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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56화 (56/305)

<-- 24. 우두머리의 소양 -->

거대한 저택, 아름답고 헌신적인 시녀, 시중을 드는 하인들과 하녀들 모두 상상도 못했던 호사였다. 하지만 김선혁은 그걸 마냥 즐길 수 없었다. 그 모든 호사가 제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으로 유지가 되었던 탓이다.

“으아, 미치겠네.”

저택을 유지하는 것도 돈, 시녀와 하인들을 유지하는 것도 돈,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갔다. 당장에야 왕실에서 하사받은 포상금으로 버티고 있다지만, 당장 그마저도 떨어지면 돈이 나올 구멍이 없었다.

기왕 이렇게 영주가 된 것, 내 영지라도 잘 먹고 잘 살게 만들겠다던 포부는 저 멀리 사라지고, 영지를 제대로 둘러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놈의 돈, 돈, 돈.”

1백의 드레이크 기병대가 영지병이 할 일을 상당부분 덜어주고 있었던지라, 당장 사병을 모집할 일이 없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하지만 영지병 유지에 드는 돈이 아니더라도 돈이 나갈 곳은 무진장 많았다.

영주라는 게 이리 돈이 많이 드는 것인 줄 이야. 아니. 영주의 자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귀족의 작위였다. 귀족이라는 건 정말이지 돈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으어어. 돈, 돈 나올 구멍이 있어야 해.”

돈에 쪼들리는 소시민의 마음으로 그가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을 본 줄리앙이 황당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 어떤 귀족도 자작님처럼 돈에 신경 쓰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나가는 게 다 내 돈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따로 구분되지 않고 백작령에 포함되어 있던 지역이라, 별도로 재정이 확립된 것은 아니지만 곧 세금이 들어올 겁니다.”

“세금 해봐야 얼마나 된다고. 사람도 얼마 안 되고, 그나마 하고 다니는 거 보면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그게 얼마나 되겠어.”

“정확한 건 파견나간 세금 징수원이 와봐야 알 것 같습니다. 다만 예상컨대 저택과 하인들의 유지비를 제외하고도 대략 연간 400골드 정도의 수익은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400골드라는 돈이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기병으로 복무하던 시절에 받은 급료가 있다지만, 전부 왕실의 빚을 탕감하는 데 사용하였고 그는 그 돈을 만져본 적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제 급여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그가 세상 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평범한 소작인 하나가 1년간 벌어들이는 돈이 1골드의 절반을 좀 넘는 70실버, 일반 경장 보병의 급료가 3골드, 자작님께서 기병으로 복무하시던 시절에 받던 급료가 연 30골드였습니다. 전쟁 수당을 포함해 대략 자작님께서는 1년간 60골드 가량을 벌어들이셨을 겁니다. 물론 전마 유지비와 각종 장비 보수비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왕실의 포상금 역시 제외하고 계산했다는 줄리앙의 말에 김선혁은 멍한 얼굴을 해보였다.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던 탓이었다.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해보려다가 그나마 가장 익숙한 기병의 유지비를 기준으로 삼아 물었다.

“그럼 400골드면 기병 열셋 을 먹여 살릴 돈이네? 보병 80여명을 유지할 돈이고.”

“실제 식비와 기타 비용을 생각하면 기병 셋, 또는 보병 서른 정도를 유지할 정도의 돈입니다.”

“많은 거야? 적은 거야?”

“많이 적습니다. 평범한 남작들의 연 수익이 800골드 정도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빈궁한 축에 속하지요. 저는 아직도 자작님께서 왜 다른 후보가 아닌 이곳을 영지로 결정하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만약 처음에 보셨던 지역을 영지로 받으셨다면 최소한 세금이 두 배는 나왔을 겁니다.”

이제 와서 아쉬워 해봐야 죽은 자식 부랄 만지기였다. 당시에는 가장 중요했던 게 돈보다 지맥의 존재 유무였고, 라인펄은 그런 의미에서 꼭 그에게 필요한 땅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으시다면, 추가 징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추가 징수?”

