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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29화 (130/225)

129화 헤딜룬드 (2)

***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천천히 나아가던 일련의 무리. 하나 같이 칼과 도끼 등의 날붙이를 든 남자 열 명이 저 멀리 어른거리는 모닥불의 불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 쪽이라고?”

“저기, 저기 불빛 보이십니까. 이 방향대로 쭉 가면 됩니다. 아까 네 명 있는 것 확인했습니다.”

그중 짐승 가죽을 겹쳐 입고, 허리에 칼과 팔뚝에 소형 방패를 맨 남자, 샤델록이 중간에서 걸어갔다. 그는 장갑을 낀 손으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에 걸리는 단단한 쇠붙이의 감촉이 그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샤델록이 말했다.

“네 명? 여자가 셋이고 남자가 둘이라면서? 하나는 어디 갔어?”

“뭐, 화장실이라도 간 거 아닐까요.”

“에이, 이런 것들도 부하라고. 입들 닥치고 장전 확인해라. 시위에 화살 얹는 거 잊지 말고. 팔이나 다리에 맞추는 거 명심해.”

“예이.”

도적들의 대화는 한가로웠다. 숲을 거니는 그들의 발에선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노련함과 경험을 동시에 보여주는 다리놀림은 수풀과 나뭇가지를 빠르게 피하며 단단한 흙만을 골라 디뎠다.

“잡아둔 연놈들은? 문제 생기지 않게 조치했지?”

“이를 말입니까. 감시할 애들도 세워두고 왔습니다. 나무랑 풀이 우거져서 바로 찾을 수도 없어요.”

“그럼. 내가 어떻게 찾은 은신천데. 딱 저놈들까지만 잡고, 도시로 가서 팔아치우자고.”

샤델록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기 세상 물정 모르고 여행이나 하고 자빠진 연놈들까지 잡은 다음 팔게 되면, 못해도 금화 수십 장은 그의 손에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 모자란 놈들에게 조금은 나눠줘야겠지만 그 정도 선심은 낼 수 있었다. 어차피 혼자 하는 사업도 아닌바 그만한 돈도 주지 않는다면 당장 그만두고 떠날 놈들이었다.

근래 헤딜룬드 시의 외곽 마탑에서 벌이는 실험에 필요한 노예는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마탑의 주문이 계속 들어오는 한 샤델록의 인간 사냥 사업은 계속될 것이다.

축 늘어진 실처럼 가벼우면서도 하늘거리는 분위기. 그러나 맨 앞에서 쇠뇌를 들고 앞장서던 남자 하나가 손을 들자 바로 대화는 끊기고 팽팽해진 긴장감이 사위를 덮었다.

뒤따르던 도적들은 순식간에 몸을 낮추고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내쉬는 숨을 참고 몸의 흔들림을 낮췄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자 사위에 가득한 건 고요였다. 도적들 근처의 풀벌레들은 인기척에 울음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떨어진 곳의 풀벌레들은 여전히 날개를 비비고 몸통을 떨며 울고 있었다. 고요와 풀벌레의 합주는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조용히 퍼져나갔다.

“뭐야? 왜 멈춰?”

한 도적의 물음에 앞장서던 사내가 앞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에 목표물 중 하나가 느린 속도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기, 덩치 큰 놈이 오고 있어. 물이라도 빼러 온 건가?”

“시발, 사람 놀라게 하고 말이야.”

“바지를 내린 틈에 덮친다. 되도록 팔이나 다리를 맞추도록. 제가 싼 똥에 넘어지면 그것도 좋겠지.”

도적들이 실실거렸다. 키가 커다란 남자는 성큼성큼 다리를 뻗으며 걸어왔다. 멈춰서 바지를 내린다거나 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거리가 좁혀지자 도적들은 동요했다.

“시발, 뭐 하는 거야?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쓸 만한 자리 찾나 보지.”

그러나 그들의 짐작과는 다르게 그 남자는 거칠 것 없는 동작으로 정확히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수풀과 나무, 허리까지 자라난 풀들 사이에서 쪼그려 앉은 도적들, 그중에서 짐승 가죽옷을 입은 도적 대장은 일순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 남자는 정확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엉덩이골에서 목덜미까지 쫙 오르는 소름이 끼치는 감각. 이제까지 목숨의 위협이 찾아올 때마다 느껴졌던 감각에 그가 벌떡 일어났다.

“이런 시발, 들켰다! 일어나!”

그의 외침에 각자 쇠뇌를 들고 있던 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향해 조준했다. 짐승 가죽옷 또한 마찬가지로 팽팽히 당겨놨던 쇠뇌를 겨눴다. 어떻게 알아챘는지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 풀어도 상관없다.

지금은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위험 신호를 빨리 꺼트리는 게 급선무였다.

