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30화 (131/225)

130화 헤딜룬드 (3)

“시발은 새끼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고.”

러셀은 그대로 손을 들어 샤델록의 머리를 후려쳤다. 샤델록은 그대로 바닥에 코와 입을 박았다. 흙과 풀이 가득 입안으로 들어왔고, 곧바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러셀은 숨이 넘어갈 듯이 기침하는 샤델록을 보다가 왼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틀어쥐고 고개를 올렸다. 그때, 샤델록이 왼주먹을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아-즈베토, 끄악!”

순간 러셀의 오른손이 빠르게 움직여 샤델록의 왼 손목을 꺾어 위로 향하게 했다. 그러자 거무튀튀해져서 마력을 다 소진한 것 같았던 반지에서 초록색 광선이 뿜어지며 밤하늘로 쏘아졌다.

광선의 지속은 아주 짧았고, 곧 광채가 희미해지면서 빛의 선 또한 사그라들었다. 러셀은 초록색 광선이 쏘아진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야에 둥글게 비치는 나뭇가지와 나뭇잎 틈 사이로 검은 배경과 반짝거리는 별들이 보였다. 그렇게 밤하늘을 보던 러셀은 고개를 내리고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뿌득, 하는 소리와 함께 샤델록의 왼 손목이 그대로 부러졌다.

“아아아악!”

숲이 떠나가라 울부짖는 그에게 러셀은 부러진 손목을 꾹 누르며 말했다.

“조용.”

샤델록은 끅끅거리며 비명과 신음을 삼켰다. 러셀은 덜렁거리는 그의 왼손에서 반지를 빼냈다. 작은 초록색 보석이 박힌 반지. 표면에는 요상하게 생긴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러셀의 눈이 자청색 빛을 띠며 빛났다. 그는 반지에 새겨져 있는 문양이 일종의 마력 회로임을, 그리고 작은 초록색 보석이 마석임을 알아보았다.

지금은 내장된 마력을 모두 써서 내장된 주문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가 사물에 각인하는 마력 회로를 공부한 것도 아니니 더욱 그랬다.

아까는 수십, 수백 개가 넘는 바람의 칼날을 형성해 날리는 공격 주문. 방금은 초록색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기감을 통해 러셀은 그 광선이 닿기도 전에 쏘아지려는 흐름을 감지하고 방향을 위로 틀어 피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게 어떤 효과를 가진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도적놈 대장이 들고 다니기에는 고가의 마도구로 보였다. 러셀은 반지를 샤델록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거지?”

“큭, 큭. 좆까, 시발놈아···”

깡다구는 있는 놈이군. 러셀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오른손으로 샤델록의 뺨을 후려쳤다.

“끄어···”

한 방에 입안이 다 터진 샤델록의 머리통이 대롱거렸다. 끔찍한 고통에 의해 힘이 빠진 그의 머리는 러셀의 왼손이 틀어쥔 머리카락에 의해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축 늘어진 그의 입에서 피와 침, 부서진 이빨 조각이 흘러나왔다. 물론 러셀이 힘 조절을 했기에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다. 제대로 쳤다면 그는 입천장 아래가 날아갔을 것이다.

“어디서 구했냐?”

“여, 여행자들··· 모험가들의 시체에서···”

그렇겠지. 밤중에 산 타고 와서 덮치는 도적놈들이 무슨 유적이나 던전에서 이런 마도구를 얻겠는가.

그런 것을 감안해도 반지의 위력은 남달랐다. 그리고 만약 정말 여행자나 모험가를 죽이고 이 반지를 얻었다면, 원래 주인도 방금과 같은 마법들을 부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러셀의 눈은 이 반지에 각인된 회로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다른 놈들은 더 없나?”

“···물, 목 말라···”

러셀의 물음에 샤델록은 헛소리를 웅얼거렸다. 그는 샤델록의 목에 손가락을 댔다. 맥박이 희미했다. 그의 예민한 감각에도 거의 잡히지 않을 정도로. 샤델록의 심장 박동이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한계를 넘어 뽑아다 쓴 생명력의 여파로 죽어가고 있던 것이다. 러셀은 샤델록의 고개를 더 높이 들어 눈을 맞췄다. 자청색의 눈동자와 갈색의 눈이 마주했다.

“이름이 뭐냐?”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그의 입이 멍하니 열렸다.

“···샤, 델록···.”

“이런 일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닐 테지. 왜 사람을 사냥하지?”

“마탑에··· 공급···”

“왜? 누구한테?”

