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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7. 영웅과 범인의 차이 (1)
왕녀를 따라온 이들이 나서서 술과 고기를 풀었다. 사람들은 왕실의 은혜를 칭송하며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셔댔다. 고인에 대한 비탄도 앞으로 살아갈 막막함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잊은 듯한 모습이었다.
과연 녹테인의 잦은 침범에도 서부를 떠나지 않던 강인한 백성들다웠다.
“오랜만이다. 애송아.”
김선혁은 왕녀를 수행해온 중부군의 지휘관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그토록이나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레인하르트 후작과 마주치고 말았다. 하기야 왕녀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왕실 수호대가 그녀의 행차에 함께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자, 잘 지내셨습니까. 후작님.”
그가 어색한 얼굴로 마주 인사를 건네자 후작이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더니, 냉큼 술을 건넸다.
“그때까지만 해도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애송이였는데, 꽤나 장한 일을 해주었어.”
그런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막상 다시 만난 레인하르트 후작은 꽤나 호의적이었다. 과연 호쾌한 인상답게 뒤끝이 없는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제가 주사가 좀 있어서 더 이상은….”
“주사 그까짓 거 대충 먹고 난동 부리다가 흠씬 두들겨 맞으면 고쳐지는 거. 마시게. 이번 기회에 주사도 고치자고.”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레인하르트 후작은 작정한 것처럼 그의 곁에 붙어 술을 권했다. 처음에는 사양하지 않고 술을 받던 그도 슬슬 후작의 복수라는 게 꼭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읍. 저도 더 이상은.”
“비워내. 그럼 자리가 날 거야. 거기에 또 들이붓는 거지. 그게 바로 진짜 남자야.”
가혹할 정도로 술을 권하는 후작의 모습에 김선혁은 깨달았다. 뒤끝이 없기는 개뿔, 후작은 진정으로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주사가 상대를 가려가며 발휘된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이쯤이면 기억이 단절되고 난동을 피웠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만취했음에도 정신만큼은 말똥말똥했던 것이다.
“뭐,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그게 장난이었습니까?”
“애송아. 나를 골탕 먹이고도 이 정도로 끝났으면 다행으로 알아라.”
볼멘소리를 내보았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후작의 말에 도로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왕녀께서 하셨어야 할 말이지만, 알다시피 그분이 원체 이런 자리를 싫어하시니 내가 대신 말하게 됐다.”
근 1년 만에 만났지만 왕녀는 여전히 어리기만 했고, 술자리를 영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적당히 참석하여 예의만 차리고는 곧장 숙소로 향했고,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레인하르트 후작이었다.
“이번에 폐하께서 큰 결심을 하셨다.”
“무슨 결심 말입니까?”
“녹테인이 폐하의 대에 와서 이리도 무도하게 구는 것은 그간 왕국의 내치에만 신경을 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신 모양이다.”
불충하다 생각될 정도로 건들거리는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더없이 묵직했다.
“설마?”
“설마는 무슨 설마. 사람이 그렇게 두들겨 맞았으면 한 번쯤은 되갚아줄 생각도 하게 마련이지.”
후작은 제 앞에 놓인 잔을 들이키고는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아예 병째로 술을 들이마셨다.
“전쟁입니까?”
“그래. 전쟁이다. 이번에 왕녀를 모시고 온 중부군 중 상당수가 서부에 남을 거다. 그리고 서부군 일부와 함께 국경을 넘을 예정이다.”
술이 확 깨는 것을 느낀 김선혁이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단순한 호위라고 하기에는 과할 정도의 병력이 왕녀와 동행한 것이 이상하던 참이었다.
술기운에 취해 내뱉은 망언이라고 하기에는 후작의 얼굴이 너무도 멀쩡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전쟁이 일어날 모양이었다.
“정말로 전쟁이군요.”
“그래. 전쟁이지. 그것도 이번에는 우리가 공격하는 쪽이다.”
결국 김선혁은 참고 있던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자신이 이곳 세상에 온 뒤에 본 녹테인의 침범만 두 차례였다. 이제 와서 아덴버그가 먼저 선공을 취한다고 해서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녹테인의 비루한 땅 따위는 폐하께서도 관심 없으시다. 이번 전쟁은 철저하게 적을 타격하여 피해를 입히는 데 있다.”
“마치 녹테인이 했던 것처럼….”
“그래.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가 노리는 건 녹테인의 백성들이 아닌 녹테인의 주력 부대들이라는 거겠지.”
그야말로 철저하게 당한 만큼 되갚아주겠다는 뜻이었다.
“한 번쯤 휘저어줄 때가 되기는 했어. 그래야 저놈들도 한동안 잠잠해질 테니까.”
또한 이번 전쟁은 마치 옆집 드나들 듯 국경을 들락거리던 녹테인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아. 그럼 맹스크 사령관께서 마지막으로 모종의 임무를 끝내고 은퇴하신다는 게….”
