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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96화 (197/225)

196화 설명

성의 크기는 거대했다. 맨 꼭대기까지 뻗쳐 올라가 있는 성탑과 아래의 수정체의 길이가 200미터는 되었다.

수정체를 감싸 안듯이 자란 커다란 뼈로 만들어진 여덟 개의 팔이 대칭을 이루며 똑같은 팔과 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안쪽으로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검은빛깔의 외벽이 정 팔각형의 형태를 그리며 우뚝 세워져 있었다.

그 안쪽으로 튀어나온 아성과 성탑이 날카로운 이빨처럼 삐죽삐죽 돋아나 있었다. 전체적인 인상은 투박하고 두꺼우며 낮다는 것이다.

얼핏 반지의 가운데에 장식되는 보석을 거꾸로 뒤집은 것 같은 모양새이기도 하다. 그 보석을 감싸 안는 여덟 개의 뼈로 이뤄진 팔과 그 아래의 부속품을 이루는 들쭉날쭉한 탑들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아성과 망루, 성탑을 연결하는 검은 다리에는 뼈만 남은 해골 병사들이 걸어 다녔다. 한 무리의 해골 병사들을 지휘하는 개체는 옆구리에 머리를 낀 둘라한들이었다.

가당치도 않지만 마구간에는 유령마들이 코에서 푸른 불꽃을 뿜어내며 푸르륵거렸고 한쪽에서는 뼈만 남은 와이번들이 기수의 보살핌을 받으며 뼈 날개를 누이고 있었다.

한쪽에는 오거나 트롤 같은 중대형의 몬스터들이, 또 한쪽에는 그보다 작은 우르크나 오크같은 중형 몬스터들이 몸에서 시취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의미 없는 고함과 함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수백 채가 넘는 언데드로 이뤄진 군단이 이동하는 성 안쪽에서 묵묵히 대기한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압권이기까지 했다.

우우우우웅······.

그 커다란 성이 들판 위를 날아가는 데도 들리는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야 들릴 정도로 낮은 기동음만이 바람을 가르며 울었을 뿐이다.

움직이는 성이 사람들의 눈을 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성을 중심으로 300미터 반지름의 투명한 결계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인식을 흐리게 하고 시야를 왜곡시키는 결계가 전방위적으로 펼쳐진 채 성을 가리고 있었고, 달의 마력과 밤의 장막을 두르면 세상의 이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장대한 크기의 결계 안쪽에는 레이스와 고스트가 흘리는 귀곡성이 메아리를 치고 있었다.

히이이이······

흐에에에······

산자에 대한 질투와 갈망으로 가득 차 있는 귀곡성은 그 자체만으로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반경 안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귀곡성에 의해 들짐승들은 픽픽 쓰러지고 날개 달린 짐승들은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생명을 잃은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곧바로 몸을 일으키는 것들도 있었다. 순식간에 썩어버리는 육체를 벗어던지고 뼈와 덜렁거리는 살점만 매단 채 눈구멍에서 초록색의 빛을 흘리며 언데드가 된다.

그 생과 사의 순환을 한 존재가 발코니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푸른 두건과 마찬가지로 푸른 빛을 흘리는 전신 갑옷을 입은 해골이었다.

그건 리치였다. 아주 오랫동안 마법의 진리를 탐구하고 높은 경지를 이룩한 마법사가 영혼과 육신을 바쳐서 죽음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하면 그런 괴물이 된다.

눈구멍에서 초록색의 안광을 빛내던 해골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커다란 거울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화려한 보석과 금속으로 세공된 거울이었다. 리치가 말했다.

“이렇게 벌써 이 성의 존재를 황녀에게 알려도 되는 건가? 그 검은 로브와는 합의되어 있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리치의 음성은 낮고 스산했다. 마치 바닥을 기어다니는 안개 같이 음습하면서도 축축한 목소리였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죽음의 왕이시여. 황자가 크게 패퇴했거든요. 거기에 민심이 황녀 쪽으로 크게 옮겨갔습니다.

해골의 말에 대답하는 것은 거울이었다. 하지만 거울에는 응당 비춰지고 있어야 할 풍경 대신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거칠게 자라난 턱수염과 오랫동안 깎지 못해 덥수룩해진 머리카락. 거기에 움푹 팬 볼과 툭 튀어나온 광대는 남자가 얼마나 험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그의 이름은 렘파드였다.

