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치료
***
그들은 반델의 안내에 따라 순식간에 영주관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타티아나가 쓰러져 누워있는 침대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이미 사라넨과 제스가 와 있었다.
제스는 황금빛의 은은한 성력을 손바닥으로 내뿜고 있었고, 사라넨 또한 녹색 빛의 치유 마법으로 타티아나를 돌보고 있었다.
러셀은 곧장 침대에 다가가 타티아나를 살폈다. 한눈에 봐도 썩 좋지 않았다. 가볍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이 아니었다면 이미 죽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미색이 고운 얼굴이었지만 약간 찡그려진 표정과 윤기를 잃고 푸석해진 피부, 말라붙은 입술. 땀도 나지 않았다. 땀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몸이 자체적으로 싸울 힘도 거의 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제스가 그를 보며 지친 미소를 지었다.
“헤어진다고 해놓고, 바로 뵙게 되는군요.”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성력으로도 치유가 안 되는 건가?”
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안에서 터지는 내상은 성력으로 치유가 되지만, 내상의 근본적인 원인까지는 안 되더군요. 아마 마력에 의해 나는 내상 같은데, 섣부르게 영주 님의 체내를 살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러셀을 불렀습니다. 제가 아는 한 가장 마력을 잘 다루는 분이시니까요.”
사라넨이 말했다.
“제 치유, [생명]도 잘 통하지 않아요. 아마 마력과 회로의 충돌 때문인 것 같기는 한데.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러셀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잠깐 비켜봐.”
둘은 순순히 물러섰다. 타티아나의 바로 옆에 선 러셀이 눈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자색빛으로 발광하기 시작했다.
사라넨이 그 눈을 보며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라넨은 가까이서 러셀의 마안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제스가 말했다.
“예전에 숲에서 봤을 때 이후로 처음이군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활활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당시에는 마안의 제어력이 높지 않아서, 마치 불꽃이 눈구멍 안쪽에서 타오르는 형상이었다. 지금은 그저 자색 빛으로 은은하게 빛날 뿐이었다.
러셀의 통상 시야가 물러가고, 마나와 마력, 그리고 공기의 흐름까지 읽을 수 있는 시야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영주의 옷과 피부 너머, 골격근과 내장까지 보았다.
“음.”
침음성이 나왔다. 문제는 간단하나 증상은 심각했다. 타티아나의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마력 회로와 육체가 충돌하고 있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잠시 영주님의 몸에 손을 대도 괜찮겠습니까?”
러셀의 물음에 반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해주게.”
러셀은 침대에 가까이 다가가 한 손은 이마에, 한 손은 하복부에 올렸다. 그의 손끝에서 아주 가느다란 마력의 실이 타티아나의 몸속에 스며들어갔다.
눈으로 그 마력의 움직임을 생생히 지켜보면서 러셀은 마력을 움직였다. 혈도, 기혈, 혹은 마력 회로라고 일컬어지는 통로를 그의 마력이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마력의 실이 타티아나의 전신을 휘돌고 나자 러셀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어렸을 때 마력을 각성했던 듯한데, 제대로 이뤄진 각성이 아니었다.
열린 마력 회로와 열리다 닫힌 마력 회로가 서로 충돌하면서 안에 제대로 순환하지 못한 마력이 고이고 있었다.
이미 차갑게 굳은 기운은 타티아나 영주의 신체를 좀먹으며 혈관과 신경을 살라먹고 있었다. 이대로 더 진행된다면 손발 끝의 감각이 사라지고, 피가 통하지 않아 괴사하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이었다.
그 정도로 전체적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최근에 급격하게 상황이 악화된 듯한데, 그 원인은 자명했다. 전쟁에 무리하게 참전하면서 고였던 문제가 터진 것이 분명했다.
상황을 완전히 파악한 러셀은 타티아나의 이마와 배에서 손을 떼고 반델을 보며 말했다.
