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40화 (141/225)

140화 칠흑 너머 (2)

***

“으으! 아아···! 으아아!”

어두운 밀실. 한 사내가 침대 위에서 버둥거렸다. 그의 사지는 침대의 네 귀퉁이에서 솟아있는 기둥에 줄로 묶여 있었다.

사내가 입고 있는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보다는 나았다. 손톱으로 얼굴을 얼마나 할퀴어댔는지 피부 가죽이 벗겨지고 시뻘건 근육이 드러난 채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이낙···.”

그런 사내를 착잡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여인의 굴곡을 드러내는 옷을 입은 그녀는 손을 뻗어 사내의 얼굴을 가렸다.

그때 가이낙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손으로 여인의 손을 붙잡았다. 그 여파로 오른 손목을 묶고 있던 귀퉁이 중 하나가 우직, 소리를 내며 박살났다.

“가이낙? 정신을 차린 건가?”

여인이 당혹스런 눈길로 자신의 손목을 잡은 가이낙을 바라보았다. 가이낙은 나흘 전 쓰러진 이후 처음으로 또렷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바짝 말라붙은 입술이 덜덜 떨리고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놈을, 조심···”

“누구야? 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거지? 말할 수 있나?”

제정신을 차린 듯한 가이낙의 모습에 여인은 다급하게 물었다.

“검은, 머리. 보랏··· 빛 눈! 그, 눈···! 컥, 꺼어어···!”

“가이낙!”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여인은 결국 조치를 취했다. 이제까지는 제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려 수를 쓰지 못했지만, 이대로 두다가는 뭣도 알아내지 못한 채 가이낙이 죽게 생겼다.

죽는 건 죽더라도 가이낙을 이렇게 만든 흉수의 정체는 알아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꽉 움켜잡은 가이낙의 손을 떼고 왼손은 그의 가슴에, 오른손은 이마에 두고 주문을 외웠다.

“끄어어어···.”

여인의 의식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지더니, 그대로 가이낙의 숭숭 뚫린 정신 방벽을 지나 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갔다.

‘···이건···?’

눈을 감은 채로 그녀가 움찔거렸다.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과 주문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강력하게 묶고 연결하던 고리들이 무언가에 의해 억지로 파괴된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여인은 그 흔적들을 따라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기억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기억 속에서 가이낙은 드러누워 있었다. 바로 위로 하늘과 햇살이 보였다. 기억 속임에도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며 정오에 떠서 내리쬐는 햇살은 밝았다. 그때 그 밝음과 푸르름을 가리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 자가···.’

그림자의 정체는 쭈그리고 앉은 한 남자의 것이었다. 음영에 가려져 있긴 했지만, 아예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가이낙이 빙의해있는 마법사의 얼굴을 돌린 남자의 손이 느껴졌다. 그리고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

마력을 받아 빛을 토하는, 마치 불꽃을 그대로 눈에 심은 것 같은 눈이 바로 앞에 있었다. 여인은 기억 속의 가이낙이 겪은 고통을 축소해서 느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결국 여인은 황급히 기억 속에서 탈출했다.

“허억!”

거칠게 숨을 들이쉰 여인이 눈을 떴다. 가이낙은 발버둥을 멈추고 축 늘어졌다. 그녀의 주문이 잘 먹혀들어갔다는 의미였다.

여인은 숙였던 허리를 폈다. 그새 뒷목과 등허리가 땀에 젖어 축축했다. 그녀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비틀거리다가 겨우 균형을 찾았다.

“방금 그건···.”

원래대로라면 손쉽게 저항하고 도리어 그녀의 주문을 타고 올라가 반격까지 했을 가이낙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쉽게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건 그의 정신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는 걸 의미했다.

주문을 다루는 마법사의 정신세계는 견고하지만, 동시에 축대 하나만 무너져도 그 위에 쌓아 올려진 것들 또한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이낙의 마력은 강력했다. 그 스스로도 수많은 주문들을 배우고 익혀 자신만의 주문세계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이고, 흑마법과 정신 조종에 한해서는 누구도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다.