“예상했었어야지.”

-알다시피 깊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시는 남자라서요. 부하 된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프지요.

“널 부하라고 할 수 있나? 박쥐같이 여기 왔다가 저쪽으로 옮겨 다니는 놈이?”

-삶에 충실한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퀄레드는 코웃음을 치고는 입을 다물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렘파드는 그런 퀄레드를 보다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옆을 보려는 듯한 시늉을 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퀄레드 님, 거울의 위치를 좀 조정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는 퀄레드 님의 반들반들한 해골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클클,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네놈은 여벌 목숨이라도 있는 것처럼 구는구나.”

-불쾌하셨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됐다. 마음에도 없는 사과 따위 받아서 무엇 하라고. 돌려주지.”

퀄레드가 뼈밖에 남지 않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한 바퀴 돌리자 거울이 돌아가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군요. 이유가 있습니까?

“조금 있으면 해가 뜬다.”

-아.

퀄레드의 간단한 대답에 렘파드는 입을 다물었다. 퀄레드 움바르토가 지배하는 권역이자 영역이며 움직이는 이동 요새 그 자체인 성, 암라스는 언데드의 성이다. 그리고 언데드는 태양 빛에 취약하다.

성이 직접 움직여 적을 타격할 수 있다는 막강한 이점이 빛을 바래는 것도 태양 때문이다. 그렇기에

“태양 빛을 정면으로 받는 중에는 방어막 출력을 최대로 높여야 하지. 지금 속도를 높였다가는 방어막에 할당되는 마력이 부족해진다.”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도착하실 것 같습니까?

렘파드의 물음에 퀄레드는 다시 마력을 일으켰다. 그의 바로 앞 허공이 물결치듯이 일렁이더니 먼 거리를 순식간에 앞으로 당겨오기 시작했다.

들판과 작은 협곡, 산, 강, 숲과 늪지대가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갔다. 곧 드넓은 평원과 구릉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다음은 외벽이 둘러쳐져 있는 성과 그 안의 도시가 보였다.

“이틀 후에는 도착할 것 같군.”

퀄레드의 말에 렘파드는 그 속도를 짐작하고는 낮은 탄성을 흘렸다.

-대단하군요. 다섯 마리의 말을 갈아타면서 쉬지 않고 달려도 족히 열흘은 걸리는 거리인데 말입니다.

“대신 낮에는 이동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지. 성녀는 어디로 갔나?”

-그녀는 퀄레드 님을 방해하지 못할 겁니다.

“난 그 여자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지금 네 꼴을 보면 확보하는데 실패한 것 같은데.”

거울 속의 렘파드는 한숨 쉬고 싶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대 교회는 성녀를 이번 분쟁에 내놓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황권과 신권이 부딪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겠지요. 그들이 가진 강력한 패 중 하나가 아직 돌아오지 못했으니까요.

“그렇지.”

퀄레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죽음의 기사 하나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퀄레드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죽음의 성 한복판에 떨어진 성기사라니.

“결론은?”

-성녀가 몸을 빼냈습니다. 어떻게 감시를 물리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녀는 훌륭한 성기사도 겸할 수 있으니 아마 때려눕히고 나왔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어떻게 성녀가 날 방해할 수 없다는 거지?”

-대 교회의 추격대가 제 정보망에 잡혔습니다. 아무리 성녀라도 교회의 전력을 상대로는 힘에 부칠 겁니다.

그때 거울 속에 비치는 렘파드의 모습이 깜박거렸다. 퀄레드의 마력이 다할 리는 없으니 거울을 매개로 자신의 모습을 보내고 있는 렘파드가 지닌 마도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런, 끊기겠군요. 다시 마력을 충전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대략 세 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군요.

“그 수정구가 효율이 안 좋은 건가? 아니면 네 마력이 약한 건가?”

-둘 다 조금 해당됩니다. 그럼 이따가 뵙죠.

거울 속의 렘파드가 훅 사라졌다. 본래의 기능을 되찾은 거울의 표면에 푸른 새벽녘의 하늘과 태양의 빛이 비춰졌다.

