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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217화 (218/225)

217화 시체 군세

귀곡성이 산과 절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며 더 많은 메아리가 되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 귀기 어린 신음, 울음, 비명은 시시각각 생자들의 이성을 짓눌렀다.

“물러서지 마라! 여기가 무너지면 제국은 풍전등화의 신세가 된다! 죽어서도 막아라! 너희는 할 수 있다! 밀어붙여-!”

성당 기사들의 독려와 함께 사제들이 기도문을 읊고, 신성 마법을 외웠다.

차디찬 눈보라가 불어 닥치는 와중에 입술은 파랗게 질리고 손가락은 자꾸 곱아들지만, 억지로 힘을 줘가며 폈다.

그들의 앞에는 누비 위에 가죽을 덧대 보온성을 더하고 철판을 박아 방어력을 보강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사력을 다해 시체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쏟아부어!”

“으아악!”

장교의 명령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병사들이 기합을 지르며 양동이에 담았던 성수를 벽 바깥으로 뿌렸다.

낮이지만 짙은 구름 덕분에 하늘은 어두웠다. 역설적으로 지상은 밝게 빛나며 빛을 아래에서 위로 쏘아 보내고 있었다.

끄이에에에-!

끼으으아악-!

끓는 기름 대신 성수를 뿌리자 막대한 흰 연기와 함께 좀비들이 염산에 닿은 것처럼 녹아내렸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가 내뿜는 악취는 고약했지만 절벽을 타고 내려온 칼바람은 그 모든 것을 신기루처럼 흩어버렸다.

환자 수십을 살릴 수 있을 성수가 빠른 속도로 소모되었고 그만큼의 시체가 불타오르며 환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팔다리에 하얀 불꽃이 붙었음에도 생자에 대한 끝없는 증오를 가지고 달려드는 좀비들은 모닥불에 뛰어드는 나방과 비슷했다.

시체들이 우수수 재가 되어 부서질 때 상위 언데드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둘라한이었다. 한 손에 자신의 머리를 든 채 다른 손에는 끔찍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무기를 쥔 목 없는 기사들이 돌진했다.

이히히히히-

해골 군마의 콧김에서 푸른 화염이 솟구치고, 둘라한이 옆구리를 박찼다.

시체들의 발밑에서 똬리를 튼 채 그 양을 더해가고 있던 검은 안개가 갑자기 솟구친 것은 둘라한들이 말을 박찬 시점과 같았다.

쑤아아아아!

의지를 가진 생명체처럼 검은 안개가 비탈길을 거슬러 올라오며 케트니오라 성당의 성벽과 부딪쳤다.

성벽이 지닌 신성력과 사기가 가득 깃든 검은 안개가 부딪치자 그 경계에서 하얀 불똥과 폭죽 같은 번뜩임이 무수히 나타났다.

그리고 다섯 기의 둘라한들이 그 검은 안개를 짓밟으며 달려왔다.

바람에 깎여 부서진 암석과 모래를 뒤로 쳐날리며 달리던 다섯 기의 머리 없는 기사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온다-!”

기사의 외침과 함께 둘라한들이 성벽에 내려앉았다. 그 충격으로 성벽의 바닥을 이루는 판석이 움푹 주저앉고 돌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어깨와 등에서 망토처럼 검은 연기를 풀풀 흩날리는 둘라한들이 왼손에 들고 있던 머리를 흔들자 그 머리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비루먹은 목숨을 던져라, 미개한 것들아!”

“닥쳐라, 저주 받을 잡것아! 태양은 저물지 않는다!”

그에 맞서 소리친 성당 기사가 명령을 내렸다.

“쇠그물을 던져라!”

공세에 앞서 유리아와 성당은 둘라한과 데스나이트의 존재가 망자 군대의 핵심임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에 맞서기 위한 대책 또한 마련해 두었고, 그 준비성이 빛을 발하며 둘라한들을 향해 떨어졌다.

촤라라락!

