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 푸어-3화 (3/305)

<-- 02. 말 못 타는 기병 -->

“뭐? 말을 못 타?”

아덴버그 왕국군 24연대 소속 중장기병 중대 중대장 프레드릭은 황당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게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고...”

이방인 신병을 맡은 3조의 조장 클라크가 난감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그런 놈이 왜 기병대에 왔어!”

“그게 병과를 확인해봤는데, 용기병이라고 분명 기병은 기병입니다.”

“그럼 스킬인지 뭔지가 있을 거 아냐! 이방인 놈들이 저리 날뛰는 것도 그 대단한 스킬 덕분이잖아!”

한 번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프레드릭이 정말로 화가 난 듯하자 거칠기로는 기병대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클라크가 자라목을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스킬도 없답니다.”

“스킬이 없어?”

“제일 기본적인 승마에 관련된 스킬이 없답니다. 아무래도 위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은근슬쩍 화풀이 할 상대는 내가 아니라 관리들이라 말하니 금세 분노의 방향이 빗겨갔다.

“일 처리를 뭐 이따위로 해! 하여간에 책상에 앉아서 팬대 굴리는 새끼들은 현장을 몰라요. 현장을.”

행정 관리들을 욕하느라 입에서 불을 토하던 프레드릭은 한참만에야 겨우 진정한 모습을 보였다.

“가르쳐.”

“네?”

“말을 타본 적이 없으면 가르쳐서라도 태우라고.”

“다른 쪽으로 보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난색을 표하니 프레드릭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방인들은 왕궁에서도 특별히 관리하는 놈들이다. 엿 같은 일이지만 내가 왈가왈부 할 수는 없어. 그러니 가르쳐서라도 데리고 있는 수밖에.”

“끄응. 실전에서 써먹으려면 오래 걸릴 텐데요.”

“그때까지 안 죽게만 잘 가르쳐봐.”

“지켜줘야 하는 겁니까?”

“제 놈 명이 그것밖에 안 돼서 죽으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어이없게 죽으면 위에서 문책이 내려올 거야. 그러니 적당히 알아서 잘 해봐.”

‘적당히 알아서 잘’ 이라는 말만큼 부담이 되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클라크로서는 감히 성질 더러운 중대장의 비위를 더 거스를 수도 없어 알았노라 대답을 하고는 막사를 빠져나와야 했다.

“뭐랍니까? 다른 데로 보내랍니까?”

기다리고 있던 기병 하나가 제 조장을 보기가 무섭게 물었다.

“아니. 걸음마 하고 똥 싸고 오줌 싸는 것까지 전부 가르치란다.”

떨떠름한 얼굴, 기병이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게 말이 됩니까? 여기가 신병 교육대도 아니고. 보모노릇 하다가 우리까지 죽습니다.”

“까라면 까야지 우리가 뭔 힘이 있나.”

“또 다른 건 없답니까? 혹시 맘마도 먹여줘야 합니까?”

“끄응. 일단 너무 허무하게 죽지는 않게만 만들어봐. 중대장이 제 출세 길 막힐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국 듣고 있던 기병이 폭발했다.

“아니, 베테랑이라고 하는 우리 애들도 앗차 하면 죽어나가는 판국에, 말도 못 타는 찐따 새끼를 어떻게 살려서 달고 다니라고! 이건 우리한테 대신 죽으라는 말이잖습니까!”

“내 말이!”

클라크의 대답이 울분에 가득 차 있었다.

“빡세게 굴려. 아주 제 발로 도망치고 싶게. 그러다가 탈영하면 그건 그거대로 좋고. 이방인 새끼들 정신 약해빠진 거야 원래 유명하잖아.”

그렇게 김선혁은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 운명이 정해졌다. 그토록이나 지옥 같던 훈련소를 간신히 빠져나왔건만, 또 다른 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음? 웬 오한이...”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얄궂은 운명도 모르고 괜스레 몸만 떨어댈 뿐이었다.

**

“아오. 이 덜 떨어진 새끼야! 왜 떠먹여줘도 먹지를 못하니!”

그때부터 온갖 구박이 시작되었다. 김선혁은 말 못 타는 기병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입장 탓에 기병들의 갖은 비웃음과 핍박을 받아야 했다. 그로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은 아니었던지라 이를 악물고 훈련에 임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낙마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데 달려와 저능아니 뭐니 욕설을 퍼부으면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덜 떨어졌다고 하니 기분 나빠? 그럼 제대로 하면 될 거 아니야!”

“지금 하려는 중입니다!”

“개기냐? 어? 한센 자빠트리고 나니까 기병대가 우습냐?”

말에 올라 탄 기병은 말에 타지 않았을 때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한센이라는 사내를 꺾으며 자신의 우월한 스테이터스에 우쭐거렸던 마음도 잠시, 기병들의 엄청난 기세에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다고! 하면 되잖아!”

“그래. 제발 성공해라. 수레 끄는 땅개를 데려와도 너보다는 백배 잘하겠다.”

악으로 깡으로 낙마의 고통도 참고 오만 욕설도 참아냈다. 하지만 정작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좀처럼 나아질 생각을 않는 기마술이었다.

“제발 좀 들어라! 내 말 좀!”

말이라는 종 전체의 미움이라도 받는 것일까. 말들은 그가 올라타기가 무섭게 난동을 부리며 어떻게든 떨구어 내려 했다. 부족한 승마술로 겨우겨우 버텨내봐야 한 걸음 나아가는 것도 힘에 겹기만 하다.

“아오. 이 저주 받은 새끼. 아주 그냥 말신의 저주를 받았네 그냥.”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니 교육을 담당했던 기병이 두 손 두 발 다 들 지경이었다.

