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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32화 (32/305)

<-- 15. 포상 휴가 -->

24연대 소속 중갑 기병대는 사스테인과의 전투로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지휘부는 기병대가 지금 상태로는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 판단했고, 부대의 해체까지 고려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24연대가 반쪽짜리 기병대가 되어야 했던 이유, 사스테인 기병단을 꺾은 그 명성은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그래서 해체수순만이 남아있던 기병대에 새로운 인원을 보충하기로 했다.

“왕실은 이미 전국 각지의 각 부대에 공문을 전달했다. 부대마다 적게는 하나 둘에서 많게는 1개 조 인원의 베테랑 기병들이 차출되어 이곳으로 올 예정이다. 부대가 재편되기까지 할 일도 없을 테니, 푹 쉬라는 사령관님의 배려다.”

한 달이라는 긴 휴가가 주어진 배경에 그런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보나마나 어떤 놈들이 올지 뻔하군요. 이때다 싶어서 제 부대에서 치우지도 못하던 골칫덩어리들을 보내올 텐데. 이거 아무 생각 없이 휴가동안 쉬기만 했다가는 재편되고 나서도 한참 고생하겠습니다.”

역시나 실질적인 부대의 리더답게 클라크는 당장 차출될 인원의 질과 성품을 걱정했다.

“그게 문제가 되는가.”

“그럴 리가요. 애초에 고분고분한 기병이라니, 그런 놈들을 어따 씁니까. 우리가 수도의 장식품 기병대도 아니고. 아, 혹시 그중에 취급에 주의해야 할 놈들이 따로 있는 겁니까?”

프레드릭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뭐, 문제없습니다. 마침 미친개처럼 신병들을 교육해줄 적당한 인재도 있고.”

술에 취해 기병대원 전원을 두들겨 팬 괴물이 있으니, 성질 더럽고 기질 강한 신병들이 와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환영회랍시고 한 번 술판 벌려주고 적당히 시기를 보고 빠지면 김선혁이 알아서 신병들을 교육해줄 테니까.

“그 문제는 귀관에게 전부 일임하도록 하지.”

프레드릭은 차후에 준비된 수도의 개선식과 일정들을 알려주는 등 볼일을 전부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깜박하고 말 안 할 뻔 했군. 이번에 개편되고 나면 우리 부대도 따로 이름을 쓰게 될 모양이다. 휴가동안 부대 이름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도록.”

기사단도 아닌 일개 기병대가 공식적인 이름을 갖게 된다는 건 엄청난 명예였다. 당연하게도 클라크는 그 말을 듣고는 더없이 기쁜 얼굴을 해보였다. 하지만 왕국의 전통상 이름을 부대원들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금세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머리라고는 투구 쓸 때나 사용하는 놈들이 과연 쓸 만한 이름을 생각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명예로운 고민이 될 테니, 즐기도록.”

상급 기사로 승급이 결정된 탓인지 드물게 농담까지 건네는 프레드릭을 보며, 클라크가 다시 웃어 보였다.

“그럼 한 달 뒤에 보도록 하지.”

“중대장님도 휴가 잘 보내십시오.”

**

“라고 중대장이 말했지만, 별로 기대는 하지 않으니 그냥 푹 쉬다 와.”

클라크의 말에도 기병대원들이 의욕에 찬 얼굴을 해보였다. 고유 부대명이 생긴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하나같이 자신이 지은 이름이 부대명으로 선택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생각할 거 있나. 한센 기병대 어때.”

“개소리 하지 마시고요. 가시 장미 기병대는 어때? 아름답고 강해보이잖아.”

한센과 요나슨은 벌써부터 자기가 정한 이름을 밀겠다고 난리를 피워댔다.

“넌 어떻게 생각해?”

다른 생각에 골몰해 있던 김선혁은 갑작스레 자신에게 넘어온 화살에 엉거주춤하게 대답했다.

“실버 애로우?”

“아. 됐다. 지 말 이름도 못 짓는 놈인데, 깜박했네.”

“쯧.”

본인들이나 자신이나 오십보백본데 구박을 하는 태도가 당당해도 너무 당당했다.

“근데 어제부터 내내 뭘 그리 생각해? 뭐, 고민이라도 있어?”

