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 푸어-104화 (104/305)

00105    =========================================================================

105. 뜻밖의 소득 (1)

“조용. 조용.”

와이번의 포효에 골드레이크가 발작적으로 반응하려는 순간, 김선혁이 재빨리 제지했다. 드레이크는 당장에라도 울부짖을 것처럼 목가의 돌기를 바짝 세웠지만, 기수의 명령을 거부하지는 못하고 턱 끝까지 차오른 포효를 끝내 꿀떡 삼켰다.

“참아. 곧 날뛰게 해줄 테니까.”

크르르르.

그의 말에 골드레이크가 성대를 긁어대듯 낮은 울음을 흘리며 하늘을 노려보았다.

“저게 와이번인가.”

그 시각에도 와이번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용케도 저 먼 곳에서 돼지들이 꿀꿀거리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김선혁은 눈에 힘을 주고 와이번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아직 거리가 멀리 떨어진지라 세세하게 생김새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와이번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다.

주둥이는 과할 정도로 뾰족하고 길어 마치 활촉을 보는 것 같았고, 늘씬하게 뻗은 목과 꼬리는 한 자루 창처럼 곧고 가늘었다. 거체를 지닌 골드레이크와 비교하기에는 지나치게 선이 가는 몸뚱이, 블루곤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넓은 흉부와 자줏빛 비늘로 감싸인 근육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보였고, 거기에 제 몸보다 배는 커다란 붉은 날개가 더해지니 그 생김새가 연약하다기보다는 지극히 기능적이고 유려해보였다.

탐난다. 저놈.

벌써 두 마리나 되는 용의 아종을 테이밍하여 휘하에 둔 그였지만, 와이번은 다른 아룡들과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보는 순간 홀딱 빠져들어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김선혁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와이번이 덫에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빼에에에에엑!

이제는 호박색의 길게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가 빤히 보일 정도로 접근한 와이번이 허공에서 잠시 멈춰섰다가, 이내 날개를 접고 벼락처럼 땅으로 내리꽂혔다.

꾸엑! 꾸에엑!

피를 잔뜩 뒤집어 쓴 돼지들이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쳤다. 하지만 와이번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하강을 피해내기에는 돼지들의 다리가 너무 짧고 느렸다.

꿱!

억센 발톱이 두꺼운 돼지의 가죽을 파고든다 싶더니, 와이번이 날갯짓을 하며 다시 날아오르려고 했다. 그 순간 조용히 와이번의 사냥을 지켜보고 있던 김선혁이 외쳤다.

“그물 던져!”

와이번의 코앞에서 숨죽이고 있던 궁수들이 활을 놓고 그물을 내던졌다.

삐이이이이익!

깜짝 놀란 와이번이 날카로운 포효을 내뱉으며 날개를 휘둘러 그물을 쳐냈다. 그리고는 서둘러 홰를 치며 높이 날아올랐다. 커다란 돼지를 붙잡고도 날래고 기민하기만 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물을 피했다고 해서 완벽하게 함정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빗나간 그물들이 땅에 채 떨어지기도 전에 김선혁이 허공에 외쳤다.

“아티야! 밟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 아티야가 와이번을 찍어 눌렀다.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 와이번의 날개를 꽁꽁 묶고 몸을 짓눌렀다.

빼애애액!

와이번이 용을 쓰며 날갯짓을 했지만, 중급 정령으로 성장한 아티야는 쉽사리 와이번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 사이 와이번의 난동에 잠시 혼이 나갔던 영지병들이 다시 한 번 그물을 던졌다.

급하게 내던진 그물이 중구난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떨어진 그물을 아티야가 바람을 일으켜 끌어다 와이번의 몸에 덮어버렸다.

빽!

그물에 날개가 엉킨 와이번이 비명을 지르며 곤두박질 쳤다. 그리고 그 순간 대기하고 있던 기병들이 달려가 창으로 와이번을 찔러댔다.

“걱정 말고 찔러! 어차피 안 뚫려!”

영주가 와이번을 생포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탓인지, 영 맥아리가 없는 창질에 보고 있던 한센과 요나슨이 앞으로 나서 힘차게 창을 내지르며 기병들을 독려했다.

기병들을 창질에 분노한 와이번이 단숨에 질기고 억센 그물을 찢어냈다. 하지만 아티야가 때를 맞추어 바닥을 굴러다니던 그물을 다시 내던졌다.

“찔러!”

다시 그물을 찢을 새라 기병들이 달려들어 창을 찌르고 휘두르며 와이번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사방에서 고함을 치며 창을 찔러대는 인간들 탓에 완전히 혼이 나가버린 와이번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꼬리를 세웠다.

