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55화 (156/225)

155화 북부에 부는 바람 (3)

***

러셀이 마차의 왼편에서 같이 딸리며 싸우던 오디스의 전사 셋을 죽이고 대장만 남겨놓았을 무렵, 칼리아 또한 남은 전사 한 명과 마법사를 무력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커헉, 끄어어······.”

“이, 이걸 어떻게······?”

심장을 부여잡은 전사, 쿨리오가 꺽꺽거리는 신음을 내뱉으며 늑대의 등 위에서 웅크렸다. 그리고 마법사 타크만 또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와 미동도 않는 마력에 경악한 얼굴이었다.

그 둘의 심장을 관통한 핏빛 구슬은 그 짧은 찰나의 시간에 피를 매개로 봉인식을 그려넣었다. 심장이 관통되었는데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던 것은 바로 그 덕분.

그때 마차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멈춰버렸다. 그리고 마차를 끌던 이루실의 말이 거친 숨을 내쉬면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일행 중 가장 무거운 러셀이 나가고 마차의 무게를 줄여준 칼리아의 마법이 더해졌다고 해도, 말 한 마리가 세 사람이 탄 마차를 끄는 건 무리였다. 도리어 이렇게 오랫동안 달릴 수 있었다는 게 더 놀라운 일.

마차가 멈추자 자연히 사람들은 천천히 자리에 멈춰 섰다. 꿈쩍도 하지 않는 주인들의 이상 반응에 늑대들이 낑낑거렸다. 그러다 천천히 다가오는 칼리아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가만히 있으렴.”

칼리아의 손가락에서 튕겨 난 핏방울이 급속도로 증식에 증식을 거듭하면서 늑대들의 팔다리를 묶어버렸다. 자신의 피로 지배해버린 검은 갈기 털의 늑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선 칼리아가 남은 둘에게 다가갔다.

“마, 마력이······.”

“움직이지 않을 거다. 너희 둘의 심장은 지금 내 손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늑대의 안장에 엎드려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쿨리오와 타크만 앞에서 칼리아가 손바닥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솟아오른 붉은 피의 결정들이 두근거리는 두 개의 심장을 투사했다. 쿨리오와 타크만의 심장이었다. 그 심장의 겉면에는 기하학적인 마법진이 그려져 심장을 감싸고 있었다.

타크만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런······!”

그때 죽은 듯 웅크려 있던 쿨리오가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더니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칼리아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죽어라, 이 마녀······!”

쿨리오는 심장에 무언가 덧씌워졌다는 감각과 그것이 마법이라는 것을 알아채자마자 전신에 뿌려져 있던 마력을 끌어모아 주먹에 담은 것이다.

상대방이 완전히 무력화 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안전하다 여기고 있을 교만함과 방심의 틈을 노린 일격.

하지만.

“목숨을 내다버리는구나.”

퍽!

칼리아의 손바닥 위에 있던 두 개의 심장 중 하나가 붉은 핏덩이가 되어버리고.

“허억······.”

그녀의 얼굴에 주먹을 꽂기 직전이었던 쿨리오의 몸이 우뚝 굳었다. 그러고는 실이 풀린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주먹이 닿기까지 찰나의 시간 동안 그녀의 의지가 심장에 걸린 마법의 방아쇠를 당기고 그대로 심장이 터져 죽은 것이다.

“쿨리오······.”

타크만이 참담한 표정으로 죽은 동료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부릅뜨여진 눈과 벌어진 입은 생전의 고통을 여실히 담아내고 있었다. 활짝 커진 채 줄어들지 않는 동공은 뇌가 감지하지 못하는 빛을 무심히 빨아들이는 어두운 구멍이 되었다.

살아남은 오디스의 마법사가 침을 삼키며 칼리아를 올려다보았다.

신체에 대한 이해와 피에 대한 지배력, 그리고 뛰어난 마법만이 지금의 현상을 이뤄낼 수 있었다.

“단순히, 혈마법을 이은 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도대체,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오?”

고절한 마법에 대한 마법사의 태도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비록 방금까지 서로를 죽이려 한 적대적인 관계임에도.

칼리아가 대답해주지 않자 타크만은 다른 것을 물었다.

“왜 나는 죽이지 않은 것이오?”

칼리아가 대답했다.

“너의 생사는 내가 아니라 그가 결정할 것이다.”

“그?”

