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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74화 (175/225)

174화 선물 (4)

파지지지직-!

러셀이 왼손에 모아들었던 벼락의 구체가 쏘아졌고, 릭투스의 오른손은 그 벼락의 구체를 쳐내버렸다. 그런데 그 방향이 집에 숨어서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고 있던 마을 주민들을 향해서였다.

러셀마저 미처 그 벼락의 구체를 다시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돌연 그 구체가 무언가에 가로막혀 폭발했다. 번쩍이는 섬광과 천둥 같은 소리가 잦아들고, 집 앞을 가로막은 것은 소용돌이치는 붉은 피의 방패였다.

릭투스의 시선이 그 주문을 시전한 자를 찾아 돌아갔다. 비를 막아내고 있는 붉은 역장의 보호막 속에서 의식을 잃은 건달 셋과 덜덜 떨고 있는 주점 주인, 그리고 세 명의 남녀가 보였다.

용병인듯 날붙이를 등과 허리춤에 맨 남자는 머리를 털며 일어서고 있었고, 하얀 머리카락의 소녀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끙끙거렸다.

시선이 옮겨갔고, 하얀 손을 옆으로 뻗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자가 들어왔다. 그 손가락 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 빛을 발견한 릭투스가 킥 웃었다.

“혈마법을 사용하는 인간이라니. 단명종인 인간이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닌데.”

“그딴 게 궁금하냐.”

목소리는 지척에서 들렸다. 릭투스의 고개가 빠르게 되돌아가는 것과 러셀의 대검이 정수리로 떨어지는 것은 동시였다.

콰앙!

대검이 애꿎은 땅을 내려치며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 놀라운 반사신경과 몸놀림으로 뒤로 물러난 릭투스는 아주 잠깐의 간격을 둔 상태였다.

거한의 솥뚜껑만 한 손이 기울어지자 어느새 바닥에 미리 깔아두었던 마력이 모여들었다. 그 손가락 사이로 서릿발 같은 냉기가 흐르기 시작한 순간, 지금도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빗물이 순식간에 하얗게 응결했다.

쩌저저정!

눈을 뜰 수조차 없게 만드는 시린 섬광. 빗줄기로 인해 서늘해진 몸이 다시 한번 떨릴 정도로 저릿한 냉기가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이빨이 딱딱거릴 정도로 추운 한기가 휘몰아치고, 그들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공간에 가득 찬 한기와 만나자 우박이 되어 떨어졌다.

투두두두두······.

“허······!”

“이럴 수가.”

단단한 우박이 머리와 흠집이 가득한 갑옷에 부딪쳐 떨어지지만 기사들은 그런 것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일대가 완전히 얼어버린 풍경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다.

내려쳤던 대검을 위로 들어 올리는 자세 그대로 얼어버린 남자는 움직임을 뚝 멈춘 채 굳어 있었다. 휘날리던 코트 자락과 머리카락이 박제되고 눈동자도 얼어붙은 채로 허공에 시선을 멈춘 상태.

저만치 떨어져 있던, 붉은 보호막을 둘러치고 있던 곳 또한 눈폭풍이 불어닥친 것처럼 얼어 있었다.

테논과 켈던은 릭투스를 바라보았다.

사실 두 기사도 저 마법사가 뭐 하는 작자인지는 잘 몰랐다. 다만 웬만한 기사보다도 커다란 덩치에 완력을 가졌고, 이따금씩 특이한 말버릇을 쓰며 여러 종류의 마법에 능숙하다는 것 외에는.

먼저 죽은 세 기사 또한 말만 기사일 뿐, 제대로 된 신분패도 가지지 않은 치기 어린 기사 지망생이었을 뿐.

지금 대륙의 서부와 중부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횝쓸려 있었고, 아트리오와 테논, 켈던은 그 소용돌이의 외곽에서 머물며 전해지는 소식과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기사 서임을 받기 위해서는 공을 세워야 했고 공을 세우는 데는 혼란스러운 전쟁 통만한 것이 없다. 현재 제이비든 백작은 인근 영지의 갑작스러운 침공으로 난리가 난 상태.

