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흑마법사와 키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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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일행은 말머리를 돌린 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떠나온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았기에 그들은 빠르게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숲을 나오자마자 러셀은 눈에 마력을 담아 시력을 강화했다. 자색의 눈에 스멀거리는 빛이 반짝였다.
줄로 당긴 것처럼 멀리 있던 마을의 모습이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보리밭과 밀밭의 평온한 풍경 뒤로 서 있던 마을에서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기에 목책의 한 가운데가 뻥 뚫려있었다. 마치 거대한 공성 추가 박살을 내버린 것 같았다.
그가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저 방향인가?”
러셀의 물음에 칼리아가 대답했다.
“그렇느니라. 바늘 끝이 마을을 향하고 있구나.”
그녀의 손바닥 위에 둥둥 떠 있는 붉은 바늘은 마을을 가리키고 있었다. 확실했다. 마적들, 그리고 시체를 먹고 괴물로 변해버렸던 괴물 늑대들.
그 원흉이라고 짐작되는 것이 마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것도 그들이 마을을 떠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때 러셀의 눈에 다른 것이 보였다. 소년이었다. 소년은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감싸고, 다리를 절뚝이며 달려왔다. 거친 재질의 옷과 바지는 피에 젖어 붉었다.
러셀은 그 소년을 알아봤다. 아까 교회에서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서 있던 소년이었다.
그는 바로 크라이를 출발시켰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본 소년이 풀썩, 앞으로 쓰러졌다. 러셀이 크라이에서 뛰어내려 소년을 받쳐 안았다.
카이와 아엘라시스, 칼리아가 굳은 얼굴로 러셀과 그가 받쳐 안은 소년을 내려다봤다. 아엘라시스가 말했다.
“얘, 그때 걔잖아.”
소년이 러셀의 팔을 쥐었다. 손아귀에 힘은 없었다. 소년은 계속해서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떴다.
옅은 갈색의 동공에 검은 머리와 자청색 눈을 가진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소년은 간절히 바라며 말했다.
“아저씨······. 우리, 우리 엄마······.”
겨우 그 몇 마디를 남긴 소년의 팔이 축 늘어졌다. 러셀의 손이 소년의 가슴을 짚었다. 그의 손에서 하얀빛이 뿜어졌다. 치유의 빛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심장은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칼리아.”
곁에 서 있던 칼리아가 한쪽 무릎을 꿇고 소년의 이마를 짚었다. 치유의 빛을 내뿜으며 러셀이 조용히 말했다.
“치료가 되겠나.”
“······마법의 종류는 다양하다, 러셀. 어떤 마법은 그 종족이나 고유한 성질, 마력을 가지지 않으면 발현할 수 없지. 난 뱀파이어고, 내가 쓸 수 있는 마법들은 제한적이다. 내 특기는 피와 그림자에 조금 더 치중되어 있느니라. 그리고 설사 내가 다른 치유 주문을 알았다고 해도, 이 소년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내 피나 네 피를 이용하면?”
칼리아가 러셀을 바라봤다. 붉은 눈동자 속에 언뜻 자줏빛이 비쳤다.
“평범한 인간은 우리를 견뎌낼 수 없다, 러셀. 죽어버릴 거다. 설사 견뎌낸다고 해도, 그건 인간이 아닌 무엇이 될 것이다.”
그때 러셀은 희미하게 박동하던 소년의 심장이 멈췄음을 알았다. 러셀은 소년의 시체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름도 모르는 소년은 텅 빈 동공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러셀은 그 눈꺼풀을 닫아준 후 몸을 일으켰다.
“······.”
마을로 빠르게 달려갈수록 피 냄새가 짙어졌다. 러셀은 목책 앞에서 멈춘 다음 크라이에게 말했다.
“멀리 물러나 있어라.”
크라이는 카이의 말을 데리고 슬슬 물러났다. 러셀 일행은 천천히 목책을 넘었다. 뻥 뚫린 목책은 무리 없이 새로운 방문자들을 안으로 들였다.
넘어가면서 러셀은 쉐린을 만났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망루와 목책에서 바깥을 경계하고, 상단과 러셀 일행의 입장을 불허했던. 그리고 러셀에게 몇 대 얻어맞고 사과를 했던 자는 더는 마을을 지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러셀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쉐린을 지나쳤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가 보였다. 몇몇 시체들은 미라처럼 쪼그라들었고, 피부는 검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단순히 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생명력이 탈취당한 것이었다.