***

마차가 서면서 러셀이 멈추자 오디스의 전사들을 이끌던 대장이라는 자도 늑대의 고삐를 당기며 질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차와의 거리는 이, 삼십미터 떨어진 거리였다. 마차가 멈추는 것보다 속력을 유지하고 있던 크라이와 늑대는 그보다 조금 더 달리고 나서야 속도를 늦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라이와 늑대의 코와 입에서 하얀 숨결이 훅훅 내뿜어졌다. 아무리 뛰어난 명마와 마력을 각성한 짐승이라도 수십 분에 걸친 전력질주는 엄청난 체력 소모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크라이는 앞다리를 내딛으면서 투레질을 했다. 자신은 아직도 달릴 수 있다는 신호였다.

“그만. 넌 충분히 달렸다.”

하지만 러셀은 이미 크라이가 얼마나 지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오디스로부터 습격을 받기 한참 전에도 마차를 끌며 달렸던 크라이다. 진작에 다리가 풀리고 게거품을 물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러셀의 뛰어난 승마술과 마력을 순환하면서 스스로의 무게를 가볍게 경감시키지 않았다면 이미 바닥에 모로 누워서 숨만 쉬고 있었을 것이다.

“쉬고 있어. 아직 갈 길이 구만리야.”

러셀은 한 손으로 크라이의 목덜미를 두드리다가 바닥에 내려섰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검은 갈기와 피부를 가진 말은 비척비척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러셀을 노려보며 대장도 늑대의 안장에서 뛰어내렸다. 그가 타고 있는 길들여진 마수 늑대, 다이어 울프도 지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장이 내려서자마자 다이어 울프가 주저앉았다. 쌔액쌔액 하고 거친 숨이 하얗게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던 그는 곧 고개를 돌려 러셀을 바라보았다.

대장은 자기가 타던 늑대에 어울릴 정도로 덩치가 좋으면서도 키가 큰 자였다. 털가죽으로 이뤄진 옷 안쪽으로도 여실히 드러난 근육, 바람 때문에 거칠게 일어난 빨간 산발 머리.

그가 천천히 러셀을 향해 걸어오면서 마력을 일으키자 그 발걸음에 맞춰 지면이 부르르 떨렸다.

“네놈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전사라는 걸 인정하지.”

걸어오는 대장의 손에 정사면체의 모양을 가진 푸른 돌 같은 것을 쥐여 있었다.

“하지만 네놈 때문에 내 3번 대의 부하들이 모두 죽었다. 그 목을 잘라서 죽어간 내 부하들의 넋을 기리겠다.”

“자기들이 기습해서 다 죽어버린 게 왜 내 탓이야?”

“닥쳐라!”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냅다 바닥을 박찼다. 몸 주위로 아지랑이가 보일 정도로 마력의 기세를 한껏 일으킨 오디스의 3번 대장은 쥐고 있던 검을 크게 내리쳐왔고, 러셀은 그 공격을 왼손에 들린 나힐니르로 맞받아쳤다.

쿠웅!

그들이 서 있는 지면의 중심을 반경으로 5미터 지름의 바닥이 균열을 일으키며 살짝 가라앉았다.

“그나마 부하들보다는 대장이라 불릴 자격은 있군. 이름이 뭐냐?”

“크아악!”

부들거리며 힘을 주고 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평온한 어조로 이름을 묻는 러셀에게 그는 고함을 질렀다. 팔뚝이 부풀어오르는 게 훤히 보일 정도로 근육에 힘을 주자 러셀의 발이 단단한 바닥을 뭉개며 파고 들어갔다.

다음 순간 러셀의 오른팔이 휘둘러졌다. 그 오른손에는 마지막 서리, 하얀 도끼가 들려있었다.

쾅-소리가 나고 둘의 대치가 끝났다. 러셀과 오디스의 3번 대 대장은 서로 스무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큭.”

신음을 흘린 그가 왼쪽 팔을 부여잡았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도끼날에 마력을 폭발시켜 러셀의 도끼를 막아낸 여파였다.

그는 팔을 꾹 누르면서 마력을 조절하는 사이, 러셀은 도끼를 코트 안쪽으로 갈무리했다. 그걸 보고 대장이 눈썹을 꿈틀거리자 러셀이 말했다.

“그쪽을 무시해서 집어넣은 건 아니다. 그냥 이렇게 칼을 들고 맞대본 적이 꽤 오랜만이라서.”

“뭐······?”

러셀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사실 거의 두 달에 가깝게 골렘, 마법사, 괴수, 마수, 이계에서 날아든 나무등 이상한 괴물들만 상대해왔다. 그래서인지 되려 칼을 들고 덤벼오는 오디스 쪽이 상대하기 편했다.

어디서 어떤 방향으로 날아올지 종잡을 수 없는 불규칙적인 괴물들과 다르게 팔다리가 달려있는 인간을 상대할 때는 은근한 향수마저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난 러셀이다.”

