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35화 (136/225)

135화 유적 (3)

“···이게 무슨 진동일까요. 아까부터 울리고 있던데.”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겠지. 올라갑시다.”

겔러드를 업은 파렐스와 러셀 일행은 빠르게 왔던 길을 되돌아와 위로 향했다. 그리고 깨끗하고 넓은 방을 찾아 안으로 들어간 뒤, 침대에 겔러드를 눕혔다.

침대에 누워있는 겔러드는 앙상하고 마른 몸이었다. 거기에 열까지 나고 이마와 얼굴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정신적인 충격 때문인지 뭔지, 몸에 이상이 생긴 듯 했다.

파렐스가 겔러드의 상태를 살피다가 러셀을 돌아보았다.

“어, 어쩌죠?”

“잠시.”

러셀은 파렐스를 비켜서게 하고 한 손을 이마에 올렸다. 그리고 마력을 실타래처럼 가늘고 길게 뽑은 다음 겔러드의 몸속으로 침투시켰다.

‘음.’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속도 그리 좋진 않았다. 심장의 박동은 금방이라도 멎을 것처럼 희미하게 뛰었고, 근육도 오랫동안 사용을 안 한 탓인지 약해져 있었다.

오장육부나 신경에 관한 쪽은 그도 잘 알지 못했기에 뭐라 판단하긴 힘들었다. 일단 그는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 치유 마법을 행했다.

영창이나 주문, 시동어는 모르지만, 예전 이블린이 한 번 보여줬을 때 마력의 배열을 본 후로 까먹지 않고 있었다.

하얀빛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겔러드의 상태는 그대로였다. 외상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인지, 마력의 도움만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지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주문에 능통한 동료가 있었다.

“칼리아.”

러셀의 부름에 그의 그림자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칼리아가 스르륵 올라왔다. 마치 그림자 자체가 형태를 가지고 올라오는 것처럼 위로 솟더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고, 비눗방울이 톡 터지듯이 검은 표면이 사라지고 칼리아의 모습이 나타났다.

파렐스는 그런 그녀의 등장에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엘라시스는 칼리아의 손을 맞잡았고, 이루실은 그녀를 슬쩍 쳐다본 후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어떤지는 알지?”

“음. 대충은 알고 있다.”

“이 남자가 성주인데, 속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한 번 살펴주겠나?”

“큼. 그대의 부탁인데, 당연하지 않으냐? 비켜 보아라.”

괜히 헛기침한 칼리아가 겔러드의 가슴팍 위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손바닥이 빛나자 겔러드의 갈비뼈가 드러난 가슴에서 붉은빛이 아른거렸다. 마치 가슴 안쪽에서 직접 빛이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고, 허파와 심장, 갈비뼈의 어슴푸레한 윤곽이 비쳐 보일 정도였다,

“오···”

신기한 마법을 본 사람들이 그렇듯이 러셀과 일행들 또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칼리아의 마법을 지켜봤다. 칼리아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입을 다물고 집중했다.

가슴 안쪽을 비추던 빛은 점점 전신으로 퍼지다가 스륵, 흩어졌다. 잠시 후, 칼리아가 손을 떼자 겔러드는 아까보다 숨결이 편안해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거리던 호흡이 안정되고 전신에서 배어 나오던 식은땀도 멈춰 있었다.

러셀은 마안으로 아까보다 안정된 심장의 박동이나 상태를 확인했음에도 칼리아에게 질문했다.

“상태는?”

손을 떼고 일어선 칼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은 안정적이다. 내 생명력을 조금 나눠주었지. 피를 많이 흘린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제대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내장의 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가벼운 식사부터 먹여야 차도가 좋아질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칼리아.”

파렐스는 칼리아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겔러드의 상세를 살폈다. 그때 겔러드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그가 눈을 떴다.

“···여긴?”

“형님! 정신이 드십니까?”

겔러드는 천천히, 신음을 내뱉기는 하지만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침대에 앉은 채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면면을 차분히 살펴보았다.

그 모습에서 아까의 감옥에서 보았던 겁에 질리고 발작하던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침착함과 차분함을 얻은 사내는 비록 더럽고 냄새가 날지언정, 한 도시를 지배하는 성주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날 구해줘서 고맙네. 내 동생의 동료분들인가?”

“그렇소. 겔러드 성주가 맞소?”

