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 속성의 힘 -->
콰아아아아아아!
김선혁은 그날 보았다. 세상을 찢어발기는 엄청난 힘을, 질퍽하게 젖은 연병장을 할퀴고 지나간 무지막지한 짐승의 폭거가 그곳에 있었다.
그 뒤로는 거의 정신을 놓다시피 했다. 온몸의 생명력이 다 타고 재만 남은 듯한 탈력감에 휘청이다 바람에 떠밀려 구덩이에 처박히고 말았다. 손목에 금이 가고 허리를 삐었다. 그게 통제불능의 짐승을 길들이려다 입은 부상인지 그도 아니면 바람결에 떠밀리다 손 발 헛 내딛어 입은 부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족히 두어 달은 고생해야 할 중상, 하지만 그 대가는 달콤했다.
[김선혁]
□ Level. 3
□ 용기병(Dragon Rider)
□ 고유 속성
-풍(風) / 속성 지배력 2
:풍아(風牙)
□ 근력 21 / 지구력 20 / 민첩성 23
□ 보유 스킬
-드래곤 테이밍
-드래곤 라이딩
-차징(Charging)
-초급 기마술
: 초급 기마술 + 차징 = 어설픈 차징
-왕국 표준 창술(하급)
-왕국 표준 검술(최하급)
-중갑 기동(30Kg)
-보병 방패술(최하급)
-상급 작업 기술(토목)
2에 불과했던 레벨이 3에 올랐고 모든 스테이터스 능력치가 20을 넘겼다. 게다가 그저 덩그러니 풍(風) 이라는 글자 하나만 쓰여 있던 속성 항목에 떡하니 속성 지배력이 추가되었고 풍아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김선혁은 속성 지배력이 무엇인지, 또 풍아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창끝에 얽매인 자신의 신세에 분노하며 풀어 달라 울부짖던 사나운 짐승, 마침내 사슬을 끊어내고 뛰쳐나가 온 연병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난폭한 힘, 그게 바로 풍아의 힘이리라. 그리고 지배력이란 그 광폭한 짐승을 길들일 수 있는 고삐이고 채찍일 것이다.
“크흐흐.”
김선혁은 웃었다.
용기병의 진짜 힘은 단지 우월한 스테이터스 성장치에 있지 않았다. 당장 용에게 건네받은 속성의 기운만 해도 어지간한 병과들은 눈 아래로 볼 정도로 대단했다. 이런 힘이 고작 우선적으로 쥐어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니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윽...”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중상에 가까운 부상을 입은 몸은 당분간 꼼짝없이 침대신세를 져야 할 판국이었다.
“크흐흐하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
김선혁이 의무대 신세를 지고 있는 동안 태풍은 지나갔다.
“끄응. 대비를 한다고 했는데 너무 급하게 했나보군.”
피해상황을 보고 받은 프레드릭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것이 평지에서 직격타로 태풍을 얻어맞은 24연대의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목책이 무너진 곳이 일곱 군데요, 날아가거나 비에 젖어 쓰지 못하게 된 비축 물자가 1할이 넘었다. 게다가 막사에 웅크리고 있던 병사들도 목책이 무너지는 바람에 수백이 다쳤고 십수명이 죽었다.
전투도 없었는데 연대의 2할에 가까운 전력을 상실한 것이다. 전투로 쳐도 참혹한 패배라고 할 수 있는 엄청난 손실, 프레드릭의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연대장이 부재중일 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연대장 대리로 연대의 책임을 맡은 상황에 이런 피해를 입으니 심기가 영 좋지를 않았다. 상급 기사 승급을 앞두고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는 데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던 프레드릭의 평소 모습을 알고 있었던지라 클라크는 말을 아꼈다.
아무래도 이방인 김선혁에 대한 의혹은 나중에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괜히 지금 이 자리에서 근거도 없는 의혹을 제시했다가는 이방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자신까지 추궁을 당할 판국이었다.
“일단 우리 기병대가 피해를 입지 않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야.”
