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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26화 (26/305)

<-- 13. 친구와 주인의 차이 -->

“근데 하나만 더 물어봅시다. 혹시 실전 경험은 있습니까?”

“흥. 설마 실전 경험도 없는데 왕실에서 전선에 우리를 보냈을까봐요. 이미 실전 경험이라면 충분히...”

안유정이 순간적으로 자신이 왜 이리도 고분고분 대답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페이스는 김선혁에게 넘어가고 난 후였다.

“그 실전이라는 게, 어떤 겁니까?”

“도적단을 소탕하기도 하고, 몬스터를 처리한 적도 있어요.”

이번에도 무심결에 대답을 하고는 화들짝 놀라는 그녀의 얼굴이 아예 혼란 그 자체였다. 그녀는 스스로의 행동을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는 듯했다.

차라리 저 존스테인이라는 사내가 앞에 나섰다면 상황이 조금은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무리의 리더를 자처하며 나선 이는 안유정이었고, 김선혁은 그녀의 천적이었다.

그녀가 지닌 능력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바람의 정령은 그에게 있어 그저 지배하고 부려야 할 대상이었을 뿐, 당연히 그녀의 정령도, 그녀도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와 함께 하는 게 선혁씨한테도 좋을 거예요.”

애초에 서열 확인보다는 이쪽이 본래의 목적이었는지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위축될 대로 위축된 얼굴로 애써 권유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그러니 우리와 함께 해요. 왕실의 지원 외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할게요.”

처음에는 강압이었고, 나중에는 권유가 되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애원에 가깝게 변해버린 태도, 주변에서 가만히 그녀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기사 병과의 이방인들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해보였다.

“뭐, 일단 살아남고 나서, 다시 이야기 합시다.”

김선혁은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이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어차피 자작님하고는 이번 작전이 아니더라도, 다시 볼 것 같은 예감이 들거든요.”

그 아무 것도 아닌 말에 그녀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러니 너무 당장 대답 들으려고 안달 낼 거 없어요.”

**

“이익!”

김선혁의 말을 듣고나서야 안유정은 자신이 그에게 자존심도 없이 매달리는 모양새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늦게 발끈해 태도를 달리 하려고 했지만, 등 돌려 사라지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꾸만 어깨가 움츠려들었다.

그래서 차마 그를 붙잡고 다시 한 번 서열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러한 의구심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달리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존스테인의 질문에 그녀가 뒤늦게 표정을 수습했다.

“지금은 사령관이 저 사람을 밀어주고 있으니, 이쯤 하고 물러나죠. 괜히 저자를 자극했다가는 사령관까지 나서는 수가 있어요.”

변명이랍시고 주워섬기는 말이 설득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존스테인을 비롯한 이방인들은 굳이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쪽 세상에서도 저쪽 세상에서도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치에 있는 절대 갑, 일부러 비위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그럼 저희들은 따로 할 일이 있어서.”

“가보세요.”

일부러 피하듯 이방인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고, 홀로 남은 안유정이 김선혁의 이름을 곱씹었다.

“김선혁...”

아무래도 왕실 마법사단의 이은서를 찾아가 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를 관리하던 그 콧대 높은 마법사가 유일한 실패를 겪은 곳이 하필이면 또 24연대였다.

실로 공교로운 우연, 안유정은 몇 번이나 더 저 수상한 사내의 이름을 되뇌었다.

**

“빵빵하게 지원 받으면서 성장했다고 해서 기대했더니, 고작 파벌싸움이나 하고 앉았냐.”

김선혁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일이었다. 전선의 이방인들은 생사가 갈리는 전장에서 버티기 위해 안간 힘을 다 하는데, 중앙의 이방인들은 팔자 좋게 파벌 싸움이나 하고 있다니 차라리 한심해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하나로 저들을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실망을 하더라도 저들의 능력을 보고 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그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엉뚱한 곳에서 실마리를 찾은 속성의 근원이었다.

“정령이었던가...”

분명 느껴졌다. 안유정 주변을 맴도는 익숙하면서도 또 생소한 존재,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정령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한 그 정령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몹시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직후, 눈이 마주친 정령은 겁을 집어먹고 숨어버렸고, 내내 눈 아래로 보며 거만을 떨던 안유정이 완전히 무너졌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제 페이스를 잃고 대답을 하는 그녀에게서 더 이상 처음의 거만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가만. 이러다가 다른 속성도 얻게 되면, 전부 내 밥 아니야?”

되도 않을 상상에 그가 피식 웃고 말았다.

**

드디어 출정 날이 되었다. 요새를 나선 병력은 24연대 소속 중갑 기병 중대와 맹스크 요새 소속의 경기병 중대 하나였다.