“조심! 꼬리에는 맹독이 있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사냥꾼이 다급하게 외쳤다.

치이이익.

놀란 기병들이 뒤로 물러나자 꼬리가 찌르고 지나간 땅이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끔찍할 정도로 강력한 독이었다.

“비켜!”

그 순간 김선혁과 골드레이크가 도착했다.

크아아아아!

진즉부터 잔뜩 흥분해 있던 골드레이크가 난동을 피우는 와이번을 그대로 짓밟아버렸다. 거대한 괴수에게 밟힌 와이번이 빽, 하고 짧게 비명을 지르더니 독침이 달린 꼬리를 마구잡이로 찔러왔다.

하지만 기사의 검력마저 받아낼 정도로 단단하게 변모한 골드레이크의 비늘은 창처럼 꼿꼿하게 세운 와이번의 꼬리 공격을 굳건하게 버텨냈다. 와이번의 필사적으로 내찌른 독침은 그저 금빛 비늘 몇 개를 까맣게 변색시키게 고작이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번은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짓밟은 골드레이크의 다리를 물어뜯고 맹렬하게 사지를 버둥거리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콱.

골드레이크가 화가 났는지 와이번의 가슴과 목 사이를 콱, 하고 물었다. 와이번은 더욱 더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독침에서 흘러나온 독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물러나!”

어정쩡한 거리에서 영주를 보호하기 위해 버티고 있던 기병들이 독액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김선혁 역시 황급하게 안장에서 뛰어내려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크롸라라라라라!

골드레이크가 와이번을 냅다 바닥에 패대기치고 다시 들어 올려 세차게 고개를 털었다. 와이번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으득.

“그만!”

그대로 두었다간 소중한 와이번이 반쪽으로 쪼개질 판국이라 김선혁이 다급히 골드레이크의 폭주를 제지했다. 와이번의 가슴께를 거의 꿰뚫기 직전이었던 괴수의 어금니가 딱, 하고 그 자리에서 멈췄다.

“옳지. 그대로 있어.”

크르르르.

제 주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낮게 목을 울리는 골드레이크의 모습이 마치 제 주인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라고 와이번을 위협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와이번은 그런 골드레이크의 낮은 포효를 후자로 알아들은 것인지 죽은 듯이 몸을 늘어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쉽게 잡았네. 정말로 돼지를 향해 똑바로 달려들 줄이야.”

이 모든 함정은 몬스터 사냥꾼의 제안을 받아 급조한 것이었다. 설마 이렇게 간단한 함정에 와이번이 걸려들 거라 기대하지 않았건만, 몬스터 사냥꾼은 와이번이 멋대로 창공을 활개 치는 것만 막으면 포획이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 장담했다.

그리고 사냥은 몬스터 사냥꾼의 호언장담처럼 성공했다.

“뭐가 이렇게 쉬워….”

하지만 정작 이 모든 계획을 제안했던 몬스터 사냥꾼은 이렇게 쉽게 와이번을 잡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 얼빠진 얼굴이었다.

사냥꾼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물이 빗나갔을 때는 당연히 사냥이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날아오르던 와이번이 무언가에 내리 눌린 듯 갑작스레 떨어져 내렸고, 그물이 제 스스로 움직여 날개를 옭아맸다.

대체 그게 무슨 조화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이상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가 두려운 것은 몬스터가 지닌 체취, 울부짖는 울음소리 모두가 인간을 먹이로 삼은 천적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포효 한 번이면 강단 있는 장정도 몸이 굳어버리고, 끝내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몬스터에게 잡아먹히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병사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와이번의 포효에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그물을 던지고 창을 내지르는 병사들의 모습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았다.

영지민들도 정상이 아니었다. 흉폭한 몬스터의 침입에 집안에 숨어 오들오들 몸을 떨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런데 영지민들은 대담하게도 슬쩍 창문을 열고 와이번 사냥을 구경하는 기행을 보였다.

시시껄렁한 하급의 몬스터에게도 마을 하나가 쑥대밭이 되는 걸 무수히 지켜봐온 몬스터 사냥꾼으로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이게 뭡니까. 몬스터의 체취는 독이나 다름이 없고, 포효는 몸을 굳게 만드는 끔찍한 저줍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멀쩡한 겁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영주님의 드레이크가 마을을 오고 가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 재끼는데 저깟 게 뭐 대수라고. 영주님의 드레이크가 우는 소리에 비하면 조금 크고 성질 나쁜 새가 울어대는 정도구만.”

