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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뜻밖의 소득 (3)
- 스테이터스에 ‘독(毒)’ 속성이 추가되었습니다.
- 기존 독 내성의 효과가 배 이상 강력해집니다.
하늘을 나는 와이번이기에 바람이나 그에 관련된 속성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와이번의 속성이 독이라는 것은 꽤나 의외였다.
이제껏 용의 아종을 통해 개방되었던 속성이 곧 정령의 근원이 되고 그의 힘이 되어주었기에, 과연 독이라는 속성이 어떤 식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또 정령은 어떤 모습일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빼엑!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와이번이 날카롭게 울며 뾰족한 주둥이를 삐걱댔다.
“그래. 더 먹어라.”
정신을 차린 그가 다시 고깃덩어리를 집어들고 와이번의 입에 쑤셔 넣어주었다.
아구 아구.
아직 성치 않은 몸이라 가만히 엎드린 채 고기를 받아먹으며 빽빽대는 와이번의 모습이 마치 새끼 새가 먹이를 보채는 모습 같아 그는 저도 모르게 와이번의 뾰족한 주둥이를 쓰다듬어주었다.
흠칫.
아직 완전히 경계를 푼 것은 아닌지 그의 손이 닿자 와이번이 움찔거렸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퍼덕. 퍼덕.
커다란 돼지 한 마리를 남김없이 먹어치운 와이번이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았는지, 당장에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날갯짓을 했다. 하지만 넝마가 되어버린 날개는 삐걱거리며 몇 차례 움직이다 힘없이 늘어졌을 뿐이었다.
“이건 또 언제 다 낫는다냐.”
부러지고 찢겨진 날개가 다 나으려면 아무래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당장에라도 와이번을 타고 저 높은 창공을 누비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그는 지금이야말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할 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와이번이 쉴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보초를 서던 병사들 역시 그를 따라 창고를 나섰다.
**
“사냥꾼들이 왜 도망을 가?”
이제 겨우 와이번이 정신을 차려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던지라 몬스터 사냥꾼을 만나 자세한 사정을 들어볼 참이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몬스터 사냥꾼들이 지난 밤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아무래도 와이번을 놓쳐 마을에 큰 피해를 입힐 뻔했으니, 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지레 겁을 먹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와이번을 이곳까지 끌고 온 공이 아무리 크다한들, 흉폭한 괴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참사를 일으킬 뻔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사냥꾼들은 그 점을 우려해 야반도주를 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영주가 마음만 먹으면 있던 공도 사라지고, 트집 잡혀 치도곤을 당하는 세상이니만큼 그들의 생각이 마냥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그들은 지은 죄까지 있었으니 트집 잡히기 딱 좋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들을 벌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와이번을 이곳까지 유인한 공을 생각해 후하게 상을 내릴 작정이었다.
“아직 영지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을 테니, 서두르면 그들을 다시 잡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날래고 경험 많은 기병들이 넘쳐나는 라인펄 영지였으니 도망친 사냥꾼들을 잡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버려둬. 돈 굳었지, 뭐.”
김선혁은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죄를 두려워 해 의뢰비마저 포기하고 도망친 사냥꾼들을 굳이 찾아 셈을 치를 이유가 없었다.
“그럼 그대로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줄리앙이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와이번의 탈출로 일어난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아니, 그렇게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채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김선혁은 자신의 결정을 번복해야 했다. 그가 가장 기대를 걸었던 몬스터 사냥꾼 무리, 트리스탄 패거리가 뒤늦게 영지에 찾아와 야반도주한 사냥꾼들의 죄를 낱낱이 고해바친 것이다.
“어쩐지 와이번씩이나 되는 놈을 잡아온 자들 치고는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하다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던가.”
김선혁은 그제야 마음속에 있던 의문 하나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자유롭게 창공을 누비는 흉폭한 몬스터를 포획한 이들치고는 먼저 야반도주한 사냥꾼 무리는 지나치게 실력이 변변찮아 보였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했더니 다른 무리의 사냥감을 탈취한 강도였을 줄이야, 그로서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다.