“제대로 열리지 못한 마력 회로와 이미 열린 마력 회로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마력이 신체 곳곳에 고이면서 차갑게 굳어가고 있고. 이대로 더 지속되면 죽을 겁니다.”
“······제대로 열리지 못한 마력 회로라면. 아마 영주님의 아버님, 그러니까 선대 영주님의 죽음으로 인해 각성했을 당시겠군.”
“선대께서는?”
“괴물들의 침공에 맞서 싸우시다 돌아가셨네. 벌써 15년도 저 전의 이야기지. 그때는 지금보다 숲에 괴수들이 많았어. 선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각성한 타티아나 님께서 고군분투하셔서 지금의 영지를 만들었지.”
어린 나이에 각성을 했음에도, 제대로 길을 닦아주는 스승이나 부모 없이 홀로 단련을 해온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였다.
어릴 때 교정받지 못한 습관은 평생을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괜히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는 것도 아니고.
15년 전부터 굳어져 온 마력 회로가, 이번의 큰 전쟁을 통해 탈이 난 것이라면.
반델이 참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 의사가 왔다 가긴 했지만, 이런 경우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 성기사와 드루이드도 힘들다고 하고. 이미 우리 영지에 큰 일을 해준 자네에겐 정말 미안하긴 하네만···”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군요.”
러셀의 답에 반델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건 러셀의 뒤를 따라서 같이 듣고 있던 이루실과 파렐스, 아엘라시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루실이 물었다.
“치료할 수 있어?”
“응. 예전에 한 것과 똑같이 하면 돼.”
“예전이라니? 이미 한 번 치료한 적이 있다는 건가?”
“치료는 아니고, 어떤 소년의 회로를 뚫어준 적이 있습니다.”
이루실이 뭔가를 떠올린 얼굴이 되었다.
“설마 그 검은 보리 여관인가 하는 데서 일하던 그 남자애?”
러셀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 들렸던, 흑맥주 맛이 기가 막혔던 여관. 일하는 직원으로 보이던 남자애가 마력을 각성한 것이 인상 깊어 그녀의 기억에도 남아 있었다.
“맞아. 인연이 닿아서 뚫어준 적이 있지.”
“아니, 그런 걸 하려면···.”
“어쨌든, 된다는 건가?”
말끝을 흐리던 이루실 대신 반델이 희망을 담아 물었다.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워낙 예전부터 굳어져 있던 회로이니까.”
“알겠네. 뭔가 도와줄 점은 없는가?”
“그저 조용히만 해주시면 됩니다.”
***
타티아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과거의 꿈이었다. 아직 어릴 적의 그녀가 제 3자의 시선으로 보였다.
“다녀오마, 그레이스.”
가지 말아요, 아버지. 아버지는 거기서 죽는단 말이예요.
어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투구를 머리에 쓰고 걸어가는 아버지. 그는 준비된 군마에 올라타고 기사와 병사들을 거느린 채 관문을 떠났다. 영지 바깥에서 준동한 마물무리들을 토벌하기 위해.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다. 부관이었던 젊은 시절의 반델이, 반쪽으로 갈라진 투구를 내놓으며 엎드려 우는 것이 보였다..
비가 많이 왔다. 영주관 앞에서 비를 맞으며, 투구를 품에 안았다. 영지민들이 무릎을 꿇고 같이 울었다. 자신은 울었던가.
그녀는 그렇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라함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가 되었다. 그녀 외의 다른 자식은 있지도 않았고, 어머니마저 어릴 적 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영지의 일로 덮었다.
10년의 세월이 빠른 속도로 스쳐갔다. 그 시간의 대부분은 영주로서 살아온 것이 다였다. 연애 한 번 못해보고.
기억은 최근에서 멈췄다. 영지에 다시 한번 위기가 닥쳤을 때였다. 이번에는 그 스케일이 꽤 컸다. 무려 오크 부족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그녀는 기가 찼다. 이 작은 영지 어디에 나눠 먹을 것이 있다고 저놈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나.
