 불과 11에 불과했던 속성 지배력이 무려 30까지 상승해 있었다.

“너 괜찮아?”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지금은 속성 수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레드번이 무사한 것이 우선이었다.

삐익.

레드번은 주인의 속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삑삑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독액을 더 달라고 보채는 것 같아 보였다.

한참을 살펴보아도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빼에에엑!

안도하기에는 너무 일렀던 모양이다. 갑작스레 레드번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이젠 경!”

“여, 여기 해독제요!”

만약을 대비해 해독제를 들고 대기하고 있던 아리아 아이젠이 냉큼 해독제들을 건네주었다.

“아오! 가만 좀 있어!”

그는 난동을 부리는 레드번의 목을 한 팔로 꽉 둘러 잡고는 강제로 레드번의 주둥이에 해독제를 처넣었다.

빼액. 빼애애액.

해독제의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레드번의 비명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메시지가 그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 성장을 위한 독 속성이 충분히 축적되었습니다.

- 레드번이 성장을 위해 변태 과정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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