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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224화 (완결) (225/225)

224화 푸른 하늘 <완결>

***

키아아아악!

살점 하나 없이 뼈로만 이뤄진 와이번이 새된 비명을 토하며 몸을 뒤집었다.

두 개의 날개를 완전히 접으며 활강을 포기하고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모습.

하지만 허공에서 전개된 핏빛의 사슬이 좌르르 쏟아지며 와이번을 통째로 옭아매었다.

“잡았다.”

하늘에서 붉은 날개를 펼친 채 떠 있는 칼리아가 한 손을 뻗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가 손을 꽉 움켜쥐자 사슬이 그대로 조여들며 와이번과 그 등에 타고 있던 해골 기사를 부숴버렸다.

콰드드득!

뼛조각이 아래로 흩날리는 가운데, 아직 남아있는 와이번과 기수들 또한 난적을 상대로 부서지거나 소멸하고 있었다.

엘레노아와 이름을 얻지 못한 용아병이 언데드 와이번과 해골 기사를 각각 상대했다.

황금빛의 문양이 땅바닥에 그려졌다가 환한 빛기둥을 수십 개 소환하자 언데드 와이번뿐만 아니라 꾸역꾸역 밀려들던 시체들 수백이 한꺼번에 재가 되어 부서졌다.

용아병은 전투 도끼를 제몸처럼 다루며 해골 기사 셋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있었다.

해골 기사의 검이 어깨를 스치고, 창이 옆구리를 꿰뚫고 또 다른 검이 가슴을 노리며 쏘아졌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용아병이었지만 묵묵한 얼굴을 유지한 채로 몸을 날려 검격을 피해냈다.

옆구리를 꿰뚫은 창의 중간 부분을 손으로 잡아 부러뜨린 다음 다리를 굽혔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아래서부터 위로 올려친 도끼가 해골 기사 하나를 사타구니부터 정수리까지 쪼갰다.

그 다음은 검을 옆으로 가볍게 흘린 다음 다른 해골 기사의 갈비뼈를 주먹으로 박살내고, 마지막 해골 기사를 어깨로 강타하며 넘어뜨린 다음 도끼를 내리쳐 마무리했다.

마지막 해골 기사가 무방비한 용아병을 치려는 그때, 갑옷 이곳저곳이 깨져나간 성기사가 온몸으로 그 해골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통상적인 뼈의 크기와 밀도를 세 배쯤 확장한 듯한 거인 해골 기사가 일순 휘청거리다가 성기사, 제스를 노리며 팔을 휘둘렀다.

거의 박살난 방패가 그 일격에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지며 제 기능을 잃은 순간, 그 뒤에서 웅크리고 있던 제스가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바닥을 박찼다.

“좀 죽어라!”

간절한 외침과 함께 꺼질 듯 희미하게 반짝이는 검날이 해골기사의 두개골, 미간을 관통했다. 검극에 달린 검은색의 사기가 응축된 구슬이 검은 재를 흘리며 사라졌다.

동력을 잃은 해골 기사가 뼈다귀가 되며 무너졌다.

그 해골 기사가 마지막이었다. 옆구리와 어깨, 볼에서 피를 흘리며 용아병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본 제스가 무릎을 짚으며 헉헉 거렸다.

“별말씀을, 헉, 헉.”

다음으로 용아병의 시선이 향한 곳은 소환자, 즉 아엘라시스였다. 아엘라시스는 렉시와 함께 타오르는 시체 언덕을 등지고 서 있었다.

시체들은 모두 재가 되거나 완전히 사기를 잃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나마도 엘레노아가 전신에서 신성력의 광휘를 흩뿌리며 기도문을 외우자 재가 되었다.

나머지 일행들 또한 시체들을 뒤로 하고 아엘라시스와 렉시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가장자리였다. 아래로 이어지는 깊고 넓은 구덩이의.

구덩이의 직경은 짐작할 수 없었다. 아주 넓었기 때문이었다.

광범위하게 무너진 지반과 결합된 구덩이는 햇빛이 비치지 않는 한 자신의 몸 크기를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그늘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구덩이는 그 깊이 또한 알 수 없었다. 물론 그곳에 자리한 사람들 대부분은 적은 광량만 있어도 주위를 환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능력자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구덩이 안쪽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건 단순히 빛이 없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이상의 것을 의미했다.

구덩이 안쪽은 범접할 수 없는 어둠과 혼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넘칠 것처럼 안쪽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사악한 기운과 마력,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운이 난잡하게 얽혀 있었다.