“실험··· 제물. 데커··· 즈.”

마법사 이름이 데커즈인 모양이군. 러셀은 점점 말이 느려지는 샤델록의 눈을 다시 들여다보며 물었다.

“무슨 제물?”

헐떡이며 말하던 샤델록의 동공에서 점차 빛이 사라졌다.

“죽고 싶지··· 마력···”

곧 그의 동공이 크게 벌어지는 것이 보였다. 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더는 수축하지 않았다.

러셀은 샤델록의 시체를 뒤로 넘겨 위를 바라보게 한 다음 품을 뒤졌다. 나오는 건 별거 없었다. 낡은 단검, 돈이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가 다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단검은 버리고 주머니는 챙겨 품에 넣었다. 도끼를 갈무리해 코트 속에 넣은 러셀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방금까지 평화로웠던 숲은 그가 서 있는 곳 10미터를 반경으로 쑥대밭이 나 있었다. 열 구의 인간 시체가 피를 흘리거나 내장을 쏟은 모습 그대로 쓰러져 있었고, 마지막 서리에 의해 죽은 놈들은 차갑게 얼어붙어 피부에 서리를 띄었다.

목을 이리저리 꺾은 러셀은 뒤돌아서 걸어갔다. 남은 시체들은 바람과 나뭇잎, 나뭇가지, 벌레와 짐승들이 잘 살펴줄 것이다.

그가 떠나자 숲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잔잔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에 풀벌레들은 다시 날개와 몸을 비비며 울음소리를 냈고, 숨죽이고 있던 들짐승들이 피와 내장의 냄새에 이끌려 다가왔다.

***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파렐스가 고개를 돌렸다. 손은 무릎 위에 올려둔 칼집과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수풀에서 나온 인물이 러셀이라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휴, 러셀이었군요. 한참 동안 오지 않아서 걱정하던 참이었습니다.”

“미안하군.”

“아닙니다. 그게 안 나오면 그럴 수도 있죠··· 어?”

러셀이 다가가 앉자 파렐스가 코를 킁킁거렸다.

“킁킁. 이거 피 냄새인데··· 혹시?”

러셀은 그를 바라봤다. 파렐스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혈변이라도 보신 겁니까?”

“······.”

“농담입니다. 하하하··· 큼. 미안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늑대라도 만난 겁니까?”

“도적들을 처리하고 오는 길이오.”

파렐스의 얼굴이 굳었다. 그도 사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러셀이 사라지고 잠시 후, 먼 곳에서 굉음과 약한 진동이 전해져 왔으니. 그나마 몸을 단련해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기에 감지한 것이지, 잠을 자고 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다친 곳은···?”

“없소.”

러셀은 아까 도적 하나의 머리를 박살 낼 때 손에 묻은 피딱지를 긁어냈다. 검붉은 부스러기가 가루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하긴,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다른 이들을 깨우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괜찮을 것 같군. 일단 근방에 다가오는 놈들은 더 없소. 다른 도적 일행이 있다고 해도 여기서 꽤 먼 곳에 있는 모양이지.”

“감각이 좋으시군요··· 아, 그럼 아까 도시의 치안을 물어본 것도?”

파렐스는 고개를 주억였다.

“뭔가 제가 알고 있던 도시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져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것도 예전이니까··· 뭔가 들은 것은 없습니까?”

“마탑에 대해 언급하더군. 거기에 잡아들인 사람을 넘겨주고 있다는 말도. 실험체나 노예로 쓴다고 하는 것 같다던데.”

“마탑이요? 성주한테 마법사가 있었나?”

파렐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기억에는 성주에게 고문이나 마법사가 없었다.

“뭐든 내일 도시에 도착하면 알게 될 일이겠지.”

“···그건 그렇지요. 미안합니다. 괜히 헤딜룬드 시에 가자고 해서.”

“아니오. 어차피 왕국 전체가 이 지랄인 것 같으니.”

들리는 마을이나 도시, 영지마다 괴물과 악귀가 나타나고, 산과 길에는 도적들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도시를 가도 비슷한 놈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러셀은 굳이 찾아와 죽으려는 놈들을 막는 주의가 아니었다. 아까도 러셀은 충분히 도적들을 살려줄 수 있었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힘과 능력이 있었다. 그들이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정신을 잃게 만들고, 근처의 치안 경비대에 넘기는 것도 방법이었다.

