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침식의 결말 (2)
이루실이 고개를 돌리니 아엘라시스가 이를 악물고 벼락을 쏟아내고 있었다. 회청색의 두 눈은 파충류의 것처럼 날카로운 동공으로 변했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자라나 있었다.
그녀의 양손에서 번쩍이는 벼락은 사방으로 빛의 가지를 뻗치면서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온전히 검은 로브의 사내에게만 집중되었다.
벼락이 담고 있는 막대한 고열에 주위의 땅이 녹아내렸다. 모래들은 뜨거운 열기에 녹았다가 뭉치며 유리가 되었고, 암석들은 붉게 달아올라 아지랑이를 일궜다.
그때 고랑을 파며 밀려가던 로브의 사내가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아엘라시스와 같이 양손을 앞으로 펼치며 자신의 마력을 쏟아냈다.
하얀 벼락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내의 전신에서 일어난 검은 연기 같은 마력이 앞으로 내민 손에 집중되어 벼락을 막아내었다.
“큭, 윽!”
아엘라시스는 벼락이 밀려나는 만큼 자신의 발이 바닥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로브의 사내는 벼락의 기세가 약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타오르는 어둠.”
조용한 중얼거림과 함께 내뱉어진 시동어. 벼락의 섬광과 공기를 찢는 엄청난 소음 속에서도, 그의 낮은 목소리는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일순 사내로부터 어둠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사내를 중심으로 터진 어둠은 그대로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더니 꽃봉오리가 활짝 펴지는 것처럼 만개했다. 그리고 그대로 벼락을 집어 삼켜버렸다.
힘을 잃은 벼락이 작은 전깃불을 무수히 흩뿌리며 사그라지고, 강제로 마력이 흩어진 충격으로 아엘라시스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하지만 공방의 흐름을 잃지는 않았다.
제자리를 박찬 아엘라시스가 양손에 쥔 도끼를 높이 들었다. 도끼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냉기와 그녀가 가진 냉기의 속성력이 합쳐지며 거대한 얼음덩이를 생성했다.
마력으로 이뤄진 얼음덩이는 그대로 커다란 도끼날이 되어 아직 암흑으로 이뤄진 불꽃을 몸에 두르고 있는 사내에게 내리꽂혔다.
콰아앙-!
일격에 만들어진 얼음덩이가 산산이 조각나고 크레이터가 더 깊이 파이며 또 다른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주위는 수증기로 가득했다. 그녀가 쏟아낸 벼락의 열기에 달궈졌던 주변은 이제 마지막 서리에서 뿜어진 한기에 식었기 때문이었다.
“서리 폭풍의 진격!”
아엘라시스는 멈추지 않고 마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심상과 의지, 그리고 술식이 조화를 이루며 마력을 토대로 올려졌다.
자욱한 수증기가 급속도로 낮아진 대기 온도에 빠른 속도로 수분이 응결되고, 응결된 수분들은 결정화를 이루면서 얼음기둥으로 세워졌다.
쿠구구구구······.
사방에 퍼져있던 수증기가 한곳으로 압축되면서 대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차가운 서리의 바람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갈리며 안쪽을 난도질하고 그 주위를 거대해진 얼음벽들이 뒤덮었다.
순식간에 검은 로브의 사내가 있던 자리에는 나선형으로 회오리치면서 웅장한 위용을 뿜어내는 커다란 원뿔형의 얼음이 세워져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짧은 시간 내에 벼락을 쏘아낸 다음 도끼질을 하고, 열기와 냉기에 의해 만들어진 수증기를 이용해서 거대한 얼음을 만들어내기까지. 순식간에 막대한 마력을 소모한 아엘라시스는 마지막 서리의 도끼날을 아래로 하고 자루에 두 손은 얹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죽었나?”
아엘라시스가 그리 중얼거린 그때, 거대한 원뿔형의 얼음이 드드드-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음이 흔들리는 것에 맞춰 인근 바닥도 함께 진동하며 모래와 바위가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리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얼음이 폭발했다.
“아···.”
아엘라시스는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었다. 흑마력으로 만든 검은 보호막이 반구형으로 생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품이 터지는 것처럼 사라진 보호막 안쪽에서 검은 로브의 사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도 멀쩡한 몰골은 아니었다. 끝이 검은 연기로 화하며 끊임없이 재생되는 로브는 여기저기 찢어지고 그슬려 있었고, 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탓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듯 사내는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어리긴 해도 용은 용이라는 거군. 화끈했다.”
사내가 손을 들어 검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손에서 검붉은 전류가 파직거리며 내달리고 검지 끝에서 뭉치더니 그대로 쏘아졌다.
콰르르르릉!
