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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91화 (92/225)

91화 한 마디

괴물들의 체고는 1.5미터에 가까워졌고, 이빨들은 마구잡이로 자라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빨들이 제 잇몸과 입천장마저 상처를 냈지만, 괴물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크르르르르······.”

부족했다. 턱없이 부족했다. 짐승들은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몸부림쳤다. 뼈를 부수고, 그 안의 골수까지 빨아먹어도 허기는 충족되지 않았다.

그때 한 놈이 고개를 들고 황야 저편을 바라봤다. 가장 커다란 놈이었다. 늑대 무리를 이끌던 대장이 바로 그놈이었다.

놈의 덩치는 다른 놈들보다 확연히 컸다. 눈 한쪽에 깊은 흉터가 나 있었다. 무리 하나를 흡수하는데 얻은 상처다.

이미 멀어버렸던 눈은 이제 재생되고 있었다. 찢어졌던 각막이 아물고 그 안에 액체가 차올랐다.

멀쩡해진 노란 두 눈으로, 대장 늑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몇 번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결국 대장 늑대는 두 발로 일어섰다. 마치 늑대 수인 같은 모습이었지만, 털이 다 빠지고 붉은 피부만 드러내고 있었기에 혼동할 일은 없을 것이다.

놈은 앞발을 바닥에 내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괴물 늑대들이 그 뒤를 따랐다.

수십 마리의 헐벗고 커다란 괴물들이 황야를 달렸다.

***

노을빛이 사위를 밝혔다. 초원은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빛났다. 만지면 따스할 것 같은 빛이었다.

허나 노련한 방랑자와 상인들은 그 속에 깃든 밤의 한기를 예상했다.

상단이 마을을 발견한 것은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서 야영 준비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삭막했던 황야가 점차 축축해지고, 언덕과 구릉밖에 보이지 않던 지평선에 짙푸른 녹음이 나타났다. 그리고 저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이다!“

”살았어······.“

몇몇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낮부터 쉼 없이 걸어온 것에 지친 탓이다. 거의 행군에 가까웠지만, 다른 마적들이 덮칠까 불안해서 멈출 수 없었다.

”러셀, 나 피곤해······.“

아엘라시스가 뒤에 앉은 러셀의 가슴에 뒤통수를 콩콩 부딪쳤다. 러셀은 그 귀여운 몸짓에 아엘라시스의 옆구리에 손을 가져갔다.

”으햐학?!“

”이래도 피곤하냐? 응?“

”으헷, 그만, 그만! 냐하하하!“

러셀의 간지럼에 아엘라시스가 이리저리 몸부림을 쳤다. 그렇게 한참을 간지럽히고 나자 아엘라시스가 거친 숨과 새빨개진 볼을 들더니 획 하고 돌아앉았다.

”우씨. 못됐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엘라시스는 러셀의 품에 꼭 안기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러셀은 그런 소녀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었다.

마을에 점차 가까워지면서 밭이 보였다. 밀과 보리, 푸성귀가 심어진 넓은 밭이었다.

약간 야트막한 언덕 위에 나무들이 있고, 그를 중심으로 집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도시처럼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규모가 작지는 않은 마을이었다.

러셀은 품에 안긴 아엘라시스의 등을 두드려주며, 마을이 전형적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전형적이라는 건 이 세계 기준이다.

마을의 외곽에는 커다란 목책이 한 겹도 아니고 두 겹이나 세워져 있었다. 괴물들을 막기 위한 방호책의 일환이다.

거기에 망루까지 세워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얄팍한 막대처럼 보일 정도로 먼 거리였지만, 러셀에게는 그 망루와 거기서 서성거리는 활을 든 사내도 볼 수 있었다.

노을이 거의 질 때쯤 상단은 마을에 도착했다. 망루에서 상단이 오는 것을 지켜보던 사내가 활을 등에 건 채 훌쩍 뛰어내렸다.