기사도 다 떠나가고, 남은 것은 그녀의 충실한 호위기사인 반델과 요르드 뿐. 거기다 병사들의 숫자도 충분치 않았다. 이대로라면 영지는 멸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갑옷과 투구를 차려입고 순찰을 나섰다. 그리고 관문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걸 목격했다.
“거기, 무슨 소란인가.”
투구를 벗고 보니, 눈에 띄게 커다란 사람 둘이 보였다. 하나는 오크였고 하나는 인간 남자였다. 그 꽤 잘생긴 얼굴에 그녀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녀는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요즘 호사가들과 음유시인의 말과 노래를 타고 유명세를 알리는 자, 바로 용살자였다.
용살자에게 토벌대 합류를 권하고, 답을 들은 타티아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소문의 절반만 사실이어도 이번 위기는 잘 헤쳐나갈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자꾸만 그 얼굴이 생각났다. 흑단 같은 머리카락, 자색의 눈동자. 우뚝한 콧날과 짙은 눈썹. 혈색 좋은 입술까지.
‘생각이 너무 많아.’
그리고 안타깝게도 러셀에 대한 생각은 쉬이 물러가지 않았다. 새벽이 밝아오고 종소리가 나기 직전까지.
급히 갑옷을 차려입고 성벽에 서니, 이미 오크와 주술사들이 부리는 마물, 괴수들이 평야를 넘어 진격해오고 있었다. 제대로 된 군 편성도 이뤄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군 편성은 제대로 되어 있나? 우리 병사 수가 훨씬 모자른데. 삼백 명이나 겨우 될까. 저쪽은 거의 오백은 넘어 보이는데. 아, 오늘이 우리 영지의 마지막 날인가···
반델이 러셀을 급하게 불러왔으나, 솔직히 그가 있어도 이 사태가 해결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적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갑자기 용살자가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같이 왔던 카이라는 오크와 함께였다.
이후 벌어진 일들은 그녀의 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사건들 뿐이었다.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전쟁은, 단 둘의 참전으로 바뀌어 갔다.
세간에서 우룩크라 불리던 오크들은 갈색 오크가 맡아서 원래대로 되돌리는 듯했고, 러셀은 달려드는 모든 괴물들을 혼자서 분쇄하고 있었다.
노래와 시에서 전해지는 용살자의 무력은 거짓이 아니었다.
마지막에 시체와 피가 합쳐져 나타난 악마도 해치웠다는 파발이 들려오고 나서야 그녀는 온몸에서 긴장이 풀렸다. 전신을 덮쳐오는 피로 속에서 타티아나는 침잠하는 의식을 느꼈다.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혀 왔던 미 개화된 마력 회로. 그것이 이전보다 훨씬 더 악화되어 있었다. 이유는 자명했다. 영주인 그녀보다도 더 열심히 마수와 오크들을 처 죽이는 러셀을 보며 참을 수 없는 혈기가 끓어오른 탓이다.
아버지를 죽인 마물들은 이미 옛적에 죽었지만, 그렇기에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었던 복수심. 그녀는 그 복수심에 몸을 맡겼고, 이 지경에 이르렀다.
천천히 죽어가는 의식 속에서 타티아나는 뚜렷하게 바깥의 상황을 듣고 느끼고 있었다. 쓰러진 자신을 본 반델의 비명, 성기사와 드루이드가 자신을 치유하려 애쓰는 것까지.
모두 느꼈지만, 그녀는 자신의 상태가 호전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점점 감각이 멀어졌다. 촉각이 떠나고, 이어서 미각과 후각, 청각도 사라져갔다. 시각이야 눈꺼풀이 닫혀 있으니 예전부터 암흑이었다.
그때, 암흑 속에서 알 수 없는 마력 한 줄기가 보였다. 맑은 자색빛을 띄고 있는 마력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거침없이 나아간 마력은, 곧 타티아나의 전신을 내달렸다. 너른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처럼 거셌으며, 깊은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처럼 웅혼했다.