가장 먼저 자신과 마주쳤던 한센이라는 기병의 말이 허세처럼 들리지 않은 것은, 정말로 영지의 병사들이 와이번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이게 와이번이라는 놈이구만.”

“영주님의 드레이크에 비하면 영 부실한데?”

“이거 죽은 거 아냐?”

지붕에서 내려온 영지병들과 기병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신기한 듯이 와이번을 구경하고 있었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며 몬스터의 기세에 대항할 수 있게 된 몬스터 사냥꾼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모두들 수고했다. 오늘 사냥은 여기서 끝이다. 각자 돌아가서 개인정비 하라.”

영주는 마치 토끼 사냥이 마친 것처럼 여상스럽게 병사들에게 해산을 지시했고, 영주의 드레이크라는 금빛의 괴수는 흉악한 와이번을 무슨 꿩 물고 있듯 물고 있었다.

삐이이익.

구슬프게 우는 와이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몬스터 사냥꾼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 그리고 자네들은 바로 떠나지 말고 적당한 곳에 짐을 풀고 있도록.”

조금이라도 더 이곳에 머물렀다가는 제 정신이 아니게 될 것 같아 사냥꾼은 당장에라도 이 비정상의 극치인 마을을 떠나고 싶었지만, 영주의 명령에 그러겠노라 고개를 숙여야 했다.

**

김선혁은 와이번이 제압되자마자 곧장 테이밍을 시도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는 병사들을 해산하고 몬스터 사냥꾼들을 적당히 억류하라 지시했다. 공이 있고 죄가 있으니 모든 일을 마무리 하고 적당히 계산을 치러줄 생각이었다.

그는 마을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나서야 와이번을 끌고 저택으로 이동했다.

병사들과 함께 비상 대기 중이었던 아샤 트레일은 이미 와이번의 포획 소식을 들었는지, 배치해두었던 병사들을 벌써 해산시킨 상태였다.

“저런 커다란 놈이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닌다니, 대단하군요.”

평소 그다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녀도 생전 처음 보는 비행형 몬스터를 보고는 꽤나 신기해했다. 와이번의 포획과정을 짧게 요약해 알려주자, 그녀가 짤막하게 감상을 말했다.

“그놈 참, 생김새와는 달리 꽤나 머리가 둔한 모양입니다.”

그녀의 말마따나 사냥꾼도 와이번의 지능이 그리 높은 것 같지는 않다 말한 바가 있었다. 자신들 역시 와이번의 낮은 지능을 이용해 포획할 수 있었다니, 아마 그 말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보다 아이젠 경은?”

“본 적 없습니다.”

영지에 이 난리가 났는데도 아리아 아이젠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나타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와이번 같은 희귀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하면 얼굴은 비출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그녀의 연구욕은 중증이었다.

“어쨌건 고생하셨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듣도록 하지요.”

절도 있는 동작으로 영주에 대해 예를 표한 그녀가 뚜벅뚜벅 병영 쪽으로 사라졌다. 영지에 오고 나서도 한 결 같은 모습이라 피식 웃어 보인 그가 뒤늦게 줄리앙을 발견하고는 자랑스레 말했다.

“와이번 잡았다.”

“네. 제 눈에도 보입니다. 근데.”

줄리앙은 축하의 말 대신 그의 뒤편을 바라보며 물었다.

“생포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생포해야지.”

“근데 저건 다 죽게 생겼는데요?”

그 말에 화들짝 놀란 그가 뒤를 돌아보니, 마치 껌이라도 씹듯 턱을 질겅거리는 골드레이크의 모습이 보였다. 억센 턱이 움직일 때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숨을 몰아쉬는 와이번의 모습이 언제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멈춰! 안 돼! 먹는 거 아냐!”

골드레이크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턱을 놀리는 것을 멈추었다.

“큰일 날 뻔했네.”

다행스럽게도 와이번은 골드레이크의 턱이 느슨해지자 다시 어느 정도 기력을 찾은 모습이었다. 비록 사냥당해 비참하게 깨물린 신세가 되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생명력 하나만큼은 끈질긴 와이번이었다.

그는 안토인 몽테뉴를 불러 사냥에 참여했던 병사들에게 적당히 술과 고기를 내주고, 때아닌 몬스터의 침입에 놀랐을 영지민들에게도 적당히 먹을 것을 베풀라 지시했다.

그리고는 곧장 와이번을 끌고 평소 골드레이크가 머물던 거대한 창고로 향했다.

“자, 시작해볼까.”

- 드래곤 테이밍 스킬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 잠시간 와이번과 교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와이번과 교감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 드래곤 테이밍 스킬이 활성화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교감 능력을 통해 와이번의 상태가 전해져 왔다.

- 자포자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