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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206화 (207/225)

206화 군령들

***

“무슨 게임 보스 상대하는 기분이군. 2페이즈, 3페이즈가 계속 나와.”

투덜거리며 러셀이 뒤로 뛰었다.

꽈아아앙!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가 치솟으며 텁 하고 이빨을 부딪쳤다.

“캬아아아아!”

커다란 악어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괴물이었다. 흰자위는 하나도 없이 시커먼 눈을 그대로 드러낸 괴물이 곧장 러셀에게 달려들었다.

체고가 2미터를 넘을 정도로 크고 높은 악어 주둥이가 전면을 가득 채우며 달려드는 장면은 오금이 저릴 정도다.

콰악!

크게 벌린 악어의 주둥이가 고정되었다. 어떻게든 힘을 주며 다물려고 하지만 러셀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앗삳.

왼손으로 윗턱을 잡고 오른발로 아랫턱을 짓누른 러셀은 그대로 허리를 비틀었다. 크게 젖혀진 오른팔이 잔상을 그렸다.

쏴아악!

횡으로 나뉜 악어-사자 괴물이 철퍽, 쓰러졌다. 한 마리를 손쉽게 처치한 러셀이 대검을 획 털고는 고개를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그러모아 주변으로 퍼트리자 순식간에 막대한 정보량이 뇌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감, 육감과는 또 다른 방식의 감지 형태이기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중구난방이었다.

도시는 이미 폭격을 맞은 것처럼 실시간으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거인이 일어나 팔을 휘두른 것만으로 영주성은 절반으로 쪼개져 무너졌고 그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건물과 사람들을 깔아 뭉갰다.

그림자와 그림자, 어둠 속에서 계속 소환되는 지하 세계의 괴물들도 문제였다. 놈들은 잿빛의 거인이 나타난 직후부터 그 거인이 그림자를 드리울 때마다 그 속에서 기어나오곤 했다.

다행히 일찌감치 성밖으로 나간 칼리아와 아엘라시스, 실리오, 바이젠, 아샤린, 렉시가 괴물들을 처치하고는 있지만 소환되는 양이 죽는 것보다 더 많았다.

그어어어어어-!

그때 완전히 몸을 일으킨 거인이 하늘에 대고 포효했다.

[내가······ 왔다······ 찬탈자들이여······!]

거인이 포효하자 하늘의 구름이 급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얀 동공처럼 세상을 비추던 태양이 빛을 잃었다.

도시 곳곳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상공으로 치솟으며 밝기를 더 낮추고 있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마치 밤이 일찍 찾아오기라도 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시야가 더 높이 올라가면서 도시를 온전히 내려다보았다. 성이 폭발파면서 나간 충격으로 인해 일어난 화재가 바람을 타고 불씨를 나르고 있었다.

이 시대의 건물들은 모두 목조로 이루어지고, 강도를 높이기 위해 햇볕에 말리거나 약품을 넣는 일이 빈번했다. 그 덕분인지 불은 마른 장작을 넣은 것처럼 사방으로 번지며 그 크기를 키워갔다.

“아아악!”

“사, 살려줘!”

“아빠! 엄마!”

“큭, 커억······”

도망치다 숨이 막혀 죽은 시민들이나 괴물들의 손에 갈가리 찢어지는 자들, 건물 잔해에 깔려 고통에 겨운 신을 내는 사람들의 어두운 감정과 사념이 증폭되었다.

어두운 감정은 더 어두운 감정을 부르고, 그 감정들은 지하 세계의 괴물들을 미쳐 날뛰게 하는 재료였다. 공포와 불안의 감정을 접할 때마다 괴물들은 더 크기를 키우고 힘을 얻으며 중간계에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을 새로 얻었다.

이대로 두면 온 도시가 불길에 횝싸여 타오를 것이었다.

다시 눈을 뜬 러셀의 앞에서 새로운 괴물들이 일어났다. 각기 여러 동물들의 머리와 몸통, 팔다리를 떼다가 제멋대로 붙인 것처럼 균형과 대칭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살육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전문적인 태도로 괴물들은 살의를 불태우며 러셀에게 달려들었다.

대검을 들어 얼굴 앞에 세운 러셀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콰르르릉!

몰아치는 벼락이 사슬처럼 이어지며 괴물들의 사지를 부쉈다. 재생하려는 흑마력은 벼락의 열기와 위력 앞에 녹으며 파괴됐다.

