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205화 (206/225)

205화 용과 거인

성이 무너진다. 말만 들어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이 시대에서 거대한 건축물이라는 것은 대개 두 가지다. 성벽, 그리고 성.

성벽은 그 외관만큼이나 굳건하고 단단한 인상을 주고 성도 대개 그렇다. 아무도 그것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고양이가 오리 소리를 내고 물고기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처럼 허무맹랑하다.

하지만 브라실트 성이 무너지는 과정은 도시의 시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상을 주었다.

성의 외벽을 부수고 나온 거대한 손가락과 그 뒤로 이어지는 팔은 비현실적이었다. 산산이 부서져 허공으로 떠오른 외벽의 돌과 잔해들은 지독하게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정오에 다다른 시각부터 브라실트 성에서 울리던 굉음과 마력 파동은 내성과 인접한 지구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그리고 성에서 우르르 빠져나오는 사용인들과 병사들, 하인들의 공포에 질린 표정은 군중심리를 자극하는데 부족하지 않았다.

상황을 온전히 파악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브라실트 성에서 달려나오니까, 그리고 그들이 피칠갑을 하고 있거나 사지 하나가 없거나 등의 이유를 눈에 새기자마자 등을 돌린 다음 도망쳤다.

그리고 이제까지 중 가장 커다란 굉음과 함께 투명한 파동이 내성을 뚫고 나와 달려가던 사람들을 앞질러 통과했다. 귀가 먹먹해지는 충격에 사람들은 나동그라졌다.

장대한 먼지구름이 모든 것을 뒤덮었다. 오랫동안 서까래에 뭉쳐있던 먼지와 돌과 돌 사이를 매우던 진흙이 바스라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성의 외벽을 박살 내며 튀어나온 거인의 팔을 볼 수 있었다. 잿더미를 뒤집어 쓴 것 같은 회색 피부의 거인이 팔을 휘저으면서 동시에 눈을 떴다. 그 눈은 얼굴이 아니라 팔에 있었다.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번뜩 열리고 사람만 한 크기의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자위에 보랏빛을 띄고 있는 눈동자였다.

동공은 어디에도 제대로 된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빙글빙글 돌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쳐다보고 싶은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눈에 잠깐이라도 마주친 사람들은 눈에서 갑자기 피를 흘리거나 구토를 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컥, 커헉!”

“아아아아아!”

자신의 눈을 잡아 뽑아버리고 싶다는 듯 얼굴을 할퀴거나 아무 벽, 기둥을 붙잡고 머리를 쾅쾅 박아대는 등 거인의 눈을 마주한 사람들이 미쳐날뛰었다.

“필! 필, 왜 그러는 거야! 정신 차리게!”

“엄마아아!”

“흐아아악!”

영문을 모른 채 이웃과 가족의 자해를 막으려던 자들은 거센 반항에 떠밀리다가 넘어지거나 도리어 공격받았다. 혼란은 그렇게 수없이 태어났다.

와드드드드득!

그때 뒤이어 뻗어나온 거인의 다른 팔이 수평으로 휘저어졌다. 무엇 때문인지 그 팔의 위치는 아주 낮았고 그대로 내성의 벽을 바깥으로 날려버렸다.

벽의 잔해가 도시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체공했던 시간만큼 늘어난 높이는 그대로 중력의 힘에 좁혀졌다.

쿵! 쿵! 콰드드득!

땅이 흐느끼며 자욱한 흙과 돌을 토해냈다. 비명과 신음을 짧거나 없었다. 내지를 틈도 없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중 유난히 거대한 성벽의 잔해가 공중을 날다가 추락했다. 깨진 돌이 그렇듯이 뭐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다각도를 가진 돌의 크기는 대충 보아도 5미터는 넘었고 폭은 20센티로 두꺼웠다.

잔해가 도망치던 사람들을 깔아뭉개기 직전이었다. 검은 뭔가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더니 그 커다란 암석을 향해 날아갔다.

쓰아아아악!

공기가 갈라지며 비명을 토하는 소리와 함께 두 자루의 곡도가 춤을 추었다. 허공에 수백 개의 실선이 그어지는 것과 동시에 단단한 암석은 조약돌이 되어 바닥에 좌르르 쏟아졌다.

암석을 쪼갠 흑요정 렉시가 눈과 귀에서 흐르는 피를 훔치며 인간들을 향해 소리쳤다.

“도망쳐!”

시민들은 그 명령에 저항해야 할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저마다 고함을 지르며 도망치는 인간들을 뒤로 하고 렉시는 앞을 보았다.

