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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6화 (6/305)

<-- 04. 뜻밖의 스킬 -->

“아, 왜 안 되는 겁니까!”

항의하는 김선혁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용기병의 가능성을 이제야 발견하고 어떻게든 그 속성이라는 놈을 손에 넣어보려고 하는데, 주변에서 도와주지를 않았다.

“또 무리하다 말 다치면 니가 책임 질 거야?”

클라크는 귀한 군마를 다치게 할 뻔 했다는 것을 구실 삼아 그의 항의를 원천봉쇄했다.

“그 들뜬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는 당분간 승마 금지다.”

나름대로 자중을 하라는 의미가 강하게 섞여 있는 조치였다. 김선혁의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스킬을 구현하려다 사고를 친 잘못이 있었던지라 계속해서 항변하지도 못했다. 아니, 애초에 이곳은 상명하복이 원칙인 군대다. 따져봐야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었다.

다행이라면 훈련소와는 다르게 이곳에서의 꽤나 개인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다른 기병들은 기동 훈련이니 뭐니 수시로 막사를 비웠지만 그는 그 모든 것에서 열외였다. 그렇다고 해서 훈련소에서처럼 따라다니며 들들 볶는 교관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강해지려면 혼자라도 훈련을 해야 했다.

“잠깐 연병장 좀 돌아도 되겠습니까?”

“혹시라도 쓸데없는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막사에서 먼지를 피울 수도 없어 그렇게 묻자 클라크가 미심쩍은 눈으로 기마 훈련은 꿈도 꾸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 근방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자율적으로 훈련하는 것을 허락한다.”

하지만 아예 막사에만 처박아두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부대의 병사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그의 자율 훈련을 허락해주었다.

막사 밖으로 나온 김선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뻗어보았다. 하지만 전날 느꼈던 황홀한 감각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바람은 그 손에 머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끙.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었는데.”

기마술 스킬을 올릴 수도 없고, 바람의 속성을 연마할 수도 없다. 남은 것은 무식하게 몸을 쓰는 것뿐이다. 그렇게라도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면 가뜩이나 성장이 느린 용기병의 특성상 언제 다시 레벨 업의 순간이 올지 모른다.

그는 끙끙대며 25킬로나 나가는 기병용 갑옷을 착용하고는 몸을 풀었다.

확실히 레벨 업의 효과가 있어.

레벨 업을 하며 오른 스테이터스 수치는 각각 2, 그런데 체감상 느껴지는 변화는 어마어마했다. 투구 탓에 답답한 시야와 꾹 막히는 숨통만큼은 그대로였지만 온몸을 짓누르던 중갑의 무게감이 상당부분 해소된 것이다.

그는 시험 삼아 지급된 무기 중 하나인 기병용 한손 반 검을 휘둘러보았다.

훽.

훈련소의 기초 군사 교육 때 배웠던 검술을 응용한 동작은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간결했고 또 그만큼 날렵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근력을 비롯한 수치가 높다보니 꽤나 그럴싸 한 공격이 되었다.

정신없이 이런 저런 동작을 반복하던 그는 금세 숨이 차왔다. 아무래도 중갑을 착용하고 검을 휘두르는 건 그저 무게를 버티는 것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한계까지 몰아붙이지 않으면 강건한 육신은 금세 피로를 회복하고 만다. 그러니 최소한 몸이 지칠 때까지는 단련을 멈추지 말아야 했다. 그래야 훈련의 성과가 남을 것이다.

“음?”

그런데 한참 검을 휘두르다 보니 미묘한 감각이 손끝에 걸렸다. 생경하면서도 낯익은 감촉에 더욱 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댔다. 검술 교본에도 없는 막무가내 식 동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볼썽 사납게 난리를 피워댔을까. 검끝에 미묘하게 어루만지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

김선혁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얼굴로 철제 장갑을 벗고는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휘두르다보니 손끝에 걸린 미묘한 이질감이 더욱 선명해졌다.

알 듯 모를 듯한 감각, 무엇인지 아예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활용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고 부드러운 기운이다.

