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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75화 (176/225)

175화 선물 (5)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 가득 찬 먹구름은 별빛과 달빛 모두를 가린 채 칠흑 같은 어둠만을 내리게 했다.

빛이 없는 거리에는 시커먼 빗금만이 아주 작은 불빛만을 반사하며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거리에 빛나는 불은 하나도 없다. 집마다 새어나오는 희미한 촛불과 등불만이 전부였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번개가 아닌 진짜 번개가 계곡을 강타하면서 눈부신 섬광을 그 아래 마을과 대치하고 있는 자들을 비췄다.

꽈릉-

섬광에 비춰 진 칼리아와 아엘라시스는 몸을 보호막으로 감싸 빗물에 젖지 않았고, 러셀과 바이젠은 푹 젖어 있었다.

섬광과 천둥이 신호라도 된 듯이 괴물처럼 커다래진 몸뚱이가 된 기사들이 진탕이 된 흙탕물을 뒤로 퍼트리며 달려왔다.

외모는 기괴하게 변했을지언정 달려오는 모습과 뽑아든 장검을 흔들림없이 들고 있는 것은 전투 기술을 잊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불!”

바이젠이 외쳤다. 마력을 눈에 집중해서 희미한 광량을 증폭시킬 수는 있지만 전투 도중에도 그런 짓을 계속 유지하는데는 힘들었다. 눈은 아주 예민한 신체기관인 것이다.

그뜻을 알아들은 아엘라시스가 하얀 빛의 구체를 위로 쏘아올렸다. 번쩍, 하고 터진 빛의 구체는 온 사방에 미세한 빛의 가루를 흩뿌리며 사방을 비췄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그 빛에 반사되며 하얀 빗금이 되었고, 그 빗금을 박살내며 비약을 마시고 몸이 변형 된 세 기사가 칼을 휘둘렀다.

바이젠과 칼리아, 러셀이 달려가 각자 하나씩을 마주했다.

까가가가강!

두 자루의 검을 쉴새없이 휘두르는 바이젠이 아트리오를 상대하고, 칼리아가 지면에서 길쭉하게 뽑아올린 붉은 핏물이 그대로 창이 되면서 테논의 칼날을 빗겨냈다. 켈던의 두툼하고 기다란 강철검은 러셀의 왼쪽 어깨를 대각선으로 베어왔다.

러셀의 왼손에 들려있던 마지막 서리가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며 도끼날 아래로 강철검의 칼날 부분을 얽었다. 도끼날에 닿은 강철검이 순식간에 성에가 끼더니 얼음으로 뒤덮였다.

깡!

손목을 비튼 것만으로 얼어붙은 강철검이 도끼날에 얽힌 그대로 부러져 절반이 되었다. 반토막이 된 칼을 그대로 버린 켈던은 왼쪽 허벅지에 꽂혀있던 소검을 역수로 뽑아들며 러셀의 가슴을 노렸다,

러셀의 오른손에 있단 나힐니르가 그 손목과 팔을 한꺼번에 베어버렸다. 순간이지만 그의 가슴팍이 훤하게 열렸다. 켈던은 자신의 왼팔이 잘려 나갔음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며 러셀의 목을 노렸다.

인간의 턱 관절을 뛰어넘는 크기로 벌려진 켈던의 얼굴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뱀처럼 변해 있었다. 뭉툭한 이빨이 아니라 위로 뾰족하게 돋아난 이빨의 끝에서 노란 맹독이 반짝였다.

러셀은 쥐고 있던 두 자루의 무기를 모두 놓아버린 다음 오른팔을 끌어당겼다. 팔을 안쪽으로 굽히자 팔꿈치가 세워지고, 그의 허리와 어깨가 비틀린다. 빗물을 툭툭 터트리며 나아간 팔꿈치가 켈던의 얼굴을 후려쳤다.

우드득, 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켈던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나 목이 완전히 돌아가기 전에 반응한 켈던의 몸이 같이 돌아가며 왼무릎이 러셀의 오른쪽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쿠당탕!

동시에 나가떨어진 러셀과 켈던. 무리없이 두 다리를 아래로 뻗고 바닥에 손을 짚어 착지한 러셀과는 다르게 켈던은 서너바퀴를 구르다가 겨우 일어섰다.

완전히 박살이 난 것인지 턱이 빠진 채 기다래진 혀를 축 늘어뜨린 켈던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목을 앞으로 돌렸다.

와득, 까드득!

순식간에 목뼈와 빠진 턱 관절을 끼워맞추는 모습. 인간의 재생력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모습이다. 아까 아트리오가 약을 마시고 마력과 생명력이 폭증한 것처럼 괴물 같은 재생력도 부여한 것이 틀림없었다.

