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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 반격 (3)
테오도르 티베리우스 로 아데스덴은 왕좌에 오른 뒤로 줄곧 내치에만 전념해왔다. 오랜 전쟁으로 소모되었던 국력을 회복하고 정체되어 있던 국가의 발전에 주력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아덴버그의 국민들은 테오도르 국왕을 칭송했다. 하지만 그런 테오도르 국왕에게도 오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내치에만 전념하느라 녹테인을 억제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서부 국경의 병사들은 숱한 전쟁으로 단련이 된 정예병이었지만, 테오도르 국왕은 그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덕분에 서부군은 늘 수비적이어야 했으며, 수동적으로 녹테인의 침략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게 서부군에게는 늘 불만이었다.
그런데 그 제약이 갑작스레 풀려버렸다. 현왕이라 불리던 테오도르 국왕이 처음으로 침략전을 강행한 것이다. 늘상 당하기만 해왔던 왕국의 서부군은 쾌재를 부르며 국경을 향해 진군했다.
“완전 개판이군. 이렇게까지 허술할 줄이야.”
비텐펠트 로이엔 맹스크 사령관은 2개 연대 규모의 보병들이 진격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한 녹테인의 국경 수비대를 비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방심한 국경 수비대의 턱 끝에 비수를 들이밀었다.
“철저하게 짓밟아라! 다시는 녹테인 놈들이 아국을 넘보지 못하게 하라!”
초병조차 고개 꾸벅이며 잠이 든 야심한 시각, 아덴버그의 보병들이 녹테인의 동부요새를 기습했다. 방어전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듯 방만하게 늘어져 있던 녹테인의 병사들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성문을 내주었다.
2개 연대 규모의 보병들이 전광석화처럼 요새의 주요 시설들을 점거했고, 그 과정에서 추운 겨울 밤, 독주에 취해 곯아 떨어져 있던 녹테인의 동부군 사령관의 목이 잘렸다.
“녹테인 사령관의 목이 떨어졌다!”
아덴버그 왕국의 병사들은 소리 높여 사령관의 전사를 알렸다. 불의의 습격에 허겁지겁 반격을 준비하던 녹테인 병사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사령관을 잃은 녹테인 병사들은 순식간에 전의를 잃었다. 대부분의 병사가 투항의 뜻을 전해왔고, 아덴버그 왕국군은 그중 상당수를 포로로 받아들였다.
“끝까지 버텨라! 요새에 들어온 적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목숨으로 지켜내라!”
“죽을 거면 너나 혼자 죽으시지!”
마지막까지 결사항전을 부르짖던 요새의 고위 장교가 수하의 칼에 찔려 망루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끝으로 전투는 끝이 났다.
그리고 전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진격하라! 아덴버그의 용사들이여! 녹테인의 무리가 다시는 아국을 넘보지 못하게 하라!”
맹스크 사령관은 포효했고, 그렇게 보병들이 활짝 열어젖힌 길을 따라 6개 중대 규모의 기병들이 파고들었다.
“가자!”
김선혁 역시 3개 중대 규모의 중갑 기병대를 이끌고 국경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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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아덴버그의 침략 소식을 전해 들은 녹테인 왕국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그들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동부 국경의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는 동부요새, 칼스테인 성채가 아덴버그군의 손에 떨어지고 난 뒤였다.
“아이언 드미트리 칼스테인 사령관 전사! 1개 연대가 괴멸 당했고, 2개 연대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발생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피해에 녹테인의 수뇌부는 침음을 내뱉었다.
“사실상 동부 지역의 통제권을 3할 이상 상실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더욱 끔찍한 것은 따로 있었다. 동부군의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칼스테인이 사망하는 바람에 무너져버린 지휘체계였다.
“성채를 점거한 아덴버그군 그대로 잔류! 추가 투입된 기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는 소식입니다!”
“적 기병들의 규모와 진로를 최우선으로 파악하고, 칼스테인 성채에 남은 적의 규모를 소상하게 확인하라!”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써보았지만, 그간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국경 수비대의 움직임은 굼뜨기만 했다.
“칼스테인을 점거한 아덴버그 군은 맹스크 요새 소속의 보병대 2개 연대로 확인되었습니다. 비텐펠트 로이엔 맹스크의 깃발이 성채에 걸려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망할 맹스크 영감탱이가!”
녹테인의 수뇌부가 아덴버그의 방패라 불리는 숙적에 대한 욕설을 한참이나 내뱉다가 불현 듯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적 기사 전력의 참전여부는 확인되었나?”
“기사 전력 전무! 마법 발현의 흔적 역시 찾지 못했다는 보고입니다!”
그나마 전면전을 염두에 둔 전력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해야 했을까. 하지만 마냥 안도하기에는 동부에 파고든 적 기병 전력이 심상치 않았다.
“기병대의 행방을 파악하여, 철저하게 요격하라!”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국경에 침투한 적 기병대의 수는 6개 중대로 파악되었습니다. 그중 3개 중대는 동부에서 바로 북상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개 중대 규모의 적 기병은….”