아엘라시스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의 벼락이 그녀를 덮쳤다. 시야를 가득 매워오는 검붉은 파괴의 빛 앞에서 아엘라시스는 후들리는 팔로 하얀 도끼를 들었다.
대량의 마력을 쏟아낸 반동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용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또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어째서인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아엘라시스를 엄습하고 있었다.
번쩍이는 섬광으로 쏘아져오는 검붉은 벼락이 그녀를 덮치기 직전, 엄청난 숫자의 하얀 무언가가 아엘라 앞에서 솟구쳤다. 촘촘하게 얽힌 그것은 쇠사슬의 벽이었다.
“아엘라!”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온 이루실이 아엘라시스를 껴안고 몸을 날렸다.
콰아앙!
간발의 차로 쇠사슬을 뚫고 벼락이 아엘라시스가 있던 자리를 관통했다. 대지가 새까맣게 물들면서 녹아내렸다. 마력에 녹아있던 지독한 사기와 원념이 흙모래와 암석을 녹여 출렁이는 웅덩이로 만들어버렸다.
“괜찮아?”
“아니···.”
이루실의 물음에 아엘라시스가 힘없는 고갯짓으로 부정했다. 가진 모든 마력을 쏟아내 벼락과 공격을 날린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였다.
용이긴 하지만 알에서 깨어난 지 이제 1년도 채 되지 않은 아엘라시스다. 오히려 지금 이렇게까지 마력을 축적하고 마법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특수성을 입증한다.
“여기 있어.”
이루실은 아엘라시스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멀리 흑마력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로브의 사내가 보인다. 그녀는 말없이 다시 칼을 뽑아 들고는 사내와 대치했다.
“왜 다짜고짜 우리를 공격한 거지? 당신의 목적은 뭐야?”
“답을 얻기 위해서다.”
이루실이 표정을 찌푸렸다.
“무슨 답?”
“그 답을 위해서는 신들의 힘이 약해져야 하지.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의념이 죽어야 하고, 이계의 그릇된 존재들이 필요하다.”
“······.”
이루실은 질문을 포기했다. 제대로 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놈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조용히 검을 들고 마력을 예열시켰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십수년을 넘게 단련한 육체가 맥박을 치고, 마력회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쾅!
바닥을 박찬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녀가 다시 나타난 곳은 로브의 사내 바로 위였다.
“하압!”
기합성과 함께 내지른 칼날이 내리꽂혔다. 동시에 사내를 중심으로 사슬들이 바닥을 뚫고 일어나며 사내의 전신을 구속, 공명했다.
웅웅거리는 진동수에 맞춰서 로브의 사내가 일으키려는 흑마력이 흩어지고 마법 또한 구현을 방해하는 고도의 기술이었다.
꾸웅-!
사내가 선 지면을 중심으로 원형의 충격파가 퍼지며 파도처럼 물결이 쳤다. 단단한 대지가 일순 물성을 잃은 진흙처럼 물렁해졌다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퍼퍼펑-소리를 내며 폭사했다.
이루실은 눈을 부릅떴다. 바로 코앞에서 자신의 검격을 날려낸 뭔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기기기깅.
쇳소리가 마찰하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그녀의 칼을 막아낸 건 커다란 방패와 중검을 든 갑옷을 입은 기사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갑옷의 이음새 사이에 당연히 들어있어야 할 몸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살아있는 갑옷?”
그 정체를 안 이루실이 중얼거린 그때, 그녀의 칼을 막은 기사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스러지며 무너졌다. 하지만 살아있는 갑옷은 그 한 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끝자락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로브가 넓게 퍼지더니 그 안쪽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길쭉한 창날이 그 안에서 솟구치며 이루실의 가슴팍을 찔러왔다.
빠르게 칼을 돌려 검면으로 창극을 막아낸 이루실이 공중으로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아까의 기사가 창을 던졌다.
쾅!
가까스로 투창을 빗겨내어 흘린 이루실이 공중에서 떨어져 바닥에 내렸다. 그러나 그 사이 로브의 사내는 자신을 구속한 쇠사슬들을 모두 떨쳐내고 자유의 몸이 된 상태였다.
“놀라운 검술과 마력 운용이야. 내가 살아있는 갑옷들을 꺼내게 만들다니.”
쿵, 쿵.
바닥에 넓게 도포되는 검은 안개 속에서 실루엣들이 일어섰다. 모두 살아있는 갑옷들이다. 이전 로브의 사내가 멸망시킨 도시에서 죽인 기사들을 부려 만든 흑마법의 주문.
“죽이지는 않겠다. 대신 아는 모든 것들을 토해내게 하고, 종으로 부려주도록 하지.”
