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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10화 (10/305)

<-- 07. 출세의 롤모델 -->

주둔지의 화제는 단연코 이방인 마법사의 방문이었다. 평소 꼭꼭 틀어박혀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마법사를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닌지라 병사들은 마법사의 방문에 모처럼 흥분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마법사의 출신이 이방인이라는 것이 그들의 호기심을 더했다.

당연하게도 이방인들도 마법사의 방문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말 한 마디 섞어본 적 없다지만 그래도 훈련소에서 동고동락하던 동기가 아닌가. 그들은 금의환향하는 동향인의 모습을 기대하는 심정으로 마법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혹시 알아? 그래도 같은 세상에서 왔다고 좀 챙겨줄지도 모르잖아?”

“저는 그런 건 모르겠고, 이번 기회에 조금 친해질 기회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하기야 우리가 어디 가서 귀족하고 안면을 트겠어. 얼굴이라도 익히면 그건 그거대로 이득이지.”

들뜬 얼굴로 떠들어대는 강정태와 박수홍을 보며 김선혁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훈련소에 있을 때는 말 한 번 섞어본 적도 없고 심지어 이름조차 모르는 사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기대들이 저리도 많은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그 마법사 여자가 저들의 반만큼이라도 이곳에 적응했다면 저들이 기대하는 그 어느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그녀는 당당하게 작위를 받은 이방인이자 전도유망한 중앙의 마법사, 변두리에 내던져진 자신들 같은 천덕꾸러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치의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내심을 굳이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어, 가게?”

“네. 아직 몸이 덜 나아서.”

“어휴. 그러게 왜 태풍 부는 날에 밖을 쏘다니다가... 가서 쉬어.”

사고의 원인이 집단 따돌림이라는 소문이라도 들은 것인지 말하는 뉘앙스가 묘하기만 했다. 설명을 해주기도 귀찮아 대충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는데 멀리서 강정태가 소리 낮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쯧. 쟤도 가만 보면 불쌍해. 그냥 평범한 병과만 받았어도 저렇게 고생 안 할 텐데. 어디 거지발싸개 같은 병과를 받아서...”

“히든 클래스나 뭐 그런 거일지도 모른다면서요. 그 말 듣고 진짜 열심히 하는 거 같아서 전 선혁이 형 좋던데.”

바람결을 타고 오는 대화소리가 마치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전이라면 어림도 없었을 청력, 하지만 김선혁은 놀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속성 지배력이 성장하며 생겨난 부수적인 효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그거야 위로하자고 한 말이지. 너 교관이 말하는 거 못 들었어? 마지막으로 용이 발견된 게 벌써 천년도 더 전이란다. 그리고 그것도 영 허무맹랑한 영웅시로나 남아 있다잖아.”

“그래도 혹시... 꼭 용을 타야만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다른 식으로라도...”

“아서라. 아서. 괜히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그게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 선혁이 놈 두 번 죽이는 거라고. 애초에 가망도 없는데 매달리는 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지.”

그런데 그 효과라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듣기 싫어도 이렇게 주변의 빈정거림이나 수군거림이 들려올 때면 괜스레 속이 복잡해졌으니까.

“검병은 검을 들고 있을 때만 스킬을 사용할 수 있고, 방패병은 방패를 잡고 있을 때만 제 몫을 발휘하지. 그럼 용기병은 어때야 할까? 용을 타야 뭐가 됐든 되지 않겠어? 저번에 왔을 때 이거저거 물어보는 거 보니까, 아직 레벨 업도 하나도 못 한 거 같더라. 불쌍해 죽겠다.”

언뜻 생각해주는 척 떠들어대지만 그 안에 담긴 상대적 우월감과 승리감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박수홍도 그런 기색을 불편하게 느꼈는지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 하고 자리를 뜨는 기척이 들려왔다.

김선혁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자리를 파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이방인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 거지발싸개? 평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가식을 떨었던 거구만.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근래 들어 보병들이 엉뚱하게 응원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의 처지를 비웃고 있었다.

