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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01화 (102/225)

101화 습격

렘파드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를 결국 떨쳐내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는 검은 머리에 자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에 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는 지금 다인실의 방에 숙박하고 있었다. 돈이 부족한 자들은 남녀 상관없이 한 방에 들어가 자야 했다.

렘파드는 전날 저녁에 있었던 대화를 회상했다.

“악마를 잡는다고? 어떤 악마를?”

러셀은 여상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겔리오투스.”

렘파드의 표정이 굳었다.

“겔리오투스······. 위험한 악마를 잡으려 하시는군.”

러셀은 렘파드를 바라보았다.

“아는 바가 있나?”

“······일개 용병일 뿐인 내가 알기는 뭘 알겠소.”

“그런가.”

대화는 싱겁게 끝났지만, 렘파드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사실 그는 완전히 제국군을 나온 것이 아니었다. 명목상으로 제대 처리를 받고, 은밀한 임무를 지닌 채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왔다.

‘여기서 대악마 중 하나의 이름을 듣다니. 이게 우연은 아닐 텐데.’

상념을 이어가던 도중.

땡땡땡땡땡······.

렘파드는 벌떡 일어났다. 다급하게 종을 치는 소리. 어디서나 이런 소리가 울릴 상황은 하나뿐이었다.

“습격이다!”

***

고요한 밤하늘. 숲의 밤은 원래 이렇게 고요하지 않다. 낮이고 밤이고 상관없이 우렁차게 울어야 할 풀벌레들의 소리가 돌연 그쳤다.

풀을 뜯어 먹고 사는 동물들, 그런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짐승들도 예외 없이 몸을 낮추고 숨을 죽였다.

두두두두두!

수십, 백에 가까운 괴물들의 거침없는 진군 때문이었다. 동굴만큼이나 어두운 숲속을 거침없이 달려가던 괴물들은 목표했던 곳에 도달했다.

충돌의 순간은 갑작스러웠다.

쾅!

돌연 울린 큰 소리와 진동에 목책에 기대어 졸던 자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산장을 관리하는 경계병 중 한 명인 펜저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쓱 닦았다.

“씁, 뭐애, 뭐야. 뭔 소리야?”

쿵! 쿵! 쿵!

펜저는 눈을 껌벅이며 잠을 쫓아내고는 목책 아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뭐, 뭐야!”

초록색과 회색의 경계 어디쯤의 색깔을 지닌 고블린들이 거기 있었다. 수가 족히 백마라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펜저는 놈들의 얼굴이 고블린과 똑같긴 하지만, 그 아래의 것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키가 훌쩍 커졌고 덩치도 성인 못지않다. 아니, 근육으로 도배가 된 것이, 웬만한 장정을 데리다 놓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 보였다.

케르르르르르!

고블린들은 저마다 괴성을 지르더니 계속 목책에 달려와 부딪치기를 반복했다. 붉은 눈을 번들거리는 놈들이 꽝, 꽝 하고 목책 문을 두드렸다.

그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들의 과격한 인사에 펜저가 비명을 질렀다.

“비상! 비상! 고블린, 고블린들이다!”

땡땡땡땡땡.

망루에서 다급한 종소리가 울렸다. 산장을 깨우는 종소리. 침략자들이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쏴!”

펜저의 외침을 들은 목책의 감시병들이 달려와 화살을 활에 먹인 다음 쏘아냈다.

쉬쉬쉬쉭!

투두두둥!

직접 시위를 당겨 쏘는 자들 외에 석궁을 들고 쏘는 자들도 있었다. 석궁을 든 자들의 수가 더 많았다. 활쏘기는 숙련되기 어려운 기술이다. 반면 석궁은 그저 목표물을 보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니 어려울 필요가 없다.

카아악!

칵! 칵!

괴물들이 화살을 맞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질러댔다. 하지만 죽은 놈들은 없었다. 피부에 박히기는 했어도 그 깊이가 얕다.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눈과 같은 곳을 맞추는 게 좋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괴물들을 맞추는 것만 해도 어려운 일이다.

“화살! 화살 더 없나?!”

“가지러 갔어! 조금만 기다리면······.”