하물며 의식을 전이시켜 대륙 곳곳에 심어놓은 씨앗과 단말들을 조종하는 술법을 익힌 가이낙은 그들의 계획에 있어 필요한 동료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단말 하나의 죽음을 버티지 못해 이렇게 됐다는 것은 사뭇 믿기 힘들지만. 이리 증거가 되어 눈앞에 누워있으니, 거기다가 마지막에 잔상처럼 스쳐 지나간 그 눈은 뭐였단 말인가?

“지젤.”

“···오랜만에 보는군.”

한 남자가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남자가 회색 갑주를 덜그럭거리며 다가왔다. 지젤이라 불린 여인이 남자에게 물었다.

“하던 일은 잘 마무리 된 건가?”

“그럭저럭. 이제 북부는 혼란으로 접어들 거다. 레메게누스가 일어났으니까.”

“겨울까지 기다리려고 한 것 아니었어?”

“예상한 것보다 씨앗의 성장속도가 빠르더군. 지금 태어나서 힘을 비축해도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남자는 여인과 같이 가이낙을 내려보다가 말했다.

“완전히 잠재워버린 건가?”

“어쩔 수 없었어. 조금만 더 놔뒀으면 아예 정신이 조각조각 찢어져 버렸을 테니.”

“그의 기억을 읽어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전부 다 찢어져 있더군. 마치 어린아이가 잡히는 대로 조각내고 던져버린 것처럼.”

“소득은?”

“검은 머리 남자, 보랏빛 눈. 이거 둘밖에··· 왜 그러지?”

지젤이 남자에게서 주춤 물러났다. 회색 갑주의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검은 머리, 남자, 보랏빛 눈동자? 확실한가?”

“···아는 남자인가?”

“알지.”

회색 갑주의 사내가 보이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또 그 소식을 듣게 되는군.”

“······.”

지젤은 물러선 그대로 그를 살피다가 천천히 물러났다.

“가이낙은 이대로 두도록 해. 식물이나 다름없는 상태지만, 가진 주문과 마력은 쓸만하니까. 뽑아먹을 게 있으면 그리 해야지.”

“냉정하군. 하지만 마음에 들어.”

지젤은 조심스럽게 물러나다가 문득 뒤를 돌아 물었다.

“당신의 목적은 뭐지?”

“···목적?”

“그래. 우릴 부르고 깨운 목적. 단순히 괴물들을 만들고, 고대에 잠들었던 악마를 깨우고, 잃어버린 마수들의 왕을 되찾아주고···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불만인가?”

지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불만은 없다.”

“그럼 뭐가 문제냐. 하고 싶은 걸 하도록 해라. 힘을 키우고, 사람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주문을 창조해라. 이 정체된 세상을 순환하게 만들어.”

“···정체된 세상?”

남자의 말에 고민하던 지젤이 고개를 들었을 때, 회색 갑주는 사라지고 없었다.

***

“여기, 이거 받으시겠습니까.”

“뭐요?”

“술입니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요?”

러셀은 씩 웃었다.

“그럴 리가.”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제가 오기 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헤딜룬드는 과일주로 유명하다고. 이름이 레븐델이라는 술인데, 각종 과일과 풀을 한데 넣어서 삭힌 것이라고 하더군요.”

파렐스는 앉으면서 손에 쥐고 있던 큼직한 쇠잔을 내밀었다. 러셀이 한 손으로 그 잔을 받으니 품속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원래는 파란 유리인 것 같은데, 지평선 너머로 불타며 사라지는 노을빛을 받아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술병이었다.

“어디서 난 거요?”

파렐스는 러셀의 술잔에 병을 기울이며 대답했다.

“병사들이 갖다줬습니다. 무너진 지하 술 창고에서 꺼내왔다더군요. 형님이 아시면 노발대발하시겠지만, 하하. 이렇게라도 숨 돌리는 시간이 있어야지요.”

“벌써 친해지셨나 보군.”

“도시 하나 박살 날 위험을 어찌저찌 넘기다 보니, 이렇게 되더군요.”

“그건 그렇지.”

피식 웃은 러셀은 파렐스에게 병을 넘겨받아 그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미지근하군.”