아니야. 이런 산들바람 같은 걸 원했던 게 아니야.

그가 원했던 것은 전날 창끝을 감고 휘몰아치던 칼날같이 날카로운 바람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그런 칼바람을 이끌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전날의 감각을 다시 한 번 느끼려면 말에 올라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입맛을 다셨다.

“끙. 어디 강풍기라도 있으면...”

아쉬운 마음에 괜스레 있지도 않은 저쪽 세계의 물건을 찾아본다.

**

당장 말에 탈 수 없다고 해서 훈련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 더 몸을 혹사시켰다. 중갑을 착용하고 미친 듯이 연병장을 뛰어다녔고 창이고 검이고 닥치는 대로 찌르고 휘둘러댔다. 그 덕분에 훈련용 허수아비가 남아나지를 않았다.

“진짜 게임처럼 경험치가 보이는 것도 아니라 답답하네.”

그나마 근래에 있었던 레벨 업으로 재미를 보지 않았다면 진즉에 훈련을 포기했을 것이다.

“아주 대단하구만. 대단해. 아주 1등 병사야. 상 줘야겠어.”

“기병이 땅개처럼 바닥만 굴러대는 것만 빼면 아주 병사의 귀감이지.”

“물론 저놈이 보병대라면 말이야!”

기병대원들은 낄낄대며 조롱했을지언정 대놓고 김선혁의 훈련을 훼방 놓지는 않았다. 애초에 동료의식이라고 할 것도 없으니 그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타 부대의 아저씨를 보듯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버려 둬. 어차피 다 한 때야. 저러다가 위에서 부르면 쪼르르 다른 데로 갈 놈이야.”

게다가 이방인이라는 그의 신분 역시 그가 부대에 녹아들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정규군에 소속되어 있지만 실상은 왕가에게 제공받았던 것들을 되갚을 정도의 공만 세우면 되는 존재, 마음가짐도 또 그를 보는 눈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망할 놈들. 이럴 거면 신고식은 왜 한 건데.”

하지만 말과는 달리 김선혁 역시 굳이 기병대에 받아들여지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누구의 간섭도 없는 지금의 처지에 상당히 만족하는 편이었다.

이따금씩 찾아와 조롱을 늘어놓는 기병대원들과 신기한 것을 바라보듯 구경하는 병사들의 시선 속에서 그는 계속해서 훈련을 이어나갔다.

어느새 그는 24연대의 아웃사이더 아닌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쯧. 요즘 혼자 훈련한다며? 들어보니까 원래 기병대가 유달리 텃세도 심하고 부심도 강하다더라.”

“형, 힘내요.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저 사람들도 인정해주겠죠.”

응원이랍시고 찾아와 몇 마디 건네는 강정태와 박수홍을 비롯한 이방인들은 그를 굉장히 불쌍하게 여겼다.

“형은 어때요?”

“말도 마라. 조장이랍시고 애들 챙겨야 하는데 이것들이 완전 당나라 군대라 아주 죽겠다.”

적당히 근황을 물으니 금세 자랑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상황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언제 중급으로 오르냐며 안달을 내는 게 자신의 처지에 완전히 적응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아니, 강정태가 아닌 다른 이방인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돌아갈 길도 없다는데 여기서라도 자구책을 마련해야죠. 전 기간 다 까면 여기 나가서 어디 장사나 해볼까 해요. 그래도 21세기를 살아가던 현대인의 노하우가 있는데 말아먹기야 하겠어요?”

“그러냐? 난 아예 말뚝 박으련다. 들어보니 군인 대우가 썩 나쁜 것도 아니더라고. 밖에는 굶어죽는 사람들 천지라더만.”

“하긴 중급만 올라도 아예 대우가 천지차이라니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저들끼리 신나서 떠들어대던 이방인들이 돌아가고 김선혁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강정태가 남기고 간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말뚝이라...”