“행운을 비네.”

사령관은 친히 요새 앞까지 나와 그들을 배웅하며 승리를 빌어주었다.

“실망시켜드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프레드릭 중대장의 믿음직한 대답에 사령관이 미소를 보이고는 곧장 김선혁을 찾았다.

“지지 않는다던 그 약속, 꼭 지켜주게. 그리 하면 당초 약속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주겠네.”

“그게 뭔지 확인하려면 꼭 승리해서 다시 사령관님과 만나야 하겠군요.”

“그러니 꼭 성공하게나. 남은 이야기는 돌아와서 하도록 하지.”

억센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해오는 사령관의 모습이 일개 병사 하나를 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이례적인 모습에 프레드릭 중대장은 물론 이방인들까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마지막으로.”

주변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사령관은 적당히 작별 인사를 하고는 뒤로 물러나 슬쩍 손을 치켜 올렸다. 그 작은 손짓에 요새의 성벽에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흉갑을 두들겼다.

“24연대에 승리를!”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는 이들의 진심 어린 인사에, 기병대원들 전체가 마주 군례를 보였다.

“맹스크 요새 역시 언제나 그러했듯 끝내 굳건하기를!”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남기고 기병대가 요새를 나섰다.

**

과연 상급 기마술 스킬을 갖고 있다던 이방인 무리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의외였던 것은 당연하게도 안유정이었다. 그녀는 다른 이들에 비해 다소 부족한 기마술을 정령술의 힘을 이용해 만회했는데, 그 힘을 다루는 능력이 세련되기 이를 데 없었다.

“흥!”

그녀는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정작 김선혁의 시선은 그녀를 향해 있지 않았으니, 그 주변을 맴도는 정령을 향해 있었다.

전날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정령이라는 존재가 한 번 인식을 하고 나니, 흐릿하게나마 그 형태가 보였다. 잠자리의 그것과도 같은 두 쌍의 날개를 단 앙증맞은 소녀, 그런데 그 소녀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몸을 숨겼다.

파르르르.

제 주인의 뒤에 숨어서 몸을 떠는 것이 영락없는 작은 여자아이의 모습이라 김선혁은 저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미쳤냐?”

그 바람에 잠시 클라크의 구박을 받기는 했지만, 그는 정령에 대한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호오. 저걸 저렇게.”

그가 말을 내달리는 와중에 이리도 한 눈을 파는 건 그저 정령이 신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한껏 모아 펼치고 밀고 터뜨리는 게 끝이라 생각했던 속성의 기운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안유정을 보며 배울 점이 많았던 탓이다.

“끙. 어렵네.”

하지만 막상 그 활용을 보았다고 당장 써먹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힘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랐다. 정령에게 부탁해 그 의지와 힘을 빌려 쓰는 정령사와 달리 용기병이 속성을 다루는 방법은 과격하고도 우악스러운 것이었다. 저 정도로 세밀하게 컨트롤을 하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속성의 힘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할 수 있어야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유정을 따라 이런저런 시험을 해보는 것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저 우악스럽게 붙들고 마구잡이로 써대는 통에 영 효율이 좋지 않았던 풍신의 능력이 단 번에 바뀐 것이다.

[속성 지배력이 1 만큼 상승했습니다.]

익숙한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을 본 김선혁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알찬 시간을 보내기를 한참, 몇 번이나 속성 지배력이 상승했다는 메시지를 듣고 난 후가 되자 김선혁은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이 지배력이라는 힘이 과연 말 그대로의 힘일까. 호기심은 의문이 되었고 이내 행동으로 옮겨졌다.

그는 안유정의 주변을 맴돌고 있던 정령에게 슬쩍 속성의 힘을 사용해 보았다. 저 작은 정령이 자신의 지배에 따를지 궁금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았다. 이제껏 힘을 써왔던 방식이 워낙에 무식한 방식이었던지라 조절 한다고 했는데도, 지나친 자극을 가하고 말았다.

“아악!”

그 바람에 안유정이 비명을 지르며, 말을 멈춰 세웠다. 정령과 정령사는 생각 이상으로 그 유대가 강한 모양이었다.

“이크.”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힘을 흩어냈지만, 갑작스러운 비명에 혹시 습격인가 싶었던 기병들은 내달리던 말도 멈춰 세운 채,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쯧.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잘 따라온다 했다.”

곧 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기병들이 제 딴에는 목소리를 낮추고 떠들어대는데,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대번에 얼굴이 시뻘게진 그녀가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니면 출발하겠습니다.”