“허, 성주라니. 당치도 않지. 마법사의 꼬임에 넘어가 힘과 자유를 잃은 자가 어찌 성주란 말인가···”

겔러드의 한탄 어린 목소리가 성대를 긁고 나오며 낮게 가라앉았다. 한쪽 무릎을 꿇은 파렐스가 그런 겔러드를 보며 말했다.

“형님.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주십시오.”

겔러드는 파렐스의 푸른 눈동자를 보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마법사, 데커즈는 두 달 전쯤 우리 도시에 찾아왔었다.”

겔러드의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두 달 전, 겔러드는 여느 때와 같이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쭉 이어져 온 유적의 발굴에 착수했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 할아버지들과 달랐던 점은 폐쇄적인 도시의 정책을 버리고, 다른 도시, 영지와 교역을 활발히 활성화 하면서 동시에 유적의 발굴 속도를 빠르게 하자는 것에 있었다.

이제까지 선조들이 모으거나 탕진만을 반복해왔던 도시의 재물을 한데 모으고, 그것으로 발전을 꾀하자 헤딜룬드는 빠르게 융성해졌다.

그리고 하는 둥 마는 둥 모험가들과 여행자들에게만 맡겼던 유적의 발굴 또한 전문가들을 불러 속도를 높였다.

겔러드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도시의 발전과 더불어 지하 깊숙이 묻혀있던 유적들 또한 전에는 없던 매장품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장품들을 발굴하고, 미궁 같은 구조물 속에서 탐사 하기를 한참. 겔러드는 세기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물건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골렘이었다. 도대체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전의 것일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상태의 골렘. 하지만 오래된 것은 그 골렘을 보관하고 있던 공간일 뿐, 골렘 자체는 깨끗하고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슨 재료를 썼는지 검은 광택을 반사하는 몸체. 거기에 강도 또한 무척 단단해 강철 칼로 내리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작금의 골렘 마법은 자연의 원소만을 끌어모아 뭉치는 것이 한계였다.

들이는 시간과 마력, 마력을 먹고 자라는 풀이나 희귀한 지형에서 나는 특별한 금속이 재료로 들어가지 않으면 창조에도, 유지에도 적잖은 힘이 들어가는 마법.

노력과 들인 재물에 비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고, 그마저도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면 사람과 비슷한 동작은 하기도 힘든 마법이었다.

하지만 헤딜룬드의 유적에서 발견된 골렘은 이미 완성된 인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부족한 것은 하나, 골렘을 작동시킬 마석 뿐이었다. 그것도 방대한 마력을 필요로 하는.

그러나 인간과 흡사한 구조와 관절, 길쭉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골렘은 겔러드 성주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유혹이었다. 분명 고대의 문명을 이룩했던 시절 만들어진 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때 겔러드에게 낮선 이가 찾아왔다. 스스로를 골렘 술사라고 소개한 마법사, 데커즈였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으나, 겔러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유적에서 발굴한 골렘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자신을 골렘을 다루는 술사라고 소개할 마법사면 뭔가 알아보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여.

과연 유적에서 발굴된 골렘의 가치를 데커즈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가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유적의 발굴은 한 층 더 속도가 올라갔고, 결국 거대한 공동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있던 것은···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었지. 새로운 주인의 명을 기다리는.”

그것도 위에서 발견되는 골렘과 달리 더 정교하고, 매끈한 몸체를 지닌 인형들이었다. 그냥 골렘이라고 부르는 것에 실례를 느낄 만큼 진보된 인형.

어떤 왕, 군주, 혹은 지배자가 남겨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들은 병사가 맞았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문제는 있었다. 바로 동력이었다. 외형은 시간이 지나도 삭지 않았지만, 움직이기 위한 힘은 턱없이 부족했다. 아니, 아예 없었다.

심장부의 마석이 있긴 했지만 당장 마력집적진을 그려서 마력을 채우려고 해도 한세월이 걸릴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겔러드는 그 골렘들을 쓸 생각이 없었다. 병사는 이미 도시에 충분했다. 거기에 성주인 그에게 고대의 유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만 해도 시비를 걸거나 아예 전쟁까지 불사할 사람들은 주변에 차고 넘쳤다.

왕가의 후계 다툼이 심화되고, 각 지방에 이르던 중앙 왕실의 힘이 약화되고 있는 이 순간. 자칫하면 폭발적인 내전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의 도화선을, 겔러드는 먼저 끊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보다 조금 더 강한 심장을 타고났다고는 해도 결국 그도 안전함을 추구하는 유전의 고리를 완전히는 배제하지 못한 것일까.

