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교차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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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일전의 전투로 인해 죽은 병사들의 숫자가 고작 육백 명 일리는 없다. 유리아 황녀의 군대와 아드리칸 황자 군대의 첫 격돌은 이천 명 이상의 죽음을 낳았다.
하지만 그 비례는 같지 않았다. 황녀의 병사가 한 명이 죽을 때 황자의 병사는 3명이 죽었다. 병사의 질이나 훈련의 강도 등, 다양한 원인과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교환비를 이룩한 것은 황녀 자신의 출중한 기량과 기습 덕분이다.
황자의 군대는 황녀의 것보다 3배에서 4배 가까이 차이 나는 병력을 지녔다. 그렇기에 수성전을 할 줄 알았다. 해자와 목책, 외성이라는 이점을 버리고 뛰쳐나올 줄은 몰랐다.
클레이도스 백작이 마녀의 조언을 듣고 재빠르게 퇴각 나팔을 불지 않았다면 더 많은 과부와 고아들이 생산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의 부상자들만 챙겨 진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맥없이 물러나기만 한 것이 아니었고, 유리아 황녀는 그들이 남긴 시체를 평원에 남긴 채 성으로 돌아갔다.
두 번의 공세가 더 이어졌고, 유리아 황녀는 수성에 성공했다. 도리어 더 막대한 피해를 아드리칸 황자의 군대에 강요했다. 그 증거로 양측의 군대가 물러난 자리에는 수습되지 못한 시체들이 남았다.
하늘에서 시체 처리자들이 커다란 날개와 까만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앉았다. 독수리와 까마귀는 서로를 친절한 이웃처럼 대했다. 참견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으며 서로의 일에만 열중하는 것으로.
살점과 눈알 조각이 목구멍 속으로 꿀떡꿀떡 넘어간다. 흰자위 없이 새카만 동공들에 비치는 정경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만찬들이다.
목에 붕대를 감은 유리아 황녀는 커다란 창문 앞에 서서 평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있는 곳은 첨탑이며 그녀를 위해 마련된 개인 공간이다.
유리아 황녀의 뒤편에는 책상이 놓여져 있었고, 그 위에는 서류 더미와 종이가 쌓여 있었다. 계절의 건조한 날씨와 바람은 대화재를 꿈꾸는 불씨에게 안성맞춤일 것이나 그녀의 방에는 불이 없다. 대신 그녀의 마력으로 생성된 빛의 구체가 허공에 떠 있었다.
평원을 보던 유리아 황녀는 시선을 내려 첨탑 아래를 향했다.
외성과 내성의 안쪽에 자리 잡은 성주의 거처는 보다 더 높은 지대에 세워진다. 자연스러운 시선 이동.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인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어야 했고, 그 수고스러움은 자연히 뻐근한 목과 신분의 차이를 되새기게 된다.
언제나 성이 높은 곳에 있음을 알기에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직업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사람들은 잘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파종해야 하는 새싹을, 추수해야 하는 곡식을 본다.
11월의 말, 이제 12월도 며칠 안 남은 시점에서 농지의 모든 곡식은 예전에 추수되었고 군량이 되었다. 그 군량을 담은 수레가 바삐 움직이고, 또 어떤 수레에는 하얀 천에 감긴 시체들이 담긴 채 굴러갔다.
전날까지 유리아 황녀의 귓전에 파고들던 부상자의 신음은 거의 사그라들었다. 완전히 치료받으면 구태여 신음을 지를 이유가 없고, 죽으면 신음을 지를 수 없다. 그녀의 휘하에는 종군 사제들이 있었다.
대 교회는 황자와 황녀의 후계자 쟁탈전에 중립의 입장표명 밖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전쟁에 뛰어든 사제들을 불러들이지도 않았다. 그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묵언의 표현이다.
유리아 황녀는 의자에 앉았다.
끼이익.
클레이도스 백작이 지휘관으로 이끄는 군대가 유리아 황녀를 붙잡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는 사이, 그녀는 제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소한 내전들의 보고를 전달받았다.
좋은 소식도 있고, 나쁜 소식도 있다. 어느 영지는 패배했고 어느 도시는 승리해 존속했다. 원군이 오기까지는 아직 일주일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유리아 황녀는 당장 내일의 공세에서도 버틸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이 정면으로 향했다. 아주 미세하게 열린 문의 틈이 보인다.