아엘라시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는 다른 손을 뻗어 구덩이 안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검은 기운에 손가락을 댔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푸른 마력이 검은 기운에 닿자 파칫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거부 반응이 튀어나왔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아엘라시스가 손을 절절 흔드는 것을 본 제스가 말했다. 그의 시선은 칼리아를 향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여기 모인 사람들 중 가장 마법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꼽으라면 그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제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칼리아는 신중한 표정으로 넓고도 깊은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주변에 내려앉은 지반과 크게 무너져 속살을 드러낸 절벽, 경사면이 더 가팔라진 설산을 보았다.

“방금전 느낀 충돌 때문에 생긴 구덩이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 검은 기운은 나도 뭐라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구나. 어떤 간섭도 먹히지 않고 주문도 통하지 않아.”

그리고 칼리아는 보란 듯이 피를 끌어모아 수십 발의 화살을 만들고는 아래로 쏘아보냈다.

파공음과 함께 혈시들이 빠른 속도로 검은 기운과 충돌했다.

파츠츠츠!

아까 아엘라시스가 손가락을 댔던 것과 비슷한, 하지만 좀 더 넓은 범위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환하게 빛나는 불꽃과 불똥이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다가 꺼졌다.

그들은 걱정과 불안, 염려를 함께 섞고 버무린 표정을 짓고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

마치 우물처럼 새까만 어둠을 품 안에 간직한 구덩이 내부에서 러셀은 눈을 떴다.

아니, 눈을 뜬 것일까?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온갖 것을 볼 수 있게 해준 눈이 지금은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어둠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러셀은 자신이 혼수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비몽사몽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강력한 충격이 있었고, 검은 로브와 리치의 마력, 육체가 모두 한데 얽혀 들어갔다.

뚜렷했던 오감은 꿈처럼 희미했다. 러셀은 자신이 무중력 상태로 어딘가에 떠다니는 것인지, 아니면 추락하는 것인지, 혹은 무언가에 짓눌려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러셀은 자꾸 끊기려는 생각을 억지로 이어나갔다.

모호했던 감각은 이제 조여드는 듯한 감각으로 바뀌었다. 위와 아래, 앞뒤좌우로 꽉 막힌 벽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

숨이 막힐 듯 답답해야 하지만 질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한없이 커지는 것 같았다.

사방에서 자신을 조여들어오지만 오히려 몸이 커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라니.

러셀은 오감이 전해주는 정보를 믿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커지는 듯한 감각을 떨치며 러셀은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난······.”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러셀은 성대의 떨림을 자각했다. 자각의 순간은 찰나였지만 러셀은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조여오고 있는 감각 또한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입체적인 직선과 곡선을 그리며 마법진 수십 개가 자신을 감싼 채 돌아가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술식이나 문자의 뜻은 알기 어려웠지만, 그 목적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 몸을 가지려 한 건가?”

“어, 어떻게?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게 아니었나?”

러셀의 중얼거림에 어둠이 경악성을 지르며 크게 흔들렸다.

러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은 마안이라는 특성을 잃고 평범한 눈이 된 것처럼 아무런 빛을 뿜어내지 않았다.

검은색의 눈동자로 어둠을 훑던 러셀은 기지개를 펴듯 몸을 폈다. 그러자 웅크려져 있던 그의 몸이 뚜둑거리는 소리를 내며 펴졌다.

“말도 안돼! 어떻게?”

어둠의 경악성을 러셀이 태연하게 받았다.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

그의 전투 기술을 뚫지 못한 악마가 그의 몸 자체를 잠식하기 위해 행했던 검은 구체.

지금 러셀이 있는 공간은 그때의 구체를 연상시켰다. 물론 그때보다 규모가 백배는 크고, 밀도 또한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높았지만.

러셀은 검은 로브와 리치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딱히 어디라고 특정할 수 없이 모든 곳에서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신체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죽음의 위협을 맞은 둘 중, 강령술과 사령술에 조예가 깊은 쪽이 먼저 정신과 육신을 합일하자는 제안을 꺼냈을 것이었다.

마치 녹아든 것처럼 일렁이는 로브와 뼛조각, 흐물거리는 청동색의 갑옷이 잔상처럼 어둠 곳곳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구차하게라도 삶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은 나도 잘 알지. 나도 한 때 그래봤으니까.”