우연이라는 건 참으로 묘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전역을 앞두고 직업 군인으로 진로를 전향할 것을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유일한 피붙이인 어머니마저도 복무 중에 명을 달리했고 혈혈단신이 된 그에게 사회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직업 군인이 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엉뚱한 곳에서 직업 군인이 되게 생겼으니 인생이란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난 군바리로 살 팔잔가...”

푸념처럼 중얼거리던 그가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도 최소한 이쪽은 출세 길은 열려 있지.

이쪽이나 저쪽이나 군 생활이 똑같이 엿 같다면 차라리 출세의 가능성이 높은 이곳에서 말뚝을 박는 게 이득이었다. 비빌 언덕도 뒤를 밀어줄 배경도 없는 저쪽 세상의 자신과는 달리 이쪽 세상의 자신은 왕국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후원자를 두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근래 들어서 부쩍 가능성을 보이는 용기병이라는 병과는 그가 생각하기에 꽤나 전도가 유망했다. 제대로만 성장한다면 말단이나마 귀족이 되어 이쪽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는 것도 마냥 꿈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평화로운 대한민국과 달리 이쪽 세상은 전쟁이 빈번하다는 것뿐이었다.

“망할 녹테인 놈들. 이제는 아주 안마당처럼 헤집고 다니는구만.”

“위에서도 조만간 정식 명령이 있을 거라니, 조금만 참자고.”

막사 안에서 딱히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의 대화를 듣지 못할 정도로 귀가 막힌 것은 아니었다.

근래 들어서 부쩍 날카로워진 기병대원들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실전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살아남자.

출세고 나발이고 일단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강해져야 한다. 다른 문제는 이후에나 생각해 보아도 늦지 않다.

“헙!”

창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내지른다.

처음에는 그렇게 갑갑했던 중갑의 무게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쭉 뻗어나간 창을 다시 당겨 밀고 휘두르고 찌른다. 손끝을 미미하게 감싸는 바람을 느끼고 있자니 서서히 고민이 사라져 간다.

“헙! 차앗!”

김선혁은 어느새 그 단순한 동작에 완전히 몰두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일주일이 가고 다시 며칠이 지났다.

[눈물 겨운 반복 훈련 끝에 새로운 스킬을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왕국 표준 창술 스킬이 새로 생성되었습니다.]

[보유 스킬 목록에 왕국 표준 창술 항목이 추가되었습니다.]

[스킬은 이후에도 꾸준히 연마하여 발전시키는 게 가능합니다.]

[왕국 표준 창술 스킬로 인하여 해당 무기에 대한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공격 속도와 위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갑작스레 머리를 울려대는 음성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본능적으로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김선혁]

□ Level. 2

□ 용기병(Dragon Rider)

□ 고유 속성

-풍(風)

□ 근력 19 / 지구력 18 / 민첩성 21

□ 보유 스킬

-드래곤 테이밍

-드래곤 라이딩

-차징(Charging)

-초급 기마술

: 초급 기마술 + 차징 = 어설픈 차징

-왕국 표준 창술(최하급)

“어?”

떡하니 보유 스킬 목록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왕국 표준 창술 스킬을 본 그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이런 식으로 스킬이 생성되기도 하나?

강정태를 비롯한 이방인들이 제멋대로 찾아와 한참을 제 얘기를 떠들어대는 통에 그간 얻은 정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다른 이방인들이 이런 식으로 스킬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들이 얻은 스킬은 모두 레벨 업시에 주어진 병과 특성의 스킬들뿐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김선혁은 금세 그들과 자신의 차이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처럼 병과의 성장에 제약이 걸린 이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병과의 특성을 이용해 가장 빠르게 강해지는 루트를 선택했고 당연하게도 다른 훈련을 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그만이 병과 특성을 개발하지 못해 이렇게 엉뚱한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그 과정이라는 게 영 꺼림칙했다. 그래서 그는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모든 상황이 한 가지 사실로 귀결되었다. 세상은 그에게 노가다를 강요하고 있었다.

“아이씨...”

스킬을 얻었지만 왠지 모르게 슬퍼지는 김선혁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하지만 그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는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단순 반복 노동이라면 이골이 난 대한민국 육군의 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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