레인하르트 후작은 부정하지 않았다. 김선혁은 그것을 보고 왕국의 방패가 검이 되어 마지막을 불사르려 함을 깨닫게 되었다. 과연 평생을 왕국을 위해 헌신해온 맹스크 사령관다운 결단이었다.
“알다시피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 전력과 마법사들은 참전하지 않는다. 전쟁은 오직 일반병들로만 치러 질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의 전력을 투입할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또 얼마나 되는 병사들이 죽어 나가게 될까,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은 결정이 난 것, 그로서는 막을 길이 없었다.
“날이 추워지고 있으니, 일반 병사들에게는 꽤나 혹독한 전쟁이 되겠지. 어쩌면 실패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하의 의지는 확고하시다.”
역시나 예상대로 절대로 뒤집히지 않을 확고한 전쟁 의지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끔찍한 전쟁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자신이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이제껏 수많은 동료들의 생목숨을 앗아갔던 녹테인에 대한 증오로 전쟁을 반기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너에게 선택권을 주려고 한다.”
혼란스러워하는 김선혁을 보며 레인하르트 후작이 덤덤하게 말했다.
“만약 동료들의 복수가 하고 싶다면, 맹스크 요새로 와라.”
후작은 마지막 술 한 병을 통째로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쟁은 맹스크에서부터 시작될 테니까.”
**
술자리는 금세 끝이 났다. 미묘하게 김선혁을 견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던 중부군의 지휘관들이 모조리 레인하르트 후작을 따라 일어난 것이다.
“그럼 저희는 내일 바로 맹스크로 향해야 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회복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부디 몸이 상하는 일이 없으시기를.”
적당히 예의를 차린 지휘관들이 막사를 뜨고, 홀로 남겨진 그는 가만히 술잔을 기울였다.
“전쟁이라….”
먼저 죽어간 수많은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뒤이어 직접 수습해야만 했던 백성들의 주검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단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뜻 레인하르트 후작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고민을 거듭해보아도 결단은 나지 않고, 빈 술병만 늘어갔다. 다시 술병을 잡아가던 그의 손을 새하얀 손이 잡아챘다.
“누구?”
흐릿해진 시야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얼굴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티야. 술이라도 마셔야 잠이 오지.”
그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푸념했다.
“잠이 안 오나요?”
덤덤한 음성에 그가 갑작스레 고함을 쳤다.
“잠이 안 오냐고? 잘 오는 게 이상한 거 아냐? 내 손에 죽은 사람만 수백이야! 그리고 내가 지키지 못한 사람이 수백이야! 근데 내가 어떻게 잠을 자겠어!”
고래고래 소리를 치던 그가 금세 한풀 꺾인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나도 알아. 처음부터 내가 모두를 지킬 수가 없었다는 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그러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마. 잠깐이라도 멋대로 굴게 내버려둬.”
진짜 사나이는 눈물로 동료를 전송하지 않고, 지나간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아직 진짜 사나이가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왕국의 창? 목숨 걸고 주둔지를 지켜낸 영웅? 웃기지 말라고 해. 그것들이 점점 더 나를 숨 막히게 만들어. 나를 좀먹고 있다고.”
평범하게 살아온 자신은 영웅이라는 호칭이 못 견디게 부담스러웠다. 그 영웅이라는 말 안에 담긴 기대와 신뢰가 그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고, 점점 강박증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그냥 할 수 있는 것만 했을 뿐이야. 그리고 난 할 수 없는 게 더 많아. 그런데 왜 나한테 바라는 것들이 많은 거지?”
레인하르트 후작은 단지 복수를 원하면 맹스크 요새로 찾아오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간단한 제안이 그의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지시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전쟁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제껏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해왔던 면죄부를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드는 행위였다.
“전쟁이 싫다. 죽는 게 무섭고, 내 주변의 누군가가 죽는 건 더 무서워. 그리고 더 이상 사람을 죽이고 싶지도 않아. 그런 내가 복수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합리화하고 있어.”
취기가 오를 대로 오른 김선혁은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웃다가 울다가, 또 울다가 웃었다. 그 꼴불견과도 같은 모습에도 상대는 말없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망가진 건가? 변해버린 건가?”
한참을 떠들어대던 그가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허물어져 간다. 발음도 억양도 엉망인 취중의 넋두리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 말해봐. 아티야. 너는 알고 있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것인지.”
흐릿해진 눈이 점점 감겨간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끝냈을 때는 이미 그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영웅 따위가 아니….”
완전히 곯아떨어진 그는 이내 새근대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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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아 말동무라도 찾을까 해서 왔더니, 고약한 꼴만 보았구나. 술버릇 한번 괴악하도다.”
완전히 잠이 들어버려 이제는 코까지 골아대는 드라흔 자작을 보며 왕녀가 말했다.
“게다가 고민하여 친히 내린 칭호를 그리도 하찮게 여기다니, 참으로 괘씸한 자가 아닌가.”
“아무래도 전투의 중압감이 생각보다 심했던 모양입니다. 술김에 내뱉은 말이니, 진심이 아니었을 겁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지요.”
