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속셈
콰아아앙!
데커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적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나 러셀과 이루실을 덮쳤다. 진작 눈을 빛내고 있던 러셀이 손을 올려 전방을 막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을 감싸 안고 휘몰아치는 폭염.
그 폭발적인 화염에 깃든 마력과 감정은 당연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돌덩이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열기도 러셀의 손에서 뻗어지는 마력과 진동에는 사그라졌다.
손짓 한 번으로 몰아친 폭염을 흐트려 버린 러셀이 자세를 잡은 찰나.
쿵. 쿵. 쿵. 쿵. 쿵.
일정한 박자에 맞춰 울리는 진동이 들렸다. 그리고 폭염이 뛰쳐나온 지하에서, 붉은 눈을 빛내는 이목구비 없는 골렘들이 줄지어 걸어 나왔다.
내성에서 보았던 아무런 장식이 없었던 것들에 비해, 지금 나오는 것들은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또 병과가 구분되는 것인지 창을 든 골렘도 있었고 활이나 방패, 혹은 마법사처럼 로브를 입고 공중에서 둥둥 뜨고 있는 골렘도 있었다.
몸체와 똑같이 검은색 광택을 반사하는 지팡이의 끝에서 불꽃이 파직, 파직 하고 일어나고 있다. 저 마법사 복장의 골렘이 러셀과 이루실에게 폭염을 쏟아부은 모양.
러셀은 말에서 내린 다음, 크라이에게 속삭였다.
“뒤로 물러나 있어라.”
푸르륵, 하고 고개를 흔든 크라이는 이루실이 타고 있던 말과 함께 유적의 입구를 벗어났다.
이루실은 자신의 말을 데리고 총총히 빠져나가는 흑마를 보다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말의 말도 할 줄 알아?”
“몰라.”
“근데 방금···”
“쟤가 똑똑한 거야.”
러셀은 지체하지 않았다. 곧바로 코트 안쪽에서 마지막 서리를 꺼낸 다음, 던졌다. 러셀의 움직임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속도.
떠엉!
가슴팍에 도끼날이 박혀 든 골렘 마법사가 그대로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지팡이와 팔을 이용해 도끼를 빼려 용쓰지만, 러셀이 왼손을 펼치자 그대로 그에게 끌려가면서 무용지물.
러셀은 왼손으로는 도낏자루를 잡고 오른손으로 골렘의 목을 틀어잡은 다음 이목구비 없는 머리를 바라봤다. 인간으로 치면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빛나는 건 붉은색의 광채뿐. 그리고 그 광채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그가 겪어보았던 마력의 패턴과 흐름이었다.
“사람을 희생시켜 만든 돌. 생명의 돌이군.”
“···그걸 네놈이 어떻게 알지?”
골렘 군단의 뒤편에서 빈틈없는 호위를 받으며 나타난 데커즈가 의문성을 흘렸다.
데커즈는 마법사 골렘의 목줄기를 틀어잡고 있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너로군. 우리의 계획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일그러트리는 놈이.”
“우리?”
“아차,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장난스러운 미소와 몸짓. 하지만 러셀을 노려보는 그 눈에는 살의만이 가득할 뿐,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조차 의도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퍼즐 조각 하나 좀 맞추려 하면 나타나서 훼방이나 일으키는 놈. 그래도 상관없다. 여기서 네놈은 죽을 테니까.”
“네가 악마나 흡혈귀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건가?”
“아니, 아니. 그건 당연히 아니지.”
털털히 웃으며 고개를 내젓는 데커즈.
“이 고대의 골렘들이 대신해줄 거다.”
그의 말이 끝나는 것이 무섭게 로브를 입은 마법사 차림의 골렘 다섯 기가 위로 떠 올랐다. 제각기 쥐고 있는 지팡이의 끝에서 검붉은 마력광이 어리고 순식간에 쏘아진다.
“러셀!”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루실이 곧바로 달려와 마력을 전개했다.
촤촤촤촥!