“네가 할 수 있어도 말이 못해. 설익은 새끼 훈련시키다 귀한 말 상하게 할 순 없지.”

사람보다 말 걱정이 우선인 게 기병답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서러워해야 할까. 김선혁은 복잡한 심정에 터덜터덜 숙소로 향했다.

“오! 선혁아!”

한창 정신 놓고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욕만 들어먹다가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 정태형.”

“오랜만이다. 그거 기병대 제복이야? 때깔부터 다르구먼!”

흙먼지로 잔뜩 더러워진 제복 어디가 때깔이 다르다는 건지, 그렇게 말하는 강정태야말로 신수가 훤했다.

“눈치 챘냐? 형 이번에 조장 달았다. 비록 열 명뿐이지만 내 부하도 생겼어.”

“축하드려요. 잘 됐네요.”

영혼 없는 축하의 말 몇 마디를 하고는 이내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막사로 돌아오니 반겨주는 사람은커녕 오히려 소 닭 보듯 경원하는 눈초리가 쏟아진다.

“힘내. 예쁜아. 진짜 남자가 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

취향이 남다른 기병, 요나슨만이 슬며시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네 왔다.

“이 손부터 치우죠?”

슬며시 엉덩이를 쓸어오는 손길만 아니었으면 그런대로 위안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는 요나슨도 진심으로 그를 생각해 건넨 위로는 아닌지라 힘이 날 리가 없었다.

대체 뭐가 잘못 된 거지? 용기병도 기병 아닌가?

말 잘 듣는 군마도 자신만 올라탈라치면 야생마라도 된 양 미친 듯이 날뛰어댔다. 그러니 진도가 제대로 나가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체념하고 잠을 청하려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멍청한 놈.]

한동안 내버려둔다 싶더니, 다시 또 시작된 걸까. 마뜩찮은 음성에 그가 모르는 척 이불을 뒤집어썼다.

[한심한 놈.]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음성이 더할 나위 없이 선명했다. 마치 머릿속에 대고 말을 거는 듯했다.

[그깟 저급한 동물 하나 타지 못해서...]

“아, 좀!”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그인지라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더니, 각자 개인정비를 하고 있던 사내들이 ‘저 놈이 뭘 잘못 먹었나.’ 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그냥 지켜보려 했지만, 네놈이 하는 꼴이 워낙에 미덥지 못해 나설 수밖에 없었도다.]

“누구야!”

이제는 미친놈 보듯 하는 눈빛은 둘째 치고 머릿속에 울려대는 이질적인 음성에 김선혁은 소스라쳤다.

[이로서 그대와 나의 기다림이 더욱 더 길어지겠지만, 달리 방도가 없구나.]

이번에는 확실히 그도 알 수 있었다. 막사의 어느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거는 이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목소리는 걸걸하기만 한 사내들의 음성과는 다른 신비한 것이었다.

“누, 누구?”

기병들 중 몇몇이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돌려 보인다. 혀를 차는 걸 보니 이제는 완전히 또라이를 보듯 한다. 하지만 김선혁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혹시나 하는 근거 없는 기대감에 미친 듯이 심장이 뛰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

“뭐하냐? 너?”

부하들이 너도나도 교육을 포기하자 클라크가 나서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했더니 벌써부터 나와 있던 김선혁이 기묘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말과 눈을 맞추고 눈알에 힘을 잔뜩 준 것이 흡사 눈싸움이라도 하는 모양새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나도 반쯤은 포기했다.”

클라크는 굳이 그를 말리지 않았다. 조장의 자리를 맡고 있지만 자신이라고 특출난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바로 전에 교육을 담당했던 부하쪽이 오히려 승마술에 관해서는 자신보다 위였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저걸 어떻게 사람을 만든다...”

한숨을 내쉬며 아예 자리를 깔고 누워 김선혁이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내가 니 주인이다. 내가 니 주인이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빨갛게 핏대가 선 눈을 한 채 쉴새없이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 흡사 미친놈과도 같았다.

“새끼야. 그거 기병대 훈련마야. 니 말 갖고 싶으면 우리처럼 따로 사오든지.”

그 모습이 하도 한심해서 한마디를 해주었다.

하지만 김선혁은 그런 조롱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가 주인이다, 주인이다 하고 중얼거리다가 나중에 가서는 으르렁거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시간이 흐르고 저도 지쳤는지 슬며시 물러나는 김선혁, 클라크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끄응. 그래. 오늘은 말 위에 앉아서 한 열 걸음이라도 가보자.”

그렇게 말하고 고삐라도 잡아줄 요량으로 다가가는데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

도도하게 목을 세우고 있던 말이 슬며시 목을 숙였다. 그도 모자라서 앞발을 꺾어 낮춰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왕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신하와도 같았다.

“음?”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 진짜 놀라운 건 지금부터였다.

고개 숙인 말머리를 몇 차례 쓰다듬던 김선혁이 슬며시 등자에 발을 걸쳤다. 그리고는 훌쩍 타올랐다. 평소라면 대번에 난동을 부리며 그를 떨궈냈을 성질 드센 군마가 웬 일인지 얌전하게 그에게 등을 내주었다.

“가자.”

김선혁의 짧은 한마디, 마치 그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군마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어? 어어!”

클라크는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자세도 어설프고 리듬을 타는 것도 엉망이었지만 김선혁은 분명 말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오오! 역시 조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봐! 클라크가 성공했어!”

제 딴에는 조장에게 업무를 떠넘긴 게 미안했는지, 그도 아니면 열등생의 갱생을 포기했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든지, 뒤늦게 나타난 부하가 그 모습을 보고는 환호했다.

“어? 어.”

자신을 추켜세우는 부하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클라크는 생각했다.

저놈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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