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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17화 (17/305)

<-- 10. 최강의 기병대 -->

그날 외부 훈련을 다녀오고 난 뒤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 기병대원들은 더 이상 김선혁을 이방인 취급하지 않았고, 완전히 동료로 대해주었다.

“빚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후원 아냐? 그걸 굳이 그렇게 거부하려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를 않는군.”

왜 자신의 힘이 노출되기를 꺼려했던 것인지 허심탄회하게 말해주었더니, 클라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원이든 뭐든, 빚이 더 늘어나는 건 사양입니다. 지금이 딱 적당합니다.”

왕국의 후원은 무조건적인 헌신과 봉사, 그리고 충성을 담보로 한 사실상의 대출이었다. 멋도 모르고 그 포장 번드르르한 제안에 넘어갔다가는 언제까지 왕국에 묶여있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클라크는 그의 생각을 존중해주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하지만 영원히 숨길 수는 없을 거야. 전장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알고 있습니다.”

김선혁도 알고 있었다. 후원금 명목의 빚을 갚기 위해서는 전장에서 공을 세워야 했다. 그런데 그 전장이라는 놈은 자신 같은 풋내기가 거들먹거리며 힘을 숨길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에 그는 머리가 아팠다.

“어차피 숨길 수 없다면, 적당히 덮어줄 만한 힘이 있는 사람한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는 건 어때?”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때로 사내들의 관계를 더욱 더 돈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게 바로 딱 지금 같은 경우였다. 곁에서 심각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요나슨이 슬쩍 끼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데 그의 일을 제 일처럼 생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누구?”

“우리 아저씨 있잖아.”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었더니 금세 아저씨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프레드릭 말이야. 프레드릭. 그 아저씨 엄청 출세지향적인 사람이라고. 아마 네 능력을 알게 되면 어떻게든 이용해먹기 위해 안달이 날 걸? 공만 적당히 세워놓으면 승급은 따 놓은 당상이잖아.”

요나슨은 그렇게 말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건 걱정하지 마. 오히려 그 아저씨가 기를 쓰고 막아줄 거야. 까딱 잘못하면 운 좋게 손에 들어온 명검을 써보기도 전에 빼앗기고 말 테니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용기병의 힘이 그저 그런 하급의 병과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가장 먼저 왕실의 사람이 찾아올 것이다. 차라리 몰랐다면 모르되 그의 힘을 알고도 활용해보지 못한 채 빼앗기는 것은 공을 세울 기회만 노리고 있는 프레드릭 중대장도 바라지 않으리라.

“조금 더 고민해보자. 당장 결정을 내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 모든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김선혁은 묘한 기분이 되었다. 제 일도 아닌데 제 일처럼 나서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는 기병대원들의 모습이 생소했던 탓이다.

“뭘, 그런 얼굴로 보고 있어. 까놓고 말해서 우리도 네가 여기 오래 있어야 더 공을 세울 기회도 많아지고 할 거 아니야.”

“확실히 그 무식한 차징이라면 이제껏 기피해왔던 전술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어.”

“강한 놈이 앞을 맡으면 뒤를 따르는 우리도 수월해지지.”

거친 사내들은 제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서툴렀고, 그래서 들려오는 말들이 하나같이 투박하고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온기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던지라 김선혁은 결국 고민도 잊고 웃어 버렸다.

**

훈련은 계속되었고, 이제 기병대원들은 김선혁의 무지막지한 차징에 놀라고만 있지는 않게 되었다. 그들은 이 막강한 선봉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어렵지 않게 그 능력에 적응했다.

“끙. 나도 말도 체력소모도 덜하고 좋긴 한데, 영 밍밍한 게 돌격할 말이 안 나네.”

그의 뒤를 따라 달릴 때면 바람조차 길을 열어주는 기분이라, 그게 영 적응이 되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게 싫을 리가 없었다. 온몸을 밀어젖히는 바람을 이겨내며 돌격에 필요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이만저만 피곤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빠르게 강해졌고, 덩달아 김선혁도 강해졌다.

[김선혁]

□ Level. 4

□ 용기병(Dragon Rider)

□ 고유 속성

-풍(風) / 속성 지배력 64

:풍아(風牙)

□ 근력 23 / 지구력 22 / 민첩성 25 / 마법 저항력 33

□ 보유 스킬

-드래곤 테이밍

-드래곤 라이딩

-차징(Charging)(風)

-윈드 피어싱(Wind Piercing)(風)

-속성 무기술(하급)

-상급 기마술

: 상급 기마술 + 차징 = 혼연일체의 차징(風)

-왕국 표준 창술(중급)(風) 〈-〉 왕국 표준 기마창술(중급)(風)

-왕국 표준 검술(하급)(風) 〈-〉 왕국 표준 기마검술(하급)(風)

-중갑 기동(30Kg) 〈-〉 중갑 기마 기동(65Kg)

-보병 방패술(중급) 〈-〉 기병 방패술(중급)

-상급 작업 기술(토목)

처음 24연대에 배속되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스테이터스였다. 게다가 더욱 고무적인 것은 반복된 훈련 속에서 스스로만을 감싸던 속성의 기운이 어느 순간 기병대 전체를 아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그 효과는 미미하기만 했지만, 용기병의 다른 스킬이 그러하듯 때가 되면 엄청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진짜 이러다 노가다로 만렙 찍는 거 아니야?”

실전이라고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채, 여기까지 성장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가급적이면 그는 실전 없이 빚을 탕감할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게 무리라는 사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빚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전장에서 공을 세워야 했다. 그 외에 그가 공을 세울 길은 만무했다.

“출동이다.”

항상 실전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스스로를 다잡아왔다 자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출동 명령을 들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몸이 굳고 말았다.

“이번에는 선혁, 너도 포함이다.”