순식간에 괴물들을 싹 쓸어버린 러셀은 바로 앞에 놓인 영주성의 무너진 기둥을 밝고 올라가며 위로 달렸다.

[아직도 살아 있었나······!]

러셀을 알아차린 잿빛의 거인이 전신의 눈을 뜨며 외쳤다. 전신에 붙어 있는 눈이 모두 동공을 희번득거렸다.

[왜······ 죽지 않는 거지······?]

“그렇게 말 길게 늘여트려서 말하면 뭔가 좀 있어 보이나?”

[건방진······!]

그아아아아아-!

쿵!

괴성을 지르며 잿빛의 거인이 발을 내디뎠다. 키가 장장 20미터에 이르는 거인이 가진 체중은 엄청났다.

쿵!

단지 걸음을 한 번 디딘 것만으로 지반이 출렁이고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거기에 점차 빨라지기까지 했다.

쿵, 쿵, 쿵!

보폭이 수십 미터가 넘었기에 세 걸음을 딛는 것만으로 거인은 발을 아래로 내리꽂을 수 있었다. 그 아래에는 러셀이 있었다.

꽈앙-!

언덕이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우려될 정도로 커다란 굉음과 지진이 도시를 뒤흔들었다.

[응······?]

러셀을 짓밟은 거인이 의문성을 냈다. 그때 거인의 발등 위로 검은 이쑤시개 같은 것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그 발등을 자색의 벼락이 갈가리 찢어버리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가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거인을 아랑곳 않고 튀어나온 러셀이 전신에 묻은 검은 피를 뒤로 흩날리며 위로 달렸다. 잿빛 거인의 피로 범벅이 되었던 몸은 그가 일으킨 자색 벼락에 의해 검게 타 가루가 되어 바스라졌다.

마치 한 줄기의 번개 그 자체가 된 것처럼 러셀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그는 거인의 발목과 정강이를 넘어 골반까지 도달했다.

달리면서 왼손에 들린 마지막 서리의 도끼날 부분을 거인의 피부 가죽에 대고 그으면서 올라갔다. 거인의 다리는 금세 꽁꽁 얼어붙었고, 다리에도 따개비처럼 붙어있는 눈알들이 그 냉기에 얼었다가 터지며 끈적한 진액을 흘렸다.

[크흐윽!]

처음으로 전성으로 신음을 지른 거인이 손을 휘둘렀다. 눈깜짝할 새에 골반을 넘어 목까지 다다른 러셀은 거인의 목을 치기 위해 한껏 어깨를 뒤로 젖혔다.

그때 그보다 잿빛 거인의 몸 위로 빼곡히 드러난 눈의 초점이 모두 러셀에게 몰렸다. 경계 없이 눈알 전체가 새까만 수백 개의 눈 속에서 붉은 초점이 생기더니 그대로 러셀을 향해 마력을 뿜어냈다.

러셀을 향한 그 무수한 시선에 마력이 실리자 허공에 수백 개의 열선이 시각화되며 모습을 드러냈다. 찰나에 그 시선이 곧 파동으로 구현되리라는 것을 내다 본 러셀은 거인의 목을 찍으려 했던 동작을 취소하고 자신의 앞으로 무기를 교차했다.

콰아아아아!

수백 개의 광선이 그대로 러셀을 휩쓸었다. 러셀은 그대로 맞고 날아가 건물과 길을 갈아엎으며 길쭉한 흙먼지를 그렸다.

거인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열선은 나가 떨어지는 러셀을 추적하며 막대한 열기에 힘을 실었다. 당장 시가지 전체에 불벼락을 쏟아낸 것과 다름없는 일이 일어났다.

광선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서 화염으로 된 커튼이 일렁이는 것처럼 불의 벽이 솟구치고 양옆으로 해일처럼 퍼져나갔다.

수십 개의 집과 식당, 목공소, 대장간, 방앗간, 이름 모를 창고들을 부수고 난 후에야 러셀은 멈출 수 있었다.

“쿨럭.”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러셀이 전신에서 연기를 피우며 기침을 토했다. 돌조차도 녹여버릴 수천 도의 온도가 집약된 광선을 온전히 빗겨내는 건 그로서도 쉽게 받아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코트조차도 너덜너덜해졌고 바지와 신발도 불에 타 버렸으며 대검과 도끼는 놓쳐버렸다.