“해 봐.”
마력을 가다듬은 이루실이 조용히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발밑으로 퍼진 마력에 의해 땅이 울리고 가벼운 모래 알갱이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가라.”
사내가 손가락으로 이루실을 가리켰다. 살아있는 갑옷들이 일제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던 아엘라시스는 다급히 러셀을 찾았다. 이루실이 수십 개의 사슬을 뽑아내며 갑옷들을 분쇄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싸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아까 마수와 싸우면서 소모한 마력과 체력이 다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승기를 잡기는 요원해 보였다. 러셀이 필요했다.
“어!”
아엘라시스는 러셀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는 이미 칼리아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었다. 아엘라시스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그 곁으로 달려갔다.
“칼리아! 응?”
아엘라시스는 칼리아의 어깨를 흔들려다가 가까스로 멈췄다. 옆구리에 작지 않은 상처를 입은 그녀는 피를 흘리면서도 집중하고 있었다.
아엘라시스는 금세 지금 칼리아가 러셀의 의식을 찾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에 그녀 또한 반대쪽으로 돌아가 러셀의 이마에 얹은 칼리아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고 눈을 감았다.
***
러셀은 어둠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감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끝 발끝은 물론이고 팔다리나 몸통, 마력의 존재도 그랬다.
온전히 정신으로만 스스로를 자각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이 현상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과도한 마안의 사용이 그 원인이었다. 일전에 칼리아와의 전투 후 빠졌던 무저갱에서의 경험 이후, 러셀은 자신의 눈이 그저 시각을 담당하는 육체 기관이나 마력을 위시로 한 마법적 능력이 담긴 것을 넘은, 뭔가 다른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때 그의 시야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통 암흑으로만 채워져 있던 공간에 이질적인 것들이 끼어든 것이었다.
그것은 균열이었다. 저 먼 지평선 너머에서 쩌저적, 하고 갈라지는 균열. 그리고 그 균열 안에서는 무언가가 넘어오려 하고 있었다.
“뭐지?”
세상을 덮어가는 거대한 그림자가 보인다. 그 그림자는 무수한 그림자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에 비해 작아보일 뿐, 그 날름거리는 많은 그림자들 또한 하나하나가 빌딩보다도 커다란 것이었다. 러셀의 인식으로는 그랬다.
암흑과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이 대비되는 심연과도 같은 색깔을 지닌 무언가. 아직 러셀이 있는 곳과는 한없이 아득하고 먼 거리 너머에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 스케일이 아득했다.
지평선 너머에서 일어난 균열은 수복되려는 힘과 그에 항거하는 힘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서 인식할 수 없는 무언가가 넘어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쉽지 않은 듯했다.
“자, 그만.”
그때 익숙하고도 낯선 목소리가 러셀의 귓가에 울렸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들릴 수 있단 말인가?
“저 광경은 아직 너에게 이르다. 이제 돌아가거라.”
그리고 하얀 손이 시야의 바깥에서 천천히 다가오며 러셀의 눈을 덮었다. 그리고 뭔가 익숙한 두 개의 기운이 그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피처럼 끈적하면서도 점성이 있는 마력의 성질은 칼리아의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도 차가운 냉기와 뇌전의 강맹함을 바깥에 두르고 있는 마력이었다.
칼리아. 아엘아시스.
두 사람의 마력임을 깨달은 러셀의 의식이 급속도로 부상했다. 육신의 감각들이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내고, 그의 눈이 떠졌다.
***
이루실의 분투는 놀라웠다. 그녀는 살아있는 갑옷을 모두 부수고 마수들의 합동 공격을 넘어서 사내에게 일격을 먹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놀랍긴 하군. 북방의 인간 중에 이런 실력자가 있었을 줄이야. 좀 더 일찍 수를 부렸어야 했나.”
그의 말에 뭔가 대꾸를 하려던 이루실이 입에서 피를 쏟았다.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복부와 옆구리를 꿰뚫고 베인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와 옷을 붉게 물들였다.
“큭······.”
칼을 바닥에 꽂아넣은 채 서 있던 이루실이 입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그럼에도 핏줄기가 계속 흘러내렸다. 적지 않은 내상이 고통과 함께 운신을 제한하고 있었다.
사내의 왼손에서 불타오르는 흑마력이 수십 개의 줄기로 분화하며 이루실을 포박, 구속해나갔다. 그녀는 다시 한번 마력을 일으키며 쇠사슬을 뽑아내려 했으나 마력은 움직이지 않았다.
“소용없다. 얌전히 잡히는 것이 편안한 길일 것이다.”