울컥 해서 뭐라고 한마디 쏘아주려던 그는 갑작스레 끼어드는 클라크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휴가동안 있을 곳이 걱정이라면, 적당히 아무나 따라가도록 해. 생긴 건 저래놔도 다들 유복한 집 자식들이다. 손님 하나 왔다고 군식구 취급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어서.”

마침 잘됐다는 얼굴을 한 김선혁이 말문을 열었다.

“혹시 서리 봉우리가 어디 붙어있는 건지 알아요? 북쪽에 있다는데 도통 아는 사람이 없네요.”

“서리 봉우리? 들어본 적 없는데.”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튀어나온 대답,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일렀다.

“그거 우리 고향에 있는 산 같은데?”

한센이 서리 봉우리의 존재를 마침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칼데스 산이라 부르는데, 그 이전에 서리산이었나 봉우리였나가 원래 이름이라고 들었거든. 그런데 그게 왜?”

김선혁은 대답대신 와락 한센을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한센. 한센은 내 은인이에요. 진짜.”

영문을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센을 두고 그가 전날 용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

[북쪽으로 향하라.]

“갑자기 무슨 소리야. 북쪽으로 가라니.”

[북쪽에 위치한 서리 봉우리, 그곳이 그대가 가야할 곳이다.]

“서리 봉우리는 어디고 또 거기에 뭐가 있는데?”

언제나처럼 밑도 끝도 없는 애매모호한 화법에 신경질을 부리니 용이 대뜸 대답했다.

[드레이크.]

이건 또 뭔가 싶었지만, 다행스럽게 용은 드레이크가 뭔지 설명해주었다.

[날개 잃어 다시는 창공을 누빌 수 없게 된 가엾은 아종(亞種)이 그곳에 있다.]

“그게 너야?”

혹시 드디어 때가 되어 용과 만날 수 있게 된 건가 환호했더니, 용이 버럭 화를 냈다. 순혈의 용과 드레이크를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엄청난 실례인 모양이었다.

[기지도 못하는 놈이 날고뛸 수는 없는 법, 걸음마부터 시작하거라.]

다소 감정이 섞인 듯 말이 험했지만, 결국 요점은 하나였다. 새로운 탈 것을 얻으라는 말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정작 드레이크가 있는 서리 봉우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북쪽이라고 방향만 이야기 해주었지 그 위치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쪽저쪽 물어보아도 아는 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했던 한센이 의외로 답을 준 것이다.

“미안해요. 한센. 다시는 한센 무시하지 않을게요.”

“너 나 무시했었어?”

한센이 뒤늦게 성질을 냈지만, 김선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간신히 찾은 드레이크의 행방에 마냥 기뻐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의 휴가 일정은 정해졌다.

**

“한 달 간 휴가라면서요.”

그새 소식이 퍼진 것인지 안유정이 김선혁을 찾아왔다. 그녀는 전에 헤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복잡한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그도 그러한 표정이 익숙해졌던지라 개의치 않았다.

“네. 부대가 재편되기까지 특별히 준 모양입니다.”

“휴가 끝나고, 전역하는 건가요?”

아직까지 그도 정확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터라 적당히 대답을 해주니,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또 억지 쓰려고 찾아온 건 아니니 그렇게 곤란한 표정 짓지 말아요.”

“음. 그렇습니까?”

“혹시 이번에 사로잡힌 녹테인의 기사와 마법사에 대해 들은 게 있나요?”

상급 기사와 마법사라면 사스테인 기병단의 잔당이 섬멸당할 때, 사령관에게 생포된 이들이었다.

“아니요. 대충 몸값 받고 넘기든지, 회유해서 이쪽에서 쓰든지 사령관과 왕실에서 결정을 내리겠지요. 딱히 관심 없습니다.”

“아니요. 다른 이들은 다 몰라도 선혁씨만큼은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해요.”

이건 또 무슨 생떼를 쓰는 건지, 김선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요.”

“그들이 우리와 같더라도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지금 그게 무슨 말...”

“이상하지 않아요? 대륙은 이렇게 넓은데 왜 하필 아덴버그에만 이방인들이 소환된 것일까요.”

안유정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말을 이어갔다.

“이상할 수밖에요. 사실은 그게 아니니까.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이 대륙 곳곳에 소환되었답니다.”

“그걸 왜 우리만 몰랐죠? 왕실은 왜 그걸 숨겼죠?”