적당한 시기를 보다가 서로의 힘이 소모되었을 때쯤 끼어들면 막대한 보수를 대가로 기사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가까운 마을에서 머물고 있었다.

아트리오의 언질을 받고 뛰쳐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커다란 마법사가 그들을 도와주러 올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릭투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지? 내가 웬만하면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니, 아무것도······.”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마을 처녀들이나 데리고 놀면 될 것을.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 걸 보니 저쪽 일행들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군. 시비라도 걸었나?”

“큭······.”

단박에 이전에 있었던 일을 추리해내는 릭투스의 말에 두 기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저은 릭투스가 드러누워 있는 아트리오를 내려다보다가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러자 건물 잔해에 파묻혀 있던 아트리오의 잘려 나간 두 팔이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그 팔의 단면을 확인한 릭투스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깔끔하게 베였군. 이대로 접합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사, 살려주겠습니까?”

켈던의 물음에 릭투스는 그를 빤히 보다가 들고 있던 팔을 획 내던졌다. 장난감처럼 내던져진 팔은 아직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트리오의 어깨 죽지에 정확하게 맞닿더니 차츰 아물었다.

“비약을 먹였으니 생명력과 마력이 증폭되기는 했겠지. 거기서 더 나아가 균형을 찾을지는 모르겠군. 뭐, 마물이 될 확률이 더 높겠지만-”

말을 잇던 릭투스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갑작스런 그의 움직임에 가까이 와 있던 테논과 켈던이 무슨 일이냐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쩌적······!

릭투스의 눈에 박살 나기 시작한 얼음이 보였다.

“어떻게 벌써?”

의문과 경악이 서린 신음이 흘러나오고, 릭투스의 손이 들렸다. 순식간에 마력이 조합되고 배열되며 하나의 마법으로 화했다.

쩌저저저적······!

공간에 몰아치고 있던 냉기가 한점으로 수렴하자 반대급부로 온도가 올라갔다.

순식간에 가해진 고열과 뜨거운 대기에 숨이 막힌 테논과 켈던이 다급히 마력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막대한 냉기의 집약체가 막 얼음의 구속을 뚫고 나오려는 러셀에게 작렬했다.

그 신속함과 정확성, 막강한 화력까지 부여된 마법은 분명 릭투스가 발현한 마법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단순하게 냉기를 뿜어 주위의 수분을 얼리는 수준을 뛰어넘어 반경 내에 자리하는 모든 수분을 통째로 그러모으는 수법.

그저 얼음 동상만으로 서 있던 러셀의 주변으로 급격하게 하늘의 빗줄기와 이미 바닥을 적신 수분 모두가 달라붙더니 그대로 거대한 빙산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음의 균열은 멈추지 않았다. 릭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력의 통제권이······?”

파아아아아아아-!

물을 빨아들이며 거대해지던 빙산이 하얀 섬광과 함께 폭사하고 커다란 원형의 고리가 터져 나왔다.

“얼음에 갇혀보는 건 처음이군. 신선한 경험이었어.”

그리 말하는 러셀의 손에는 묵색의 대검 나힐니르가 아닌 날과 자루가 모두 하얀 도끼가 들려 있었다.

그의 뒤에는 여전히 붉은 보호막을 멀쩡히 유지시키고 있는 칼리아와 정신을 차린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아엘라시스, 그리고 검을 뽑아들고 있는 바이젠이 있었다.

참수자의 도끼와 비견되는 크기의 외날 도끼를 중심으로 막대한 한기가 떠돌다가 흡수되었다. 한없이 냉기를 축적한 도끼를 쥔 러셀이 팔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높이 들어 올렸던 도끼가 바닥을 내려찍자마자 그 지점을 중심으로 막대한 얼음의 파도가 릭투스를 덮쳤다.

“전격의 속성력에다가 유물급 마도구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시야를 온통 하얗게 물들이며 다가오는 냉기의 파도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목소리를 흘린 릭투스의 눈에 숨길 수 없는 탐욕이 깃들었다.