프레드릭 중대장이 툭, 하고 말허리를 자르고는 다시 부대를 출발시켰다. 예전에 이은서가 부대를 방문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 아무래도 사령관과 뭔가 밀약이 있었던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출세를 위해 중앙의 인사라면 간이고 쓸개고 내줄 것 같던 중대장의 태도가 하루아침에 저리 달라졌을 이유가 없었다.

“이익!”

냉담한 시선에 견디지 못한 안유정이 분한 얼굴로 김선혁을 쏘아보았다. 본능적으로 그가 뭔가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하지만 뭐라고 쏘아붙이기에는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영 좋지를 않았다.

“후우. 착하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애를 먹이니.”

결국 제 화를 받아줄 곳을 찾지 못한 그녀는 정령을 달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김선혁의 시도는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그녀의 고난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

“만약 내일도 오늘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부득이하게 따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소.”

당초 예상했던 곳보다 한참 못 간 곳에서 야영을 하게 된 탓에 심기가 상한 프레드릭 중대장이, 은근한 질책을 담아 안유정을 타박했다. 그녀는 잔뜩 지친 얼굴로 대답할 힘도 없다는 투로 고개만 까딱거렸다.

“쯧.”

그 건방진 태도에 잠시 프레드릭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역시나 제 출세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중앙의 인사와 불 필요한 마찰을 갖는 건 피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할 말만 하고 물러난 중대장을 대신해 기병대원들의 날 선 시선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선혁이 괜스레 딴청을 피웠다.

그는 행군하는 내내 그녀의 정령을 괴롭혔다. 당연하게도 정령이 받은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그 계약자인 그녀에게 전해졌다. 그 바람에 그녀는 말을 달리는데 집중할 수 없었고, 몇 번이나 부대 전체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질책 어린 시선 속에서 행군을 이어온 결과 안유정은 몸도 마음도 완전히 퍼져버리고 말았다.

“아아...”

땀에 들러붙은 앞머리는 처음의 단정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먼지 내려앉은 정수리와 의복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숨만 꺼떡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리 그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그라고 해도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기에 해야만 해야 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를 안유정을 통해 다시 한 번 도약을 이루는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저들 무리의 기를 죽여 놓을 필요가 있었다.

‘같은 이방인이니 저들의 성향이야 알고 있을 터, 자네가 저들을 맡아주게.’

사령관은 전장의 험함을 경험해보지 못한 햇병아리들이 통제를 벗어날 것을 우려했고, 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출세에 대한 미련이 큰 프레드릭으로서는 그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으니, 믿을 건 그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 의미에서 안유정의 거듭된 실수는 좋은 구실이었다. 비록 요격전이 아닌 유인 섬멸전의 특성상 이쪽의 행군속도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건 실수는 실수였고 리더의 실책은 무리 전체의 사기를 저하시켰다. 혹시 모를 갈등의 여지를 현저하게 낮추는데 성공한 것이다.

끄응. 그래도 조금 미안하긴 하네.

“마셔요.”

그래서 그는 사과하는 차원에서 먼저 다가가 시원한 냉수를 건네주었다.

벌컥. 벌컥.

달리는 내내 바람에 노출되었던 수통은 지친 그녀의 정신이 깨어나기에 충분할 정도로 차가웠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그녀가 아직까지 채 정리하지 못한 혼란의 여운이 남은 음성으로 물었다.

“당신 대체 뭐죠?”

“뭐가 말입니까?”

찔리는 게 있었지만, 그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전투가 시작되면 능력의 일부가 드러나겠지만, 지금 당장부터 능력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아까 있었던 그거, 당신 짓이잖아요.”

“무슨 말인지...”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대체 왜 내 정령이 당신을...”

뭔가 정령을 통해 낌새를 차린 듯한 그녀를 보며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두려워하는 거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알 수 없는 열망과 자괴감으로 마구 일렁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조언과 질타를 받았고, 수차례 해당 부분을 곱씹어 읽어보았습니다. 몇 번이나 읽어본 끝에 위화감을 발견했고, 해당 부분을 수정하여 조금 더 매끄러워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정하여 더욱 나은 글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조언과 비판은 언제나 부족한 글을 조금이나마 나은 글로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댓글 이벤트는 종료되었습니다. 당첨자 분들은 전편 후기에 공지해놓았으니 확인 후 쪽지 부탁드립니다. 쪽지 확인 후 일괄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이벤트는 시작할 때 다시 또 후기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추천과 코멘트, 선작, 평점은 모두 글쟁이의 가장 큰 힘입니다.

*오타 지적과 오류 지적은 보는 즉시 수정하고 있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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