“왕실은 숨기지 않았어요. 다만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을 뿐, 알아보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었어요.”

왕실은 가뜩이나 나약한 전선의 이방인들이 동요할까봐 그 사실을 굳이 일부러 말해주지 않은 것이라 말했다.

“설마...”

자신의 손에 유명을 달리 했던 수많은 전사자들을 떠올린 김선혁이 하얗게 질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선혁씨 손에 죽은 이방인은 없어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김선혁은 순간적으로 씁쓸한 얼굴을 해보였다. 무심코 이방인과 현지인의 목숨에 경중을 두고 구분하려 했던 스스로에게 환멸감이 든 것이다.

“아직 선혁씨는 이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진실이 알고 싶다면 중앙으로 와요. 이방인에 관련된 모든 비밀은 오직 왕실만이 알고 있으니까.”

**

이별 인사라고 하기에는 찝찝하기만 했던 안유정과의 대화는 그에게 수많은 의문을 주었다. 내내 안달이 나 있던 그녀는 자신이 내보인 카드가 통할 거라 믿는 것인지 오래지 않아 서로가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는 듯했다.

“맞네. 생포된 적들은 이방인일세.”

참지 못하고 사령관을 찾아가 물으니, 의외로 사령관은 선선히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에게 따로 이야기를 해줄 셈이었네만. 아무래도 중앙에서 온 정령사 아가씨가 먼저 말한 모양이군.”

사령관은 그다지 꺼릴 것도 없다는 투로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우리 왕국에 소환된 이방인의 수는 모두 200, 녹테인 왕국에 소환된 이들은 그에 조금 미치지 않는 150여명의 인원이네. 그 외에도 대륙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 이방인들이 소환되었지. 전부 합치면 수천은 될 걸세.”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 김선혁은 사령관에게 다시 이런저런 것을 물었고, 사령관은 고개를 흔들며 모든 이야기를 훗날로 미루었다.

“원한다면 그들에게 직접 물을 수도 있을 거야. 저들은 가혹한 녹테인의 처사를 견디지 못하고 우리 왕국으로 귀순을 결정했네. 모든 검증이 끝나면 직접 이야기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하네.”

“그렇게까지... 아니. 알겠습니다.”

이제 와서 자신이 그들에게 뭘 물어봐야 할지 혼란스러워진 그는 사령관의 제안을 거절하려다 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 번 이야기를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머리가 복잡하겠지만, 지금은 그저 휴가를 즐기게. 어차피 여기 떨어지나 저기 떨어지나 그게 뭐가 중요한가.”

사령관의 격려 아닌 격려를 뒤로 하고 김선혁은 사령관의 집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휴가 당일이 되었다.

전날까지 엠마의 술집에서 술을 퍼먹었는지 기병대원들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듣자하니 전사한 동료들 때문에 비탄에 빠진 엠마를 달래느라 밤을 꼬박 샌 모양이다.

“모두 사고치지 말고, 시간 맞춰 무사히 귀환하도록.”

“우리가 앤가. 걱정 말라고!”

클라크의 당부에 사내들이 낄낄대며 대답하니, 클라크가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했다.

“남자는 애 아니면 개. 너희들은 둘 다지. 이 개자식들아. 그러니 내가 걱정을 안 하게 생겼냐.”

휴가의 기쁨에 욕설을 듣고도 해실거리던 기병대원들은 한참을 더 낄낄대다 말 위에 올라탔다.

“돌아와서 보자. 이 원수 같은 놈들아!”

“막내 너도 조심히 다녀오고. 한센 누나 조심해라!”

“이 새끼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챙길까.”

동료들의 험악한 인사에 일일이 대꾸를 해준 한센이 이내 말에 오르며 김선혁을 돌아보았다.

“우리도 가자.”

잠시 요새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던 김선혁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애마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말허리를 박차며 요새를 나섰다.

========== 작품 후기 ==========

*코멘트와 추천수가 갑자기 말도 못하게 폭등중이라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로 꿈에서 연재하는 꿈을 꿀 정돕니다. ㅜㅜ 독자분들의 연참을 향한 집념을 느낄 수 있었...

이제는 정말 빼도박도 못하고 연참해야겠군요. ㅂㄷㅂㄷ 그러니 이제 그만 코멘트와 추천 원래대로 주셔도 될 것 같... T^T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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