온몸을 적시는 듯한 그 감각에 타티아나는 푹 빠져들었다. 막혀 있던 회로 하나하나는 그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열려있던, 혹은 닫혀있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신의 마력 또한 그 자색 빛의 마력을 타고 같이 온몸을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회로가 열리고, 감각이 돌아온 순간. 타티아나는 눈을 떴다.
***
“후우우,”
러셀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타티아나의 마력 회로에서 자신의 마력을 조심스럽게 거둬들였다.
이번 치료는 그에게도 꽤나 난관인 부분이 많았다. 그가 인간 신체의 속을 훤히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해도, 향상된 마력의 제어력이 아니었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놀라운 마력 운용으로 타티아나의 마력 회로는 모두 활짝 열렸고, 이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그 과정에서 러셀은 새로운 지식들을 얻었다.
이를테면 어떤 식으로 상대방의 회로를 타격하면 끊게 만들 수 있으며, 또는 더 강건하게 만드는지. 어떤 지점에서 마찰과 꺾임을 넣으면 마력의 성질이 변화하고, 충격을 증폭시킬 수 있는지 등의 폭넓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타티아나 그레이스가 가진 불완전한 마력 회로가 호기심이 가기도 했고,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또 괜찮은 경험을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마력을 가라앉힌 러셀은 조금씩 떨리는 타티아나의 눈꺼풀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타티아나의 눈이 뜨여졌다. 약간 하늘빛을 닮은 맑은 빛이 그녀의 눈안에서 반짝였다. 타티아나는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탓에 시야는 일그러져 보였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시야에서 타티아나는 익숙한 실루엣을 보고 말했다.
“아버지?”
“전 아직 자식 계획 없습니다.”
눈을 한 차례 감았다 뜨자 전보다 시야가 또렷해졌다. 실루엣의 정체는 러셀이었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얼굴이 전보다 환해 보였다.
정체되어 있던 마력 회로가 완전히 열리면서, 자연히 안력 또한 강화된 탓이지만 타티아나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저 그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정신이 드십니까?”
“아.”
타티아나는 몸을 일으켰다. 놀랍게도 이전보다 몸이 훨씬 가벼웠다. 눈을 감고 마력을 순환시키니 막히는 회로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마력을 운용할 때마다 턱턱 걸리던 느낌이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러셀, 그대가 한 일인가?”
“전에 한 번 한 적이 있어서. 시간은 조금 걸렸습니다만, 괜찮았습니다.”
“···어떻게 보답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군. 이미 영지의 적들을 물리쳐 주었는데, 내 목숨까지 구해주다니. 킁. 근데, 이게 무슨 냄새···”
타티아나는 말을 하다 말고 시선을 내렸다. 뭔가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자신의 옷이었다. 뭔가 누렇고 까만 액체에 젖어 있었다.
“···이건?”
“막힌 회로를 뚫는 동안 고였던 마력이 노폐물과 함께 나와서 그렇습니다. 씻으시면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태연한 러셀의 말에 타티아나는 어째서인지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 몸을 잘게 떨며 밖을 가리켰다.
“미안하지만··· 나가주게.”
러셀은 나왔다.
“왜 저러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칼리아. 왜 안 나오고?”
시간은 밤이었고, 영주관은 깊은 어둠에 가라앉아 있었다. 다행히 방금 러셀이 나온 영주 방의 오른편 복도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등불이 걸려 있어서 어둡지 않았다.
그 일렁거리는 등불의 그림자 속에서 올라온 칼리아가 한 손을 허리에 짚고 혀를 찼다.
“그런 상황에서 여인이 화를 내는 건 당연하지.”
“치료하면서 나온 거고, 나도 그런 건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걸 아는··· 아니, 그건 그렇고. 왜 이루실 앞에 안 나와? 어제는 말할 때 나올 줄 알았더니.”
러셀의 물음에 칼리아는 잠시 우물쭈물했다. 그러다가 모기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대의 누나라지 않느냐. 어쩐지 조금 그래서···”
그 모습이 어쩐지 고대의 군주, 강력한 흡혈귀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어서, 러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