“고작 칼잡이 따위에게 들려 있기에는 아까운데.”

이미 냉기의 통제권은 러셀에게 빼앗긴 상황. 여기서 더 무리하게 변질된 마력을 다시 되찾으려 힘을 빼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을 택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러셀에게 극한까지 모여든 냉기로 인해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달아오른 것을 이용하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모여든 핏물들이 순식간에 솟구치더니 릭투스를 가두는 사각형의 입방체가 되었다. 그리고는 안쪽의 릭투스를 향해 무수한 가시가 생성되더니 그대로 쏘아졌다.

“큭!”

붉은 가시의 틈 속에서 파충류의 섬뜩한 동공이 번뜩였다.

콰창-!

일순간 터져나온 마력의 확산에 피로 만들어진 입방체와 가시가 박살나고, 그 속에서 이질적인 외모를 한 릭투스가 손바닥을 모았다.

그 손바닥 사이에서 방대한 마력을 바탕으로 한 불꽃의 구가 확, 하고 피어올랐다.

릭투스의 발밑에서 여섯 갈래의 열풍이 회오리치며 방위를 점하고, 열풍은 불꽃이 되어 나선으로 꼬아지며 정수리 위에서 집결했다. 그리고 그 나선의 불꽃에 손바닥 사이에서 만든 불꽃의 구를 더했다.

이윽고 나타난 것은 집채보다 거대한 화염의 공.

러셀의 냉기의 파도와 릭투스가 손짓으로 떨어뜨린 화염구가 부딪친 것은 동시였다.

푸화아아아악!

사방에서 냉기와 열기가 뒤섞이며 춤을 추고, 수분이 급속도로 응결되거나 기화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자욱한 안개가 사방을 덮치며 거리와 마을을 덮었다.

그리고.

꽈앙-!

이제까지 울렸던 것보다 거대한 굉음이 터지면서 자욱했던 안개를 한 번에 바깥으로 퍼트렸다.

그 중심에는 주먹을 내지른 러셀과 그 주먹을 양팔로 교차해서 막아낸 릭투스가 있었다.

투두둑,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릭투스의 팔을 감싸고 있던, 인간의 피부를 모방하고 있던 마력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인간에게 내 본모습이 드러나게 될 줄은 몰랐군. 재밌는데!”

엑스자로 교차한 릭투스의 팔에 주먹을 뻗은 자세에서 러셀의 다른 손이 움직였다. 그 손에는 아까의 도끼, 마지막 서리가 시퍼런 냉기와 마력 파동을 흩뿌리고 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스쳐올라가는 참격이 릭투스의 몸에 그대로 작렬하고, 거한의 몸이 뒤로 나가 떨어졌다.

콰드드드득!

아직 얼어붙어 있던 흙바닥이 릭투스의 손가락에 갈려 나갔다. 제동을 걸어 힘을 해소시킨 릭투스가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찢어진 옷 사이로 쩍 갈라진 가슴팍의 상처가 보였다. 잘리고 부러진 갈비뼈와 그 틈 사이에서 펄떡이는 심장, 잘린 내장들이 여과없이 드러나 있었다.

“그것도 재밌냐?”

“······.”

러셀이 도끼를 땅에 짚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상처를 보던 릭투스가 머리를 들었다.

“감히, 하잘것 없는 놈이.”

낮게 울리는 울림과 함께 릭투스의 몸이 변화를 시작했다.

거한의 몸 안쪽에 숨겨져 있던 근육이 더욱 팽창하고, 커다랗게 났던 상처는 빠른 속도로 아물더니 흉터조차 남기지 않았다.

인간의 머리가 이리저리 우그러지고 일그러지더니 도마뱀 같은 머리가 되었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릭투스는 본모습을 되찾았다. 뒤통수에 돋아난 뿔, 갈색의 갈기. 울퉁불퉁한 근육으로 뒤덮인 육체와 상대적으로 빈약한 꼬리까지 드러난 온전한 용족의 모습이었다.