한편 한쪽에서는 그야말로 칼과 창날의 불꽃 튀기는 접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붉은 피의 갑주와 망토를 두른 채 긴 검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칼리아와 송곳 같은 찌르기로 사방을 꿰뚫는 테논의 검극.

칼리아와 테논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몸을 비틀자 허공에서 수십 개의 불꽃이 튀기며 부딪쳤다.

타다다다다다당!

두 개의 날붙이가 휘둘러질 때마다 다채로운 궤적이 그려지며 빗물이 밀려나며 허공에 투명한 파장을 그린다. 그 자리에 불꽃의 잔상을 새겼다.

단 한 번의 검격이 세 번으로 쪼개지면서 각각 칼리아의 미간과 목젖, 명치를 노리며 쏘아졌다. 찌르기에 특화된 검술이 빗방울을 반으로 쪼개고, 칼리아의 머리와 목,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아트리오를 상대하던 도중 그 모습을 확인한 바이젠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어, 이봐!”

그때 눈과 코가 통째로 사라져 그 아래 턱만 남은 상태에서 칼리아의 붉은 입술이 열리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동시에 붉은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뻥 뚫렸던 구멍이 순식간에 메워지고 눈과 코가 복원되었다.

그 인간 같지 않은 모습에 놀란 것인지 테논이 멈칫했고, 칼리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허리 아래로 내려졌던 창대가 강력한 힘을 받아 휘고, 그 끝에 달린 기다란 창날이 시계 방향으로 회전했다.

촤아아악!

1초를 한없이 길게 늘릴 수 있는 초인들의 대결에서는 잠깐의 빈틈마저도 치명적이다.

세 군데의 급소가 꿰뚫려 죽음이 확실한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회복한 칼리아의 모습은 분명 이지를 잃은 켈던마저 멈칫하게 만들었고, 그 틈으로 칼리아는 창날을 밀어 넣었다. 물결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그 빠르기를 짐작할 수 없을만큼 흐릿한 잔상이 켈던의 몸 중단을 스쳤다.

위아래로 나뉜 켈던의 몸이 철퍽 떨어지며 빗물을 튀겼다. 급격한 움직임으로 달궈졌던 몸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하얀 연기를 피어 올렸다.

“안 되지.”

칼리아가 마무리를 위해 빈손을 뻗어 켈던의 피를 폭파시키려는 찰나, 릭투스가 끼어들었다.

우우우웅······!

2미터가 넘는 거구를 지닌 드래고닉 리저드의 두 손에서 막대한 마력이 파공음을 흘리며 울었다. 러셀과 칼리아, 바이젠이 각각 약물을 마신 기사와 싸운 지 고작 10초가 지났을 뿐이다.

그 사이에 릭투스는 막대한 마력을 두 손에 집약시킨 채 흐름을 읽고 있었다.

“터지고, 흩날려라-”

박수를 치듯 릭투스의 커다란 손이 맞부딪치는 것과 표정을 차갑게 굳힌 칼리아가 두 손을 앞을 내민 거의 동시였다.

번쩍이며 일어난 섬광과 충격파가 모든 것을 갈아엎으며 퍼져나갔다. 반구형으로 퍼진 섬광 속에서 이질적인 세 개의 마력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보호막을 만든 칼리아와 두 자루의 검을 폭풍같이 휘둘러 섬광을 빗겨낸 바이젠, 한 손으로 덮쳐오던 마력파를 갈라낸 러셀이었다.

“이 새끼가, 다 죽자는- 으악!”

머리에 혈관이 그려질 정도로 분노한 바이젠이 릭투스를 달려가려는 찰나, 섬광 속에서도 멀쩡한 아트리오가 양손검을 휘두르며 그를 덮쳤다. 다급히 두 자루의 장검을 교차한 바이젠의 위로 검이 떨어진다.

쿵-!

바이젠이 딛고 있는 지반이 흔들리며 반 뼘 넘게 파고 들어갔다.

“크, 윽······! 무슨 힘이, 시발······!”

섬광 속에 다른 마법이 부여되어 있던 것인지 이지를 잃은 아트리오의 몸은 아까보다 더 강한 괴력을 내고 있었다.

바이젠이 힘겹게 검을 흘려내고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을 아트리오가 놓치지 않고 따라붙는다.

“쿨럭······.”

붉은 보호막 속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칼리아가 피를 토했다. 늦지 않게 보호막을 펼치긴 했지만 미처 흘려내지 못한 충격이 몸속에서 진탕되며 그녀의 몸을 이루고 있는 근본 구조를 타격한 것이다.

바로 앞에서 턱을 쓰다듬으며 릭투스가 노란 동공을 빛냈다.

