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53화 (154/225)

153화 북부에 부는 바람

토드가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물었다.

“방금 그거, 흑마력을 인도해서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게 한 것이오?”

“그렇소.”

“아니, 자칫했다간 오히려 큰 해를 입었을 수도 있는 짓을···.”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잖소?”

러셀의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에 토드는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허 참. 성력으로나 정화 시킬 수 있는 흑마력을 몸속에서 태워버리다니. 내가 굳이 필요했는지나 모르겠구려.”

러셀은 고개를 저었다.

“필요했소. 난 성직자가 아니니 신성력을 쓸 수 없고, 내 마력만으로 누나의 몸속에 있는 흑마력을 자극하거나 없애버릴 순 없었으니. 배수의 진을 치게 하고 도망칠 구석을 열어주는 건 당신의 성력이 없으면 불가능했겠지. 고맙소.”

러셀의 감사인사에 토드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햇살에 반짝거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데이브가 물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그럼 마수들이나 마을을 향하는 위협은 모두 없어진 겁니까?”

“그래. 다 죽였다.”

그의 확답에 데이브와 데이지, 토드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 이럴 때가 아니지. 모두에게 알려서 축제라도···.”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상태가 아니군. 우리 모두 지쳤고, 휴식이 필요하오.”

토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러셀이 이루실을 등에 업고 교회를 가로질렀다. 데이지가 문을 열려 했을 때 바깥에 있던 사람이 먼저 문을 열었다. 마을의 촌장 폴이었다.

“아, 돌아오셨군요!”

“오랜만이군.”

“예, 오랜만입니다. 혹시, 가신 일은 어떻게···?”

폴은 기대와 우려가 반반 섞인 얼굴로 러셀과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빠진 인원도, 사지 하나가 잘려 나가거나 큰 부상을 입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혹시 일이 잘 처리되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엿보였다.

“잘 해결되었소. 이제 마수들이 여기까지 와서 깽판을 칠 일은 없을 거요.”

“아아··· 감사,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그 표정도 러셀의 대답에 환하게 녹아내리며 사라졌다. 폴이 허리를 꾸벅 숙이자 그의 뒤에 있던 주민들도 허리를 숙였다.

“혹시 부상을 입은 분이십니까?”

폴이 러셀을 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러셀은 등에 업힌 이루실을 고쳐 업으며 말했다.

“괜찮소. 방금 성력으로 치유했으니. 푹 쉬면 일어날 거요.”

“다행입니다. 아, 제가 바쁘신 분을 너무 오래 잡아두었군요. 바로 여관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러셀 일행은 하루만 더 쉬었다가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루실은 몸안의 모든 흑마력을 몰아냈기에 의식만 차리면 되었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러셀이나 칼리아, 아엘라시스도 본연의 뛰어난 치유력으로 빠르게 회복했다. 칼리아야 신체 안의 모든 피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원조 흡혈귀였고 아엘라시스는 본래 용이었다.

교회에서 나와 잡은 여관의 방에서 각자 휴식을 취하던 러셀은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건 뭐였을까.’

러셀은 암흑으로만 가득 차 있던 공간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려보았다. 무저갱이라고 불렀던, 그의 눈과 연결되어 있던 암흑 공간.

그는 그곳에서 이름이 없는 소녀를 만났다. 두 눈구멍이 뻥 뚫려있던 소녀. 그의 감각으로도 그 외형을 온전히 인지할 수 없었던 존재.

이번에도 그 무저갱 같은 공간을 빠져 나오는데 도움을 받았다. 지평선 너머에서 넘실거리며 쏟아져 나오던 그림자. 어둠 속에서도 그 윤곽을 확연히 짐작할 수 있는, 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공포, 꺼림칙함과 혐오의 감정을 뭉게뭉게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그림자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때 시야의 바깥에서 다가온 하얀 손이 눈을 가렸고, 러셀은 칼리아와 아엘라시스의 마력을 느끼고 의식을 부상시켰다.

아직은 알 때가 아니라고 했던 존재.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러셀조차도, 아직은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이 세계는 얼마만큼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검은 로브의 사내도 그랬다. 숲의 깊은 안쪽에서 암약하고 있던 건 이계종의 침식형 나무, 쿠헬라움토였다.

이계종이 세계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균열이나 마력의 불균형, 폭주, 혹은 의도적으로 의식을 통해 불러내는 방법밖에 없다.