마나와 마력을 꿰뚫어보는 눈이 없어도, 손에 쥐어지는 무기가 없다고 해도 러셀은 이미 충분한 강자이자 전사였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몸뿐이었지만 러셀은 개의치 않았다.

“마음가짐은 존중해. 생은 다른 생을 빼앗고 갈취하면서 이어나가는 것이니까.”

지금도 떠올리려 한다면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삶을 향한 바람.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듣고, 더 많은 것을 만지고 맛보겠다는 다짐.

“그렇기에 그에 저항하는 마음가짐 또한 정당하다. 살해할 각오를 세웠으면 죽을 각오 또한 세우는 게 당연하지. 안 그런가?”

벼락같이 휘둘러진 러셀의 손이 어둠의 한 지점을 움켜쥐었다. 마치 누군가의 멱살을 잡은 것처럼 어둠 자락이 끌려나오며 그 주위로 흰 색의 선이 그어졌다.

어둠이 발버둥쳤다.

-컥, 허억!

발버둥치는 어둠에서 많은 것들이 흘러들어오며 러셀의 손을 적셨다.

원망과 두려움, 불안과 초조함, 이루지 못한 집념과 안타까움 등등의 감정들.

손을 적시는 감각은 손목과 팔, 어깨를 넘어 그의 얼굴과 상체를 뒤덮었다.

뒤죽박죽인 감각이 혼재되며 퍼져나갔다. 그를 조종하려는 사악한 의지와 마력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러셀은 그 의지를 거부하거나 배재하지 않았다. 도리어 흘려보냈다.

그러자 마력은 마치 강물처럼 러셀의 몸 어디에도 흡수되지 못하고 그저 흘러가버렸다.

어둠을 붙잡은 손과 어깨, 허리와 다리에 힘을 주며 러셀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몸속 어디에서 잠들어 있던 것인지, 끝도 없는 마력이 용솟음치며 그의 주먹으로 몰려들었다.

그건 러셀을 붙잡고 있는 어둠 그 자체의 마력이었다. 자신의 힘을 역이용하는 러셀을 향해 발버둥치는 어둠이 천천히 움직임을 멈췄다.

꿈틀거리는 구름과 회오리, 흩날리는 낙엽, 꽃잎, 안개와 빗물이 사방에 궤적을 그리다가 위로 올라갔다.

어둠이 깨져나갔다. 산산이 부서지는 어둠 속에서 스러지는 비명과 합쳐졌다 갈라진 두 개의 영혼이 소멸되는 것이 느껴졌다.

검은 로브와 리치의 죽음을 확인한 러셀은 점차 균열이 지는 공간을 올려다보다가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가 딛고 서 있던 바닥이 충격을 받은 유리처럼 산산이 깨져나갔다.

러셀은 마치 용암을 분출하는 화산처럼 튀어나왔다.

완전히 무너진 절벽의 모습과 그 너머 펼쳐진 하얀 숲이 보였다. 그 너머로는 지평선이 아득하게 뻗어 나가 있었다.

꽤 높이 올라온 덕분에 지평선은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끝과 끝이 둥글게 휘어진 곡선의 모습이었다.

그때 먹구름이 온전히 걷히면서 태양이 떠올랐다. 아침이 밝아온 것이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햇빛을 정면으로 받던 러셀은 중력의 부름에 아래로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장례를 치르기 전에 먼저 흩어진 신체 조각을 찾는게 더 어려울 고도의 높이였지만 러셀은 걱정하지 않은 채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저 아래서 그가 하늘로 솟아 올라간 것을 본 사람들이 점으로 보였다.

인연이라는 것을 단어의 뜻 그대로밖에 모르고 살았던 생이 있었다.

허락된 시간은 지나치게 짧았고, 유희의 시간 또한 길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작용한 덕분인지, 그는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두 번째 삶을 얻었다. 또 남들과는 다른 육체까지 지니고 태어났음을 알았다.

무시무시한 속도와 귓가를 가르는 광포한 바람소리를 들으면서도 러셀은 평온한 표정으로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때 아래서 눈부신 빛이 한번 번쩍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빛속에서 나타난 것은 흰색 비늘의 용이었다.

그 용에 타고 있는 것은 먼 여정을 함께한 일행들이었다. 무섭도록 가까워지는 용의 등판을 보면서 러셀은 미소를 지었다.

감상에 젖을 시간은 이제 모두 지난 듯했다.

먹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끝없이 찾아들었다. 앞으로도 무궁한 세월 흘러올 하늘이었다.

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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