“끝내주는군.”

러셀은 몸을 일으켰다. 부수고 들어온 건물 벽을 짚고 나오자 훤히 트인 정경이 보였다. 그가 부수고 온 길이었다.

원래는 골목과 담장, 울타리, 건물과 건물의 틈으로 빼곡했을 거리는 일직선으로 쫙 열려 있었다. 그리고 불에 활활 타고 있었다.

멀리 영주성의 폐허에서 내려온 거인이 러셀을 향해 쿵쿵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불길과 검은 연기, 아지랑이 속에서 다가오는 거인에 의해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때 커다란 그림자가 하늘을 스쳤다. 위를 바라본 러셀은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하얀 비늘과 뿔을 가진 용, 아엘라시스였다.

기다랗고 매끈한 동체에 네 개의 팔다리와 두 쌍의 날개, 길쭉한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용이 있었다.

폐허 속에 서 있던 거인도 용을 보고는 놀란 목소리를 냈다.

[용······? 어떻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용은 높은 하늘에서 멈춘 채 체공했다. 유려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두 쌍의 날개가 그 거구를 고정 시키는 것은 물리법칙에 대한 도전 같았다.

우우우웅······!

용을 중심으로 무평의 파동이 퍼져나가며 투명한 구체를 그렸다. 확 피어나는 흙먼지와 함께 밀려난 대기가 국소적인 소닉 붐을 일으키며 하얗게 물들었다.

그 충격에 휘말린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바깥으로 눕고 그 속에 숨어있던 괴물들이 납작 짓뭉개졌다.

파직!

용의 머리에 난 커다란 뿔 사이에서 전격의 실이 이어졌다. 곧 그 하얀 전격의 실이 피뢰침처럼 솟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 닿은 용의 작은 번갯불은 곧 그 하늘을 시퍼렇게 물들였다.

콰과과과광······!

귓청을 울리는 천둥소리가 세상을 짓눌렀다. 용 스스로의 마력과 대기에 퍼져 있는 마나가 모여들자 공기가 요동치며 하늘이 어지러워졌다.

먹구름 가득 낀 하늘에서 붉게 빛나던 섬광이 아엘라시스의 마력에 영향을 받자 그 색깔이 희고 푸르게 빛났다. 먹구름 속에서 우렁차게 울던 섬광들이 빛줄기가 되어 수십 갈래로 나눠지며 지상으로 내달렸다.

빛으로 이뤄진 나뭇가지처럼 떨어진 뇌격은 지상을 강타하지 않고 용에게 내리꽂혔다. 일순간 아엘라시스는 수십 개의 하얀 섬광을 전선처럼 연결한 듯한 모습이 되었다.

엄청난 양의 전격이 만다라처럼 펼쳐지며 도시의 하늘을 물들였다. 먹구름이 드리운 그림자에 뒤덮였던 도시는 백색의 전광에 파묻혀 본래의 색을 잃고 창백해졌다.

용이 입을 벌렸다. 벼락이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회전하며 회전음을 발했다.

그 막대한 격류 앞에 거인이 뭐라 소리를 지르며 두 손을 위로 쳐들었다, 두 팔이 합쳐지며 육중한 살덩어리 기둥이 되고, 양손은 꽃잎이 만개한 꽃처럼 손가락을 사방으로 펼친 기괴한 모양이 되었다.

그 중심에 거대한 눈이 떴다. 그 눈이 뜨자 전신의 모든 눈이 눈꺼풀을 닫고 침묵했다. 손가락을 꽃잎 삼이 틔워진 살덩어리의 꽃 중심에서 뜨여진 눈이 완전히 검게 물든 것과 창백한 폭포가 쏟아져 내린 것은 동시였다.

하늘에서 내리꽂힌 백색의 기둥. 소리조차 표현될 수 없는 충격에 외벽이 계란 껍질처럼 터져 나가고 영주성이 있던 언덕은 그 키가 강제로 낮춰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성벽을 터트린 전격이 그대로 불길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져나갈 듯 날름거렸지만, 곧 의지를 지닌 것처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도시로 퍼지지 않고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신이 직접 천벌을 내리는 듯했던 전격 속에는 정순한 마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잿빛 거인에 의해 더럽혀진 지상을 말끔히 말소하는 것처럼 벼락이 스친 곳의 오염된 마력이 타오르다가 스러졌다. 그림자에서 기어나오던 괴물들은 나오자마자 사방에 가득한 용의 마력에 화르륵 불타올랐다가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희게 덧칠되어가는 것만 같은 그때, 검은 선이 도화지 위를 그렸다.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한 채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웅크려 전광을 피했을 때 유일하게 러셀만이 그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벼락은 정통으로 거인에게 명중했다. 그러나 거인 또한 자신의 신체를 변형해 만든 공격을 용에게 맞추는데 성공했다.