그녀가 밟고 있는 땅바닥과 손에서 전개된 마력이 빠르게 조형되고, 수십 개의 사슬이 되어 그 머리를 날아오는 섬광을 향해 돌렸다.
직후 허공에서 정확히 러셀과 이루실을 노리고 쏘아진 섬광과 사슬이 충돌했다. 검붉은 마력의 빛과 하얀빛이 뒤엉키고, 어우러지며 폭발했다.
유적 입구를 둘러싸고 있던 단단한 벽과 초소, 건물들이 그 폭발의 충격에 휘말려 부서지고 무너졌다.
그드드드드드드-!
지팡이에서 쏘아지는 섬광은 멈추지 않았고, 이루실 또한 사슬을 뽑아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러셀은 쥐고 있던 마법사 골렘의 가슴팍에서 도끼를 빼들었다.
이미 꽁꽁 얼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마법사 골렘은 그 충격에 온몸이 부서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러셀은 그 잔해의 틈에서 붉은색의 수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명력을 강제로 뽑아 만들어지는 돌.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서려진 원념과 한이 짙게 느껴지고, 또 그 원념과 한이 사방의 마력을 빨아들여 음의 마력으로 변환시킨다.
인간의 혼魂은 보내고 백魄을 이용해 마력을 순환시키고 충전하는 구조. 인신 공양의 금술을 이용한 주문에 의해 생성되는 끔찍한 결과물은, 이전에 보았던 겔리오투스의 주문을 이용한 생명의 돌보다 한층 더 발전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생명의 돌을 핵으로 삼고, 동력으로 움직이는 골렘들은 더 빠르고, 강력한 힘을 내포한 채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쾅!
도끼로 내려친 창대를 막자 러셀이 딛고 있던 바닥이 움푹, 깨져나갔다. 러셀은 부지불식간에 기습을 가한 기사 골렘을 바라봤다.
오래된 양식의 갑옷을 입고 있는 골렘. 투구 속의 T자형 홈에 어린 붉은색 빛이 러셀을 직시하고 있었다.
창대를 튕겨낸 러셀은 그대로 다리를 뻗어 옆 발차기를 먹였다. 그러자 골렘은 놀라운 반사 속도로 튕겨 나간 창대를 회수하고 세로로 세운 다음 그의 발차기를 막아냈다.
거기에 러셀의 발차기와 창대가 닿자마자 그에 저항하지 않고 뒤로 날아가 충격량을 감소시키기까지. 이전 상대했던 골렘들과는 확연히 다른, 무술을 몸에 익힌 동작들이었다.
쉬아악!
옆으로 발을 뻗은 채로 서 있는 러셀을 향해 다른 골렘들이 달려들었다. 하단을 묵직하게 베어오는 도끼 창과 상단을 노리는 커다란 칼.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절대 피할 수 없는 각도와 속도로 날아드는 공격 앞에서 러셀의 신형이 잠시 흐릿해졌다.
콰득!
러셀은 그 두 개의 공격을 막아냈다. 도끼 창은 뻗었던 발을 아래로 내리꽂아 그 창날을 바닥에 처박았고, 상단을 향해 날아오던 칼날은 그 손잡이 부분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 세운 것.
엄청난 반사 신경도 그렇지만, 이미 막대한 힘을 싣고 휘둘러지던 무기의 받침점을 직접 잡아 세우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가 가능하다는 점이 더 놀랍다.
기사처럼 갑옷을 입고 있는 골렘 두 기가 무기를 회수하기도 전에 공중을 휘돌았다.
쿠당탕탕!
한데 겹쳐서 날아간 골렘들이 다가오는 다른 것들과 부딪쳐 볼링핀처럼 쓰러졌다. 두 골렘을 날려버린 러셀은 조용한 호흡을 내뱉은 채로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콰아앙!