러셀은 계속 넘어갔다. 그러다가 한 여자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목책에 기대어 앉아서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내던진 여자.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고, 심장은 보이지 않았다. 소년의 어머니였다.
그는 그 시체도 지나쳤다.
“······.”
다른 시체들의 얼굴들도 익숙한 것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한 번 보고 스쳐 지나갔던 마을 사람의 것들도 있었고, 러셀이 마적들로부터 구해주었던 상단의 사람들도 있었다.
생명력이 갈취당한 시체 외의 것들에는 소년의 어머니처럼 심장이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모두 공포와 고통에 질려 있었다.
마을은 조용했다. 러셀 일행이 떠나기 직전의 활기차고 소란스럽던 풍경이 거짓말 같았다. 집들 몇 채는 활활 타오르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안에 밝혀놓았던 촛대가 쓰러지면서 일으킨 화재였다.
마을의 중앙에서 그들은 여덟 명의 괴한과 마주했다. 여덟 명의 괴한은 검은 망토와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회색빛의 음울한 하늘 아래서 그들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저놈들인가.”
마을의 참상에 이빨을 악물고 있던 카이가 주먹을 쥐었다. 불그스름한 기운, 불칸의 성력이 잠깐 일렁거렸다.
새로운 침입자들을 발견한 것은 여덟 명의 검은 망토들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은 제각기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러셀은 놈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불길하고 음울한 마력이 놈들의 전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번에 봤던 마적들보다 훨씬 농도가 짙었고, 안정되어있었다.
그때 마을의 중앙에 세워져 있던 교회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자는 커다란 갈고리 형태의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여덟의 칼잡이와 마찬가지로 검은 망토와 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그의 지팡이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중간 부분부터 갈고리까지 걸려있는 철제 고리가 쩔그렁 소리를 냈다.
그는 뒤로 다수의 사람들을 공중에 매달며 나왔다.
“컥, 커허헉······.”
“사, 살려···, 살려주세요······.”
교회로 피신했던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촌장 셰호장과 상인 테보닌과 사제도 있었다. 공중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목과 사지가 결박된 사람들은 바로 아래의 러셀 일행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들이 희망을 품기도 전에, 그들을 결박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힘이 숨통을 끊어버렸다. 목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터지고, 심장이 파열됐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력은 하나도 남김없이 지팡이를 들고 있는 자의 손아귀에 모여들었다. 마력과 생명력을 갈무리한 자가 러셀을 발견하고 말했다.
“네 얼굴을 안다. 내 실험체들을 모두 죽인 놈이로구나. 이 마을을 떠난 줄 알았는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지팡이를 든 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흠. 일단 통성명이나 할까. 난 루가네스라고 한다. 너는 누구냐?”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왜 하냐니. 필요해서 하는 것이지.”
“어디에?”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놈한테 대답해주기는 싫다만.”
“러셀.”
“서로 이름을 말해주는 건 관계를 형성하는데 아주 기초적인 단계이지. 이유를 물었던가? 청소, 라고 할까. 아니면 재활용이라고 할까. 아니면 재료 수집?”
“왜?”
루가네스는 양팔을 벌렸다.
“힘이 있으니까.”
“······.”
루가네스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여전히 두건을 넘기지 않았기에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웃음은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 세상은 힘과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자비로운 세상이지. 난 힘과 자격이 있는 자들이 좋아. 반대로, 없는 것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지. 쓸모도, 가치도 없는 버러지들. 난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는 거다.”
“무슨 의미를.”
러셀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루가네스가 말했다.
“내 힘과 자격의 토대가 되어주는 기회를. 쓰레기도 잘 뒤지면 좋은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고, 티끌도 계속 모으다 보면 큰 덩어리가 되겠지. 지난한 과정이지만······. 뭐, 그야 약간의 오락만 더하면 그만이다. 그건 그렇고, 넌 정말 특이하군. 그 눈깔은 또 뭐지? 엄청 신기한데.”
러셀은 코트에서 마지막 서리를 꺼내 들더니, 내던졌다. 빛의 원반이 된 도끼는 루가네스의 몸을 세로로 쪼갤 기세로 날아갔다.
떠-엉-!
마지막 서리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거의 러셀만큼의 반사신경을 보인 루가네스가 지팡이를 휘두른 것이다. 지팡이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에 도끼가 하늘로 빙글빙글 돌며 치솟았다.
그렇게 멀리 날아가 버릴 듯했던 도끼는 어느 지점에서 툭, 하고 운동능력을 잃더니 아래로 떨어져 러셀의 손아귀에 잡혔다.