“호, 이제 보니 인간이 아니었군. 고귀한 밤의 귀족이라. 진조 흡혈귀들은 오래 전에 모두 사멸된 게 아니었나. 이러면 혈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설명이 되지······.”

그그그긍-

릭투스의 거구를 감싸며 무지막지한 양의 마력이 휘몰아쳤다. 직후 그와 칼리아가 서 있던 자리가 폭탄이 터진 것처럼 터져 나가며 길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대화를 끊다니, 예의가 없군.”

“도마뱀 대가리한테 차릴 예의는 없는데.”

먼지와 연기를 빗방울이 빠르게 걷어내자 모습을 드러낸 러셀과 릭투스. 러셀의 주먹을 한 손으로 막아낸 릭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이리 빨리······.”

도마뱀의 눈이 러셀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나힐니르에 상반신이 꿰뚫리고 머리에 마지막 서리가 꽂힌 채 얼어붙어 있는 괴물화되어 있는 테논이 보인다.

“힘을 숨기고 있었나? 이렇게 빨리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지랄.”

콰아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일어나며 사방을 횝쓸었다. 그속에서 섬광을 머금은 주먹이 번뜩이며 러셀을 몰아붙였다.

러셀 또한 손을 흔들며 그 주먹 세례를 빗겨내고 흘려냈다.

마법을 수준급으로 다루는 것 이상으로 릭투스는 주먹질에 조예가 깊었다.

화르르륵!

러셀조차 무시할 수 없는 강렬한 마력이 릭투스의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가며 불길을 피워올렸다. 하늘에서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빗줄기가 순식간에 기화될 정도로 맹렬한 열기가 화염픠 파도가 되며 주변을 덮었다.

순식간에 젖었던 흙바닥이 바싹 마르며 쩍쩍 갈라지고 잡초들이 재가 되며 부스러졌다.

쉬아아악!

그러나 그 화염이 마법으로 변화하기 전에 러셀이 먼저 움직였다. 자안이 빛을 뿌리기 시작하자 그를 중심으로 15미터 반경의 마나가 통째로 응결되었다.

시종일관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던 릭투스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이건?”

러셀이 마안을 통해 발동한 국소적인 에너지의 통제가 발밑을 타고 넘실거리던 화염의 파도를 무너뜨리고 릭투스의 몸에 서렸던 마력을 흩어버렸다.

거기에 러셀의 눈과 마주친 즉시 릭투스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통증이 체내의 마력 흐름을 단숨에 어그러뜨렸다.

“커헉!”

입에서 한움큼의 피를 토한 릭투스가 황급히 뒷걸음질치며 물러나려 했다. 이제지 자신감이 넘치는 몸가짐으로 몰아붙이던 것과는 딴판인 모습.

“어딜.”

상체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을 낮게 숙인 러셀이 자신의 의자하에 제어되는 공간 속에서 부드럽게 움직였다. 오른 어깨가 크게 젖혀지고, 장전된 주먹이 쇠도 우그러뜨릴 힘을 담아 꾹 쥐어진다.

“자, 잠까-”

자유롭게 움직였던 마나가 타인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처음인 듯 릭투스의 손발이 꼬였다.

그때 동결되었던 마나와 마력의 흐름이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릭투스의 비늘 덮인 몸에서 무형의 기운이 들불처럼 일어나며 파괴적인 광선이 되어 러셀을 덮쳤다.

피할 수 없다.

찰나에 판단을 마친 러셀은 몸을 방어하기보다는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을 택했다.

강렬한 열기가 집약된 수십 발의 광선이 러셀의 몸을 지졌다. 얼굴에 정면으로 쏘아진 광선에 피부가 녹아내리고 망막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일시적인 시야의 제한 속에서도 그는 약속된 동작을 취하듯이 허리를 비틀었다.

비틀린 허리와 어깨, 팔꿈치를 타고 전달된 회전력이 주먹 끝에서 폭발하며 릭투스의 왼쪽 옆구리를 타격했다.

뻐어어어엉!

러셀을 중심으로 원형의 충격파가 터져 나오고 시퍼런 마력광이 명멸했다. 사방으로 밀려난 충격파가 붉은 보호막을 세운 채 몸을 추스르고 있던 칼리아와 한창 싸우고 있던 바이젠과 아트리오, 뒤에서 마법을 준비 중이던 아엘라시스까지 쓸어버렸다.

“큭······!”

“뭐여!”

“꺄아아아······!”

튕겨 나간 릭투스의 거구가 그대로 마을을 넘어 근접해 있던 계곡의 벽까지 날아가 박혔다. 그 충격으로 계곡의 벽면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구구궁······.

“크흐윽······.”