“아무래도 지진 때문에 시설이 완전히 망가져 있다 보니···. 이 병도 다 깨진 병들 사이에서 겨우겨우 남아 있던 것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술은 보통 어떻게 마시나? 차갑게? 아니면 따뜻하게?”

“계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차갑게 마시긴 합니다···. 오오?”

러셀이 한 손에 냉기를 일으키자 파렐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기하군요. 마법입니까?”

“마력의 속성을 변환시킨 거지. 마법은 아니고. 전사들도 요령만 알면 할 수 있소.”

“오. 요령이 뭡니까?”

“그 속성을 알고, 경험해보는 것. 제일 빠른 건 직접 맞아보는거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러셀도 그렇게 얻은 겁니까?”

“아니. 난 그냥 되던데?”

파렐스의 짜게 식은 눈을 받아넘긴 러셀은 마력을 냉기로 결정화 시킨 다음 각자의 잔에 담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미지근했던 술이 차가워지며 표면에 얇은 살얼음이 끼었다.

해가 지긴 했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아직 더운 날씨 속에서, 차가운 잔은 그것만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좋군요!”

“그렇지.”

옅은 미소를 띤 파렐스가 자신의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건강을 위해서.”

“그쪽도.”

건강을 위한다면 술은 지양해야 맞겠지만, 그러면 무슨 재미로 또 살겠는가. 두 사람은 술잔을 기울였다.

차가워진 술은 혀에 닿자마자 대단한 과일향을 풍겼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고, 동시에 진한 향기가 입천장을 타고 올라가 콧속을 훅 데웠다.

식도와 위장에 타는 듯한 화끈함을 선사하는 도수 높은 술이었다. 한 번에 넘긴 깔끔하게 넘긴 러셀에 비해 파렐스는 몇 모금 마시다가 캑캑거렸다.

“콜록, 콜록. 어우, 이거 엄청 독하네요.”

“그렇군. 몇 십 년은 묵은 술 같은데.”

“그런 것도 구분이 갑니까?”

“아니. 그냥 하는 소리지.”

파렐스는 러셀의 능청거림에 씩 웃더니 조금씩 술을 마셨다. 술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두 남자는 잠시 가만히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았다. 지평선 너머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는 하루의 마지막을 황금빛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때, 파렐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러셀.”

“듣고 있소.”

“난 당신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루실에게 들었던 남동생과는 확연히 다른 분이라서요. 악마를 죽이고, 골렘을 처치하는 모습만 보면 다시 없을 전사 같기도 하고. 제 형님을 그렇게 한 번에 제압해서 정신을 조종한 걸 보면 무서운 마법사 같기도 하고···.”

나흘 전 막 발작과 정신착란에 걸려 있던 겔러드 성주를 마안을 통해 의식의 방향을 바꾼 것에 대한 말이었다. 솔직히 러셀 스스로도 타인의 생각과 정신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꺼림칙했다.

예전에 집에 있을 적, 눈의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을 시절의 안 좋은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것도 있지만. 마안의 힘을 그런 식으로 쓸 때마다 그의 정신 또한 같이 어두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마안과 그 힘은 분명 유용하지만, 잠깐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곧바로 그의 정신을 좀먹고 러셀이 스스로의 자의식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한 기색을 언뜻 내비칠 때도 있었다.

그의 신체 일부분인데도 가끔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현상은 마치 다른 누군가가 멋대로 육체를 조종하려는 듯한 불쾌감을 낳게 했다. 러셀이 말했다.

“그때는 미안했소. 급한 일이라고는 해도, 남의 의사를 그렇게 멋대로 뜯어고친 건 해선 안 될 일이지. 사과드리오.”

러셀의 사과에 파렐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사리사욕을 위한 것도 아니고, 이 도시를 구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닙니까. 도구에는 죄가 없습니다. 다루는 사람의 올곧은 의지만 있다면.”

“내 의지가 올곧았다고 생각하시오?”

파렐스는 러셀을 바라보며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 아래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그의 말에 러셀도 다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임시방편으로나마 천막을 줄지어 세워서 임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무너진 판자를 끌어모아 뼈대를 세워 판잣집을 만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각종 가재도구를 끌고 나온 사람들은 여러 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 솥을 올렸다. 저녁 식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채소와 고기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스튜를 그릇에 담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밥을 먹었다. 그 사이를 집이 있든 없든 그저 놀기만 하면 좋다는 듯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파렐스가 불쑥 말했다.