그 사이 이루실의 사슬들이 섬광 세례를 꿰뚫고 날아가 다섯 기의 마법사 골렘을 격추, 떨어트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루실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들리는 굉음에 비해 실질적인 피해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
과연 지팡이를 들고 있는 마법사 골렘들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듯 추락한 자리에서 멀쩡히 일어섰다. 다른 기사 골렘들처럼 투구가 씌워져 있는 그들의 안면부, T자형의 홈에서 붉은색의 빛이 번뜩인다.
“내구도가 상상 이상으로 단단하네.”
이루실의 말에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쿠구구구궁-!
골렘 군단과 데커즈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진동은 계속해서 도시를 울리고 있었다.
쩌적, 하고 갈라지는 균열. 알 수 없는 부유감. 러셀이 혀를 찼다.
“생각보다 이르군.”
건물들이 쉴새 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단단한 지지대를 박아넣은 구조물들조차도 흔들리는 지반의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뿌리째로 뽑히며 기울어지고 넘어졌다.
“보아라! 이게 고대 마도 도시가 가졌던 저력이다!”
미친 듯 웃어젖히는 데커즈가 쥐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러자 지팡이로부터 퍼져나간 마력의 파동이 유적을 넘어, 일정한 선과 문양을 그리며 확대되었다.
그 규모는 반경 1킬로미터에 달하는 원형의 지름. 그 지름 바깥의 모든 것들을 부수고, 으깨면서 거대한 지반이 공중으로 부유하기 시작했다.
“루-바쿰니오라! 이제는 모두가 잊어버리고, 또 잃어버린 부유성의 이름이지.”
러셀은 아엘라시스가 영주의 접견실에서 뜬금없이 중얼거렸던 말을 기억했다. 오래된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러셀은 그대로 눈을 아래쪽으로 향했다.
루-바쿰니오라라는 이름의 부유하고 있는 물체, 그 깊숙한 중심에 자리 잡은 존재가 보인다. 짙은 어둠이 가리고 있는 그것은 거대한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소란과 진동이 그 존재의 피부를 자극하고 있었다. 움찔거리는 육중한 몸체. 조금씩 울리기 시작하는 거대한 심장 박동. 오랜 시간 동안, 거의 10년에 한 번꼴로 울리는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하면서 피를 온몸에 돌렸다.
그리고 그 깊숙한 중심에서 다시 멀어진 그의 시야가 골렘들을 바라보았다.
“어디다 써먹으려고 골렘들이 그 유적에 들어있었는지는 아나?”
“알 게 뭐야! 어차피 써먹지도 못하고 지하에 버려져서 수백 년간 썩어가고 있었는데!”
“그 골렘들, 일정한 배치와 간격을 두고 서 있지 않았나?”
“······뭐?”
러셀의 허를 찌르는 질문에 데커즈가 멈칫했다.
정오를 지난 햇살은 아직 강렬한 열기와 빛을 머금고 점차 천공을 향해 가까워지는 지반을 내리쬐었다. 데커즈는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을 흘리며 방금 러셀의 질문을 곱씹었다.
유적의 깊숙한 지하 심층부, 납치한 사람들의 생명력과 피를 뽑아 그들이 전해준 지식대로 생명의 돌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돌을 거대한 공동에 중구 난방하게 서 있던 골렘들의 가슴에 이식했다.
‘···그때 골렘들이 서 있던 자리가.’
그저 아무렇게나 세워놓았다고 생각했던 자리와 배치. 당장 눈앞에 나타난 오래된 유물들을 직접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흘려넘겼던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런 걸 신경이나 쓸 틈이 있을 것 같나?”
척, 척, 척하고 골렘들이 움직이고, 러셀과 이루실은 어느새 반원으로 포위되어 있었다. 뒤로 길이 있긴 하지만, 이미 떠오르기 시작한 부유성을 생각해보면 막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유적은 이제 나의 것이다. 이 수백의 골렘 군단도 마찬가지로!”
침을 튀기면서 말을 내뱉는 데커즈의 눈에는 기이한 광기가 돌고 있었다. 그런 마법사를 바라보던 러셀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자세를 잡았다.
