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숲의 안쪽
7월의 초입, 여름이 막 기승을 부리려는 시기였지만 대륙의 북부는 언제나 쌀쌀한 날씨만이 맴돌았다. 대륙의 가장 최북단, 아운힐나르 산맥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은 아직 열을 머금기에는 이르다는 듯 냉기를 품고 북부를 감쌌다.
어느 순간 북풍의 치맛자락에 연기가 깃들어 색을 회색과 검은색으로 물들였다.
자욱한 연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흰 구름으로 덮인 하늘은 자신의 푸른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고, 회색과 검은색으로 칠해진 연기는 그저 위로 올라갈 뿐이었다.
연기의 아래에 도시가 있었다. 건조한 바람에 더욱더 몸집을 키워가는 불꽃이 도시를 불태웠다.
비명과 울음이 도처에 가득했으나 그들을 구원해줄 자는 없었다. 사람들은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죽음조차도 그들을 안식에 들게 하지 못했다.
사자死者들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곧 새로운 힘을 부여받고 일어섰다. 생전의 외모를 간직했지만 눈은 희멀겋게 변해버리고, 창백해진 피부 위로는 푸른 핏줄을 울룩불룩 드러낸 언데드가 되었다.
서북부의 중소 도시 중 하나, 라무니아는 무너지고 있었다. 원인은 단순했다. 성문 앞을 두드렸던 후드를 뒤집어쓴 장신의 남성 하나 때문이었다.
꼭두새벽부터 찾아온 불청객에 졸린 눈을 비비며 다가갔던 경비병의 죽음이 신호탄이었다.
검은 후드와 로브를 두른 남자에게서 연두색의 맹독 안개가 흘러나오고, 그 속에서 여러 짐승들이 섞인 키메라, 마수들이 뛰쳐나왔다.
그 키메라의 베이스에는 한 악마가 남긴 살점이 있었다. 흡혈귀의 인자를 통해 육체를 생성해서 자신의 영혼을 안착시키려 했고, 성공한 악마 겔리오투스의 살점이었다.
제대로 된 병력을 부르고 성주의 마법사가 나서기도 전에 라무니아의 서쪽 성문과 지구는 무너졌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일어나 산자를 죽이고, 그렇게 죽은 자가 다시 달려드는 순환의 고리까지 겹쳤다.
“저 악마를 죽여라!”
와아아아-!
라무니아의 성주와 병사들, 마법사가 검은 후드의 남자에게 돌진했다. 성주의 옆에서 나란히 말을 타고 달리는 마법사가 손으로 수인을 지음과 동시에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구속하는 손길, 케론의 화염!”
말을 타면서도 흔들림 없는 수인과 능숙한 주문. 마법사에게서 발해진 마력의 파동이 두 개로 나뉘며 하나는 바닥으로, 하나는 허공에 뭉쳤다.
쏴아아아아.
검은 후드의 남자가 서 있던 바닥에서 주홍색 빛깔의 덩굴이 넘실거리며 일어나더니 그대로 남자의 팔과 다리를 구속, 지면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후드의 남자는 자신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주문에 끄떡도 하지 않은 채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고 청아한 소리가 울리더니 그대로 진동의 칼날이 되어 덩굴을 잘라버렸다.
그때 마법사가 허공에 뭉쳐놓았던 마력의 파장은 그대로 세 개의 화염구로 조형되었다.
“가라!”
삼각형 꼴로 대형을 이루며 날아든 케론의 화염구가 후드의 남자에게 직격했다. 마법사는 이 한 방에 저 후드의 남자가 죽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후드의 남자의 바로 앞에 다섯 마리의 마수들이 뭉쳐져 벽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원래는 멀쩡했을 짐승을 조각조각 때어다 뭉쳐놓은 것도 모자라 육편의 벽으로 만들어 화염구를 막는, 기괴하고 혐오감을 부르는 마법.