홀의 전투에서 잠시 기절했던 것도 잠시, 그녀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러셀을 제이비르와 남긴 후 무너지는 홀에서 벗어난 일행은 마법으로 경종을 울렸다.

안 그래도 용트림을 하듯 흔들리는 영주성에서 사용인들과 하인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성에 남은 인간들이 하나도 없을 때 느닷없이 굉음과 함께 마력 파동이 터져 나왔고, 렉시는 그 충격으로 도리어 정신을 찾았다.

그리고 안색을 굳힌 칼리아의 말에 한 지점을 맡아 이곳에 서 있었다.

“······저건가.”

렉시는 칼리아가 떠나기 전 말한 것을 떠올렸다. 사람의 피와 살을 탐하는 존재들이 기어나올 것이라고.

쨍한 태양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가득 덮여 있었다. 태양은 구름의 뒤편에서 하얀 동공으로 지상을 비췄다.

어둡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밝다고도 말하기 힘든 미묘한 밝기의 낮 아래서 렉시는 두 자루의 곡도를 고쳐쥐었다.

저 앞에서 무엇인가가 획, 하고 움직이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괴물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없는 외모의 것이었다.

건물의 그림자 사이에서 태어난 듯 기척 없이 나타난 괴물은 피부를 벗겨낸 것처럼 붉은 근육과 푸른 신경 다발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두 발로 선 키는 1미터 80센티는 되어 보였다. 머리는 도마뱀과 늑대를 합친 것 같았고 주둥이는 길쭉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튀어나와 있었다.

끼아아아아-!

태양 아래의 괴물이 자신의 근육질 몸을 부풀리며 괴성을 질렀다. 흙먼지가 그 괴성에 마구 밀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좆같이도 못 생겼네, 정말.”

촤앙!

두 자루의 곡도를 한 번 부딪친 렉시가 바로 달려 나갈 듯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돌진해 올 것을 예감한 듯 앞의 괴물 또한 앞다리를 바닥에 대며 마치 투우장의 황소처럼 숨을 거칠게 쉬었다.

쾅!

바닥이 부서지며 렉시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목표는 전방이 아니었다. 공중이었다.

그리고 렉시가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 또 다른 괴물이 길쭉한 손톱과 팔을 휘두르며 솟구쳤다.

크아아아아아-!

찰나의 순간에 렉시를 붙잡지 못한 것을 한탄하듯, 혹은 분노하듯 괴물이 괴성을 길게 질렀다.

공중에 높게 뜬 렉시는 나타난 괴물 말고도 내성에서 빠져나오는 수많은 그림자들을 목격했다. 뭔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와 무거운 것이 바닥을 쿵쾅쿵쾅 박차며 달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완전히 같은 외견은 아니지만, 비슷한 기운과 크기의 괴물들이 무너진 내성의 잔해 속에서 끝없이 솟아오르며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좆됐네, 진짜.”

푸념한 렉시가 체공을 끝내고 아래로 떨어졌다. 처음 나타난 놈과 바닥을 뚫고 올라온 놈이 입을 쩍 벌리며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켁켁켁, 캭캭캭, 컥컥컥 하는 묘하게 웃음과도 같은 소리를 내는 괴물들에게 렉시는 자신의 곡도를 선물했다.

스칵!

곡도가 깔끔하게 괴물의 머리통 절반을 쪼개고 들어갔다. 정수리부터 오른쪽 눈이 있는 부위 전체가 통째로 날아간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성대 또한 비스듬하게 잘려나간 탓에 바람 새는 소리만이 나왔다.

하지만 괴물은 심장이 멈추지 않은 채 두 팔을 안쪽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턱을 가슴팍까지 쩍 벌리며 통째로 렉시를 삼키려 들었다.

검붉은 이빨과 잇몸에서 배어나온 핏물이 부글거리며 끓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턱이 렉시를 깨무려는 것보다 다시 곡도가 휘둘러지는 것이 빨랐다.

오른손의 곡도가 괴물의 주둥이를 자르고 지나간 다음 왼손의 곡도가 괴물의 심장을 정확히 찌르고 빠져나왔다.

심장이 파괴되어 죽은 괴물이 허물어질 때 그녀의 오른편에서 늑대도마뱀 머리의 괴물이 뛰어들었다. 커다랗게 말아쥔 주먹이 심상찮은 기세로 그녀를 향해 쏘아졌다.