그나마 다행이라면 군마라면 끔찍하게 아끼는 프레드릭이 끔찍한 태풍에도 단 한 필의 군마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만족했다는 것이었다.
“이방인의 공이 컸다지? 그놈 참, 말만 잘 타면 탐나는 놈일 텐데. 아쉽구만. 아쉬워.”
“그래도 나아지고 있으니, 조만간 한 사람 몫은 해내게 될 겁니다.”
“그래. 쉽지 않겠지만 잘 다독여서 쓸 만하게 만들어봐.”
그 말을 끝으로 프레드릭은 손을 휘휘 저었다.
“휴우.”
막사를 빠져나온 클라크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야심만만한 중대장을 모신다고 이래저래 신경을 쓰다 보니 폭삭 늙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또 이방인은 또 어떠한가. 즐겨 쓰지도 않는 머리가 온갖 고민거리에 아파올 지경이다.
때 마침 막사로 돌아가는 길에 놓인 연병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이방인이 처박혀 있던 구덩이 하며, 흉물스러운 흔적이 채 복구되지 못한 상태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 아닐 거야. 이런 걸 그 어리버리가 했을 리가 없지.
의심이 가는 건 사실이나 말이 되지를 않았다. 고작 하급에 불과하고 그 하급의 병과마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따돌림을 당하는 신병 따위가 만들어낸 광경이라고 하기에는 그 흔적이 너무도 엄청났다.
절정에 오른 상급 기사가 전력을 다 해 바닥에 대고 차징을 시도한다고 해도 이룰까 말까 할 광경, 어쩌면 왕실이 꽁꽁 숨겨둔 초인들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들은 중대 하나쯤은 홀로 괴멸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괴물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괴물들 중에 하급 병과에 불과한 이방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요즘 내가 미쳤나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클라크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이야. 이거 왕년 생각 나네.”
부상 탓에 복구 작업에서 열외된 김선혁은 홀로 망중한을 느끼며 희희낙락했다. 마치 저쪽 세상에 있었을 때 누리던 말년 병장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최소한 그때는 행보관이라는 천적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의 24연대에는 그를 귀찮게 할 만한 존재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눈치를 봐야 할 프레드릭 중대장은 연대장 대리로 주둔지의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었고, 클라크 역시 어딘가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이 때다 싶어 김선혁은 다른 병사들의 눈에 띄지 않을 만 한 곳에 숨어 겨우 실마리를 잡은 속성의 연마에 매달렸다.
무너진 목책 탓에 훤하게 노출된 주둔지의 구석에 쭈구리고 앉은 그는 손끝을 감아오는 감각에 만족스러운 얼굴을 해보였다. 전과는 확연이 다른 감촉, 손을 움직이는 대로 바람이 그대로 따라왔다.
조금이지만 속성의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전날 느꼈던 풍아의 무지막지한 존재감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작은 바람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온 세상의 바람이 제 것이 된 것 같아 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
그런데 그렇게 속성의 힘을 가지고 놀기를 얼마나 했을까. 갑작스럽게 메시지가 들려왔다.
[속성 지배력이 1 만큼 상승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지 서둘러 스테이터스 창을 확인해본 김선혁은 2에 불과했던 속성 지배력이 3으로 상승한 것을 보았다.
“설마?”
김선혁은 여전히 손바닥 안을 맴도는 바람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금 그 기운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으...”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그렇게 끙끙대다 보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속성의 힘이라는 게 무한정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슬슬 두통이 심해질 지경이라 슬며시 손끝에 뭉친 속성의 기운을 흩어내려 하는데 다시 메시지가 들려왔다.
[속성 지배력이 1 만큼 상승했습니다.]
**
의무대 막사는 전과 다르게 병사들로 바글바글 가득했다. 운 나쁘게 무너진 목책에 깔리거나 강풍에 떠밀려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전부 의무대로 실려 온 것이다.
“아오. 머리야.”