잠시 망설이던 전령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행방 묘연! 첫 교전 이후 행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적의 행적을 놓쳤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녹테인의 지휘부는 여유가 있었다. 침투한 기병대를 일시에 소탕하는 것만으로도 아국에 비해 기병 전력이 부족한 아덴버그 왕국에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행방불명된 3개 규모의 적 기병대의 지휘관, 드레이크 나이트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기병대에 드레이크 나이트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보고를 들은 그들은 저도 모르게 의자를 떨치고 일어나고 말았다.
“하필이면 드레이크 나이트가!”
“그 빌어먹을 놈이 왜!”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녹테인의 수뇌부가 다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대기 중이던 이방인들 중 상급 병과로 전직한 자들을 중심으로 부대를 꾸려 동부로 급파하라!”
“사라진 적 기병의 행방을 최우선적으로 파악하고, 진로가 확인되는 즉시 인근의 부대들을 물려라! 그 어떤 경우에라도 전격적인 교전은 불허하며!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퇴각을 우선하라!”
**
하지만 전투라는 게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피하기를 원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게 아니었다. 지금이 딱 그 경우였다.
“으. 더럽게 춥네.”
귀가 떨어질 것 같은 한겨울 찬바람에 화톳불을 의지해 추위를 견디고 있던 녹테인 병사가 문득 저 멀리 보이는 어슴푸레한 그림자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뜨며 힘을 주었다.
“어?”
흐릿한 그림자가 금세 선명해졌고, 이내 수백의 인마라는 사실을 깨달은 병사가 비명처럼 외쳤다.
“적이다!”
비상종이 댕댕댕 울리고, 순식간에 주둔지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미 국경의 소식을 접했던 부대인지라 전투 준비는 금세 끝이 났다. 창병이 입구에 진을 치고, 궁병들이 망루와 목책 위로 올랐다. 그야말로 만전의 태세였다.
하지만 그렇게 단단하게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녹테인 병사들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드레이크 나이트….”
대규모 기병대의 이동 시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땅울림도 발굽 소리도 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적의 선두에서 거대한 괴수를 보았던 탓이다.
사스테인을 잡아먹고, 5개 중대의 기병대를 괴멸시킨 강적, 드레이크 나이트의 출현에 병사들은 완전히 겁을 집어 먹었다.
평소 쓸데없이 높게 지어서 볕이 제대로 들지 않는다며 불평했던 목책이 오늘따라 낮게만 느껴졌다. 목을 가볍게 드는 것만으로도 목책을 내려다볼 듯 거대한 괴수의 모습이 불길하기만 했다.
“오, 온다!”
적은 망설이지 않았다. 잠시 화살이 닿지 않는 거리에 멈춰선다 싶더니, 괴수 하나와 인마 하나가 툭 하고 떨어져 나와 주둔지를 향해 달려든 것이다.
“쏴!”
크아아아아아!
궁병대의 중대장이 사격을 지시했지만, 때마침 터져 나온 괴수의 포효에 상당수의 궁병들이 시위에 걸었던 활을 그대로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나마 쏘아 올린 화살도 조준이 흐트러져 엉뚱한 곳에 떨어졌을 뿐이었다.
“으아아아!”
병사들은 끔찍한 포효에 오들오들 떨었고, 그 사이 지척까지 다가선 괴수가 갈기처럼 돋아난 목의 돌기를 부풀리고 목책을 들이받았다.
쾅!
단 한 번, 단단하게 고정된 목책이 박살이 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마, 막… 아악!”
텁.
목책 위에서 궁병들을 독려하고 있던 중대장 하나가 괴수의 억센 턱에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그리고 곁에 멍하니 서 있던 수많은 병사들이 괴수의 머리통에 치여 굴러 떨어지고 박살이 났다.
“쏘라고! 이 병신들아! 가만히 있다가 죽을래!”
“창병대 찔러!”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지휘관들이 괴수를 막는다고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주춤거리며 다가선 창병들이 그 서슬에 놀라 창을 찔렀다. 그리고 화살이 쏟아졌다.
“아악!”
그런데 그렇게 필사적으로 쏘아올린 화살은 괴수의 피부를 뚫기는커녕 도리어 아군의 피해만 키워버렸다. 제대로 조준조차 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쏜 화살에 인접해 있던 창병들이 죄 죽어나간 것이다.
“돌격.”
그 순간 무너진 목책 틈으로 적의 기병들이 들이닥쳤다. 보병들은 단단한 갑주를 입은 기병들을 어찌할 수 없었고, 속수무책으로 쓸려 나갔다.
“사, 살려줘!”
급기야 입구에 도열해 있던 창병들이 목책의 문을 열고는 주둔지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
그날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다른 이들을 부추겼다는 죄목으로 한 팔이 잘렸던 김우영은 몸이 완전히 낫기도 전에 백의종군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비록 잘려나갔다 도로 붙은 팔이 온전하지 않았지만, 상급 병과인 마검사로 전직한 자신이라면 금세 죄를 덮을 정도의 공을 세울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김우영은 첫 전투에서 무려 열 번 이상 죽을 뻔했다. 전장은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끔찍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 간단한 이치를 깨닫기가 너무 힘들었다. 울며불며 창을 내지르는 적을 베는 건 맨정신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첫 전투에서 그는 단 한 명의 적도 죽일 수 없었다.