그러나 마법사는 그 혐오의 결정체 속에서도 무수한 주문의 배열과 사악한 의지, 진리를 향한 탐욕을 엿볼 수 있었다.
마나를 주무르고 마력을 다루며 세계의 법칙을 교묘하게 비트는 직종의 수행자들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는 마법들. 도덕과 윤리의 굴레를 가뿐히 벗어던지고 타락의 진흙속에서 헤엄치는 자들.
“흑마법사···.”
숯과 잿더미가 되어 무너진 벽의 뒤로 멀쩡한 신색의 남자가 손을 들었다. 마법사는 그 손바닥에서 뿜어지는 광포한 마력의 흐름을 알아보고는 사색이 되어 외쳤다.
“산개하십···!”
뻐-엉!
응축된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돌진해오던 기마병들의 중앙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보호막을 발동한 성주의 마법사와 성주, 그리고 측근의 기사들 몇을 제외하면 살아남은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 이 씹어먹을···!”
한순간에 기사와 수십 명의 병사들을 잃은 성주가 분노한 표정으로 말을 달렸다. 촤앙, 하고 장검을 뽑아든 성주가 아직 다리가 구속되어 있는 후드의 남자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죽어라-!”
“안 됩니다, 성주님!”
성주의 마법사가 그를 말리려 들었으나 성주는 이미 눈에 뵈는 것 없이 달려간 직후였다. 그때 후드의 남자가 허리를 굽혀 바닥을 짚었다.
쿠르르릉-!
그러자 포석이 깔려있던 바닥이 한순간에 모래로 변하더니 후드의 남자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히히힝-!
“으아아악!”
순식간에 성주와 그의 말이 사토에 집어삼켜졌다. 성주의 마법사는 반경 100미터가 훨씬 넘는 공간을 통째로 모래늪으로 바꾼 남자의 마력에 벌벌 떨었다.
“당신 같은 마법사가,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겁니까.”
“······사람들은 매번 이유를 묻지.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믿고 싶다던가. 자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혹은 비참하게 죽는 이유가 있기를. 그리고 이왕이면 뭔가 좀 그럴 듯하기를 바라는 걸지도. 사실 세상에는 그런 이유나 원인, 의미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태반인데 말이야.”
마법사는 중얼거리는 후드 남자를 두려움과 의문, 혐오와 존경이 담긴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사토 속에서 또다른 키메라, 마수들이 파헤치고 일어나 살아남은 기사와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으, 으악!”
“살려줘!”
“어머니!”
비명과 가족을 찾는 부름들이 헛되이 사라져갔다. 병사들의 창날과 칼날은 마수들의 두꺼운 가죽을 꿰뚫거나 베지 못했다.
장검들은 단단한 발톱과 이빨에 박살나거나 깨져나갔다.
성주의 마법사는 분투했다.
“당신도 인간이지 않습니까!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한테 이런 짓을···!”
후드의 남자는 대꾸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살육을 자행할 뿐이었다. 오직 목표는 그것뿐인 것처럼. 사형을 집행하는 참수인처럼 담담하게 생명을 취하고 마물을 다뤘다.
“으아아아아악!”
마법사와 병사, 시민들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마수들의 이빨과 발톱을 이기지 못하고 사지가 찢겨나갔다.
도시 하나가 그렇게 스러졌다. 그리고 수천의 생명이 죽어가며 느꼈던 고통과 혼란, 그리고 영혼이 세상에 퍼져나갔다.
쿠드드드등.
후드의 남자는 자신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의 귀에만 들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눈에만 보이는 풍경이 하늘 한 구석에 있었다.
커다란 균열. 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이계의 기운들. 보랏빛의 결정들이 균열을 비집고 나오고 있었고, 균열을 더욱 키워가고 있었다.
“신들이여,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을 텐가?”