한바퀴를 빙글 돈 렉시의 좌수 곡도가 그 주먹을 빗겨내었다. 칼날이 그대로 늑대도마뱀 머리 괴물의 팔을 훑자 팔의 근육이 포를 뜨는 것처럼 벗겨졌다. 거기에 렉시의 힘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팔을 회 떠버린 괴물이 분노와 고통의 괴성을 지르려 입을 한껏 벌릴 때 우수의 곡도가 입천장을 뚫고 뇌를 파괴했다.

늑대도마뱀 괴물이 피를 줄줄 쏟으며 풀썩 쓰러지고 렉시는 곡도를 획 털었다. 하지만 곧 그런 행동을 후회했다.

그녀의 쫑긋 선 귀에는 이미 열 마리에 가까운 괴물들이 심장 박동을 흘리며 주변으로 다가오는 것이 들렸다.

그때 다른 기척이 같이 잡혔다.

콰아앙!

빈집 벽이 통째로 무너지며 괴물 하나와 인간 한 명이 같이 나뒹굴었다. 허벅지에 핏자국이 가득한 인간은 실리오였다. 뒤이어 다른 남자 인간이 허물어진 벽에서 뛰쳐나오며 나뒹굴고 있던 괴물의 등판을 검으로 콱 찍었다.

실리오와 바이젠이었다.

“헉, 헉, 시발 무슨 괴물 딱지가 이렇게 많아? 어디서 나온 거야?”

“칼리아 말, 못 들었어? 후욱, 무슨 구멍이 뚫렸다잖아.”

“차원 간 어쩌고 하는 것 밖에는 못 들었는데.”

“그게 그 말이야, 병신아.”

서로를 욕하던 남매는 고개를 들다가 두 마리의 괴물 시체 위에 서 있는 렉시를 발견했다.

“어, 흑요정 씨 아냐? 여기 있었어요?”

“이미 두 마리 죽였네.”

렉시가 둘에게 다가갔다.

“영주성 남서쪽으로 간 거 아니었어? 칼리아가 그것들 막으라고 보냈던 걸로 아는데.”

“아, 용족 아가씨가 방해된다고 내쫒았수다. 자기랑 용 아가씨랑 내성을 감싸는 대결계를 펼칠 테니 그동안 외곽을 넘어가려는 괴물들만 잡아달라는군.”

아샤린과 아엘라시스는 전설상의 용족과 용이다. 당연히 웬만한 인간 마법사를 상회하는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결계? 어떻게?”

“그건 나도 모르지. 칼리아 누님이랑 뭐라뭐라 대화하고서는 곧바로 하늘로 날아갔으니까. 아엘라, 그 꼬맹이도 따라가고. 난 마법 하나도 모르니 뭐라 말할 수 있나.”

“일단은 주문에 의해 뚫린 구멍에서 뛰쳐나온 것들이라고 하니 마법으로 상대하는 게 더 수월할 거라고는 하네. 잘만 하면 아예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낼 수도 있고. 그런데 준비 시간이 필요한가봐.”

렉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토화될 도시의 피해와 죽어나갈 사람들의 인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칼리아가 일행들의 숫자를 나눈 것이기도 했고.

“러셀은? 나오는 거 봤어?”

“아니. 하지만 그 양반이 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

“나도. 흑요정 씨는 그 남자 싸우는 거 본 적 있어? 난 등골에 소름이 다 돋더라.”

바이젠은 러셀이 절대 죽을리 없다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실리오 또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렉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기서 죽을 사람은 아니지.”

꽈르르르르릉-!

그어어어어어!

천둥 소리와 거인의 비명이 합중주를 이루며 드높게 울려퍼졌다. 영주성을 온전히 뚫고 나온 거인의 거체가 기우뚱 쓰러지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15미터 이상의 크기인 육체가 넘어지는 건 그 자체만으로 초현실적이었다. 그런 거인을 반사적으로 쳐다보려던 바이젠과 실리오의 고개를 렉시가 붙들었다.

“보지 마. 미쳐버릴거야.”

“아, 맞다. 칼리아가 경고했었는데. 큰일 날 뻔 했네.”

“저게 대체 뭡니까? 보는 것만으로 속이 울렁거리는 건 처음인데 말이오.”

“나도 몰라. 다만 지하의 괴물과는 결이 다르다는 건 알겠어.”

거체가 쓰러지며 영주성이 있던 곳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고통에 겨운 것인지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는 거인이 사방으로 구르자 일대가 완전히 박살 나며 무너졌다.