“아무래도 전 당분간 여기에 남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성주 때문인가?”

“예.”

러셀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겔러드 성주의 몸 상태를 떠올렸다. 도시 재건을 시작한 지 사흘이 되던 날 겔러드 성주가 쓰러졌고, 러셀은 바로 그의 상태를 살폈다.

겔러드 성주의 건강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한 달을 넘게 감옥 안에 갇혀 있었고, 제대로 된 식사가 제공 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목숨만 붙여놓으면 된다는 식으로 관리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와중에 도시가 통째로 떠오르는 사태 속에서 말을 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람들을 구하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일을 종일 했으니 안 그래도 노쇠한 육체에 부담이 간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의사 말로는 최소한 삼개월은 정양을 해야 건강이 돌아온다고 하니, 저라도 옆에서 남아 도와드려야지요.”

“가족은 없다고 했던가?”

“예, 아직은. 도시의 발전을 위한다고 눈 코 뜰새 없이 바빠서 그랬다는데, 참. 그것 때문에 결국 사악한 마법사를 불러들이고, 도시 하나가 작살날 뻔했다는 게 슬프군요.”

“당신이 오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리 됐겠지.”

“···그것도 그렇습니다.”

파렐스가 웃차, 하고 일어섰다.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러셀도 적당히 있다가 들어오십시오.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 할 테니.”

“그러지.”

파렐스는 러셀의 술잔도 챙겨서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러셀은 품에서 연초 하나를 들어 입에 물었다. 곧 하얗고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눈이 북쪽을 바라보았다.

***

다음날. 러셀과 이루실, 아엘라시스는 각자 말을 타고 헤딜룬드 시의 외성 관문에 서 있었다.

날씨는 약간 우중충했다. 비가 올 것 같기도,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한 날씨였다. 이제까지 계속 맑았던 것에 비하면 흐린 날씨이긴 했지만, 그게 여정을 늦출 이유는 되지 못했다.

“조금 더 쉬었다가 가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파렐스가 나와 있었다. 겔러드 성주는 아직 자리를 털고 나오질 못했기에 그 혼자 나온 것이었다.

“닷새나 쉬었으면 오래 쉰 거지. 그리고 알아봐야 할 게 있소.”

“···이번 일에 대해서 말입니까?”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은 얼굴이 된 파렐스도 그의 말에 공감하며 말했다.

“확실히 시국이 하 수상하긴 하지요. 내전도 그렇고, 괴물들의 준동도 그렇고. 이번에는 아예 도시 하나를 일으키려 하고. 만약 그렇게 됐으면 이 지방의 물자 경로가 꽤 엉망이 되었을 겁니다. 길을 한참 돌아가게 되었겠죠.”

“안목이 좋으시군.”

“하하, 뭐.”

이루실이 다가와 파렐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파렐스는 그 하얀 손을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잡았다.

“고마웠어. 당신이 아니었으면 러셀을 찾는 데 한참은 걸렸을 거야.”

“정말 그랬을 겁니다. 못 해도 두 달은 더 헤매고 나서야 실마리라도 찾으셨겠지요··· 아아아! 아픕니다!”

손이 꽉 잡힌 파렐스가 비명을 한참 지르고 나서야 이루실은 손을 풀어줬다. 손을 탈탈 턴 파렐스는 이어서 아엘라시스와 인사했다.

“잘 가요, 꼬마 용 아가씨. 다음에는 본래 모습으로도 한번 보고 싶네요.”

“그때는 한 번 태워줄 수도 있어.”

“하하하··· 그건 사양하지요···”

모두와 인사를 나눈 파렐스가 러셀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북쪽으로. 슬슬 누나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할 때가 된 것 같군.”

그 말에 이루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겠습니다. 여정에 햇살만이 비치길 빕니다.”

“그쪽도. 성주를 잘 챙겨주길 바라오.”

고개를 끄덕인 일행은 곧 말에 올라타고 말머리를 돌려 밖으로 빠져나갔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세 마리의 인마가 지평선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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