마지막 서리는 아직 귀환 주문이 복구되지 못했다. 러셀은 지난 번 마적들의 화살을 막아냈을 때처럼 주변에 마력 역장을 펼친 다음, 역장 내의 운동능력에 간섭해서 무효화시킨 것이었다.
아직 수준이 그리 높진 못했다. 정교하게 조종해서 염동력을 운용하는 것처럼 뭔가를 들어 올리거나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싸우면서 펑펑 써댈 수 있는 능력은 아니란 뜻이었다.
하지만 러셀은 개의치 않았다. 그런 것이 없어도 그는 괴물들, 악당들을 잘만 죽여왔다.
루가네스가 덜덜 떨리는 지팡이를 꾹 잡았다.
미리 몸에 각인시켜 놓은 주문이 없었다면 방금 한 수로 죽었을 것이다. 그만큼 도끼에 실린 힘은 강력했다.
“······갈수록 탐이 나는 재료인데. 널 이용하면 얼마나 대단한 놈이 만들어질지 상상도 안 가. 뒤의 연놈들도 그렇고.”
루가네스가 입맛을 다셨다. 러셀의 뒤로 보이는 커다란 갈색 피부의 오크,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의 여인과 백발의 소녀까지.
그는 저 검은 머리카락 여인이 수준 높은 마법사라는 것을 알아봤다. 소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가진 마력의 순도는 대단히 높았다. 어디서 이런 재료들이 굴러들어왔는지. 겔리오투스님의 가호라도 있었나?
루가네스가 지팡이를 들더니 땅을 내려찍었다.
쿠웅.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울리는 소리는 무거웠다. 동시에 루가네스의 발밑에서부터 흑마력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명령했다.
“가라. 찢고, 죽여라.”
그러자 여덟 명의 괴한들이 두건을 뒤로 젖혔다. 드러난 그들의 얼굴은 기괴했다. 피부는 창백했고, 검붉은 혈관들이 울긋불긋 솟아있었다.
눈동자는 흰자위와 동공의 경계 없이 붉고, 때로는 검었다. 살은 짓물렀고 입은 귀밑까지 크게 찢어져 있었다. 드러난 이빨들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다.
그 기괴하면서도 끔찍한 외견에 아엘라시스가 진저리를 쳤다.
“윽, 저게 뭐야.”
카이도 갈색 피부에 어울리지 않게 희게 질린 얼굴로, 하지만 양 주먹을 굳게 쥐고 들어 올린 채 중얼거렸다.
“불칸이여. 부디 힘을.”
칼리아는 말없이 손가락을 풀었다. 그녀의 검붉은 눈동자가 어둑한 하늘 아래서 조용하게 번뜩였다.
러셀은 마지막 서리를 들었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 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괴물들을 응시했다. 루가네스가 지팡이를 들어 러셀을 가리켰다.
“가라.”
여덟 명의 괴물들은 반수로 나뉘었다. 넷은 러셀에게, 남은 넷은 뒤의 일행들에게 달려든 것이었다. 러셀은 일행들을 걱정하지 않았다.
카이는 잊혀졌다고는 해도 신의 대전사이고, 아엘라시스는 어리지만 용이었다. 무엇보다 칼리아가 있었다.
러셀은 곧게 찔러 들어오는 검을 걷어내고 마지막 서리로 놈의 허리를 갈랐다. 덜컥, 하고 팔이 멈췄다. 도끼는 놈의 허리를 완전히 가르지 못하고 중간에서 걸려있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 괴물들의 내구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잠시지만 움직임이 봉쇄된 러셀을 향해 세 개의 검날이 날아들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것처럼 규칙적이고 정교한 공격들.
괴물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조직력이 강한 수준이 아니었다. 의식을 공유하는 것 같은 일치된 움직임. 마치 하나의 군체 같다.
그리고 러셀은 놈들의 마력 파장이 일치하는 것과, 그 파장의 연결고리들이 루가네스에게 이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흡!”
러셀은 기합성을 내뱉음과 동시에 전신에 힘을 줬다. 팽창한 근육들이 뼈를 밀어냈지만, 단단한 뼈는 견뎌냈다. 전기보다 빠른 신호가 신경을 타고 질주했다. 마지막으로 마력이 회로를 타고 미증유의 힘을 뿜어냈다.
의식, 시야의 공유, 강철보다 단단한 내구도, 합을 맞춘 공격들. 모두 지금의 러셀에게는 돌파 가능한 것들이었다. 러셀은 자신의 육체와 힘을 알고, 또한 믿었다.