천천히 이루실의 몸을 장악해나가는 흑마력이 곧 그녀의 얼굴을 덮기 직전까지 갔을 때였다. 사내가 고개를 급히 돌린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이 바닥을 갈아엎으며 뒤로 튕겨 나갔다.
흑마력에 의해 피부색이 검게 물든 이루실이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머리가 땅에 닿기 직전, 크고 단단한 손이 다가와 받쳤다.
“누나.”
러셀의 부름에도 이루실은 눈을 뜨지 않았다. 얼굴 곳곳에 혈관이 검게 물든 채 드러나 있었다. 척 보기에도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러셀은 천천히 이루실의 몸을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일어섰다. 그리고 저 뒤에 처박혔다가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 로브의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너는 또 뭐냐?”
러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불끈 쥐고 걷는 속도를 빠르게 했을 뿐이었다.
“말은 필요 없다는 거냐. 취향이 같군.”
“지랄.”
흑마력이 다시 한번 불길처럼 일어나며, 검은 로브의 사내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검붉은 뇌전이 파직거리며 빛나더니, 그대로 재앙의 가지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러셀에게 쏘아졌다.
러셀이 뒤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칼리아가 바닥에 꽂아넣었던 나힐니르가 저 혼자 날아오더니 그대로 러셀의 손에 쥐어졌다. 그대로 대검이 휘둘러졌다.
콰앙!
굉음과 함께 벼락의 경로가 수정되며 애꿎은 바닥을 파괴하고 녹였다. 벼락을 튕겨낸 그 기술에 로브의 사내가 붉은 안광을 번쩍거렸다.
“···검에 담은 마력으로 칼날을 세우고 날아오는 주문을 맞받아치다니. 그런 게 가능한 거였나?”
러셀은 그 중얼거림에 대검을 투창처럼 쏘아내는 것으로 답했다. 준비동작도 없이 쏘아진 나힐니르였지만 대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그 기세는 로브의 사내조차도 경시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빠르게 수인을 맺고 흑마력으로 짜올린 방어막 다섯 개가 사내의 전방에 떠올랐다.
쩌저저저정-!
빙하가 갈라지는 듯한 굉음이 일고 다섯 개의 방어막이 일순간에 꿰뚫렸다. 사내가 미간 바로 앞에서 멈춘 대검의 검극을 보며 경악한 순간, 어느새 그의 곁에 바싹 다가온 러셀이 오른주먹을 포탄처럼 날렸다.
뻐어억!
“크헉!”
처음으로 사내가 신음을 토하고 수십 미터를 쏘아져 뒤로 날아갔다. 구덩이가 하나 새로 만들어지며 흙과 모래 먼지가 폭발하듯 날아올랐다가 우수수 떨어졌다.
“큭, 이게 무슨···!”
충격을 이기지 못한 사내가 부들거리며 일어서려 했다. 그리고 그의 등판에 러셀의 발이 내리꽂혔다.
콰앙!
다시 한번 충격이 일며 진동이 원형으로 물결을 치며 파도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러셀은 눈가를 찌푸렸다. 로브가 저절로 일어나 러셀의 발을 밀어내고 있었다.
“막아?”
쾅! 쾅! 쾅! 쾅!
러셀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 충격이 번지고, 국소적인 지진 같은 것이 일어나며 구덩이가 움푹움푹 패여갔다.
“꺼져라!”
수십 대를 얻어맞은 로브의 사내가 이를 갈며 외쳤다. 동시에 흑마력으로 이뤄진 충격파가 러셀을 덮치며 그를 위로 날려버렸다.
러셀이 구덩이 바깥에 서자마자 로브의 사내 또한 구덩이 아래에서 솟구치더니 공중에 떠올랐다. 로브는 완전히 엉망이었고 후드 또한 뒤로 젖혀져 있었다. 러셀은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창백한 피부에 눈가 아래 검은 문신을 그린 그는 표정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린 채 러셀을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흑마력을 집중시킨 손을 들어 올렸다. 러셀 또한 마력을 일으키며 공중으로 뛰어오를 자세를 갖췄다.
그때 로브의 사내가 움찔하더니 흑마력의 기세를 낮췄다. 러셀의 눈에 어디선가 날아온 마력의 흐름이 사내에게 닿은 것이 보였다.
“빌어먹을.”
로브의 사내는 뭔가를 갈등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러셀과 그 일행들을 바라보더니, 흑마력으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가 도망치려는 낌새를 눈치챈 러셀은 곧장 보다 가까운 도끼, 마지막 서리를 끌어당긴 다음 곧바로 던졌다.
“크악!”
공간이동으로 몸을 내빼려던 로브의 사내가 비명을 지르고, 무언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왼팔 하나만을 남겨놓은 채 사내는 공중에서 섬광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