바람을 촘촘한 격자 무늬로 쪼개며 날아든 그것은 성수에 담가두었던 쇠그물이었다. 우윳빛의 성수를 뚝뚝 흘리며 날아든 쇠그물 여섯 개가 둘라한들을 노렸다.

키아아아아악-!

다섯 기의 둘라한이 그 쇠그물을 피해 좌우로 회피 기동 했다. 그러나 무리하게 움직인 덕분에 일렬로 서 있던 것이 무너졌고, 그 중 두 기의 목 없는 기사가 쇠그물에 덮쳐지며 말에서 낙마했다.

“찔러어!”

“덮쳐라!”

두 기의 둘라한을 향해 칼과 도끼, 창이 날아들었다. 모두 사제에게 축복 받아 하얀 빛을 흘리고 있는 무기들이었다.

발버둥을 치던 둘라한 두 기가 허무하게 소멸했다. 그러나 나머지 세 기는 쇠그물에 맞지도, 낙마하지도 않은 채였다.

동료를 잃은 둘라한들이 사납게 소리 지르며 성벽 위를 달렸다.

“어, 어어- 커헉!”

해골 군마에 치인 병사 하나가 반신이 말발굽에 짓밟히며 죽었다. 그러고도 수십의 병사가 해골 군마의 이빨에 머리통이 씹혀 죽거나 둘라한이 휘두른 도끼 창에 상반신이 썩둑 베이며 죽었다.

“이야아아악!”

어느 용감한 병사가 축복된 칼을 들고 둘라한에게 달려들었다. 머리 없는 기사는 창을 내질렀다.

그 지극히 효율적이고 빠른 창에 병사는 그대로 가슴팍이 꿰뚫렸다.

둘라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머리 없는 기사는 커다란 덩치에 걸맞는 길쭉한 창대를 들어올렸다.

해골 군마가 달리는 속도와 둘라한이 가진 엄청난 힘에 의해 창날에 꽂힌 병사는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창끝에 꿰인 채 죽은 병사가 팔다리를 위아래로 출렁이는 모습은 성벽 위의 모든 생자들에게 똑똑히 보였다.

둘라한이 창대를 휘두르자 꿰여 있던 시체가 피를 흩뿌리며 날아가 덜덜 떨며 서 있던 병사 수십에게 날아갔다.

와르르 부서지는 병사들. 생자들은 충격적인 장면이 아직까지 망막에 남아있는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 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태양을 경배하라-!”

그때 웅장한 고함과 함께 두 명의 성당 기사가 양옆에서 둘라한을 치고 들어갔다. 올데힘 경과 데루카 경이었다.

데루카 경의 장검이 해골 군마의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가 사기의 근원을 파괴하는 것과 외팔의 올데힘 경이 둘라한의 왼쪽 손에 들린 머리를 노린 것은 동시였다.

해골 군마가 긴 비명 소리를 내지르며 네 개의 무릎을 꿇었고 머리 없는 기사가 경악하며 오른손에 든 창대를 부웅 휘둘렀다.

까아앙!

쇳소리와 함께 둘라한의 창대와 올데힘 경의 칼날이 부딪치며 충격파가 일었다. 둘라한과 데루카 경, 올데힘 모두 자리에서 이탈하며 나뒹굴었다.

갑옷 째로 돌 위를 굴러 상당히 아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데루카 경이 벌떡 일어나며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간악한 어둠에 홀려 삶을 포기하지 마라! 죽음 이후의 삶보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주의 말씀이시다! 일어나 싸워!”

그 맑은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생자들은 피부가 갈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한시도 멈추지 않았지만, 잠깐 소강 상태가 된 듯 했던 병사들은 다시 방패를 치켜들고 시체들을 향해 달려갔다.

“으아아아!”

“죽음, 을! 꺽!”

“두려워, 카학!”

“말라!”

사제의 기도와 서로를 북돋는 외침, 단말마가 섞이며 성당은 난전으로 변해갔다.

“그아아아-!”

길쭉한 창날이 바닥을 쓸어오며 데루카의 다리를 노렸다. 데루카는 곧바로 뒤로 몸을 굴리며 창날을 피해냈다.