“마음만 먹으면 집집마다 달려있는 창문에 조망세를 물리고, 화로에 불을 피울 때마다 화덕세를 물릴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강을 이용하는데 세금을 부과한다거나 수염을 기른 사내들에게 세금을 추가적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귀족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김선혁은 듣는 순간 바로 거절했다. 당장 돈돈돈 거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지민들을 착취하는 악덕 영주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당장 400골드의 수익이면, 풍족하지는 않지만 영지를 운영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나는 하도 나가는 돈이 많아서 나가서 돈이라도 벌어봐야 하나 했지.”

제 딴에는 농담이라고 한 이야기였는제 줄리앙은 무슨 해괴한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정색했다.

“하지만 세수를 늘리든 다른 방법을 써서 수익을 만들기는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고 중앙군 소속인 드레이크 기병대에 의존할 수도 없고, 사병 스물 정도로는 유사시를 대비할 수 없습니다. 최전선은 아니지만 이곳 역시 전선에서 그리 먼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지. 맞아. 다 맞는 이야기야. 그런데.”

줄리앙의 유창한 대답을 듣던 김선혁이 눈을 빛냈다.

“너 계산 엄청 잘하는구나.”

“음.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집안의 남자들이 전부 군쪽에 몸을 담았던지라, 당장 영지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으니까요. 세무라면 여덟 살 때부터 지겹도록 봐왔습니다.”

자신이 여덟 살이었을 때는 뭘 하고 있었던가. 코를 찔찔거리면서 동네를 헤집고 다닐 때였다. 그런데 줄리앙은 여덟 살 때부터 이 복잡한 돈 계산을 해왔다니 새삼 그녀가 달라보였다.

“아주 좋아. 아주 좋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잔소리 심한 애늙은이 정도로 보였던 그녀의 존재가 기껍게만 보였다.

“그러니 앞으로 돈 계산은 줄리앙이 맡도록 해.”

지금도 저택의 대소사에 줄리앙의 손이 안 가는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세금에 관련된 업무까지 떠넘기니 그녀가 드물게 거북스러운 얼굴을 해보였다.

**

결국 영지의 세무는 줄리앙이 맡게 되었다. 그녀가 믿을만한 사람인가는 둘째 치고서라도 당장 업무를 맡을 만한 이가 없었던 탓이다. 어린 아이에게 과중한 업무를 맡기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줄리앙은 중임을 맡을수록 얼굴이 폈다.

아무래도 맹스크에서 여자라 무시 받으며 중임에서 배제되었던 기억이 있어, 차라리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기병대의 거처는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야. 영주님 오셨네.”

마침 영지 순찰이라도 다녀온 것인지 알은 체를 해오는 한센과 신병들의 모습이 중갑을 제대로 착용한 모습이었다.

김선혁은 인사 대신 한센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기병용 중갑 80골드, 말 한 마리 50골드, 기타 무기 20골드, 도합 150골드. 게다가 급여는 1년에 30골드.”

차라리 몰랐다면 모를까, 줄리앙에게 이 곳 세상의 경제에 대해 교육을 받고 나니 모든 것이 돈으로 보였다. 그런 그의 눈으로 보기에 도합 150골드의 장비를 걸치고 있는 중갑 기병들은 그야말로 부르주아였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순찰 다녀온 기병이 다섯, 합치면 750골드. 내 1년 수익보다 많아!”

미친 사람처럼 숫자를 내뱉은 김선혁의 모습에 한센과 기병들이 멍한 얼굴을 해보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주둔지를 돌아다니며 기병대 전체의 가치를 계산해보았다. 비록 기사는 아니었지만, 중갑 기병에게 요구되는 장비의 수준은 기사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고 그런 기병들 일백을 모아두니, 걸친 장비값만 해도 천문학적이었다.

“15000골드.”

무려 라인펄 영지의 세금을 30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런 기병대를 십여개 이상 중앙군 소속으로 둔 왕실은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걸까. 게다가 그들이 보유한 군대가 비단 기병들뿐이 아니었으니, 왕실의 재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없던 충성심마저 생겨날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왕실에 충성을 바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 놀라운 자본에 감탄했을 뿐이다.