병과를 잘 못 타고 난 이방인, 말도 못 타는 기병. 24연대의 왕따.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들이 언제나 뒤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고.

굳은 얼굴로 이방인들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던 김선혁은 이내 표정을 풀고 피식 웃었다.

강정태는 말했다. 검병이 힘을 발휘하는 건 검을 잡았을 때 뿐이고 다른 병과 역시 마찬가지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런 고정관념이야말로 무식한 자의 신념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른 이방인들의 생각도 아마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

그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김선혁 혼자뿐이었다.

누구의 조언을 구할 수도 없고, 누군가의 뒤를 따라 갈 수도 없는 상황, 하지만 김선혁은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 고된 길 끝에 놓인 주어진 열매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결실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것이 될 테니까.

일단은 속성 지배력부터.

언젠가 용기병의 진면목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그날, 저들이 보일 모습을 훗날의 기대로 둔 채 그는 다시 자신만의 훈련을 시작했다.

**

1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연대장이 귀환하는 날이 되었다. 평소라면 조용하게 복귀했을 연대장이었지만 아무래도 동행이 있었던지라 조금은 요란한 귀환이 되었다.

“마법사가 대단하기는 하구만.”

주둔지의 입구에 동원된 환영 인파 속에는 김선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근래 들어 벽에 부딪치기라도 한 것처럼 더 오르질 않는 속성 지배력은 30을 코앞에 둔 채였다.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뭔가 신세계가 나올 것 같은데 도대체가 뭐가 문젠지 속성 지배력은 29에서 더 오르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했다. 청력이 확장되고 그 전에는 그렇게 잡아둬야만 손안에 잠깐 머물다 가던 속성의 기운이 지금은 상시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 덕분에 몸이 가벼워지고 활력이 넘쳐 족히 몇 달은 요양했어야 했을 부상도 빠른 속도로 낫고 있었다. 이제는 부러진 팔을 제외하고는 걷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 덕에 그는 빠질 수도 있었던 사열식에 자처하여 포함될 수 있었다.

그는 상급 병과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기를 원했고, 그런 마음은 다른 이방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플랜카드라도 들고 제 동기를 반길 기세로 인파의 가장 앞에 나서서 목을 쭉 빼고 마법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 도착하신답니다!”

“각 맞추고, 거창!”

주둔지 밖에서 연대장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병사 하나가 빠르게 달려와 말하자, 사열식이라도 하듯 보기 좋게 대열을 갖추고 있던 전면의 보병들이 창을 옆구리에 끼고 세워 들었다.

“연대장님께 대하여어어어!”

때마침 주둔지의 입구에 마중 나간 중갑 기병대를 대동한 연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레드릭의 절도 있는 고함에 병사들이 몸에 힘을 주고 허리를 폈다.

“경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창끝이 비스듬히 하늘을 찌르고, 거창하지 않은 후열의 보병들이 가슴을 두들기며 ‘앞으로’ 하고 구호를 외쳤다.

“고생 많았네. 보고는 들어가서 받도록 하지.”

평범한 인상의 연대장은 슬쩍 프레드릭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휙, 하고 주둔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서는 연대장의 곁에 보기 좋게 청색으로 물들인 로브를 뒤집어 쓴 마법사가 함께 있었다.

평범하지만 총기가 번쩍이는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인은 전에 보았을 때와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연대장의 곁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사열식을 받는데 어색함이 없었고 차라리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와, 씨. 상급이 좋긴 좋구만. 연대장하고 사열식도 받고.”

어느 이방인의 감탄에 김선혁도 내심 공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보기에도 연대장의 곁에 선 마법사는 당당하고 위엄이 있어 보였다. 이방인이라면 이를 갈아대는 프레드릭 중대장조차도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표정관리를 할 정도였다.

까마득하게만 보았던 중대장과 연대장이 도리어 눈치를 보는 듯한 광경,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함께 훈련소를 뒹굴던 이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쪽! 이쪽!”