구르던 도중 무릎을 피며 일어난 데루카가 허리춤에 달아두었던 작은 원형 방패에 왼손 팔목을 찔러넣고 들었다.

왼팔뚝에 타지를 들고 오른손에 장검을 든 성당 기사가 신성력이 가득 깃든 고함을 지르며 돌진했다.

쾅, 쾅, 쾅!

세 번의 창질과 한 번의 흘려냄, 두 번의 구르기. 아슬아슬하게 죽음의 외줄타기에서 삶을 고르는데 성공한 데루카가 오른손의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둘라한 또한 왼손에 쥐고 있던 머리를 들어올렸다. 썩은 살점과 근섬유 몇 개로 붙어있는 턱 관절이 열리며 그곳에서 냉기와 사기가 숨결처럼 뿜어져 나왔다.

“끄으윽!”

타지로 얼굴과 상반신을 가린 데루카였지만 원래 작은 소형 방패였기에 다른 부위는 그대로 맞고 말았다.

그 틈을 타 외팔의 올데힘이 왼손을 입 가까이 가져가며 기도문을 외우자 그 손에서 황금빛의 십자가가 형상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성당 기사가 빛나는 왼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바닥을 박찼다.

“태양의 종으로서 명하니, 사라져라!”

서광이 뿜어졌다. 햇빛과도 같이 따스하면서도 눈부신 서광에 둘라한은 냉기를 뿜던 것도 멈추고 비명을 지르며 비척비척 물러났다. 하지만 머리 없는 기사는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분노와 고통으로 타오르는 녹색 안광을 희번득거린 둘라한이 곧장 어깨를 당겼다가 뻗었다.

빛살이 번뜩였다. 푸욱! 이물감에 아래를 내려다본 올데힘은 복부를 관통한 창날을 볼 수 있었다.

왼손으로 창날을 쥔 늙은 성당 기사가 파리해진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큭, 늙긴, 늙었나 보군. 이깟 창 하나 보지 못하고······.”

“올데힘 경!”

“내가 아니다! 달려들어!”

경악성을 내뱉었던 데루카는 곧바로 이어진 올데힘의 호통에 눈물을 흘리며 둘라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돌진해오는 기사를 보고 둘라한이 창대를 휘어잡아 빼내려 했지만, 창날은 올데힘의 복부에서 뽑혀지지 않았다.

왼손으로 창날과 이어지는 창대를 단단히 붙잡은 올데힘의 피부에는 황금빛이 흐르는 문자가 가득 쓰여져 흐르고 있었다.

가슴팍에서 시작되어 어깨와 팔꿈치를 타고 흘러간 황금 문자는 둘라한의 창대까지 흘러가며 머리 없는 기사의 온몸을 강력하게 구속하고 있었다.

핏기 없이 창백해진 얼굴로 올데힘이 씩 웃었다.

“길동무가 머리 없는 기사면 퍽이나 심심하겠군. 으하하하!”

당황한 둘라한이 미처 피하기도 전에, 신성력을 가득 밀어넣은 데루카의 칼날이 둘라한의 상반신을 세로로 쪼갠 다음 머리를 박살 냈다.

한 기의 머리 없는 기사가 그렇게 소멸했다. 남은 둘라한은 이제 두 기였고, 그나마도 성당 기사와 기사의 협공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때 열세에 몰리며 거대한 양날 도끼를 휘두르던 둘라한 하나가 가진 마력을 터트리며 바닥을 때려 부쉈다.

꽈아앙!

난데없는 공격에 성벽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고 균형을 잃은 병사들이 엉덩방아를 찧거나 넘어졌다. 그 틈을 타 살아남은 둘라한 두 기는 성벽에서 물러나며 바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진정한 공격은 지진같은 것이 아니었다.

“구워어어억!”

거친 괴성과 함께 한 드라우거에게 시체와 좀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구울이나 드라우거에게 몰려든 좀비들 때문에 금세 살덩이와 썩은 진액, 핏물로 점철된 것이 만들어졌다.