주먹을 날린 자세로 서 있던 러셀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땅에 주저앉았다. 지근거리에서 직격으로 맞아버린 광선에 얼굴이 녹아내린 탓이다.

막대한 열기가 그를 중심으로 허연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고, 고기 탄 내음이 진동했다.

“러셀, 러셀! 이런, 괜찮은 것이냐?”

“우오오오오!”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던 칼리아가 급히 달려오고, 밀려난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 아트리오의 등짝에 두 개의 장검이 박혔다.

“좀 죽어라! 이 괴물 딱지야!”

파바바바박!

등짝에 박았던 검을 뽑아낸 바이젠이 사력을 다하며 마력을 칼날에 담는다. 칼날의 태풍이 휘몰아치며 떨어지던 빗방울을 튕겨낼 정도의 속도에 이른 것도 잠시.

콰득, 소리와 함께 바이젠의 마력과 단단한 아트리오의 신체 내구도를 견디지 못한 그의 검이 깨지며 반으로 부러졌다.

“니미······”

허공에서 빙빙 돌아가는 검면이 순서대로 바이젠과 팔로 땅을 짚은 채 일어나려는 아트리오를 비춘다.

“얼어붙는 혼.”

그때 하늘에서 하얀 뿔기둥이 떨어지며 그대로 아트리오의 등과 가슴을 꿰뚫었다. 동시에 아트리오의 몸속에서 급속도로 자라난 얼음의 줄기가 그대로 피부를 뚫고 튀어나왔다.

“······!”

온몸의 형태가 무너진 얼음 동상이 된 아트리오가 휘청이더니 바닥에 떨어지고.

파삭.

수천 개의 알갱이가 되며 부서졌다. 그 위로 부츠를 신은 아엘라시스가 허공을 부유하며 내려앉았다.

“괜찮아?”

털썩, 하고 바이젠이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이고 살았다······ 쉬러 왔다가 이게 무슨 봉변이냐고, 시발······.”

화끈거리는 통증이 가라앉자 러셀은 눈을 떴다. 아니, 눈을 떴다기보다는 망막이 다시 재생된 것이었다.

“가만 있거라. 방금 피부에 근육까지 완전히 탄 상태였다. 뼈까지 보였어!”

“괜찮아.”

“아니······.”

칼리아의 눈에 서서히 원형을 되찾아가는 러셀의 얼굴이 보였다. 녹아내렸던 피부가 굳은 조각이 되어 떨어지고 벌건 근육 위로 깨끗한 피부가 재생되었다.

눈꺼풀이 다시 생겨나며 눈을 덮었고, 녹았던 코도 다시 우뚝 세워진다. 칼리아가 푸욱 한숨을 쉬었다.

“휴, 다행이구나. 이런 얼굴을 잃으면 세상에 다시 없을 손실이니.”

“날 걱정한 거 맞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선 러셀이 계곡 쪽을 바라보았다. 찾아오려면 진즉에 다시 달려왔어야 할 놈의 기척이 도리어 멀어지고 있었다. 그 방향은 계곡의 안쪽 협곡.

러셀은 릭투스가 기사들에게 웬만해서는 부르지 말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것이 저 협곡 안쪽의 무언가와 관련이 있다면.

“아직 다 안 끝났어.”

손을 휘둘러 켈던의 몸을 얼리고 있던 도끼와 가슴을 가르고 있던 대검을 불러들인 러셀이 일행을 돌아보았다.

“여기 좀 정리 부탁해.”

“뭐, 아니 잠깐······.”

바이젠이 뭐라 말할 사이도 없이 러셀이 몸을 날려 마을을 벗어나 협곡으로 쏘아져 나갔다.

***

“빌어먹을, 쿨럭!”

왼쪽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거구의 도마뱀이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러셀에게 한 대 맞고 날아갔던 드래고닉 리저드맨, 릭투스였다.

“큭, 어떻게 되어먹은 인간이냐······.”

옆구리를 감싼 손을 치우자 커다란 주먹 모양의 흉터가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이 드러났다. 그 주변으로 원형의 고리 모양으로 퍼져 나가고 깨진 비늘이 우수수 떨어졌다.

몸속에 파고든 인간의 마력이 계속해서 충격을 주며 내장을 진탕시키려 했다.

이제 300년 동안 단련하고 쌓았던 신체와 마력이 무참하게 박살났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제아무리 강력한 생명체라도 자신의 몸속에서 날뛰는 마력에 저항하기는 힘들다.

“큭, 아직 준비가 부족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내가 먼저 죽을 판이니······.”

중얼거리는 릭투스의 눈이 희번덕거리며 점점 좁아지는 협곡의 안쪽을 향했다.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인 것이 이대로 무너지게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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