이방인들이 차마 소리 높여 부르지는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동기의 시선을 갈구했다. 그 간절함이 닿았는지 마법사 여인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하지만 시선이 머문 것은 그야말로 잠깐에 불과했을 뿐, 여인은 이내 고개를 돌리고 연대장을 따라 자리를 떴다.

“해산!”

해산 명령이 떨어지고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연대장과 마법사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단 몇 분도 채 되지 않는 사열을 마치고 해산되었다.

“아, 분명 봤을 텐데. 일부러 눈에 잘 보이라고 투구도 벗었구만.”

이방인의 상징과도 같은 검은 머리를 일부러 내놓아 보았지만 여인은 매정하게도 눈짓 한 번 주지 않았다.

예견했던 상황, 하지만 김선혁은 어쩐지 찝찝했다. 잠시 마주친 여인의 눈에 이채가 떠오르는 것을 잠시 보았던 탓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찰나의 마주침에 불과했던지라 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막사로 향했다.

**

“혹시 주둔지에 마법사나 정령사가 있나요?”

막사에 도달하기 직전 마법사 여인이 건넨 질문에 연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있었다면 우리가 이 궁벽한 곳까지 마법사님을 모셨겠소. 안타깝게도 우리 24연대에는 그런 재원은 없다오.”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여인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궁벽한 곳이라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마법사님을 환영하는 마음으로 환영식을 준비했습니다. 부디 거절치 마시고 여독이라도 풀 수 있도록 참여하셨으면 좋겠군요.”

프레드릭의 말에 연대장이 나서서 말을 보탰다.

“우리 중대장이 나름 수완이 있는 사람이라오.”

“일부러 준비하셨는데 제가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죠.”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허락을 하자 프레드릭은 평소와는 달리 과하게 즐거운 얼굴을 해보였다.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상급 기사로 승급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중앙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마법사는 꽤나 중요한 대상이었으니 기쁠 만도 했다.

게다가 이은서라는 다소 이상한 이름을 지닌 이 여인은 이방인 출신으로 왕궁 마법사단 수석이 내정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도가 유망한 이였다. 왕실의 각별한 총애와 마법사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그녀는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아, 그리고 혹시...”

그래서 프레드릭은 조심스럽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24연대에도 마법사님과 같은 이방인들이 있는데, 만약 원한다면 그들도 환영식에 포함시킬까요?”

나름대로 이방인이라는 그녀의 출신을 배려한 제의, 하지만 이은서는 길게 생각도 않고 거절했다.

“굳이 그러실 것 없어요. 어차피 같은 이방인이라고 해도 저와 그들은 서로 이름도 모르는 생판 남인 걸요.”

“마법사님께서 그러시다면야...”

프레드릭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얼굴로 물러나려는데 이은서가 불쑥 한마디 했다.

“근데 혹시 이방인 중에 이렇게 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아, 우리 중기병대에 포함된 친굽니다. 아직 부족하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미래가 기대되는 친구지요.”

이방인들을 싸잡아 그토록이나 으르렁거리던 프레드릭 답지 않은 모습,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태도를 달리 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근데 그 친구가 왜... 혹시 알던 사이십니까?”

혹시라도 인연이 따로 있었나 기대하는 얼굴로 프레드릭이 묻자 이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대체 그 열등생의 어디가 이 전도 유망한 엘리트의 관심을 산 것인지 프레드릭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궁금해 하거나 말거나 이은서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주둔지 입구에 들어섰을 때 느껴졌던 기운은 비록 너무나 미약해 관심을 두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분명 인위적으로 뭉쳐둔 마법적 기운과 비슷했다. 그래서 기운을 추적했더니 웬 팔에 붕대를 감은 검은 머리의 사내가 있지 않은가.

혹시 정령이나 마법을 다루는 상급 병과 중에 하나일까?

이 궁벽한 곳에 그런 재원이 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물었더니 역시나 아니란다. 마법사 특유의 편집증적인 의문,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프레드릭 중대장을 불렀다.

“혹시 그 사람도 환영식에 불러주실 수 있나요?”

========== 작품 후기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 코멘트는 좋은 단백질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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