탄탄한 몸에 가벼운 몸놀림의 그는, 자신을 마을의 자경단이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쉐린이었다. 쉐린은 상단의 사람들과 러셀 일행을 보더니 말했다.

”한 사람당 은화 한 닢이오.“

”이런, 쉐린. 한 사람당 은화 한 닢이라고? 언제 그렇게 값이 올랐나?“

”어쩔 수 없수, 테보닌. 요즘 우리 마을에 들리는 사람들마다 불안한 이야기를 합디다. 습격해오는 괴물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고요. 그에 대비해서 쇠뇌와 활, 화살과 병장기를 사다 보니 지출이 많이 늘었수다.“

테보닌과 쉐린은 서로 아는 사이인 듯했다. 겉으로는 썩 친한 듯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눴지만, 속으로는 상인과 자경단으로서 서로를 떠보며 값에 대해 흥정을 나누는 데 한창이었다.

러셀은 목책을 둘러보았다. 괴물들과 도적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안전한 거점이라는 것은 그만한 가치를 지닌다.

한 겹도 아니고 두 겹이나 두른 목책은 그 견고함만큼이나 안으로 들어서는 자들에게 까다로운 입장료를 요구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러셀도 괴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자리를 튼 마을들이 거주하는 데 돈을 요구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 사람당 은화 하나는 조금 비싼 듯했지만.

목책 위에는 ‘경계 중!’이라고 쓰인 듯한 얼굴의 청년, 중년 남자들이 활을 들고 이리저리 서성였다. 그리고 그들은 러셀 일행을 제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다. 러셀도 그렇지만, 오크인 카이 때문일 것이다. 경계하는 청년들이 수군거렸다.

”저거 오크잖아. 오크가 왜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거야?“

”멍청아, 피부가 갈색이잖아.“

”갈색이면 뭐가 달라?“

”색깔이 다르지.“

결국 테보닌은 두 사람당 은화 하나로 값을 책정하는 데 성공했다. 대신 일정량의 식료품을 마을 사람들이 사가고, 테보닌은 마적들에게서 얻은 갑옷 몇 개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쉐린이 그것을 궁금해했다.

”이런 갑옷들은 어디서 구한 거유? 테보닌. 내가 알기로 당신은 식료품이나 향신료 등을 주로 취급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품목을 바꾼 거요?“

”커흠, 아니라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조금 색다른 게 필요할 것 같은데 말이야. 으응?“

테보닌이 컵을 쥐고 들이켜는 시늉을 보이자 쉐린도 피식 웃었다.

”알겠소. 들어오시면 한 병 대접해드리지. 안 그래도 요즘 벌꿀술 만들기가 한창이요.“

”벌꿀술! 그거 좋지.“

테보닌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값을 치르자 마차와 짐마차,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갔다. 러셀 일행의 차례가 되었을 때, 쉐린이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슈. 난 쉐린이요.“

”러셀. 여기 자고 있는 아이는 아엘라시스. 저쪽은.“

”카이요.“

러셀은 품에 안겨있는 아엘라시스 때문에 말에서 내리지 않았고, 그래서 쉐린을 내려다봤다. 쉐린은 괜히 코를 훑더니 말했다.

”큼. 셋이 동행이슈?“

”그렇소만.“

”저자는 오크인 듯한데······.“

쉐린이 말끝을 흐린 것처럼 오크를 경계하는 시선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문제가 되나?“

”아니, 뭐 문제랄 것까진 없는데. 그쪽들은 덩치가 크니 돈을 더 내야 할 거란 거지.“

뭐지. 러셀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다 이 쉐린이란 자의 배짱이 그들에게 아무런 무기가 없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러셀은 모든 무기를 코트 안쪽에 보관 중이고, 카이는 맨손이다. 거기다 아엘라시스는 아예 어린 소녀였다.