그때, 우지끈하는 불길한 소리가 사람들의 귓가에 들렸다. 모두가 불길한 얼굴로 서로의 표정을 확인했다.

펜저는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의 얼빠진 얼굴이 자신과 한치도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단단한 바위로 토대를 이루고 자갈로 빈틈을 채운 다음, 그 위에 굵은 통나무를 세워 만든 목책. 그것이 서서히 부서지고 있었다.

악마의 마력과 인간 제물을 잡아먹고 강화된 변종 고블린들의 힘은, 개개인으로는 목책을 무너트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수도 백 마리를 넘어가자 가히 트롤 몇 마리와 맞먹는 충격을 계속해서 줄 수 있었다.

와자자작!

“안돼!”

목책이 무너지는 소리와 펜저의 외침 중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중요한 것은 괴물들이 경계를 허물었다는 것이었다.

키아아아악!

덩치 큰 고블린들이 산장 안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살육을 고대하는 눈과 침 흘리는 이빨이 산장 곳곳에 세워진 횃불에 의해 붉게 빛났다.

***

러셀 일행은 곧바로 여관을 나왔다. 아엘라시스는 아직 근육통이 남아있는지 표정을 찌푸렸지만, 대기 중에 가득한 괴물들의 냄새와 사악한 마력의 흔적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산장에는 이미 괴물들이 난입해온 참이었다. 목책의 안이라고 마음을 놓고 휴식을 취하던 자들이 무장도 갖추지 못한 채로 고블린들을 상대하다 죽었다.

카이가 말했다.

“함께 다니는 것보다는 흩어지는 것이 나을 것 같군.”

“내 생각도 그러하느니라.”

칼리아의 눈이 핏빛으로 번쩍거렸다. 그녀가 바닥을 쿵, 하고 밟았다. 그러자 흙바닥이 빨아들였던 피를 뭉클거리며 내뱉었다. 그녀가 손을 휘젓자 피의 웅덩이에서 길쭉한 창이 뽑혀져 나왔다.

“도륙을 내버릴 것이니라. 감히 내 시간을 방해하다니.”

아엘라시스가 칼리아를 힐끔거리며 슬쩍 물러섰다.

“뭐야, 아줌마. 오늘 조금 무서운데.”

카이가 러셀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소?”

“······아니.”

일행은 금세 셋으로 쪼개졌다. 카이는 상인과 용병들이 자리한 천막 쪽으로, 칼리아와 아엘라는 주점과 건물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러셀은 목책으로 향했다.

***

고블린들은 억척스러웠다.

“뭐야, 이놈들!”

“시발, 시발, 시발!”

쩍 걸라진 배에서 내장을 혀처럼 내민 놈, 부러진 다리에서 뼈가 튀어나왔음에도 멈추지 않는 놈, 불이 붙은 피부에 근육이 훤히 드러난 놈까지.

놈들의 인간을 살육하기 위한 맹목적인 움직임은 용병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평소 상대하던 고블린과 확연히 다른 괴물들의 완력과 덩치에 속수무책으로 시체가 늘어갔다. 조잡한 활이나 창을 들고 있지 않았지만, 근육을 팽창시켜 달려드는 놈들의 속도는 쏜살과 비슷했고 길쭉해진 팔과 끝에 달린 손톱은 창날이 부럽지 않았다.

산장의 병사들과 용병들은 어떻게든 그들이 자리한 곳 뒤쪽으로 고블린들이 못 나가게 막으려 했으나, 댐에 구멍이 뚫리듯이 점차 무너졌다.

러셀이 도착한 것은 전열이 완전히 부서지기 직전의 때였다. 그는 가타부타 않고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코트에서 두 개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사자처럼 뛰어올라 괴물들의 한복판에 내려앉았다.

그에 경악한 용병들이 외쳤다.

“이, 이봐! 전열을-”

러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열이라 함은 결국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일정한 진형을 이루고 신호에 맞춰 방패를 들든, 칼이나 창을 들든 하는 것이다.

여기 산장에서 그런 훈련을 받은 자들이 누가 있겠는가. 모두 의뢰 한 번에 목숨을 걸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자들 투성인데.