쿠구구구구······.

지축이 흔들리면서 충격파와 진동이 퍼녀 나오고 거리 곳곳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흔들리다가 축대가 부서지거나 지붕이 내려앉았다.

도시 전체가 신음하며 뒤채는 듯했다. 그 폐허의 중심에서 자색 빛의 섬광이 거인의 육체를 타고 올랐다.

카아아아악!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던 렉시가 움찔 놀라며 앞을 보았다. 어느새 그들의 앞에 괴물들이 가득 서 있었다.

체고도, 덩치도, 생김새도 모두 다르지만 하나같이 제대로 된 피부 없이 근육을 올올이 드러낸 것은 같았다. 그리고 동물들 머리를 중구난방으로 섞은 듯한 기괴한 머리통과 칼날 뺨치는 발톱, 그리고 폭발적으로 부풀어오른 근육이 하얀 하늘 아래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

키이이이이익

놈들이 거침없이 달려와 손톱과 발톱, 또는 몸에 두르고 있는 날카로운 촉수나 뿔을 내찔렀다.

흑요정과 두 인간 남녀는 각자 마력을 불태우며 괴물들에 맞섰다.

***

빠르게 영주성을 빠져 나와 지시를 내린 칼리아는 등골에 타고 흐르는 섬뜩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마력을 일으켰다.

동시에 세 마리의 괴물들이 그녀를 덮쳤다. 부엉이, 올빼미를 합친 듯한 외모와 날개를 지닌 괴물이 날카로운 발톱을 아래로 하며 강하했고 사자와 표범을 섞은 듯한 괴물이 네 발로 달리며 이빨을 들이밀었으며 악어와 물소를 섞은 괴물이 긴 주둥이를 내찔렀다.

피의 참격이 그 세 마리를 훑고 지나갔다. 붉은 선으로 시작된 피로 이뤄진 창날이 하나의 원과 수십 개의 직선을 그리며 다양한 선형을 그렸다.

피로 이뤄진 길이 허공에 남아 붉은 잔영을 그릴 때 괴물의 움직임이 모두 멈췄다.

촤아아아악!

피가 뿌려졌다.

발목과 날개가 잘려나간 부엉이-올빼미 괴물이 균형을 잃고 공중에서 두어 바퀴를 돌다가 바닥에 떨어지고, 사자-표범 괴물의 머리가 세로로 쪼개졌다. 악어-물소 괴물은 입천장과 아랫턱이 동시에 꿰뚫리며 바닥에 고정되었다.

세 마리의 괴물을 한순간에 처치한 칼리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더 이상 나오면 힘들 텐데.”

영주성을 빠져 나온 직후 터져나온 마력파에서 차원 간의 균열이 생겼음을 인지한 칼리아는 일행들에게 각 구역을 맡으라고 지시했었다.

그러나 나오는 괴물들은 수가 많았고 일행의 숫자는 한정적이었다. 브라실트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는 힘들었다. 평범한 인간 병사는 앞에 서자마자 찢겨나갈 것이다. 기사는 좀 버틸 수 있겠지만 찢겨나간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때 칼리아의 뒤편에서 눈부신 섬광과 함께 커다란 그림자가 획 스쳐갔다.

“허.”

그것은 용이었다. 하얗고 길쭉한 몸체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30미터는 되는 듯했다. 크기 또한 컸지만 단순히 거대하다기보다는 길쭉한 몸체의 길이 때문에 둔해 보이지 않았다.

등에 달린 네 장의 날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펄럭이며 기류를 조정하고 바람을 통제했고 그로서 용의 거체는 유려한 몸짓으로 영주성의 위에 다다랐다.

그 용의 입이 쩍 벌려지더니, 새파란 섬광이 탓탓탓 하고 타올랐다. 곧 일어날 일을 예감한 칼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시가지를 덮쳤다. 고개를 돌렸음에도 칼리아는 용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섬광이 영주성을 향해 내리꽂혔음을 알았다.

영주성에서 강력한 폭발과 빛이 터져 나왔다. 영주성을 감싸고 있던, 그나마 남아 있던 성벽이 와르르 무녀졌다.

성벽을 터뜨린 불길의 장벽이 파도처럼 물결치며 중심부를 넘어 시가지를 향해 넘실거렸다. 하지만 불길은 의지를 가진 것처럼 일정한 반경 너머로 나아가지 않고 다시 안쪽으로 뭉쳐들었다.

하늘로 올라간 불길과 연기가 거대한 버섯 모양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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