마지막 서리는 코트 속에 넣고, 대신 나힐니르를 꺼내 양손으로 쥐었다. 넉넉한 칼자루가 크고 단단한 그의 손에 감기고. 묵색의 검신이 들리며 햇빛을 빨아들였다.
“일단은 너부터 치워야겠군.”
“누가 할 소리를!”
빠아아아아아.
장궁을 쥔 골렘들이 시위를 크게 당겼다. 젖혀진 어깨만큼이나 당겨진 시위와 활대, 그 위에 얹힌 검은색의 화살들이 일제히 러셀을 겨눴다.
촤르르르.
대검을 든 러셀의 곁으로 사슬을 늘어트린 이루실이 천천히 다가와 섰다.
“목표는 뭐야?”
“일단 저 말 많은 마법쟁이를 잡는 거.”
“알았어.”
푸슈슈슈슉!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골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냈다. 그냥 나무 화살이 아니라 골렘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과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철시와 같은 것이었다.
보통의 화살보다도 빠르게 날아온 화살들은 저마다 마력을 머금은 채 쏘아져 러셀과 이루실을 노렸다.
하지만 화살들이 그들을 꿰뚫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전개된 러셀의 마력이 일대의 권역을 장악하면서 운동 에너지가 사라진 것이었다.
수십 발이 넘는 화살들이 러셀과 이루실을 감싼 채 공중에 고정되어 있었다. 데커즈가 눈살을 찌푸렸다.
“일개 전사가 신체 강화가 아닌 권역 지배를 하는데 마력을 쓰다니. 마법사냐?”
러셀은 대꾸하지 않고 화살의 방향을 돌렸다. 그의 손짓에 회전한 화살들이 그 머리를 골렘들에게 향하고, 쏘아졌다.
쓔아아악!
러셀의 마력이 부여되어 날아가는 화살들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기세가 있었다. 자신들이 날린 화살에 꼬챙이가 될 위험에 방패를 든 골렘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마법사 골렘들은 일제히 투구에 난 홈을 빛내며 손을 들어 올렸다.
반투명한 방어막이 형성되는 되는 것과 동시에 화살이 충돌했다. 과연 화살을 이루고 있는 재료가 범상치 않은 것인지, 마력으로 만들어진 방어막은 종잇장 찢기듯이 찢어졌다. 그리고 골렘들의 방패와 충돌했다.
따다다다당!
철판에 콩 볶는 소리가 요란했다. 움푹움푹 패인 방패들의 틈에서, 골렘들이 눈을 빛내며 러셀과 이루실이 있는 자리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여기야.”
골렘들의 안면이 아래로 향했을 때, 그들의 시야에 가득 찬 것은 하얀 쇠사슬의 폭포였다. 밀집 대형이 한순간에 흐트러지며 기사 골렘들이 넘어졌다.
한쪽 측면이 완전히 와해되며 대형이 붕괴하고, 그쪽을 향해 주문이 집중된다. 데커즈는 지팡이를 들고 악단을 지휘하듯이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눈은 쉬지 않고 주변을 훑으며 사라진 러셀을 찾아 움직였다.
“거기냐!”
데커즈의 지팡이가 가리키자마자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몸을 숨겼던 러셀이 나타났다. 검은색의 코트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전사가 달려드는 기사 골렘들 속을 파고들었다.
떠더더덩!
둔중한 쇳소리와 함께 골렘들이 위로 떠 올랐다. 생김새만큼이나 무거운 골렘들이 공중으로 떠밀릴 만큼 강력한 힘으로 공백을 만든 러셀이 바닥을 박찼다.
그 뒤로 떠올랐던 골렘들이 바닥에 쿵, 쿵 하고 떨어졌다. 그 기사 골렘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러셀이 치고 나가면서 남긴 마력이 골렘들의 몸체에 스며들어 회로에 과부하를 주고 있었다.
러셀은 직선으로 거리를 주파했다. 그 끝에는 골렘들의 호위를 받는 데커즈가 있었다. 다른 기사 골렘들이 데커즈를 지키기 위해 가려 했지만.