허나 칼리아와 아엘라의 말을 들어보면 검은 로브의 사내가 직접 쿠헬라움토를 불러들이고 침식 공간을 뿌리내릴 수 있게 한 놈이 틀림없다.

도착하자마자 이계종을 너희들이 쓰러트렸느냐고 묻고 공격해온 것만 봐도 그렇다.

‘그 회색 갑주를 입고 있던 놈과 연관이 있는 거겠지.’

오랜 시간 죽음과 같은 잠에 들어있던 칼리아를 강제로 깨우고 혼란을 일으키려 했던 회색 갑주의 남자.

헤딜룬드 영지에서 오래된 유적과 고대의 골렘들을 깨우고, 그 골렘들을 이용한 방대한 봉인식을 깨트려 키메라를 일깨우려던 정체불명의 세력.

그리고 이전부터 러셀이 겪어왔던 세계에 변혁을 일으키거나 혼란을 퍼트리려는 여러 사건 사고들.

하나하나의 사건들은 그다지 관계가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1년 안팎의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의 사이즈는 무척 크다.

러셀은 고개를 살짝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몸의 상태는 완전히 나아졌다. 당장이라도 전투에 돌입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 그리고 한층 더 나아간 사고와 감응력은 그의 마안에도 영향을 끼쳤다.

상승한 마력이 신체를 휘돌며 구석구석으로 뻗어나갔다. 사지의 말단부터 중심까지 마력이 지나는 통로, 마력 회로는 뻥 뚫린 고속도로첨 장애물 하나 없이 시원하게 마력을 통과시킨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신체 전반을 한 바퀴 도는 사이클을 이룬 러셀은 그 마력을 그대로 눈에 담았다.

키이이잉······!

자청색의 홍채에 마력이 담기자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그리고 러셀이 억제해놓는 시야가 한 순간에 열리면서 무수한 것들을 투영시켰다.

그의 신체로부터 뿜어지는 체온에 의해 변화되는 방안의 온도, 아주아주 미세한 먼지, 생명들로부터 발산되는 파동, 감정, 대기를 도도하게 흐르는 마나 입자들.

그리고 러셀은 그 너머를 보았다. 낡은 여관의 나무 천장을, 그 위의 서까래를, 지붕을 넘어서 하늘을 보았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어제와 같았던 푸른 하늘이 보인다. 정오를 향해 다가가는 비스듬한 태양과 구부정거리면서 떠다니는 속편한 구름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 이면에는 미세한 균열이 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균열은 어떻게 보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느다랗고 미세하다.

허나 러셀의 눈에는 보인다. 그 아주 가느다란 균열로 조금씩 세계의 기운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

러셀이 저 균열을 인지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루실의 몸속에서 그녀를 공격하고 침식하려던 흑마력을 그의 몸속으로 불러들여 태워버림으로써 알게 된 것이었다.

체내에 남아있는 흑마력의 잔재가 일정한 패턴을 띄면서 나풀나풀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다가 발견하게 된 것. 그 흑마력의 주인이 이름 모를 검은 로브의 사내라는 걸 감안하면, 이 흑마력을 통해 저 균열을 더 이으려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 균열이 더 확장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건 아직 러셀도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그와 그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좋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은 확실했다.

애초에 하늘이 유리처럼 깨지고 있다는 현상 자체가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 된 세계에서 살던 그는 하늘 바깥에 우주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하늘에 알 수 없는 균열이 생긴다는 것은 물리적인 법칙 외에 다른 법칙이 끼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마하고 있는 게 아닐까.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낙심하는 것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그것이 올바른 태도라는 것을 러셀은 알고 있었다.

***

“선물 고맙소.”

러셀의 감사에 폴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희한테 베푸신 은혜에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런가.”

폴의 손사래에 러셀도 씩 웃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폴은 주름진 양손으로 러셀의 오른손을 꽉 쥐었다. 그 다음은 큼큼 헛기침을 내뱉는 성직자, 토드였다.

“큼, 저번에는 다짜고짜 소리쳐서 미안했네. 그때는 애써 만든 결계가 다 부서지니 화가 나서 그만···. 그럼에도 우리를 도와줘서 고맙네.”

“별말씀을.”

“큼, 큼. 이거 가져가게.”

러셀에게 토드가 투명한 물이 담긴 병 두 개를 내밀었다.