근래 들어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기병대원들은 이방인의 세상에서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먼 이야기였는지를 잘 알게 되었지만, 굳이 위로해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곳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한 번은 통과해야 할 과정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정확한 출동 일정이나 상황은 따로 지시가 내려오겠지만 제법 시간이 걸릴 거다. 그때까지 전투력 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클라크의 지시에 김선혁도 말없이 제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

“이제 우리 어떻게 하냐.”

이번에 출동하는 게 중갑 기병대 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불쑥 찾아온 강정태와 박수홍의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 있었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는 거 알고 있었지만, 진짜 갑갑해 죽을 지경이다.”

“형. 저 겁 나 죽겠어요. 우리 중갑 보병대가 최전방을 맡을 거래요.”

이방인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박수홍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하기야 무리도 아니었다.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던 그들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장은 그야말로 두려움 그 자체였으니까.

“넌 좋겠다. 기병대는 보통 자리만 지키다 안 끼는 경우도 허다하다더라.”

“맞아요. 기병대가 워낙에 몸값이 비싸서 위에서도 함부로 안 굴린다더라고요.”

그런데 왜 엉뚱한 곳으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일까. 이유 모를 질시가 떠오른 눈빛에 김선혁은 대답하는 대신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젠장. 내가 왜 이 거지같은 곳에 떨어져서!”

공을 세우고 성장하여 중급 병과로 떵떵거리며 살겠다는 포부따위는 온데간데없는 모습, 그 갈팡질팡하는 얼굴을 보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몰라서 물어? 전부 초상집 분위기지. 일단 보병대는 나갔다 하면 열 중 셋은 무조건 죽는다는데 겁 안 나게 생겼어?”

보아하니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상태가 아닌 듯했다. 그래서 김선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장비도 정비해야 하고, 말도 챙겨야 해요. 초짜라 그런 일 하는 것도 시간 오래 걸려요.”

적당히 핑계를 대니 박수홍이 끼어들어서 물었다.

“형은 안 무서워요? 죽을 수도 있는데?”

제 말에 제가 소스라쳐 입을 막는 어린 사내의 얼굴을 보며 김선혁은 말했다.

“무섭지. 무서워 죽겠지. 도망칠 수 있으면 차라리 도망치고 싶어.”

“그럼 우리 진짜 도망칠까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서 살면...”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닌지 박수홍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화들짝 놀란 강정태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새끼, 탈영 모의는 사형인거 몰라!”

하얗게 질린 얼굴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강정태를 그가 만류했다.

“근처에 사람 없어요. 걱정 마요.”

이미 완숙해진 속성의 힘을 빌어 이 근방에 듣는 귀가 없다는 사실 정도는 진즉에 파악한 그였다.

“다들 돌아가서 개인 정비나 해요. 지금 우리끼리 부둥켜안고 질질 짜는 것보다 그게 몇 배는 생산적인 일이니까.”

위로를 기대했던 것인지 박수홍과 강정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뭘 바랬는데요. 그냥 저쪽 세상처럼 적당히 시간 죽이고 있으면 진급하고 작위도 얻고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꿈 깨요. 이 빌어먹을 왕국은 후원금이란 명목으로 우리 목을 조르고 어떻게든 본전을 뽑아낼 거라고요.”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으레 높은 양반들 생각이란 게 그렇다. 하물며 이 야만적인 세상이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러니 그만 짜고 가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지부터 궁리해요. 여기서 떠들어 대봐야 변하는 건 없으니까.”

생각지도 못한 질책에 얼굴이 시뻘개진 강정태와 박수홍이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어떻게 선혁이 형이 우리한테...”

“저 새끼, 지는 기병대라 안 낄 거 같다고! 언제부터 지가 기병취급 받았다고...”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는 저들의 불만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잠깐 그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지치는 느낌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그는 막사에 들어가지 않고 한참이나 주변을 서성이다 한참 만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드르렁. 드르렁.

전장이라면 이골이 난 이 신경 무딘 사내들은 잘도 자고 있었다. 그게 괜스레 얄미워 입을 비죽거린 김선혁이 걸음을 옮기다 자신의 침상에 앉아있는 요나슨을 발견했다.

“설마, 어차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제 순결을 달라는 뭐, 그런 건 아니...”

“헛소리 하는 걸 보니 다른 이방인들처럼 질질 짤 정도는 아닌 모양이네. 하여간 난 놈은 난 놈이야.”

“아. 들으셨어요?”

“아니. 그냥 지나가는데 들려서. 걱정 마. 탈영은 사형이지만 네 동기들이니 못 들은 척 해주지.”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기병이란 작자들이 얼마나 거칠게 살아왔는지를 느끼고 말았다.

“조장이 지금 중대장 막사에 갔어. 너 때문에.”

“저 때문에요?”

혹시나 이번 전투에서 열외 시키려는 것이라면 그럴 필요 없다고 그가 고개를 젓는데, 요나슨이 뭔 소리냐고 타박을 했다.

“조장은 아무래도 이번에도 널 선봉에 세울 모양이다.”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기 전까지는 실전에서까지 선봉을 서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알아.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우리도 처음에는 니가 실전 경험을 쌓기 전까지는 후열에 두려고 했다. 근데 상황이 바뀌었어.”

어쩐지 무거운 표정의 요나슨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저쪽에 골치 아픈 놈들이 끼어들었다는 소문이 있어.”

“골치 아픈 놈이요?”

그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요나슨이 아니었다.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다. 기병 잡는 기병대 사스테인 기병단, 그 전쟁광들이 국경에 출몰했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클라크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네 힘이 필요해졌다.”

========== 작품 후기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 코멘트는 글쟁이의 좋은 단백질원입니다.

*수치사가 바로 코앞입니다. ㅂㄷㅂ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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