세계는 자신이 품고 있는 생명체의 의념에 반응한다. 고고한 신들조차도 믿음이 따르지 않으면 점차 잊혀지고 죽는 것처럼, 세계의 원동력은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지성체들의 의념이었다.
강한 의념은 세계를 침식하고 변화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외계의 벽들은 급속도로 그 얇아지고 있다.
충돌은 예견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어떤 세계를 고르냐는 것이고, 후드의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의념을 골랐다.
고오오오오오오.
검은 후드의 남자가 손을 들자 그를 중심으로 마력의 파동이 터져나왔다. 파동은 계속해서 나왔고, 멈추지 않았다.
곳곳이 불타오르고 연기를 내뿜으며 마수와 마물, 언데드로 가득한 도시에 마력의 파동이 수차례 울렸다.
덜그럭, 덜그럭.
검은 후드의 남자에 의해 죽은 기사들의 시체가 바스라지더니 모래처럼 변해 허물어졌다. 하지만 주인이 사라졌음에도 갑옷들은 저 혼자 일어나더니 파츠별로 연결되어 곧게 섰다.
철컥, 철컥 하고 일어난 갑옷들은 이전보다 더 보강된 형태를 띄고 있었다. 통일되어 있지 않았던 각반이나 완갑, 흉갑 등등의 갑옷들이 통일된 양식이 되더니 서로 연결되어 빈틈을 감쌌다.
종국에 선 것은 서른 기 정도의 살아있는 갑옷 기사들이었다. 리빙 아머. 기사의 원념을 재료로 다시 만들어진 언데드 기사.
아무것도 없이 텅 빈 투구의 안쪽에서 두 개의 푸른 귀화가 번뜩이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남자가 로브를 크게 열어젖혔다. 그러자 로브 속의 어둠이 안개처럼 스멀거리며 기어나왔고, 도시로 퍼졌던 마수들과 키메라들,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살아있는 갑옷들이 그 어둠 속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훅, 하고 로브를 갈무리한 남자는 슬쩍 도시를 둘러보았다. 비명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화염에 의해 목조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밖에는 아기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모두 죽었다. 살아있는 생명은 이곳에 없었다.
“다음은···.”
남자는 방향을 가늠했다. 충분한 양의 생명력과 마력을 수집했으니 이제 풀어놓을 차례였다. 그의 발걸음이 한 곳을 정하고 움직였다.
동쪽을 향해서였다.
***
다음 날, 러셀과 일행은 마을 외곽의 숲을 향해 출발했다. 나무가 워낙 우거진 숲이라 말을 타고 달리기는 힘들었기에 일행의 말들은 모두 마구간에 매여졌다.
데이브와 데이지는 모두 여관에 남겨졌다. 아직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은 마당에 따라 나서는 건 오히려 방해가 되기에 러셀이 내린 조치였다.
눈이 쌓이지 않은 숲 안쪽에는 하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축축한 이끼와 흙이 질퍽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부츠를 더럽혔다.
“무슨 안개가 이렇게, 거 참.”
토드가 중얼거리며 일행의 선두에 서 있었다. 그들은 일단 마을의 위쪽을 빙 두르는 숲의 외곽을 돌면서 부서진 결계를 다시 보강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토드는 어느 지점에 멈춰서서 쭈그리고 앉았다. 러셀이 보자 흰색의 돌들이 와르르 쏟아져 있는 것이 보였다.
“모이고, 뭉쳐서, 보호하리라.”
그리고 토드가 양손으로 기도를 한 채 눈을 감자 그의 전신에서 신성력이 피어오르는 것이 러셀의 눈에 보였다. 다른 일행들은 그런 토드의 성력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숲 안쪽을 경계하고 있었다.
곧 하얀 돌들이 부르르 떨더니 서로 모여들며 커다란 탑을 쌓기 시작했다. 서로가 빈틈없이 맞물려 이뤄진 탑은 정육각형의 기둥이 되어 우뚝 섰다. 조각나 있던 돌들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표면은 반들반들하고 단단해 보였다.