겉으로 보면 무기 하나도 없이 돌아다니는, 객사하기 딱 좋아보이는 여행자 무리로 보이는 모양.

테보닌이 당황한 얼굴로 나섰다.

”쉐린, 이게 무슨 짓인가. 이분은 기사님이시네. 저분들은 기사님의 동료고.“

”기사? 갑옷도 없고, 칼도 없는 자가 무슨 기사란 말요?“

”아니, 그건······.“

테보닌은 그게 러셀이 입고 있는 마법의 코트 덕분임을 알고 있었지만, 함부로 말할 수도 없었다.

”모르겠고, 그짝들은 들어올 때 은화 하나씩 내시오. 어차피 오다가 만난 사람들이라면서?“

쉐린이 아까 테보닌과 대화할 때 들었던 것을 입에 올리자 테보닌이 펄쩍 뛰었다.

”쉐린! 정말 이렇게 굴 건가! 그 이야기는 내가 이따가 차차 해준다고······!“

러셀은 턱을 긁적였다. 그냥 지나쳐가야 하나. 하지만 바로 앞에 마을이 있는데 또 야영을 하기는 싫었다. 그냥 금화로 퉁 칠까.

문득, 러셀이 뒤를 돌아봤다. 그의 감각에 뭔가 잡혔다. 이스칼리아와의 전투 후 그는 마력을 넓게 퍼트리는 감각을 얻었다.

마력 감각권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오감과는 완전히 다른 그 감각에서, 러셀은 그들이 있는 마을을 향해 달려오는 무수한 진동을 느꼈다. 그리고 목책에 있던 사람들도 지평선에서 다가오는 것들을 발견했다.

”어? 저거 뭐야?“

눈이 좋은 몇이 그 정체를 알아봤다.

”괴물이다!“

목책과 망루에 서서 바깥을 보던 자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모두가 노을빛을 받으며 달려오는 괴물들을 발견했다. 숫자는 스무 마리는 족히 넘어 보였다.

어찌나 빠르게 달려오는지 뒤에 달고 오는 흙먼지 구름이 짙게 일어나고 있었다.

-카아아아아!

거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표정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쇠뇌 장전하고, 활 들어! 쉐린! 올라와요!”

러셀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러자 달려오고 있는 것들이 보였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모습들이 하나 같이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 마치 늑대를 베이스로 해서 털을 다 뽑아낸 다음 거죽을 벗겨내고 근육과 뼈를 기형적으로 성장시킨 듯한 괴물이었다.

초원이 아니라 어디 던전이나 유적, 혹은 흑마법사의 끔찍한 실험체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았다.

쉐린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외쳤다.

“젠장, 문 닫아! 당신들 도대체 꽁무니에 뭘 달고 온 거요!”

“어, 어? 이보게!”

쉐린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테보닌의 손길을 피하더니 닫히는 문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상단과 사람들은 황망한 얼굴로 그들 앞에서 꽉 닫혀버린 목책 문을 멍하니 쳐다봤다.

“허.”

러셀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 괴물들이 오기까지는 거리가 남아있는데도 문을 닫아버리다니.

“그래, 뭐. 여기 사람 인심이라는 게 그렇지.”

러셀은 코트에서 칼과 도끼를 꺼냈다. 대검 나힐니르와 마지막 서리. 그는 하늘을 살폈다. 푸른 달이 북동쪽 하늘에서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우왕좌왕하는 상단들 앞에 나힐니르를 콱, 하고 박았다. 커다란 검신이 절반도 넘게 땅에 박혀 들어갔다.

“여기, 검 바깥으로 나가지 마시오.”

“예, 예?”

“카이. 혹시 들어오는 놈 있으면 처리해라.”

“알겠소.”

괴물들은 벌써 지척이었다. 그는 바닥을 박찼다. 강력한 다릿심에 땅이 뒤집혔다.

“크와웅!”