“놈들이 마을로 온 건 인명 피해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뻥 뚫린 평원에서 와이번을 완전히 뿌리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리하게 도망치다 사냥당할 바에야 차라리 마을에 숨어드는 것이 유리하다 여겼겠지요. 운이 좋다면 영주님과 병사들이 대신 와이번을 처리해줄 테니, 그 또한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어이가 없군. 완전히 나를 물로 봤어.”
단지 사냥꾼 무리에서 생긴 싸움이었다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망친 패거리가 자신들을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넘어갈 정도로 그는 무른 성격이 아니었다.
“클라크에게 가장 날랜 기병들을 붙여주어 그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도록 해라.”
“한 놈도 빠짐없이 잡아들이겠습니다.”
감히 자신의 영주를 속였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인지 줄리앙은 드물게 분노한 얼굴로 집무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 그녀를 트리스탄이 잡았다.
“그들을 잡으려면 국경이 아니라 그들이 온 방향을 되짚어야 할 겁니다.”
“말을 달리면 나흘이면 넘을 수 있는 국경을 두고 굳이 그들이 거꾸로 도망칠 이유가 없다.”
“통상적으로는 그렇지요.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되찾아야 할 무언가를 오면서 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납게 내쏘는 줄리앙의 말에 트리스탄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되찾아? 뭘?”
김선혁도 트리스탄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물었다.
“영주님께서 제게 의뢰하셨던 건 와이번의 탐색뿐만이 아니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트리스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설명에 그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들이 강탈해간 것 중에는 페어리 드래곤의 알도 있었습니다.”
**
수십 기의 기병들이 병영을 빠져나갔고, 골드레이크에 올라탄 김선혁이 그들과 함께 했다.
“아티야! 꼭 찾아야 해!”
‘맡겨두세요!’
영지를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김선혁은 아티야를 소환해 사냥꾼의 흔적을 쫓게 만들었고 자신이 지닌 모든 능력을 동원해 방향을 가늠했다.
하지만 이미 하루의 거리가 벌어진 터라 사냥꾼들을 쫓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센 일행이 사냥꾼들을 처음 만났던 곳까지 추적하여 길을 되짚는 데 하필이면 비가 내리는 바람에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흩어져서 수색한다! 만약 놈들을 발견하면 섣불리 달려들지 말고 신호를 보내고 지원을 기다려라!”
“뭐해! 영주님 말씀 못 들었냐! 조별로 찢어져서 수색해!”
기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며 김선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페어리 드래곤의 알까지 갖고 있었을 줄이야.”
가장 먼저 찾으려 했으나 동화 외에는 그 어떤 실마리를 잡지 못해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던 페어리 드래곤이다. 지금에 와서 또다시 종적을 놓치면 언제 또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조급한 마음으로 도망친 몬스터 사냥꾼들의 흔적을 쫓았다.
“일단 방향만 가늠하면, 쫓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페어리 드래곤의 알이라는 게 평범한 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겁습니다.”
몬스터 사냥꾼들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조력을 자처했던 트리스탄이 초조해하는 그를 위로했다.
“만약 그게 그렇게 가볍고 운반이 용이했다면 애초에 마을로 찾아갈 때 어딘가에 숨겨두고 갔을 이유가 없지요.”
듣고 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라 김선혁의 조급했던 얼굴이 다소 누그러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도망친 몬스터 사냥꾼들의 종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시야는 쏟아지는 장대비로 가려졌고, 아티야는 쏟아져 내리는 빗속에서 그다지 훌륭한 추적자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미치겠군.”
이대로 가다가는 제 앞마당까지 찾아왔던 용의 아종을 놓치게 될 판국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흩어져 수색을 이어나가던 기병들 중 하나가 사냥꾼들의 흔적을 찾아냈다.
삐이이이이이이.
빗소리에 파묻혀 잘 들리지도 않는 호각 소리를 김선혁은 용케도 잡아냈다.
“가자!”
김선혁은 다른 일행을 기다리지도 않고 소리가 들려온 것을 향해 골드레이크를 달렸다. 몇 번인가 엉뚱한 곳으로 내달린 끝에 그는 기어이 호각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
멀리 보이는 기병들과 사냥꾼들을 발견한 그가 골드레이크를 부추겨 울부짖도록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던 그림자들이 난리법석을 떨었다.