“쏴!”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자 꽉 조여들었던 톱니와 도르래가 일시에 풀리며 팽팽히 당겨져 있던 활줄에 자유를 주었다.

검은 선들이 어둠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남자는 순식간에 화살에 꿰여 나자빠질 것 같았고, 도적들도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화살은 남자에게 박혀 들지 않았다. 그것들은 어느새 남자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도적들은 그가 언제 손을 휘둘렀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인간 사냥꾼들인가?”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절묘한 위치에 서 있었다. 남자의 주위에 자리한 크고 작은 나무들의 그림자가 겹치는 곳이었는데, 그 밖의 곳에는 환한 달빛과 은하수, 별빛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교묘한 경계, 그중 어둠 속에서 몸을 가린 채 말했기에 도적들은 마치 어둠 자체가 말을 걸어온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또한 그들은 침묵했다. 누구 하나 뭐라고 대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긍정해도 이상하고, 부정해도 이상한 상황.

그때 어둠에 묻혀있던 남자의 얼굴쯤으로 짐작되는 위치에서 두 개의 안광이 타오르며 빛났다.

마치 암흑 속에서 눈동자 두 개만 둥둥 떠 있는 듯한 그 모습에 도적 하나가 다급히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

“씹, 마법이다! 주문으로 화살을 막은 거야!”

“덮쳐! 주문을 외울 시간을 주면 안 돼!”

도적들은 그대로 칼과 도끼, 방패를 든 채 수풀과 나무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의 머리 위로 드리운 나뭇잎들 사이로 스며들어온 푸른 달빛이 밝게 빛났으나 도적들의 날붙이들은 그 빛을 반사하지 않았다.

러셀은 그것을 보며 눈가를 좁혔다.

“마법 아닌데.”

투두두둑.

그를 노렸던 화살들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러셀은 그저 날아온 화살들을 하나하나 보고, 인식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도적들은 그저 그가 무슨 마법을 부렸겠거니 하고 달려들었다.

“죽어, 병신아!”

도적 하나가 한 손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단번에 러셀의 머리를 칠 생각인 듯했다. 가진 힘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으면 저런 식으로 가슴팍을 훤히 연 채로 달려들 수 없다.

러셀은 가장 먼저 달려드는 도적의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유령 같은 움직임에 놀란 도적이 빠르게 위로 올린 팔을 내리려 할 때, 러셀의 손끝이 그의 목젖을 쳤다.

컥, 하고 힘이 빠진 도적의 손에서 검이 떨어지고, 러셀은 그것을 왼손으로 받은 다음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그었다.

누비 갑옷과 안에 받쳐입은 사슬 갑옷이 한꺼번에 베인 도적의 상체가 사선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피와 내장이 울컥 토해지며 자욱한 비린내를 풍겼다. 도적 하나는 그렇게 죽었다. 다른 도적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벌렸다.

“헨빈! 빌어먹을 새끼!”

“시발!”

순식간에 동료 하나가 죽어버리는 광경을 봤음에도 도적들은 달려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상대는 한 명이고 그들은 숫자 하나가 줄었음에도 아홉이었다. 그들의 상식상 이만한 수의 차이에서 한 명이 이긴다는 건 불가능했다.

“으아아아아!”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또 다른 도적 하나가 가진 검을 내찔렀다. 어디서 한가락 배우기라도 한 것인지 자세가 나쁘지 않았다.

왼발로 바닥을 단단히 디디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뻗은 다음 허리와 상체를 비틀고 양팔을 쭉 내민 자세. 팔의 길이와 검신의 길이가 합쳐져 보통 사람 같았다면 순식간에 찔러오는 공격에 가슴이든 배든 관통당할 일격이었다.

러셀은 그 빠른 찌르기를 옆구리 쪽으로 간단히 흘려낸 다음, 도적에게서 뺏은 검을 휘둘렀다.

“끄아아악!”

찌르기를 흘려냈을 때만큼이나 간단한 동작에 도적의 양팔이 잘려 나갔다. 잘린 팔의 단면에서 허연 뼈와 근육을 드러났다.

팔이 잘린 도적은 숲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고, 곧 칼자루의 폼멜 부분에 머리가 찍히자 침묵했다.

도적이 뒤로 쓰러지자 두 놈이 달려들었다. 한 놈은 방패를, 한 놈은 큼직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방패를 든 놈이 앞장서고, 뒤에서 도끼를 든 놈이 양팔에 힘을 가득 주었다. 방패로 검을 막으면 그 틈을 타 도끼를 내지를 작정인 듯했다.

그렇게 러셀의 주의를 앞으로 쏠리게 만들고 다른 놈들이 옆이나 뒤에서 등이든 옆구리든 찔러줄 것이었다.