“밤새 만든 성수라네. 짐승을 물리치는데 써도 좋고, 상처가 난 곳에 발라도 좋지. 부정한 것들이나 언데드한테 써도 좋을 것이고.”

러셀은 그것을 코트 안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여관 바깥에 마차와 두 마리의 말이 매여 있는 것이 보였다. 크라이가 여관을 나선 러셀을 보자 푸르륵, 하며 투레질을 했다.

말 두 마리를 마차에 매던 데이브와 데이지가 러셀을 보고 인사했다.

“나오셨군요. 준비는 마쳐두었습니다.”

“와, 마차다! 마차는 처음 타보는데?”

“나쁘지 않구나.”

그 옆에는 마차를 보고 좋아하는 아엘라시스와 미소를 띤 칼리아가 서 있었다.

그 마차는 폴과 마을 주민이 러셀과 일행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부상을 입은 이루실이 제대로 거동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던 폴이 돈을 모아서 사고, 두 마리의 말이 끌 수 있도록 공방에서 개조까지 마친 마차였다.

오랫동안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신체에 적잖은 부담을 준다는 걸 알고 있는 자들에게는 필수품인 마차.

물론 러셀 일행 중 둘은 사람이 아니고 모두 마력을 다루는 초인들이었지만 이왕 편하게 갈 수 있는 마차를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 주위로는 떠나는 러셀 일행을 배웅하기 위한 마을 사람들이 가득했다.

저마다 감사 인사를 건네는 것을 받아주며 일행은 마을 바깥으로 향하는 길 앞에서 마차에 올라탔다.

“고맙습니다, 러셀 님!”

“잘 가세요!”

“안전한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해는 아까보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 있었다. 러셀은 마부석에 앉아서 고삐를 쥐고 휘둘렀다.

***

숲과 고원을 사이로 한 길 위에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가 달리고 있었다.

마부석에는 마부가 고삐를 쥐고 앉아 있었다. 마부의 생김새는 특이했는데, 마치 검은 잉크로 그려서 만들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칼리아의 그림자 형태 변환 마법이었다.

그림자로 형태가 빚어진 마부는 충실한 움직임으로 주위를 살피며 고삐를 당기거나 하면서 말들의 속도를 조절했다.

러셀의 가문, 자하드 가문을 향하는 길의 풍경은 중부와 확연히 달랐다. 겉에 살얼음이 낀 맑은 강이 무수히 흘렀고, 그 강의 주변으로는 침엽수 숲이 빼곡했다.

중부처럼 메마르거나 노란 황야는 잘 보이지 않았다. 침엽수 숲과 맑은 강 덕분에 크고 작은 동물과 물고기는 많았고, 식수 또한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큼직한 마차 안쪽에는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두 개의 좌석이 앞뒤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이루실은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사실 이루실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차를 구한 것이었다.

“아직 일어나긴 힘든 상태구나.”

“그래.”

칼리아의 물음에 러셀이 대답했다. 그는 지금 이루실의 전신을 꿰뚫어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안의 특수 능력들 중 하나, 투시의 마안. 철없는 아이 시절에나 옷 속을 비춰볼 수 있는 도구나 능력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나, 진실은 친절하지 않다.

투시의 마안을 통해 선별적으로 투시할 사물이나 대상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만만찮은 심력이 소모되는 까닭. 현재 러셀의 눈에 비치는 시야는 그야말로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섬유와 얇은 피부층을 넘어 새빨간 근육과 신경계, 끊임없이 피가 흐르는 혈관, 꿈틀거리는 내장의 운동과 불수의근 등. 살아있는 해부도를 보면서도 비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일터.

러셀은 마력을 통해 은은한 안광으로 새어나오는 자청색 눈으로 이루실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응시했다.

흑마력 자체는 모두 뽑아냈으나, 흑마력이 거칠게 할퀴고 지나간 상흔은 아직 다 낫지 않은 상태였다. 원래라면 치유를 도왔을 성력도 흑마력을 몰아내느라 완전히 스며들지 못한 것.

그렇다고 무작정 성력이나 회복 포션을 밀어넣는 것도 상책은 아니다.

흑마력이 사라지면서 이루실 본인이 가진 마력이 주인의 이상을 깨닫고 자체적으로 회복을 위해 순환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적대적인 스텐스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러셀이 마안을 거두자 은은하게 빛났던 안광이 사그라들었다. 그런 그와 누워있는 이루실을 번갈아 보던 아엘라시스가 물었다.