“뭐, 영주님 생각은 대충 알겠는데 당장 걱정할 건 없어요. 갑작스레 왕실이 우리 기병대를 또 다른데로 보낼 리가 없으니까. 여기 정도 위치면 일 터졌을 때 전방으로 지원 가기에도 좋고 주변 영주들을 억제하기에도 딱 좋은 위칩니다.”

기병 대원들 말고는 다른 사람도 없었건만 클라크의 말은 완전한 존대였다. 아무래도 김선혁이 영주가 되고 중대장의 자리가 된 이상 전처럼 대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영주님이야 본인 스스로가 기병대의 중대장이기도 하고, 아직까지는 영주의 입장보다 기병대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서 문제가 되지 않은 거지, 다른 영주였다면 왕실의 군대가 영지의 중심까지 들어오는 걸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유사시에 왕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영지를 쥐락펴락 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런 정치적인 부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사병을 대신할 군대가 영지에 주둔중인 덕에 남의 돈으로 운용할 병사들이 생겼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사실 우리가 영지를 순찰 도는 것도 월권입니다. 그리고 할 이유도 없고요.”

“우리 사이에도?”

김선혁이 되도 않을 애교를 피우니 클라크와 다른 대원들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사이니까 이렇게 알아서 충성하잖습니까.”

비록 말투는 전과 달랐지만, 친근하고 정감 있는 태도만큼은 여전했던지라 김선혁은 걱정도 잊고 마주 웃고 말았다.

“그래도 행여나 왕실과 척질 생각은 마십시오. 진짜 일 터지면, 우리도 명령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다들 가족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왕국 군인 본연의 임무만큼은 잊지 않는 클라크의 태도를 보니, 왜 왕국이 사병화를 걱정하지 않고 영주에게 중대장의 임무를 준 것인지를 알 것 같았다. 클라크가 그은 선이 서운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그도 이 세상에 어지간히 적응이 된 모양이었다.

“걱정 말아요. 난 아주 가늘고 길게 살 거니까.”

“내가 이래서 우리 자작님을 좋아한다니까!”

심각할 수도 있는 대화를 금세 웃으며 받아넘기는 김선혁의 태도에 기병대원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아, 그리고 엠마 말입니다. 만약 허락만 해주신다면 우리 애들 중 둘 셋 정도를 보내서 데려올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지금 저한테 휴가 청탁하는 건가요.”

“네.”

뻔뻔스러운 대답에 김선혁도 그저 웃었다.

김선혁은 곧장 휴가 승인을 해주었고, 한센과 요나슨, 그리고 잭슨이 또다시 맹스크로 향하게 되었다. 엠마에게 반한 잭슨인지라 그가 선심 쓰듯 고참들을 재치고 인원에 포함시켜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는 잭슨을 뒤로 하고 김선혁은 다시 저택으로 향했다.

**

라인펄에 온 뒤로 골드레이크는 또 한 번의 탈피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지천에 널린 것이 지맥들이니 김선혁이 틈나는 대로 계속해서 먹여버린 것이다. 덕분에 처음 보았을 때는 앙상하고 비루했던 골드레이크가 이제는 진짜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머리를 꼿꼿이 세우면 3미터가 넘고 몸의 길이만 해도 거의 6미터에 달하는 거대 괴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 안 닿아! 잘 안 닿는다고!”

흔들림은 심해졌고, 안장 위에서 내려다본 타겟은 더욱 멀어졌다. 그 바람에 4미터에 달하는 기병용 창을 들고도 위험할 정도로 표적에 붙지 않으면 원하는 지점을 타격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해결 방법은 둘, 기존의 기병용 창보다 더 긴 창을 만들어 장비하든지 골드레이크 대신 스텔라를 애용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끙. 그래도 용기병인데 이놈을 포기할 수는 없지.”

심각한 상하 좌우 운동과 커다란 덩치 탓에 생겨버린 페널티는 다른 기병들과 함께 훈련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그는 골드레이크를 포기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인구당 세금과 유지비등 돈 계산하느라 늦었습니다. ㅜㅜ

*텀 없이 다음편 바로 업데이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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