러셀에게 전열이나 후위가 필요한 경우는 적었다. 그의 시야는 광범위하다. 일반적인 통상 시야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는 제일 먼저 달려든 놈 하나의 머리통을 마지막 서리의 내려치기로 갈라버렸다. 잘려버린 단면이 쩍, 하고 얼어붙고 고블린은 그대로 고꾸라지며 죽었다.

다른 손에는 대검, 나힐니르를 들었다. 달빛이 훤히 비치는 밤하늘 아래에서 대검의 검신에 새겨진 룬이 반짝 빛났다.

“밤새 약 좀 빠셨나. 뭐 이렇게 몸이 좋아지셨어?”

그는 근육질에 키도 커진 고블린들을 보며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이 숲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겹게 봐왔던 놈들과는 전혀 달라진 놈들이었다.

키가 그의 허벅지에나 겨우 닿던 놈들이 이제 그의 가슴팍까지 닿았고, 과하게 자란 근육들은 핏줄이 울그락불그락 돋아서 흉했다.

강화된 고블린들 중에서도 개체의 육체적 차이는 있는 것일까. 한 놈이 다른 머뭇거리는 동족들보다 더 빠르게 치고 나온다.

번뜩이는 네 개의 손톱. 단단한 나무도 깊은 흠을 만들 만큼 날카로운 손톱이다. 거기다 통상의 고블린보다 더 강력한 근력까지.

특출난 괴물에게 러셀이 내놓은 답은 간단했다. 단 한 걸음, 옆으로 빠지며 무기를 그었다. 달려오는 놈의 관성과 러셀의 베는 힘이 맞물렸다.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갔다.

연속해서 세 놈이 육박해온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살의의 온상들. 어렵지 않게 피했다. 기술도 뭣도 없이 가진 힘으로만 들이대는 것들은 그만큼 큰 동작을 요구한다.

러셀의 눈이 적절한 회피의 경로와 타이밍을 읽었다. 우측으로 비켜선 러셀에게 향하는 고블린의 상체. 손톱이 맞지 않으니 아예 이빨로 물어뜯으려는 심산.

하지만 마음만 급했다. 상반신을 옆으로 틀어버린 덕에 달려 나가던 제 하체가 균형을 잃었고, 러셀은 손쉽게 넘어지는 놈의 목에다가 도끼를 갖다 대었다. 이것도 자살이라면 자살일 것이다.

스스로가 달리던 관성과 무게에 의해 자신의 목을 바친 놈이 앞으로 쓰러졌다.

러셀은 요란하게 시선을 끌었다.

깡! 깡! 깡!

“날 봐라, 쓰레기들아!”

도끼와 대검을 맞부딪치니 무시할 수 없는 소음이 터져 나온다. 강화된 감각을 지닌 고블린들은 귀를 부여잡은 채 러셀을 노려보며 괴성을 질렀다. 그대로 길쭉해진 다리로 바닥을 박찬다.

괴물들은 태풍에 휩쓸린 잔가지가 되었다. 이리저리 부서지고, 박살나고, 흩날린다. 바닥은 한순간에 피바다로 변해버렸다.

피와 내장, 살점, 신음. 지옥의 풍경이다. 인간과 괴물 가릴 것 없이.

고블린들의 피는 진한 검은 색이었다. 너무 진한 검은 피는 때때로 액체처럼 흐르는 어둠 같기도 했다. 담백한 죽음.

죽은 고블린에 올라타듯 새로운 놈이 나타나 뛰어오른다. 앞서 죽은 놈에 가려져 있었다. 러셀은 피하지 않고 자신의 팔을 들었다.

옳다구나 하고 고블린이 냅다 러셀의 왼팔을 물었다. 와드득,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이빨이 부러지고 잇몸이 뭉개졌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물러나려는 놈의 정수리에 무기가 내리꽂힌다.

피가 팍 튀었다. 고블린은 경련을 일으키다가 눈을 뒤집고는 죽었다.

고블린들의 숫자는 많았다. 하지만 놈들을 통제하는 대장 격의 괴물은 보이지 않는다.

통제되지 않는 집단의 물량 공세에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의 공간에는 아무리 작아도 틈이 있기 마련이었고, 러셀은 그 여백을 향해 대검을 내질렀다.