“저게 뭐여?”

그때 러셀의 곁에 약의 후유증을 절반 가량 떨쳐내고 서둘러 온 바이젠이 섰다.

“윽, 머리 아파. 이거 술 때문 아니지?”

아직 머리를 짚고 있는 아엘라시스와 보호막을 쳐둔 채로 다가온 칼리아가 릭투스를 바라봤다.

“용족이구나.”

“드라칸인가?”

러셀은 두 번째로 만나는 용족을 바라보며 처음 만났던 용족을 회상했다.

카루곤이라는 드라칸이었고, 칼리스덴 도시에서 용의 흔적을 찾아 온 놈이었다.

[아엘라가 용이라는 걸 저쪽이 알아볼 수 있나?]

러셀의 물음에 칼리아 또한 바로 마력으로 목소리를 전달했다.

[용의 변신 능력은 어떤 고위 마법사도 알아보기 힘들다. 내가 용족들의 마법 수준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들의 원류인 용의 마법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진 않구나.]

두 자루의 장검을 각각 손에 든 바이젠이 칼 손잡이로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저게 뭔 용족이야? 아는 사람 있습니까?”

“아마 드래고닉 리저드맨 같다. 하지만 들었던 것보다 덩치가 큰데.”

용족이라는 말에 한순간 아엘라시스의 눈이 번뜩이고 고개가 돌려졌다.

러셀 일행과 대치 상태가 이루어지자 릭투스는 고개를 혼자 끄덕거리더니 중얼거렸다.

“수가 모자라는군.”

딱!

날카로운 손톱이 세워진 손가락이 튕기며 맑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들어있는 마력이 퍼졌다.

“어, 어? 뭐야? 아니, 이걸 왜- 끅, 끄르르륵!”

“무슨, 이게 뭔- 끄아아아!”

테논과 켈던이 갑자기 품속에 손을 넣더니 아트리오가 마셨던 것과 똑같은 크기의 유리병을 꺼냈다. 그 안에는 붉은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단숨에 그 유리병을 통째로 삼킨 그들이 뒤로 고개를 젖히더니 기괴한 신음소리를 토했다. 고통이 어려 있던 신음은 곧 괴물의 으르렁거리는 울림이 되었다.

기사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피부에는 검게 변색된 혈관이 우둘투둘 일어났다. 피부에서 솟아오른 연기는 갑옷을 감싸더니 삐죽삐죽한 칼날과 가시를 돋친 판금갑옷이 되었다.

쓰러져 있던 아트리오마저 재생된 팔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나니, 기괴한 뿔 갑옷과 날름거리는 혀를 길게 내뺀 괴물 세 마리가 서게 되었다.

“······골치 아픈데.”

그를 본 러셀이 한 손에는 마지막 서리를, 다른 손에는 나힐니르를 들었다. 결국 그의 손에 사지가 절단나며 쓰러지긴 했지만, 러셀은 비약이라는 저 약의 효과를 충분히 실감하고 있었다.

거기에 지금은 릭투스의 마법이 더해지며 생김새가 그야말로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듯한 마물이 된 상태였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있지 않으냐?”

칼리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손짓하자 러셀의 손에 이미 죽어 나자빠져 있던 세 기사의 시체가 들썩이더니 피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시체는 단숨에 미라 같은 모습이 되어 바싹 말랐다.

당장 바이젠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칼리아에게서 멀어졌다.

“뭐, 뭐요. 아가씨 흑마법사였어?!”

“아니, 혈마법이다.”

가볍게 부정한 칼리아에게 붉은 피의 물결이 꾸물거리며 다가와 그녀를 덮었고, 곧 붉은 망토와 갑옷이 되었다.

“용족은 상대하기 까다롭다. 가진 재생력도 그렇고 방대한 마력도 그렇지. 괜찮겠느냐?”

“상관없다.”

두 자루의 무기를 휘휘 저은 러셀이 말했다. 그의 눈에는 두 번째로 보는 용족을 향한 호승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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