“문이 바람에 저절로 열린 것일까, 아니면 내 감각으로도 잡지 못한 침입자가 들어온 것일까.”
습격은 말의 끝에서 나타났다. 반으로 갈라진 책상과 허공으로 무수히 날아오르는 흰 종이들을 보며 유리아 황녀는 아쉬움을 느꼈다.
쉬아아아악!
하얀 연기에서 갑작스레 사람의 형상이 튀어나오며 하얀 칼을 유리아 황녀의 목젖에 들이밀었다. 날카로운 검극은 그녀의 목에 감긴 붕대를 스치며 빗나갔다.
유리아 황녀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굳게 말아쥔 주먹이 안개에서 형상화를 이룬 침입자의 가슴팍에 명중하고 주먹에 담긴 마력이 안개를 관통했다.
“쿨럭!”
침입자의 입에서 검은 피가 쏟아지더니 그대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쏘아졌다. 자신이 입은 상처마저도 곧바로 공격에 이용하는 차가움과 집요함.
날카로운 가시의 형태가 되어 유리아 황녀의 훤히 드러난 얼굴에 날아가던 검은 핏방울은 두 개의 목적을 이룬 채 산산이 부서졌다.
전신에서 마력을 내뿜어 공격을 무위로 되돌린 유리아 황녀가 자세를 추슬렀다. 그녀의 앞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침입자가 있었다.
나풀거리는 하얀 도복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는 곧 허리를 펴 똑바로 섰다.
침묵의 대치 후, 유리아 황녀가 입을 열었다.
“어떤가?”
하얀 옷의 침입자는 물끄러미 유리아 황녀를 바라보더니 곧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사카라는 유리아 황녀를 지지할 것을 맹세합니다.”
“당주의 말이 아니면 의미가 없을 터인데.”
“제가 사카라입니다.”
오가는 문답으로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 유리아 황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당주라고?”
“그렇습니다.”
유리아 황녀는 하얀 방패라는 정식 명칭보다 하얀 죽음이라는 말이 더 많이 붙는 암살자 집단에 대해 생각했다. 황제의 입김으로 움직이는 숨겨진 무력 단체 중 하나이며 황제의 명이 아니면 누구의 명령이나 부탁도 듣지 않는 초법적인 집단.
부모를 잃은 고아들 중 자질이 있는 아이들을 모아 마법과 약물을 통해 자라난 그들은 개성의 말살과 지극히 수동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걸으라면 걷고, 달리라면 달리며 기라면 기는 그들은 누군가를 죽이라는 명 또한 간단하게 수행한다. 황제의 보이지 않는 손이자 칼날인 그들에게 방패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여차하면 고기 방패로도 쓰이겠다는 그들의 충성심을 나타낸다.
그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의 존재가 이렇게 젊은 남자라는 건 의외였다. 그러나 그녀는 나이의 많음이 노련함의 절대적인 증거라고 신봉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리아 황녀는 빠르게 궁금증을 내치고 필요한 것을 물었다.
“네가 직접 찾아왔다는 건 아버지를 음독시킨 범인을 알아냈다는 것이겠지.”
사카라는 바로 대답했다.
“아드리칸 황자입니다.”
이미 짐작하고 추론하고 확신한 유리아 황녀였지만, 그럼에도 황제의 직속 부대의 장이 확언을 내리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오라버니. 정말 먼곳으로 가셨군요.’
유리아 황녀가 눈을 감았다가 뜬 건 찰나였다. 사카라의 당주 사카라는 그녀의 깜박임 속에서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찾지 못했고, 그렇기에 감탄했다.
유리아 황녀가 말했다.
“그럼 이제 내 명을 따르는 건가?”
“아닙니다. 황녀께서는 아직 황녀이니까요.”
“그럼 왜 이 먼 변방까지 찾아와 날 죽이려 들었지?”
“제 미래의 주인을 뵙기 위해서이지요.”
그것으로 유리아 황녀는 사카라가 간접적인 도움이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달빛과 함께 움직이는 그림자다. 그림자는 어디든 스며들고,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사카라는 움직이지 않지만, 사카라는 움직일 수 있다. 유리아 황녀는 이해했다.