그러나 달려들던 놈이 방패와 함께 허리가 갈라지며 죽으면서 계획은 시작부터 어그러졌다. 그리고 계획이 박살 났다는 것을 자각할 틈도 없이 러셀의 왼 주먹이 도끼를 든 놈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쿵, 하고 몸이 크게 한번 떨린 놈은 눈과 코, 입에서 피를 게워내며 고꾸라졌다.

그때 처음 달려들었던 도적에게서 빼앗았던 검이 툭 부러지며 떨어졌다. 그걸 남은 도적들이 봤다.

“저 새끼 검 부러졌어!”

“한꺼번에 덮쳐!”

뒤에서 접근하던 놈이 소리도 없이 아래에서 위로 칼을 찔러 올렸다. 목표는 러셀의 등이었다.

뒤에서 기습하던 도적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느새 뒤돌아선 러셀의 왼손이 칼날을 잡고 있었다. 맨손으로 날카롭게 갈린, 거기다가 조용히 파고든 칼날을 감지하고 잡다니. 사람인지 믿기지 않을 기예였다.

“하하, 이런 시발······ 뭐 하는 괴물이야?”

허탈한 웃음을 흘리던 도적의 머리통이 그대로 터졌다. 주먹으로 도적의 머리를 날려버린 러셀이 남은 이들을 바라봤다.

뚝, 뚝 하고 그의 손에서 피와 살점이 떨어졌다. 러셀은 그것을 대충 털더니 멍하니 서 있는 도적들을 향해 손짓했다.

“들어와, 자식들아.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쑤셔야지. 온종일 그러고 서 있을 거야?”

***

짐승 가죽옷의 남자, 샤델록은 왜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 일도 평소와 똑같은 일이었을 뿐이다.

펜마우르 산을 지나는 길목 하나에서, 만만한 여행자 무리가 있으면 덮쳐서 잡아들이는 것. 여자는 잠깐 갖고 놀다가 팔고, 남자도 마찬가지로 노예로 팔았다.

이번 일도 똑같을 줄 알았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시시덕거리며 여행을 하는 젊은이들. 그런 이들에게 차갑고 냉혹한 세상의 맛을 온몸으로 알려주는 경험자들.

그러나 결과는 달라졌다. 무기 하나도 없이 맨주먹과 발로 도적들을 상대하는 저 남자 때문에.

샤델록은 왼손에 꼈던 장갑을 벗어 던졌다. 그의 중지에는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는, 초록색의 작은 보석이 박히고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쇠반지가 있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남은 도적들은 샤델록 그를 포함에서 다섯. 앞선 다섯이 순식간에 죽어버렸기에 살아있는 도적들은 벌벌 떨면서 샤델록을 돌아보았다.

“어, 어떻게 합니까, 대장?”

샤델록은 마른침을 삼킨 다음 속삭였다.

“···내가 셋을 말하면 한꺼번에 칼을 찔러라. 빈틈이 보일 때, 내가 이걸 작동시키겠다.”

그가 왼손 중지에 끼여져 있는 반지를 슬쩍 흔들었다. 그러자 도적들은 서로 얼굴을 보더니 칼을 들어 올렸다.

러셀은 가만히 서서 남은 도적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쪽 다리에 힘을 주고 선 짝다리에, 무기 하나도 들지 않은 맨손. 하지만 그런 무방비한 모습임에도 더 긴장한 것은 도적들이었다.

그리고 샤델록이 신호했다.

“셋!”

“으아아악!”

기합 소리와 함께 네 개의 칼날이 러셀을 향해 날아들었다. 짜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어디로 피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러셀은 피하지 않다가, 코트 안쪽에 넣었던 손을 빼 들었다. 그의 손에는 하얗게 빛나는 도끼가 들려 있었다.

따다다당!

네 개의 칼날이 모두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끄악!”

“내, 내 손!”

떨그렁, 하고 튕겨 나갔던 칼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 도적들은 저마다 손을 부여잡으며 물러났다. 너무 강력한 힘에 의해 강제로 칼을 놓치면서 손아귀가 찢어진 것이었다.

그때, 뒤에서 뭔가를 중얼거리던 샤델록이 왼손을 주먹 쥔 다음 러셀에게 내밀었다. 중지의 반지가 반짝, 하고 빛을 발했다. 그가 외쳤다.

“아-즈베토! 폭풍 칼날!”

푸화아아악!

반지의 초록색 보석이 빛을 발함과 동시에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요동친 마나는 순식간에 반지의 앞에 모여들더니 흐릿한 형상을 띄었고, 그 형상 그대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러셀을 덮쳤다.

“우악!”

간발의 차로 러셀에게 달려들었던 네 명의 도적들이 바닥을 구르며 바람의 칼날을 피해냈다.

“시발, 죽을 뻔했잖아요, 대장!”