“이루실의 집으로 돌아가면 좀 나아질까?”

“누나와 비슷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돌보면 회복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질 거야.”

“러셀은 안 돼?”

“난 힘들어.”

“그럼?”

“누나의 어머니.”

아엘라시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누나의 엄마면 러셀의 엄마 아니야?”

“······.”

본래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러셀의 태생은 가문의 누구도 알지 못했다. 20년 전, 러셀의 아버지인 라하르트는 실종된 지 일주일 만에 갓난아기인 그를 데리고 가문에 돌아왔다.

아버지이자 당시 가문의 후계자였던 라하르트가 직접 데려오고 아들이라 선언했기에 자하드 가문에 들어올 수 있었을 뿐, 러셀의 친모는 오리무중에 빠져 있었다.

거기에 또래 아이들보다 빠른 성장 속도, 아이라고는 믿기 힘든 사고방식과 언동 등은 그를 고립시키는 게 충분한 요소들이었다.

물론 아이에 맞지 않는 생각과 말 등은 전생을 기억하는 그의 특수성 때문이었지만···.

아엘라시스는 무거워진 분위기에 입을 다물고 붉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런 그녀를 칼리아가 잡아끌어 옆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한 법이고, 말 못 할 비밀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그를 다그치지 말거라, 아엘라.”

“다그치려던 게 아니라, 그냥···. 알았어.”

그때 러셀이 고개를 들었다. 거의 동시에 칼리아 또한 고개를 들더니 러셀과 눈을 마주쳤다.

“느꼈느냐?”

“그래. 불청객들이군.”

이-하-!

높고 새된 외침이 마차 바깥에서 들렸다. 러셀은 곧장 움직였다. 마차는 덩치가 큰 러셀도 목과 허리를 약간 숙이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랬다. 그리고 이 마차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천장에 나무문이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러셀은 여닫이로 밀고 당길 수 있는 문을 열고 마차 천장 위로 목을 내밀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순간에 화살 한 대가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러셀은 그것을 고갯짓만으로 피하고는 어깨와 허리를 완전히 빼냈다.

그림자로 된 마부의 몸통에는 이미 여러 발의 화살이 꽂혀 있었다. 마부석에도 화살이 서너 개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러셀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큼직한 늑대 비슷한 짐승을 타고, 털가죽으로 온몸을 빈틈없이 감싼 옷차림. 검이나 창과 같은 무구를 등이나 허리에 매단 전사들이 마차를 포위한 채 달리고 있었다.

“오디스군.”

그는 바로 습격자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북부에서 마수들과 같이 골칫거리 중 하나인 전사 집단.

“마차를 털어라! 저렇게 큰 마차이니 식량도 두둑할 거다!”

“이-하-!”

북부는 넓은 지역이고, 그만큼 다양한 괴물들과 종족들이 살았다. 오디스는 그 중에서도 괴물들을 잡거나 의뢰를 도맡아 처리하는 식으로 자생하는 집단 중 하나. 하지만 용병 일 만큼이나 도적짓도 거리낌없이 하는 인간 말종들이 가득한 집단이기도 했다.

“대장! 마부가 이상한 놈입니다! 마법 같아요!”

“나도 봤다! 말과 마차의 바퀴를 노려라!”

대장이라 불린 턱수염 가득한 놈이 그리 외치자 서넛의 전사들이 활을 들었다. 거침없이 달리는 와중에도 시위에 걸리는 화살은 날카롭고 고요했다. 기수들의 활 실력이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

“쏴라!”

대장이 시퍼런 칼을 뽑아들며 신호하자 길쭉한 선들이 마차의 바퀴와 러셀을 향했다. 통상적인 화살이라면 튕겨나겠지만, 러셀은 저들이 모두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전사들임을 알았다.

마력이 가득 담긴 화살은 세차게 부는 바람도 거스르며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커다란 대검에 의해 모두 걷어졌다.

“뭐야?!”

경악성이 어린 외침들. 러셀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나힐니르를 한 바퀴 돌렸다. 오디스들은 그 커다란 대검의 검면에 붙어있는 화살들이 그 움직임에 맞춰 방향이 정렬되는 것을 보았다.

“돌려주지.”

나힐니르가 허공에 횡을 그리자 비스듬하게 붙어있던 화살들이 재차 추진력을 얻고 본래의 주인들에게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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