“받아라.”
그녀가 바닥에서 한 종이를 집어 건네자 사카라는 그것을 받아들어 읽었다. 하얀 종이 위에 쓰인 검은 글씨들을 읽던 사카라가 놀란 눈으로 유리아 황녀를 쳐다보았다.
“이미 제가 올 것을 알고 계셨군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황궁은 내 집이다.”
사카라는 히죽 웃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황녀는 황궁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얀 방패의 수장이 떠난 것을 보고하는 귀와 눈이 어떤 자일지 생각하며 사카라는 허리를 숙였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돌아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허리를 숙인 그대로 사카라의 몸이 발끝부터 하얀 안개가 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해체되는 그는 곧 터럭 하나 남기지 않고 안개가 되어 문틈으로 스며들더니 사라졌다.
난장판이 된 방에서 유리아 황녀는 유일하게 온전한 의자에 털썩 앉았다. 무리하게 끌어올린 마력에 의해 몸 곳곳에 감긴 붕대가 피에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통증 정도는 사소한 것이다.
하얀 방패 전원이 돕지 않는다 해도 그 수장의 도움은 이미 전원이 돕는 것 이상의 결과를 얻어낼 것이다. 미리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녀가 몇 번 움직이자 나풀거리며 떨어졌던 무수한 서류와 편지지, 종이가 한곳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그녀는 반으로 갈라진 책상을 치운 다음 구석에 놓여 있던 작은 탁자를 가져왔다.
기묘해진 방의 재배치 속에서 유리아 황녀는 종이를 읽기 시작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
“아그그그그그!”
두꺼운 외피를 너무 과신하고 있던 탓일까. 두드러진 강점은 그만큼의 약점을 만들어낸다. 빛이 강해질수록 그림자 또한 짙어지는 것처럼. 그 상식을 잊은 대가는 컸다.
전격이 몸속을 내달렸다. 벼락은 거부할 수 없는 명령과 의지에 의해 소환되었고, 소환된 즉시 본분을 다하기 위해 자신을 확장시켰다.
눈구멍과 코, 귀, 입에서 시퍼런 벼락을 뿜어내며 괴인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그그아아아!”
오그라드는 근육 탓에 제대로 된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 몸속의 모든 장기가 전격에 의해 지져지는 고통과 충격에 괴인이 사방으로 팔을 휘둘렀다. 그 팔에 서린 마력 또한 무시무시한 기세로 뛰쳐나오며 근접해 있는 러셀을 강타했다.
퍼어억!
얼굴과 가슴에 똑같이 타격을 입은 러셀이 뒤쪽으로 날아가다가 멈춰 섰다. 늦지 않게 충격을 흘리려 했지만 워낙 가까웠다.
얼굴은 오른팔을 들어 막았지만, 다른 쪽은 그렇지 못했다. 강력했던 방어력이 무색하게 너덜너덜해진 코트와 살점이 뜯겨나간 가슴팍을 보던 러셀이 고개를 들었다.
온몸에서 붕대와 구분되지 않는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며 괴인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몸을 지탱했다.
검게 탄 살가죽 가면이 조각조각 떨어지며 작은 소리를 흘렸다. 러셀은 그 가면이 감추고 있던 괴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붕대에 감기지 않은 그의 얼굴은 어린아이가 제멋대로 찰흙을 가지고 놀아다가 내팽개친 후 사람의 이목구비를 갖다 붙인 것 같았다. 뭉개진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괴인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위로 가져갔다.
얼굴에 씌워져 있던 가면이 떨어져 나간 것을 촉각으로 확인한 남자가 파란 입술을 파들거리며 열었다.
“대단한 전격이군······ 킥킥킥······ 정말 예상할 수 없는 일만 일어난다니까······.”
아직 몸 곳곳에서 전격의 잔재가 남아 파란 불꽃을 튕기면서도 남자는 말을 끝까지 이었다.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발음이 시원찮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분노는 확연했다.
러셀은 기다리지 않았다. 시위에 얹어진 화살처럼 쏘아진 러셀의 도끼가 공기를 가르며 던져졌다.