그러나 러셀은 그러지 않았다. 날아드는 칼날에 칼날로 대응했고, 주먹을 휘둘러 한 생명을 죽였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싸움과 피 튀기는 전장과는 백만 광년쯤 먼 생을 살았던 전과는 달리 이제 그에게는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데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금에 대해 아무런 유감이 없었다. 사는 곳이 다르고 풍습과 문화가 다른 곳에서, 살인이 죄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문 세계였다.

오히려 상황과 이유만 납득이 된다면 충분히 죽여도 별말이 나오지 않는, 어떻게 보면 야만적이라고 보아도 좋을 세상. 그러나 결국 그가 발을 딛고, 다리를 움직여 걷는 땅이었다.

“한숨 주무시오. 내가 불침번을 서지.”

“아, 알겠습니다.”

러셀의 제안에 파렐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포로 들어갔다. 얼마 있지 않아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러셀은 그가 잠든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품에서 반지를 꺼내 살폈다.

반지에 내장된 주문이 한 개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이 마력 회로를 음각한 자는 뛰어난 마법사로 보였다. 최소한 세 개 이상의 주문이 들어있는데, 샤델록은 마력이라고는 한 톨도 없던 일반인이었다.

생명력이 급격하게 깎여나간 것으로 보아 마력이 공급원이 아니더라도 시전자의 활력을 대신 빨아들여 주문을 발동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떠돌이 마법사나 용병 마법사, 전투 마법사가 이런 종류의 각인을 새길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마 개인 연구실을 갖고 있는 마법사가 새겨 준 것이 아닐까.

***

“음?”

마법사 데커즈는 멀리서 울린 마력의 파동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창밖 멀리, 어두운 산과 그 그림자를 뚫고 밤하늘로 올라가는 가느다란 선이 보였다.

초록색 선. 저 광선은 그가 알기로 강력한 즉사 주문이 걸려있는 광선이었다. 그리고 마법사 데커즈는 최근에 그 주문을 어떤 반지에 각인해 준 적이 있었다.

원래는 방어막을 생성시키고, 투사체를 막아 세우는 주문밖에 걸리지 않은 반지였지만 데커즈는 두 개의 주문을 지운 다음, 폭풍 칼날 주문과 즉사 주문을 새로 각인시켰다.

그에게는 그리 어려울 것 없는 작업이었지만 각인 작업은 데커즈의 쏠쏠한 벌이 중 하나였다. 물론 마법 회로를 견딜 수 있는 재료가 들어간 장신구나 무기, 방어구가 드물기에 수요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데커즈는 가장 최근, 그에게 실험체를 공급하던 남자가 그 마도구를 갖고 오자 평소의 절반 값만 받고 주문을 세공해주었다.

마력에 대한 재능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마력을 갈망하고, 그보다 더 돈을 갈망하던 남자. 데커즈의 판단으로는 그런 일에라도 쓰지 않으면 아무데도 쓸데없는 비루한 인생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샤, 어쩌구 하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데커즈는 기다란 손톱이 달린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잘 모르겠군. 그건 그렇고 저 주문을 썼다는 건 꽤 강한 놈을 만났다는 건데···”

그가 알기로 샤델록은 겁이 많고 상대할 수 있는 자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 놈이었다. 아마 괴물 같은 것을 맞닥뜨린 것은 아닐 것이다. 만나기도 전에 줄행랑을 칠 테니까.

그럼에도 저 주문을 썼다는 것은 샤델록이 감당하기 힘든 놈을 만났다는 것. 그런데 그 주문이 하늘로 향했다?

“죽었겠군. 쯧쯧쯧. 아쉬운 일인데.”

혀를 차는 것과 달리 데커즈의 표정에는 그다지 아쉽다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실험체로 쓸 부랑아들이나 거지, 쓰레기들은 넘쳐났다.

공급해주는 놈 하나 죽었다고 그리 아쉬울 건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곧 스산한 기운을 발했다.

“그래도 내 공급책을 죽인 건 용서할 수 없겠군. 어디 보자.”

데커즈는 곧 마력을 집중해 그가 주문을 새긴 반지의 위치를 어림해보았다. 멀기는 했지만 새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펜마우르 산 중턱. 그곳에서 반지의 신호가 잡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어지는 길은 이 도시, 헤딜룬드까지 이어져 있었다.

“어디 낯짝이나 한번 봐야겠군.”

***

다음 날, 러셀 일행은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길을 달렸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달리기를 한참. 그들은 곧 낮은 언덕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성벽을 볼 수 있었다.

“저기가 헤딜룬드 시입니다.”

“멀지 않군. 가지.”

러셀이 옆구리를 차자 크라이가 히히힝 울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