“영주님!”
그를 발견한 기병이 반가운 얼굴로 영주를 불렀다. 진창으로 변해버린 바닥 탓에 차라리 하마하는 것이 낫겠다 여긴 것인지 기병들은 말에서 내려 기병용 장검을 손에 든 채였다. 그런데 이미 한차례 전투가 있었던 듯, 어깨를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작 둘이서 열명에 가까운 몬스터 사냥꾼들을 상대한다고 얼마나 분전을 한 것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원을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놈들이 도주하면 다시 찾을 수 없다 생각해서….”
괜한 부상자가 생겼다는 생각에 그가 버럭 화를 내니, 기병이 변명처럼 말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최악의 경우 목숨으로 사냥꾼들의 발을 늦추고 다른 동료들에게 추격을 맡기려던 게 분명했다.
그 맹목적인 충성에 그는 더욱 더 화가 났다. 하지만 그가 화가 난 것은 명령을 어긴 기병들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개자식들이….”
자신을 속이고 이용한 것도 모자라 귀한 기병들마저 상하게 만든 사냥꾼들을 향해 무한한 분노가 솟구쳤다. 그가 화를 내자 골드레이크가 덩달아 화를 내며 으르렁거리며 사냥꾼들을 위협했다.
“히익!”
“사, 살려주십시오!”
처음의 포효에 이미 혼이 반쯤 나가버렸던 사냥꾼 무리는 그 압도적인 기세 앞에 머리를 땅에 처박고 오들오들 떨어댔다. 하지만 개중에 몇몇은 비척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용을 써댔다.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놈은 죽는다.”
화가 난 그가 낮게 으르렁대자 골드레이크가 앞발을 크게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내리 찍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진창으로 변해버렸던 대지가 더욱 더 흐물흐물하게 변하더니, 이내 사냥꾼들을 빨아들였다.
“끄악!”
순식간에 늪처럼 변해버린 대지에 허리까지 파묻힌 사냥꾼들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질러댔다.
“살려주십시오!”
“요, 용서해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뒤늦게 그를 따라온 트리스탄과 줄리앙이 나타나 그 광경을 보고는 말에서 내렸다.
“영주님. 부디 제가 동료들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평생을 영주님께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와이번을 비롯해 물건들을 강탈당하며 패거리의 절반을 잃었다던 트리스탄은 그야말로 눈에서 불꽃이라도 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김선혁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허락한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앞으로 평생이 걸리더라도 이 은혜는 갚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트리스탄이 말에서 내려 허리춤의 칼을 뽑아들었다.
“히익! 살려줘! 트리스탄, 그래도 우리 동업자였잖… 끄륵.”
트리스탄은 구질구질한 넋두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인지, 날이 잘 벼려진 칼을 그대로 상대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 평소 보여주었던 차분한 모습 그대로 담백한 복수였다.
“이 놈이 모든 일을 주도한 놈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야 깡그리 죽이고 싶을 게 분명했지만, 트리스탄은 더 이상 복수를 운운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남은 복수를 마쳐줄 거라 강력하게 믿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을 불러 이들을 압송해라. 광산 제일 깊은 곳에 쳐 넣고, 다시는 볕을 보지 못하도록 하라.”
제 욕심을 차리기 위해 동업자마저 해코지하고, 자신들이 살겠다고 마을 하나를 위험에 빠트린 사냥꾼들이다. 용서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저게 페어리 드래곤의 알입니다.”
페어리 드래곤의 알을 찾기 위해 이 난리를 떨었는데, 정작 부하가 다친 모습을 보고 눈이 돌아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트리스탄이 밧줄과 모포 따위로 몇 겹이나 감싸 말에 매어두었던 커다란 덩어리를 가리키며 목적을 상기시켜주었다.
“아.”
그 덕분에 뒤늦게나마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릴 수 있었던 그가 골드레이크 위에서 내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여기….”
트리스탄이 모포를 걷고 내용물을 슬쩍 보여주려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아아악!
벗겨진 모포 틈으로 오색찬란한 빛이 터져 나와 사방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