콰릉-!
도끼에 벼락이 실렸다.
허리로 도끼를 잡고 있던 놈이 산산이 부서지고, 괴물의 몸을 이루고 있던 많은 것들이 공중에 흩뿌려졌다. 포말을 그리던 그것들은 도끼에서 뿜어지는 서리와 벼락에 얼었다가 부서지며 찰나의 반짝임을 자아냈다.
도끼가 냉기와 벼락의 뜨거움 사이를 휘저었다.
괴물 중 하나는 러셀이 도끼를 놓아버린 것을 보고 빈틈이라 판단했다. 놈은 휘두르던 검에서 힘을 빼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보다 먼저, 러셀의 주먹이 괴물의 안면에 틀어박히는 것이 빨랐다. 벼락을 두른 그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배는 더 빨라져 있었고, 안면이 부서진 괴물은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위로 빙글 돌아가던 도끼는 대기하고 있던 러셀의 왼손에 기다렸다는 듯이 잡혔다. 마지막 서리는 옆에서 쇄도해오던 괴물의 목을 날려버렸다. 언제나처럼, 피는 튀지 않았다.
남은 둘은 더 이상 숫자의 우세를 점할 수 없었다. 이미 넷으로도 러셀을 죽일 수 없었다. 그리고 루가네스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러셀의 힘과 실력에 감명과 욕설을 터트리기보다는 재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남은 둘이 거친 숨을 쌕쌕거리며 내뿜기 시작했다. 창백한 피부에 돋아난 검붉은 핏줄들이 점점 많아졌다.
거기다 덩치까지 조금씩 커져 갔다. 울그락 불그락 커지는 근육과 힘줄과 결들이 자못 위협적이었다. 질량이 커지면서 무게 또한 무거워진 것인지 내딛는 발이 깊은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러셀의 발밑까지 퍼진 루가네스의 흑마력이 지면을 검게 물들였다. 그곳에서 녹색의 줄기들이 솟구치더니 러셀의 사지에 감겨들었다. 지면은 늪처럼 변하더니 그의 다리를 집어 삼켜갔다.
그때 코트가 빛을 내더니 검은색의 갑주로 변해 러셀을 보호했다. 루가네스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마법 도끼에 마법 갑옷까지. 뭐하는 자식이야?”
“흐아압!”
러셀은 자신을 끌어당기던 녹색 줄기들을 베어내고 지면에 도끼를 꽂았다. 그러자 늪이 얼어붙었고, 러셀은 더 이상 질척하지 않은 땅에서 거칠게 다리를 뽑아냈다.
그때 지척까지 다가온 괴물 중 하나가 커다란 주먹을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괴력이 담겨져 있는지 알려주는 듯 했다.
탁.
하지만 휘둘러진 속도가 무색하게 난 소리는 작았다. 러셀은 그 주먹을 가볍게 들어 올린 손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힘을 주자 마치 압착기에 들어간 것처럼 괴물의 주먹이 우그러졌다.
“크어어어어!”
고통에 울부짖은 괴물이 후속타를 날리려 하는 순간 러셀의 어퍼컷이 괴물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렸다. 비대해진 승모근과 목근육은 날아가는 머리를 붙잡지 못했다.
“카아악!”
다른 놈이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던져 러셀을 덮치려 들었다. 러셀은 놈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왼손으로 목을, 오른손으로는 배에 찔러넣어 척추뼈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내리꽂았다.
굉음이 울리며 대지가 움푹 패였다. 컥, 하고 피를 토하는 괴물에게서 러셀은 오른손을 뽑았다. 피와 내장이 덕지덕지 묻은 철갑에는 척추뼈가 들려 있었다.
러셀은 사지를 펼친 채 누운 놈의 가슴에 발을 내리꽂았다. 가슴을 꿰뚫고 들어간 발에서 다시금 벼락의 섬광이 터졌다.
쿠르르릉.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서 울리는 천둥이 잦아들고, 러셀은 천천히 탄화된 괴물의 사체에서 다리를 뺐다. 루가네스는 멍한 눈빛으로 러셀을 바라봤다.
순식간이었다. 다른 주문을 외울 시간도 없이, 러셀은 그가 공들여 만든 키메라들을 쳐 부숴버렸다.
러셀은 뚜벅뚜벅 루가네스에게 걸어갔다.
“이리 와, 씹쌔꺄. 넌 곱게는 못 죽이겠다.
야수와도 같은 으르렁거림. 악마 같은 투구 속에서 자청색의 빛이 길게 이어지며 꼬리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