황당하게도 김선혁이 아티야일 거라고 생각했던 여인은 아샤 트레일이었다. 아티야와 꼭 닮은 얼굴에 취중의 그가 착각을 한 것이다.
그녀의 대답에 왕녀가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떠보였다.
“트레일 경 답지 않구나. 어찌 그자를 그리 두둔하는고.”
왕녀의 질문에 아샤 트레일이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리고 자세를 바로 했다.
“한때나마 검을 지도했던 연으로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감히 왕녀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주제넘었다면 부디 벌하여주소서.”
흠잡을 데 없는 태도에 왕녀가 혀를 찼다. 아무래도 정말로 호위 기사를 나무라려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왕녀는 손을 저으며 ‘참으로 재미없는 인사로다.’ 따위의 말을 내뱉었을 뿐이다.
“눈물을 흘리는 기사는 내 처음 보았노라. 철석간담을 지녔다 여겼던 사내들도 사실은 저리 마음속에 나약함을 숨기고 살았구나. 마음이 참으로 복잡하고 어지러우니 이런 기분은 처음이노라.”
그러고 보니 김선혁을 바라보는 왕녀의 눈빛이 다소 묘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금세 스쳐 갔고, 왕녀는 이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이제야 폐하께서 전쟁의 참혹함을 누차 강조하시며 경계하라 하셨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노니. 저 강인한 기사마저도 저리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니, 그 참혹함을 익히 알겠도다. 전쟁이란 실로 무서운 것이로구나.”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왕녀의 태도가 의아했지만, 아샤 트레일은 따로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처럼 무덤덤한 얼굴로 왕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드라흔 백작과 이름을 부르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을꼬.”
“잘못 들으셨을 겁니다.”
“내 분명 똑똑히 들었느니, 백작은 그대를 아샤라고 불렀노라.”
사실은 아샤가 아닌 아티야의 이름을 부른 것이지만, 엉망으로 꼬여버린 그의 발음 탓에 오해가 생겨버렸다.
“왕녀께서 친히 들으셨다면, 그건 드라흔 백작이 취중에 실수를 한 것일 겁니다. 저와 백작은 서로의 이름을 부를 정도로 사적으로 친교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단호한 태도로 대답을 했지만, 평소라면 그러마 하고 넘어갔을 왕녀가 오늘따라 집요하게 꼬치꼬치 그와의 관계를 물었다.
“돌아가야겠노라. 내 골디의 활약과 백작의 무용담을 들을까 하여 왔건만, 엉뚱한 속내만 엿보고 말았구나. 허나 이로 인해 백작의 상처를 헤집지 않게 되었으니 헛걸음은 아니었노라.”
한참을 캐묻던 왕녀가 몸을 돌렸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늘어놓으며 의연한 태도를 해 보이는 왕녀의 모습이 평소와 똑같았다. 그래서 아샤 트레일은 마음속에 품었던 작은 의문이나마 금세 털어버릴 수 있었다.
“막사까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막사를 나서니 막사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위대의 기사들이 왕녀의 주변을 둘러쌌다. 그 물샐 틈 없는 인의 막을 바라보던 아샤 트레일이 잠시 그들에게서 떨어져,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병사에게 말했다.
“드라흔 백작이 취해 잠이 들었으니, 온전치 못한 몸이 상하지 않도록 백작을 숙소로 옮기도록.”
“넵! 알겠습니다!”
무려 왕실 호위대의 지시를 받은 병사가 부리나케 막사로 뛰어들었다. 병사들에게 업혀 옮겨지는 김선혁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샤 트레일이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왕녀의 호위 대열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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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에 잠에서 깨어난 김선혁은 익숙한 막사 천장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자제한다고 자제했는데 술이 또 술을 부르고 만 모양이다. 취중에 감정이 울컥해 못 할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도 한 것 같았지만, 그나마 그 상대가 아티야라 다행이었다.
“내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대로 새로운 갑주와 창을 주문할 생각이니라. 다시는 그대와 드레이크가 적들의 창칼에 허무하게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노라.”
“왕녀의 배려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럼 백작은 몸을 건사하는 데 전념하거라.”
골드레이크의 안부에 대해 한참이나 물을 거라 생각했건만, 예상과는 다르게 왕녀는 몇 마디 말을 남기고는 주둔지를 떠났다.
왕녀 일행이 떠나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린 그는 사제의 도움으로 숙취를 몰아내고는 남아 있는 드레이크 기병대를 소집했다.
“이번에는 우리 왕국이 녹테인의 국경을 넘을 모양이다.”
레인하르트 후작이 해주었던 말을 설명해주니, 기병들이 저마다 복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개중에는 전쟁이라면 넌덜머리가 난다는 기색인 자도 있었고, 동료들의 복수할 기회를 얻었다며 눈을 빛내는 자가 있었다.
“하여 나 또한 너희들에게 선택권을 주려 한다. 만약 이번 전쟁에 자원하려는 자가 있다면, 따로 나에게 말하라. 원하지 않는 자는 남아도 좋다.”
“중대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클라크의 질문에 김선혁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