태양을 똑바로 마주 보던 리치 퀄레드 움베르토는 마력을 끌어올려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암라스의 거성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죽은 자들의 성은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더니 자취를 감췄다.

***

“와, 전보다 더 커진 거 아냐?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그대로일 거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렉시.”

렉시는 러셀이 도시 칼리스덴에서 만났던 흑요정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인기척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존재감을 감출 수 있고 두 자루의 곡도를 광전사처럼 휘두르는 전사이기도 했다.

러셀이 트롤과의 싸움에서 녹아버렸던 장검을 대신해 잠깐 동안 썼던 클레이모어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렉시의 여동생과 만나기도 했었다.

“여동생은 잘 지내나?”

“잘 지내고 있겠지. 나야 며칠 있다가 바로 떠나버렸는데 뭘. 기술도 있으니 먹고 사는 데 문제는 없을 거야. 뭣하면 나중에 또 보러 가면 되는 거고. 그보다 넌 엄청 유명해졌던데? 어디 마을도 들리고, 무슨 영지에서는 흡혈귀들이랑도 싸우고 그랬다면서?”

“지금 그런 얘기들을 하기에는 장소가 좀 그렇군.”

그의 말에 렉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이런 난장판에서는 좀 그렇지. 잡아놓은 여관 있어?”

봄날 망아지 여관은 갑자기 닥쳐 들어온 열댓 명의 손님에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여관 주인은 능숙하게 방을 안내했고 러셀은 어깨에 매고 있던 기절한 기사를 그 안에 던져 넣었다.

식당으로 돌아오자 렉시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실리오 바이젠 남매와 칼리아가 있었고, 아엘라시스는 아샤린과 함께 약간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샤린은 아엘라시스를 만났을 때부터 뭔가 감격과 흥분에 차 있었는데 지금은 진정한 듯 보였다. 하지만 뒤에서 살랑거리는 꼬리가 마치 강아지 꼬리처럼 흔들리고 있어 속으로는 여전히 흥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유일하게 동 떨어져 있는 건 로셀소였다. 불안한 얼굴의 그는 점원이 가져다주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온 러셀은 일행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자 렉시가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지냈어? 그 소문들은 다 진짜야?”

“아마도. 넌 어떻게 지냈나? 저 용족이랑은 어떻게 알았고.”

“아샤린? 원래는 나랑 같이 사막에서 올라온 사람이야. 나는 동생을 찾느라 갈라졌었지. 아샤린도 찾는 게 있어서 대륙을 뒤지고 다니던 중이었고.”

“찾는 거라면?”

그때 아샤린이 먼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용이지 않은가? 우리의 창조자, 용혈의 주인, 세상의 감시자! 내 부모님으로부터 그 전설을 들었을 때부터 난 그들을 찾고 싶었지. 왜 사라졌는지, 어디로 간 것인지······. 그런데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아샤린의 관심에 아엘라시스는 질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러자 아샤린은 아차한 표정을 짓더니 몸가짐을 바로 했다.

“큼, 실례했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하지만 정말 놀랍고 감격스러워서······ 혹시 다른 가족은 더 없으십니까?”

“내 가족?”

아샤린의 물음에 아엘라시스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의자에 앉아있는 러셀이 그녀의 시선을 받고는 입을 열었다.

“아엘라는 내가 알기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용이다. 내가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직접 부탁받았지.”

“그런가······.”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렉시가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잠깐, 잠깐. 나 지금 대화가 잘 안 따라가는데. 이 꼬마애가 용이라고?”

그녀의 물음에 양옆에 있던 실리오와 바이젠도 당혹한 얼굴로 러셀을 바라보았다.

“나 저 꼬마애 많이 놀렸는데.”

“난 저번에 머리카락이 신기하다고 막 갖고 놀았어······.”

러셀은 고개를 절절 흔들고는 말했다.

“두 번 설명해주지는 않을 테니 잘 들어라.”

설명은 10분간 이어졌고, 렉시와 남매는 경외심이 어린 시선으로 아엘라시스를 바라보았다.

“와, 생긴 건 영락없이 엄청 예쁜 여자앤데 말이지.”

“하긴 그런 마법을 펑펑 써댔을 때부터 뭔가 심상찮다고 생각하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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