“하지만 그쯤에서 데커즈는 다른 생각을 내놓더군···”

그리고 이후의 상황은 러셀이 짐작한대로 흘러갔다. 수백 기의 골렘, 그것도 고대의 유물들. 작금의 골렘 마법보다 더 진보된 골렘을 보고 눈이 돌아간 데커즈이 수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성주의 최측근 인물들을 제거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성주까지 유적에서 발견한 골렘으로 대체. 그 과정에서 성주는 데커즈가 어두운 마법, 흑마법에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서 흑마력을 일으켜 사람의 심장을 뽑고, 산채로 생명력을 갈취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모르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다 내 탓이지··· 내 탓이야.”

이야기를 마친 겔러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파렐스가 침묵하고 다른 일행들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이야기하는 내내 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던 러셀은 성주가 말을 다 마친 듯 보이자 그에게 고개를 내렸다. 그의 자색 눈동자가 마력을 받아 옅은 빛을 흘렸다.

“내 탓이니 누구 탓이니 하는 짓은 관두고, 일어나시오. 당신은 성주요. 이 도시를 지킬 책임이 있는. 일어나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시오.”

“···뭐라고 말인가?”

“이 도시를 지키라고.”

겔러드는 그제야 러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과 러셀의 자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러자 실의와 낙담, 좌절에 빠져있던 겔러드의 얼굴에 점차 다른 표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런 겔러드와 러셀을 번갈아 보던 파렐스가 일어나며 말했다.

“러셀, 방금···”

“수를 조금 썼소. 상의하지 않은 건 미안하지만, 상황이 급하오.”

쿵, 하고 아까부터 간헐적으로 울리던 진동이 다시 한번 울렸다. 파렐스는 러셀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주 고개를 끄덕인 러셀이 말했다.

“파렐스, 그대는 성주를 도우시오. 초소에서 병사들을 끄집어내고, 시민들에게 유적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나오라고 지시하시오. 아엘라, 칼리아는 파렐스를 도와줘. 누나는 나랑 같이 가고.”

빠르게 지시를 내린 러셀은 바로 내성을 나와 마구간에 매여 있던 크라이에 올라탔다. 뒤이어 따라나온 이루실이 자신의 말에 올라탄 것을 확인한 러셀이 그대로 크라이의 옆구리를 찼다.

히히힝, 하고 울어젖힌 크라이가 내성의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질주해나갔다. 안쪽에 지어진 성벽을 빠져나온 그는 내성이 지어진 높은 지대에서 도시 아래를 바라보았다.

마력을 받아 번쩍이는 러셀의 눈이 먼 거리를 뛰어넘어 보고자 하는 장면을 관측했다. 시야가 줄에 당긴 것처럼 죽 늘어나고, 건물과 건물을 꿰뚫어보는 것과 동시에 유적과 시가지를 분리하는 벽도 넘어선다.

어둠과 기이한 마나의 흐름이 소용돌이치는 유적, 그 한가운데의 구멍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는 무수한 것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곧바로 다시 크라이를 달리게 한 러셀이 도시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꺄악!”

“뭐야!”

넓은 길과 좁은 길을 가리지 않고 말을 달리는 통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비켜서거나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크라이는 길에 깔린 무수한 장애물들, 좌판이나 쌓인 상자 등을 여유롭게 뛰어넘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방향을 틀면서 길을 달려 나갔다.

곧 유적 앞에 멈춰선 러셀이 푸르륵 투레질하는 크라이를 진정시킨 후 전방을 바라보았다.

진동은 아까부터 멈춰 있었다. 주변에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것인지 빠르게 빠져나간 것 같았다.

“예열에 시간이 조금 걸리는 타입인가?”

중얼거린 러셀의 옆으로 이루실이 다가왔다.

“모르지. 어쩌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그렇게 자신감이 대단한 놈인 줄은 몰랐는데.”

“마법사니까.”

“흠.”

러셀은 마력을 뻗어 유적 안쪽으로 쏘아 보냈다.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와 비견되는 속도의 마력이 유적을 훑으며 지나가, 그 지형과 길의 정보를 그의 머릿속에 전달했다.

“···올라오고 있군. 대비해.”

쿠구구구구-

언제 멈췄냐는 듯이 유적의 진동이 다시 시작되고.

-왔는가, 버러지들?

익숙한 마법사의 목소리가 러셀과 이루실의 귓전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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