“닥치고, 있어!”

샤델록이 힘겹게 말했다. 그는 왼손의 반지를 러셀에게 겨눈 채 계속 마법을 쏟아내고 있었다. 시동어만으로 작동하는 이 반지, 바람의 포효 주문이 담긴 마법 반지는 시전자의 마력이 필요하지 않은 대신 막대한 집중력과 체력을 소모시켰다.

콰가가가가각!

샤델록은 입에서 넘어오는 피를 꿀꺽 삼키면서도 반지의 작동을 멈추지 않았다. 불투명한 바람의 칼날이 수십 개 생성되어 러셀이 있던 공간을 난도질했다. 그 난도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샤델록이 피를 우웩, 토하면서 끝났다.

슈우우우우···

작동이 멈춘 반지가 빛을 잃고는 거무튀튀한 색으로 물들었다.

“허억, 허억, 허억···”

바람의 칼날들이 무수하게 덮친 곳은 처참했다. 허리통보다 굵었던 나무들이 숭덩숭덩 베어나가 밑동만 남았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 있었다.

“쿨럭, 웩.”

시동어 그대로 폭풍처럼 날아든 칼날에 휘말린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공중 높이 날아올랐다가 떨어져 내렸다.

“시발, 두 번은 못 해 먹겠군. 뭐하냐, 등신들아! 죽었는지 확인하고, 아까 그 도끼 챙겨!”

그 와중에도 샤델록은 남자가 코트에서 꺼내 들었던 도끼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하얀 빛을 발하던 도끼, 분명 그의 반지와 같이 마도구나 유물일 터였다.

“시발, 죽겠다.”

무릎을 짚고 허리를 수그린 샤델록의 입가에서 침이 섞인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부하 도적 다섯이 손도 못 쓰고 죽어버린 모습에 지레 겁을 먹고 최대 출력으로 반지를 작동시켰다.

마력만 있었어도 반지를 다루는데 더 쉬웠을 테지만, 그에게는 마력의 재능이 없었다. 그렇기에 반지는 대신 그의 생명력과 체력을 착취했다.

“더러워서, 진짜, 각성하고 만다···”

이번 실험체들이나 노예를 마탑에 납품하면 데커즈에게서 마력 회로 시술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금화는 포기하고 오히려 돈을 줘야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갖춰야 하는 것은 일신의 무력이다. 돈에 눈이 멀어 잠깐 멀리했던 사실을 샤델록은 피를 토하며 다시금 깨달았다.

“그것만 있으면, 나도, 시발. 네놈들 안 부럽다 이거야···”

문득 샤델록은 중얼거림을 멈췄다. 아까부터 경종을 울리던 육감이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후, 먼지··· 적당히 좀 할 것이지. 엉?”

손을 휘저으며 폭풍 칼날이 할퀴고 지나간 공간을 탐색하던 도적 하나가 의문성을 흘렸다. 그리고 그 음성이 그가 생전에 한 마지막 소리였다.

푸화악-!

자욱했던 흙먼지가 일시에 밀려가며 흩어졌다. 거기에 러셀이 있었다. 그가 서 있는 바닥 지면은 멀쩡했다. 그 외의 공간은 폭풍 칼날에 의해 뒤집히고 파헤처져 엉망이었다.

뒤늦게 목을 잃은 도적이 털썩 쓰러졌다. 샤델록은 피를 너무 많이 토해 어지러워진 시야 속에서도 그가 어떻게 멀쩡한 것인지 알아내려 용썼다.

“뭐야, 안 죽어, 억!”

“사, 살려···!”

“아악!”

남은 세 도적이 죽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죽은 도적들의 시체는 기묘했다.

목이 달아난 놈은 머리가 얼어붙었고, 그 단면도 새하얗게 응결되어 있었다.

가슴이 쩍 갈라진 놈도 상처와 그 안까지 얼어붙어 마치 냉기 주문에 직격당한 것 같았다.

샤델록은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 저벅저벅 걸어오는 러셀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환한 달빛과 별빛 아래에 선 그는, 키가 아주 크고 우묵하게 생긴 얼굴의 사내였다. 코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낸 남자는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는 쭈그려 앉았다.

“좀 세던데. 마도구인가?”

“어떻게··· 폭풍 칼날을···”

“일일이 다 맞췄지.”

샤델록은 러셀이 서 있던 땅, 그 반경 3미터가 약간 넘는 바닥만 멀쩡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바깥의 바닥은 마법 반지가 내뿜었던 폭풍 칼날에 의해 조각나고 부서져 있던 것도.

그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말도 안 되는 괴물은 그 무수하게 날아든 폭풍 칼날을 하나하나 눈으로 보고 요격했다는 뜻이었다.

“허, 시발···”

샤델록은 욕지거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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