“못 가.”
바닥을 뚫고 나온 쇠사슬들이 기사 골렘들의 다리와 허리를 잡아채고 넘어트리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게 이루실이 러셀의 움직임을 보조하고 다른 골렘들의 진형을 무너트림과 동시에 마법 주문을 튕겨내는 사이.
모든 골렘들의 공격은 이미 지나간 러셀의 뒷공간만을 베거나 찔렀다.
파직, 하고 러셀의 몸체 위로 전광이 어렸다. 동시에 러셀이 뒤로 돌아서면서 등을 찔러오는 창날을 거두면서 도리어 골렘의 몸통에 대검을 꽂았다.
그리고 푸른 전광이 번쩍이고, 마치 별자리의 선을 잇는 것처럼 전광이 골렘들 사이를 내달렸다.
파지지지직!
“무슨···!”
데커즈의 경악 어린 비명을 한 귀로 흘려넘기면서 러셀은 꽂았던 대검을 회수했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골렘들이 무너지고, 잔해가 구르는 사이에서 러셀은 다시 바닥을 박차 데커즈를 향했다.
“죽어라!”
그런 러셀을 두려움 어린 눈으로 보면서도, 쉼없이 주문을 외운 데커즈가 지팡이를 들어 그를 가리켰다.
기이이이잉-!
바로 어제 보았던 샤델록의 반지에 내장되어 있던 주문, 사기가 응축된 초록색 광선이 지팡이 끝에서 쏘아졌다. 광선은 그대로 날아가 러셀의 얼굴에 직격했다.
“러셀!”
“으하하하!”
놀란 이루실의 비명과 승리를 확신한 데커즈가 광소를 터트렸다.
“이런 지근거리에서 맞았으니, 너도··· 어?”
데커즈의 말끝이 흐려졌다. 정통으로 광선을 맞아 얼굴이 날아갔어야 할 러셀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에.
“어, 어떻게?”
초록색 광선을 맞은 왼쪽 눈의 피부가 까맣게 일어나있다가,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왔다. 재생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고 왼쪽 눈에 이르렀다.
연기가 가신 곳에는 흰자가 검게 물들고, 홍채가 완전히 자색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다른 눈이 데커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그 알 수 없는, 미지의 생명체가 가졌을 법한 눈동자에 주춤 물러선 순간. 러셀이 다리에 힘을 주었다.
쿵, 하고 오른발이 푹 꺼지면서 바닥이 으스러지고 사방으로 거미줄 같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지반이 떠오르는 것과는 결이 다른 울림에 골렘들조차 균형을 찾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데커즈는 자신을 노려보는 그 자색 눈동자를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창백한 얼굴이 되어 소리쳤다.
“마, 막아!”
데커즈가 그리 외치자 다섯 기의 마법사 골렘들이 일렬로 서면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중첩된 다섯 개의 마법진과 방어막이 한순간에 정렬되면서 데커즈의 앞을 방어했다.
그리고 땅바닥을 박살 내면서 일어난 반동이 러셀의 몸을 타고 올라가 그의 오른쪽 어깨에 이른 순간.
펑-하고 공기가 밀려나는 충격파가 발생하고, 러셀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나힐니르가 허공을 찢으며 날아갔다. 그리고 중첩된 다섯 개의 마법진과 방어막을 일거에 찢어버리고 마법사 골렘들을 꼬치 신세로 만들었다.
“우와악!”
공중에 떠 있던 데커즈가 황급히 몸을 날리고, 그 자리로 마법사 골렘 다섯 기를 꿰어버린 나힐니르가 박혔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러셀이 한 손으로 대검을 뽑아 들었다. 데커즈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햇빛을 머리 위로 받으며 역광이 된 러셀과 어두운 얼굴에서 불타는 두 눈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
“으악!”
러셀의 왼손이 데커즈의 멱살을 쥐고 들어 올렸다.
“그 우리라는 놈들에 대해서 더 말해봐라. 뭘 꾸미고 있는 건지, 전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