부오아아앙!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가는 도끼는 그 형체를 잃은 체 빛의 원반이 되었다. 썩은 살점 속 눈이 분노와 증오로 번뜩이며 그 원반을 노려보았다. 실로 기워 진 입꼬리가 강제로 뜯어지며 뱀처럼 커다래진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그러자 검은 붕대의 표면에서 희미한 빛을 흘리던 마법 문자들이 남자의 입을 향해 빠른 속도로 모여들더니 회전하는 마법진을 형성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셔 가슴을 부풀린 남자가 그대로 소리를 토해냈다.
“-!”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소리가 울렸다. 남자의 입에서 뛰쳐나온 마력과 의지가 바로 앞에 떠 있는 마법진에 호응하며 광선으로 화했다.
옆으로 누운 채 넓은 부분을 러셀 쪽으로 향한 원뿔과 같은 생김새의 투명한 파문이 그려지고 광선은 러셀이 날린 마지막 서리를
날아가던 빛의 원반이 괴인의 가슴팍에 남은 러셀의 손바닥 자국에 그나마 도달해서 생채기를 입힐 수 있던 것은 러셀의 괴력과 함께 남자가 내지른 광선의 위력을 보여준다.
자신의 명치에 박힌 도끼를 뽑아 내팽개친 괴인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주먹이 있었다. 주먹을 망치처럼 휘두른 러셀에게 남자는 못이 된 듯한 착각을 느껴야 했다. 러셀의 주먹은 전쟁 망치에 준하는 위력을 가졌지만 남자는 못이 아니었다.
굉음과 함께 건물이 뒤흔들렸다. 외부로부터의 침입과 내부로부터의 이탈을 막는 건물의 보호막이 거세게 떨리며 진동했고, 종국에는 와장창 깨져나갔다.
러셀은 남자를 중심으로 완만한 경사를 지니게 된 바닥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붕대를 매질 삼아 괴인의 몸속에서 벼락을 터트리게 한 것처럼 그는 남자의 몸을 매실 삼아 건물을 직접 타격했다.
러셀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답답한 시야와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다. 시선을 돌리자 바깥의 풍경이 그대로 보였다. 저물어가는 햇살이 황혼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 으으윽······.”
시선은 다시 신음을 흘리는 남자에게 돌아갔다. 건물의 역장을 깨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그의 몸은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비틀린 팔과 다리를 아무렇게 사방으로 내팽개친 자세로 누워있는 남자가 고개를 들어 러셀을 바라보았다.
“넌······ 죽었다.”
그 말을 들은 러셀은 손을 눈앞으로 가져갔다. 유심히 그것을 바라보던 러셀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한가?”
“큭, 큭. 그래, 얼마든지 웃어둬라. 그 웃음이 비통과 절망으로 바뀔 날이, 머지않아 찾아올-”
파삭!
남자의 말은 러셀의 발길질로 끝났다. 검은 붕대 속의 육체는 완전히 다 탄 숯처럼 재를 휘날리며 부서졌다.
그리고 검은 붕대 또한 아무런 마력이나 기운을 흘리지 않는 평범한 붕대가 되어 가라앉았다.
그 붕대 속의 잔해를 발끝으로 헤집은 러셀은 곧 현상을 알아챘다.
“단말 같은 건가.”
그의 눈은 단번에 허물어진 남자의 시체에서 흩어지는 전령의 흔적을 알아보았다. 마력도 아니고 주력도 아닌, 영력靈力이라 할 수 있는 힘이다. 아직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했다.
완전히 괴인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을 안 러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3층 건물은 간신히 그 뼈대만 남긴 채 서 있었다. 무너진 천장과 날아간 벽들 사이에는 돌로 지어진 골조만이 앙상하게 선 채 무거운 몸을 지탱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시체들이다. 아직 뜨거운 피를 울컥울컥 흘리고 있는, 하지만 그것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몸뚱이들이 아무렇게나 눕거나 엎드려 있었다.
죽은 용병들에서 시선을 돌린 러셀은 2층의 기절한 바이젠을 어깨에 걸친 다음 건물을 빠져나왔다.
완전히 저물기 시작한 황혼의 햇빛이 골목의 거리를 적금색으로 물들였다. 그 길 위를 걸으며 러셀은 긴 그림자를 남겼다. 함정을 분쇄했으니 이제 함정을 설치한 놈을 족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