머리를 부여잡으며 막사에 들어서니 병사들의 시선이 단 번에 그에게 쏠렸다. 어쩐 일인지 기병대원들의 따돌림을 당해 막사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태풍 속을 헤매다 사고를 당한 것이라 소문이 난 터라 그 연민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거, 여기에 있는 동안이라도 푹 쉬쇼.”
“여기서 그쪽을 괴롭힐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어느 하급 장교의 말에 그는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는 침상에 몸을 파묻었다.
아,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에 김선혁은 후회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후회를 하는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통을 참고 속성 지배력 연마에 몰두한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았다.
[김선혁]
□ Level. 3
□ 용기병(Dragon Rider)
□ 고유 속성
-풍(風) / 속성 지배력 11
:풍아(風牙)
□ 근력 21 / 지구력 20 / 민첩성 23
□ 보유 스킬
-드래곤 테이밍
-드래곤 라이딩
-차징(Charging)
-초급 기마술
: 초급 기마술 + 차징 = 어설픈 차징
-왕국 표준 창술(하급)
-왕국 표준 검술(최하급)
-중갑 기동(30Kg)
-보병 방패술(최하급)
-상급 작업 기술(토목)
고작 2에 불과했던 속성 지배력이 단 하루 사이에 11까지 상승한 것이다. 아직은 그렇게 성장한 속성 지배력의 효과가 미미하기만 했지만, 분명 조금 더 크고 강한 바람이 손끝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태풍에 몸을 내던졌던 무모함이 뜻밖의 소득이 되어 돌아온 꼴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이내 끔찍한 두통에 잠을 청했고 그리 오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속성의 힘을 하루종일 연마하느라 소모된 체력이 적지 않았던 탓이다.
다음날이 밝자 김선혁은 다시 속성을 연마하는 데 매달렸다. 첫날처럼 빠르게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분명 소득은 있었고 12였던 속성 지배력이 며칠이 지나자 22에 도달했다. 아직 이 수치가 높은 것인지 작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스스로의 성장에 고무되는 것만큼은 사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부러진 뼈가 붙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자신의 힘에 몰두하는 사이 주둔지의 보수공사는 상당부분 끝이 났고 이제는 파손된 목책의 수리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어떤 이유인지 보병들은 목책 만큼은 손을 대지 않고 있었고, 김선혁은 그 이유를 금세 알게 되었다.
“과연 이방인이라 회복이 빠르군.”
막사를 찾아와 간단한 안부를 물은 클라크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더는 그날의 일을 꺼내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연대장님과 함께 주둔지 보수를 도울 중앙의 마법사님이 함께 오시기로 했다.”
연대장이야 돌아오던 말던 관심이 없던 김선혁은 마법사라는 말에 금세 시큰둥한 얼굴을 지워 보였다.
“마법사가 말입니까?”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상급의 병과로 인정을 받았던 이방인 역시 마법사였다. 도대체가 마법사라는 족속들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단 번에 상급의 등급을 받는지 호기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저 큰 목책들을 우리끼리 보수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상상이상으로 다재다능한 모양이었다.
"언제 온답니까?"
"뭐,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이곳 말고도 가볼 곳이 많을 테니까."
김선혁은 내심 감탄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말로만 듣던 마법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이지만 신바람마저 날 정도였다.
들뜬 기색의 그를 보며 클라크가 묘한 시선을 보내왔다.
“근데 말이다.”
어쩐지 탐색하는 기색이 느껴져 그가 또 전날의 일을 물어보려는 것인가 기겁을 했다.
"아, 진짜 사고였다고요. 사고."
그의 과민반응에 피식 웃어보인 클라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 마법사라는 사람이 너와 같은 훈련소에 있었던 이방인이라더군.”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 코멘트는 글쟁이의 가장 좋은 단백질원입니다.
*레벨에 관한 오류는 수정했습니다.
*상태창의 표기에 대해 가끔 용량 떼우기는 아닌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께서 있으신지라 노파심에 알려드립니다. 상태창에 표기된 글자 수는 늘 계산외로 치고 최소 5천자 이상을 기준으로 쓰고 있으니 이 점 헤아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