그 역겨운 살덩어리에 검은 안개가 들러붙었다. 그러자 그 살덩어리의 겉표면이 녹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검붉은 근육과 썩은 살점에 뒤덮인 팔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끼애애애액!”

시체와 시체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거대한 시체의 공이 수백 개의 팔을 휘두르며 굴러오기 시작했다.

성벽 바깥에서 같은 시체들마저 짓밟으며, 그러면서 동시에 덩치를 키운 전차 같은 시체 공이 성벽에 부딪쳤다.

꽈앙!

성벽이 움푹 패이면서 돌조각과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났다. 시체 공 또한 신성력이 깃든 성벽에 부딪치면서 수십의 시체가 불타오르고 떨어져 나가며 그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성벽과 시체 공의 차이점이 있다면, 신성력의 보충은 사제들의 줄어드는 체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시체 공은 뒤편에 얼마든지 새로 보충할 수 있는 망자들이 가득했다는 것이었다.

꽈아앙!

다시 네 개의 시체 공이 성벽에 부딪치고 불타올랐다. 그러나 성벽은 아까보다 확연히 약해진 빛으로 시체 공을 저지하고 있었다.

금이 가고 수평이 무너진 흉벽을 확인한 기사와 성당 기사들이 목소리를 높여 명령을 내렸다.

“물러나! 물러나서 전열을 갖춰라!”

“사제들, 사제들은 어디 있나!”

“성수를 뿌리면서 뒤로 물러나라!”

“궁병! 궁병은 발사 준비!”

물러나지 않은 궁병들이 시위에 화살을 쟀다. 남은 화살은 얼마 없었다. 그렇기에 남은 궁병들은 한 번에 세 개, 네 개의 화살을 시위에 잰 다음 시체 공을 향해 조준했다.

쿠드드드드드

지축을 울리며 두 개의 시체 공이 굴러왔다.

“발사!”

푸슈슈슈슉!

아까처럼 하늘을 수십 개의 검은 실선이 갈랐다. 하지만 그 숫자는 처음보다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시체 공에 명중한 화살들 덕분에 한 개의 시체 더미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러나 나머지 하나는 그대로 돌진하며 성문에 부딪쳤다.

콰르르릉!

천둥과 비슷하게 돌들이 무너지며 성벽 한쪽이 아래로 떨어졌다.

검은 안개가 무너진 암석 틈을 채우며 물밀들이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시체들 또한.

끼아아아악

깨에에에엑

원혼들이 메아리를 울리며 하늘을 날아다녔다.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공포에 젖게 하고, 삶의 의지를 놓게 만드는 귀곡성이 병사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 아래로 죽은 아이들이 작은 체구를 놀리며 뛰어들어왔다. 미처 살지도 못하고 죽은 어린 아이들은 아직 피부 대부분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뛰지 않는 심장과 돋아난 푸르고 검은 혈관 때문에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 좀비 아이들의 흉악한 모습에 질린 병사들이 긴 창을 내세우면서도 주춤주춤 물러날 때.

콰앙!

무너진 성벽에서 그대로 뛰어내린 한 기사가 은발을 출렁이며 칼을 휘둘렀다.

칼에 모여든 마력의 격류가 일순 빛의 속성으로 변모했다. 그러자 지상에 한순간 태양이 내려앉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광량이 폭발했다.

수십의 좀비와 망령들이 그 광량에 몸이 하얗게 부서지며 산산이 흩어지고, 반경 수십 미터가 빗자루로 쓸어낸 것처럼 말끔해졌다.

“전하!”

“전하 만세!”

목숨을 구함받은 병사들이 그들을 구원한 자의 이름을 높이 부르며 환호했다.

칼을 늘어뜨린 유리아는 남은 마력을 계산했다.

‘앞으로 여섯 번.’

방금과 같은 공격을 날릴 수 있는 기회는 그 정도 되었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언데드들을 생각하면 턱없이 낮았다.

그리고 성당의, 그리고 제국읜 위기는 이제 겨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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