“······프리드.”

프리츠는 떨리는 팔을 진정시킨 후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러셀을 바라보았다. 거리가 멀었으나 마력을 다루는 초인들의 대결에서는 의미가 없는 거리였다.

서로는 서로의 자세에서 많은 것을 주고받았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놈이, 어떻게······.’

러셀은 사람이 쥐고 휘두르는 게 가능한 건지 의심스러운 수준의 대검을 늘어트린 검세로 편안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프리드는 러셀의 발끝과 허리의 비틅, 시선의 방향에서 별다른 빈틈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러셀의 젊어보이는 외견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리드는 마음을 다잡았다.

바로 아까 전에 공중에서 대검과 도끼를 던진 것으로 부하 둘을 쳐죽이지 않았는가. 거기다가 손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까지 보면 주문이 걸린 무기임이 틀림없었다. 도끼를 쓰지 않는 것에 수치를 느꼈지만, 지금은 그런 방심 한 줌이라도 절실히 필요했다.

팍!

바닥을 박찬 프리드의 몸이 쏜살과 같은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얼어붙어 딱딱해진 흙바닥이 채 떨어지기도 전, 눈 깜빡하는 사이에 프리드의 몸은 이미 러셀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프리드가 검을 내리쳤다. 러셀은 늘어트렸던 대검을 위로 당기며 올려쳤다.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일반적으로 내려치기를 올려치기로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떠엉-!

둔중한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둘이 맞붙었다. 소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력을 각성한 생명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명체가 된다. 근력과 체력, 지구력이 큰 폭으로 향상되고 감각 또한 차원이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마력의 재능이 없는 자들에게는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눈앞이 안 보이는 장님에게 빨강과 파랑의 차이를 이해시키지 못하듯, 소리가 들리지 않는 청인에게 빗소리와 눈소리를 설명시키지 못하듯.

초인들의 대결은 범인은 감히 눈으로 좆을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없이 격렬하게 이뤄졌다.

근육과 근육 사이로 마력이 깃들며 인간이라는 종이 낼 수 있는 한계치 이상의 근력을 내고, 신경은 인지할 수도 없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폭발적으로 전기 신호를 발산한다.

마력이 한껏 깃든 검의 위로 유형화된 검기가 생성되고, 휘둘러졌다. 검과 검이 만나기도 전에 검기가 먼저 만나며 형태를 잃고 마력의 조각들을 흩뿌렸다.

하늘도 아닌 지상에서 천둥과 비슷한 굉음이 쾅쾅 울렸다. 러셀은 강력한 육체와 쌓은 마력으로, 프리드는 생애 동안 쌓아온 마력 전부를 소모시킬 기세로 달려들었다.

상단, 중단, 다시 상단, 하단, 그리고 중단. 부딪힘과 미끄러짐, 흘림, 찌르기, 걷어내기, 비틀어 막기, 빈틈으로 쑥 들어가는 차가운 쇠붙이들의 향연.

하지만 싸움이 길어질수록 누구에게 승리의 추가 기울어져 있는지는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러셀은 웅웅 울리는 나힐니르를 당겼다가 다시 찔러갔다. 묵직한 검신이 공기를 가르며 프리드의 허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프리드의 검이 휘어지며 그 베기를 막고는 그대로 칼날을 미끌어트리며 러셀의 팔뚝을 노렸다. 러셀은 칼날을 타고 달려드는 프리드의 공격을 피해 손목을 돌렸다.

커다란 대검은 그 간단한 손목 돌리기에도 크게 뒤채며 프리드의 검을 떨쳐내고 위에서 아래, 사선으로 베어갔다.

프리드는 이를 악물며 검을 들어 러셀의 공격을 막았다.

쾅!

“쿨럭!”

프리드의 한쪽 무릎이 꿇려지고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러셀의 대검에 실려있는 마력이 프리드의 검을 타고 들어와 그의 속을 진탕시킨 것이었다.

“시발······ 내가 이런 애새끼한테······.”

러셀은 약간 차오른 숨을 내쉬며 대검을 내렸다. 이미 그의 마력에 프리드의 몸은 회생불가였다. 지금도 꾸역꾸역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내장 조각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남길 말 같은 건 있나?”

그럼에도 러셀은 대검을 들어 그의 목을 겨눴다. 프리드가 고개를 들었다. 악물린 이빨과 과한 마력 운용으로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든 눈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디스는······ 대가를 받아낼 거다.”

“니들이 먼저 싸움 걸었다니까.”

러셀의 팔이 흐릿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나힐니르가 코트 안주머니로 사라지자 뒤늦게 목이 베인 시체가 들판에 풀썩 엎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