밀려드는 악의와 살의에 짓눌려 그저 닿지도 않을 칼을 꼴사납게 휘둘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지 않았다. 그 모든 게 곁에서 굳건히 버티고 선 자신의 상관 덕이었다.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은 것도 김선혁이었지만, 자신을 지옥에서 건져준 것도 그였던 것이다.
“고, 고맙습니다.”
그때쯤 가서는 자존심이고 원망이고 온데간데없게 되었다. 그저 그 곁에 붙어있어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의지하고 기댈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끝이 나고 김우영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하지만 김선혁은 그의 목숨은 구해주었지만, 돌봐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전투.
첫 전투에서 십여 차례 이상이나 죽을 뻔했던 김우영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전장에 나섰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검 끝이 적의 살을 파고드는 순간 모든 각오와 결의가 무너진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스킬이고 뭐고 없었다. 처음 그때처럼 꼴사납게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오늘 네가 죽인 적의 수는 모두 넷이다.”
그리고 전투가 끝이 났을 때, 김선혁이 자신이 베어낸 적의 수를 알려주었다. 저 앞의 괴물 같은 상관에 비해 초라하다지만 마침내 적을 베어내 전공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 뒤늦게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고는 밤이 다 가도록 울부짖었다.
이번에도 김선혁은 위로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네 번째 전투, 달려드는 창병들을 맞아 필사적으로 싸웠다. 적들은 거대한 괴수에 올라탄 드레이크 나이트보다 손쉬워 보이는 자신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마검사의 스킬은 강력하다. 하지만 창에 찔리고 칼에 찔리면 죽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다수가 내뿜는 악의와 살의는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손발을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가뜩이나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왼팔 역시 그에게는 치명적인 페널티였다.
‘너는 앞으로 나와 함께 부대의 선봉을 맡을 것이다. 내가 물러나기 전까지는 도망칠 수도 없고, 내 곁에 끝까지 남아야 할 것이다.’
김선혁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그는 항상 가장 먼저 적과 부딪쳤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싸웠다. 전투가 가장 격렬하고 험한 곳에는 늘 그가 있었다.
덕분에 김우영은 정말로 죽을 고생을 해야 했다. 그나마 죽지 않은 것은 자신의 죽음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거라 생각했던 김선혁이 위급할 때마다 도움을 주었던 덕이었다.
앙금처럼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원망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은 원망뿐이 아니었다. 그간 자신이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하찮게 여겨졌다. 죽고 죽이는 전쟁 앞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이 끔찍한 전쟁이 어서 끝이 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을 뿐이었다.
“추격하지 마라.”
더 이상 달려드는 적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비명은 들려왔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적들을 아군이 정리하는 소리였다.
또 한 번의 승리가 드레이크 나이트의 이름에 더해졌다. 하지만 김우영은 부럽지 않았다. 그가 선망했던 것은 이 끔찍한 전쟁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상관의 강인함이었다. 언젠가 자신도 저런 강철과도 같은 마음가짐을 갖기를 바랐다.
그래야 매일 시달리는 악몽도 끔찍한 죄책감도 사라질 테니까.
하지만 그것마저 착각이었다. 유달리 끈질기게 항전하다 끝내 전멸을 선택한 녹테인의 보병들과의 전투를 마친 어느 날, 김우영은 바이저를 올린 김선혁의 맨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은 피로에 지쳐 있었고, 음울하게 다물린 입가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안면 경련, 자신의 상관은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었다.
억지로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지친 얼굴을 본 순간, 스테이터스와 스킬, 레벨업이 있다고 해서 이곳 세상이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곳은 현실, 그중에서도 자신이 있는 곳은 누군가를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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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테인의 지휘부는 드레이크 나이트를 상대하기 위해 상급 병과로 전직한 이방인 전력을 전부 투입했다. 어설픈 전력으로 상대를 자극하여 손실만 입는 일은 한 번이면 족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낸 이방인과 기병들은 결과적으로 드레이크 나이트와 마주칠 수조차 없었다.
드레이크 나이트와 그가 이끄는 기병대는 기이할 정도로 신출귀몰했고 행선지를 노출시키는 법이 없었다. 그들이 볼일을 마치고 떠나고 난 후에야 생존자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통해 소식이 전해졌을 정도였다.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녹테인도 슬슬 확전을 각오하고 기사단을 투입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쓰고 버리기 편한 이방인 전력만 믿고 있다간 동부 국경이 완전히 괴멸지경에 이를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 국경 안쪽을 휘저어 대던 아덴버그의 기병들이 물러났다. 그야말로 확전의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국경을 유린당한 녹테인의 분노는 컸고, 개중에 과격한 귀족들이 나서서 전면전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운을 걸고 전면전을 펼치기에는 녹테인이 주변 국가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침공의 빌미를 주었다가는 승냥이처럼 달려드는 북부와 서부의 왕국들에게 갈기갈기 찢겨나갈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과격한 귀족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결국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