휘저어지는 손과 육탄돌격으로 덮쳐오는 몸뚱아리. 사냥감에 대한 살의.

러셀은 침착하게 길을 만들었다. 그의 주변으로 피와 살점이 안개처럼 흘렀다.

어느샌가 러셀의 눈은 마력이 담겨 불타오르고 있었다. 별과 달이 빛나는 밤하늘과 쓰러진 횃불에 의해 타오르는 천막.

러셀의 모든 감각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주변의 상황을 읽었다. 달려드는 덩치 커다란 고블린들, 번뜩이는 횃불의 불티, 대검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지는 검은 핏방울들, 백색 도끼날을 모래알처럼 티티팅,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검은 결정들.

대검이 날고, 도끼가 휘둘러진다. 한 번의 휘두름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생명 수확이 있다.

“저, 저······.”

“저거, 저거 뭐하는 사람이야? 인간 맞아?”

수십의 변종 고블린들 사이에서 상처하나 입지 않고 양떼 사이의 사자처럼 날뛰는 러셀을 보며 살아남은 용병들이 멍한 얼굴들이 되었다.

그 중에는 렘파드와 브리타, 코헨도 있었다.

“···소문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고블린들을 얼마나 처죽였을까. 러셀은 모든 감각이 내지르는 경고성을 듣고 몸을 굴렸다.

푸화화확!

돌연 엄청난 굉음이 일고, 푸른 불길이 러셀이 있던 자리와 그 사위를 덮으며 퍼져나갔다.

“끄아아악!”

사람 수십이 그 불길에 덮쳐지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었다.

난잡하고 혼잡하던 상황 속에서도 커다랗게 울리는 소리에 시선이 모였다.

그곳에 곰가죽과 깃털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있는 거한이 있었다. 놈의 피부는 초록색이었고, 험상궂은 얼굴에는 삐죽한 어금니 두 개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뼈로 된 지팡이의 맨 위, 아래 턱이 없는 두개골의 눈, 코, 입의 구멍에서 푸른 불꽃이 일렁거렸다.

“이건 예상 못 한 변수인데.”

오크가 말했다. 놈의 시선은 괴물들의 시체 틈바구니에서 홀로 서 있는 러셀에게 향했다.

“네놈은-”

오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한순간 러셀의 허벅지 근육이 응축되며 무시무시한 힘을 품었다. 단단히 다져진 지면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잔금이 그어졌다. 바닥이 터져 나갔을 때 러셀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꽈아앙!

오크의 해골 지팡이와 러셀의 나힐니르가 충돌하며 엄청난 충격파를 터트렸다. 격차는 분명했다.

이름 모를 오크가 양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대검을 막고 있는 반면, 러셀은 한 손으로 내리누르고 있었으니.

허나 러셀의 눈에는 이채가 흘렀다. 영락없는 마법사라고 생각했건만 반응 속도나 가진 힘이나 전사 못지않았다.

쉬아아악!

허공을 얼리며 러셀의 다른 손에 들린 도끼가 횡으로 그어지며 울음을 토했다. 오크의 두 눈 안쪽에서 푸른 불길이 번뜩였다.

떠어엉!

놀랍게도 오크는 지팡이에서 한 손을 떼고 도끼를 맨손으로 붙잡아 세웠다. 아니, 맨 손은 아니었다.

악마의 마력으로 강화된 오크의 손은 강철 이상의 강도가 되어 도끼날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주문이 늦었던 것인지, 아니면 도끼의 예리함이 상상 이상이었던 것인지 손바닥이 절반 이상 베여 손목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네놈이 로고스를 죽인 전사로구나.”

뼈 지팡이로 대검을, 한 손으로 도끼를 막아서고 있는 자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안한 목소리. 하지만 초록색 피부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은 거짓을 말하지 못했다.

러셀이 씩 웃었다.

“그래, 씹새꺄. 너도 곧 죽여줄 테니까 기다려라.”

그건 오크에게 말한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 오크의 주인에게도 전하는 포고였다. 푸른 불길이 맺힌 눈동자와 자색의 눈동자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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