“카아아아아······!”

용이 추락하고 있었다. 허공에 떠오를 수 있게 해주던 두 쌍의 날개 중 왼쪽에 자리하고 있는 날개가 날려나간 탓이었다.

검은 선에 의해 깨끗하게 잘려 나간 날개의 단면부에서는 검은 불길이 타오르며 그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떨어지는 용을 보자마자 러셀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 주위로 자색의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며 유형화되었다.

콰아앙!

그가 다리에 힘을 주자 디뎠던 건물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 반동으로 날아오른 러셀은 유성처럼 날아 용이 떨어질 장소에 떨어졌다.

쩌저저저정!

동시에 대지에서 얼음으로 된 산이 일어섰다. 빙산은 그대로 떨어지는 용을 비스듬히 감싸며 추락에 의한 충격을 분산시켰다. 용의 무게에 갈라진 빙산이 무너질 뻔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러셀은 아엘라시스를 안전하게 안는데 성공했다.

“아엘라? 정신 차려 봐라.”

용은 그 육중한 머리를 힘없이 늘어뜨린 채 숨을 색색 내쉬었다. 대답을 받기 힘든 상태를 직감한 러셀은 그대로 뛰어올라 등에 내려섰다.

그가 눈여겨봤던 대로 날개를 자르고 지나간 검은 광선이 남긴 검은 불꽃이 아엘라시스의 날개 관절과 비늘을 태우고 있었다.

러셀의 주먹이 그 검은 불꽃을 후려쳤다. 자색의 마력에 덮인 검은 불꽃은 볓번 더 기세를 올려 그의 마력까지 잡아먹으려하다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수그러들었다.

남은 검은 불꽃을 모두 없앤 러셀이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의 드넓고 촘촘한 마력감지를 꿰뚫고 한 줄기의 섬광이 공간을 찢으며 달려왔다.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인지한 러셀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마력을 일으킨 다음 손바닥을 뻗었다.

쩌저저저적!

사방에 현현시켜둔 얼음이 불쑥 솟아올라서며 커다란 벽을 형성했다. 직후 날아든 섬광이 그대로 러셀이 일으킨 빙벽에 충돌했다.

콰자작!

잠깐 멈추는 듯했던 섬광은 단번에 빙벽을 산산이 부수며 러셀의 왼손에 닿았다.

“······!”

강렬한 고통에 러셀이 왼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바닥을 녹이고 관통하려는 검은 마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마력을 손아귀를 움켜쥐어 부순 러셀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엄청난 고열에 피부가 녹아내렸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살덩이가 기어오고 있었다.

[극, 그그극, 기기기긱······]

거기에 제대로 된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괴상한 신음만을 흘리고 있는 상황. 전신에 나 있던 눈들은 모두 터져 나간 채 검붉은 진액을 눈물처럼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괴한 모습도 잠시, 민달팽이처럼 기어오던 살덩어리의 등부분에서 푸슉 하고 핏물이 튀었다. 그리고는 근육만 남은 커다란 손이 튀어나왔다.

[큭, 카하아아아.]

온몸에서 검은 기름 같은 끈적한 액체를 줄줄 흘리면서 살덩어리에서 빠져나오는 그것은, 그 크기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긴 했만 틀림없이 아까의 거인과 비슷한 외견을 가진 괴물이었다.

이목구비조차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머리통에 살점이 녹아 흐르며 뼈가 그대로 보이는 육신. 시뻘겋게 달아올랐다가 굳은 피부는 우그러진 주름을 내보였고, 흉한 촉수들과 등을 찢고 나온 검은 뼈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죽, 죽어 버리는······ 찬탈자들······ 가증스런 신들······ 도망친 용들······ 세계는, 부딪칠 것이······]

벼락을 맞으면서 뇌가 파괴되기라도 한 걸까. 거인은 매끄러운 문장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말만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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