“후, 이게 마지막이었소.”
과연 러셀은 그 마지막 육각형의 기둥이 세워지자마자 그어지는 기운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땅의 아래로 파고들어가 있는 기둥으로부터 뻗어진 성력의 선이 이제까지 보수한 다른 기둥들을 이었다. 그러자 마을을 육각형의 모습으로 감싸고 있는 진이 완성되고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결계가 일어나며 마을을 반구형으로 감쌌다.
드드드드드.
그때 러셀의 귓가에 땅울림이 들려왔다. 손을 탁탈 털며 일어서던 토드도 뭔가를 느꼈는지 안색이 굳었다.
“러셀.”
아엘라시스의 부름에 러셀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이루실이 숲의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느꼈어. 토드?”
“예, 예?”
“마을로 돌아가시오. 결계가 다시 세워진 것을 마수들이 알아챈 것 같소.”
“아니, 어떻게? 아무리 마력을 각성했다고 해도 머리까지 똑똑해지는 건 아닐 텐데?”
“틀려.”
이루실이 토드의 말을 부정했다.
“사람을 계속 잡아먹으면 마수들도 지성을 획득할 수 있어. 그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이유가 그거야. 인육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이상의 지능을 얻는 것. 할 수 없던 사고방식과 지능을 깨우치게 되는 감각은 그들 입장에서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쾌감과 비슷하다고 해.”
“···그, 그걸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이루실은 대답하지 않았다. 평생 그런 마수들을 상대하면서 터전을 일궈온 가문의 일원이라고 대답하기에는 시기나 장소가 맞지 않았다.
“들었으면 돌아가시오. 뒤돌아보지 말고.”
“···나도 사제요. 그대들에게 축복을 내릴 수는 있지.”
이윽고 토드는 다시 합장을 하더니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다시 한번 그의 뒤로 반투명한 사슴 머리의 거인이 나타나더니, 일행을 하나씩 굽어보았다.
아엘라시스와 이루실, 러셀을 순차적으로 돌아본 사슴 머리 거인에게서 신성력이 흘러나와 일행에게 부여되었다.
신성력은 신체에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일행 각자에게 타원형의 구체가 되어 그들을 보호했다.
꽤 커다란 축복을 소모한 것인지 이마와 얼굴이 땀에 흠뻑 젖은 토드가 헉헉거리는 신음을 뱉으며 말했다.
“후욱, 후욱, 마수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해로운 공기로부터 호흡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오···. 이 안개가 아무리 봐도 심상치 않소.”
“고맙소.”
러셀은 반경 1미터 바깥에서 흐릿하게 반짝이는 보호막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드는 인사를 받더니 허둥지둥 숲 바깥을 향해 달려갔다.
“우린 계속 가지.”
“응.”
“알았어.”
숲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들어오는 햇빛의 양은 적어졌다. 한기를 머금은 채 무겁게 드리워져 있는 짙은 구름은 숲의 머리에 거의 닿을 듯했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벌목꾼의 도낏날을 경험하지 않은 나무들이 점차 거대해지고, 음험해졌다. 늙은 나무들이 자신의 종아리 어림을 지나가는 러셀과 그 일행을 묵묵한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앞쪽에서 짐승들의 울음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겹치며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얀 안개와 더불어 서서히 나타났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나무들의 몸통은 희미한 거짓말 같았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겹치는 그늘 속에서 러셀의 눈이 빛을 발하며 길을 찾아냈다.
이 흰 안개가 흘러나오는 숲의 깊숙한 중심부. 음험한 마력을 흩뿌리는 사악한 존재가 거기서 똬리를 틀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리없이 코트에 들어갔다 나온 러셀의 손에 나힐니르가 쥐어졌다. 검신의 아래쪽에 새겨진 달의 룬이 깜빡거리며 옅은 빛을 흘렸다.
“모두 전투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