서로의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스무 마리의 괴물 늑대들이 입에서 침을 질질 흘렸다. 번들거리는 눈에는 인간 고기에 대한 끝없는 탐욕만이 가득했다.

그 괴물들 앞에서, 러셀은 마지막 서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샤아아아아아-!

커다란 뱀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막대한 마력을 받아먹은 도끼를 위로 치켜든 러셀은, 그것을 힘껏 내리쳤다.

쿵! 쩌저저저적-

도끼가 받아들인 마력을 모두 냉기로 전환해 내뿜자 순식간에 반경 수십 미터가 서리의 지옥이 되었다.

대지뿐만 아니라 대기에 떠다니는 수분들이 급격히 얼어가며 타오르는 불꽃의 꼬리를 그리며 사방을 얼렸다.

괴물 늑대들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그 냉기의 폭풍을 직격으로 얻어맞았다.

바닥을 타고 흐른 냉기는 기형적으로 자라난 발과 다리를 타고 올라와 붉은 피부와 근육을 삽시간에 얼어붙게 했다.

“크하아악!”

몇 놈이 그렇게 얼어붙어 절명해 버렸지만, 냉기를 뿌리친 놈들도 있었다. 러셀은 그놈들이 죽어버린 것들보다 훨씬 난폭한 마력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러셀은 왼발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며 도끼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제일 앞에서 달려오던 괴물 늑대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놈은 달려오는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을 갈며 무너졌다.

한 놈을 처리하자 뒤의 두 놈이 다양한 방향으로 솟은 이빨을 들이밀었다.

“새끼들, 너희들은 치아 교정해 달라고 하지 마라.”

흰소리를 하며 러셀은 내디뎠던 발을 뒤로 물렸다. 왼쪽에서 들어오는 놈의 입가에 도끼를 들이밀어 그대로 그어서 입을 늘려주고, 오른쪽에서 달려든 놈은 도끼의 자루로 후려쳤다.

붕 떠오른 놈의 배를 도끼날이 스쳤다. 놈은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뒤의 놈이 얼어붙은 동족의 시체를 박살을 내며 발톱을 휘둘렀다.

그에 맞서 러셀도 자신의 발톱을 휘둘렀다. 그의 발톱이 더 강맹하고, 더 빠르고, 더 날카로웠다. 그리고 시릴 듯이 차가웠다.

냉기에서 막 풀려난 놈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 사지를 억지로 당기며 그에게 돌진했다. 전후좌우, 위까지 러셀을 덮는 그림자가 짙어지고 많아졌다.

그가 괴물들에게 완전히 가려졌다고 사람들이 생각한 순간, 번뜩이는 섬광이 전방위로 퍼져나갔다.

퍼어엉!

괴물들은 잘게 잘린 육편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꽁꽁 얼려져 나뒹구는 고기 조각들은 러셀에게 기묘한 감상을 남겼다. 마치 마트에서 일괄적으로 판매하는 냉동 고기들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 감상은 잠시였다.

다시 러셀의 도끼가 춤을 췄다. 하얀 베일을 두른 죽음의 춤사위.

목책 위의 사람들은 입을 벌린 채 그 전투, 아니 학살을 내려다봤다. 쉐린의 얼굴은 허옇게 질려 있었다. 그는 이제 누구를 상대로 감히 배짱을 부린 것인지 똑똑히 알았다.

목책 아래에서, 상단 사람들과 둥글게 모여 서 있던 테보닌이 중얼거렸다.

“기사님이 마법사이기도 하셨나?”

카이는 저 도끼를 알아봤다.

‘저건 그때 그 도끼군.’

카이는 에란디스 영지에서 뱀파이어와 뱀피르를 죽일 때, 러셀이 저 도끼를 들고 종횡무진으로 날뛴 걸 기억했다.

그 순간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 정도로, 러셀은 거칠면서도 유려하게 괴물들 사이를 휩쓸었다.

그때 차마 러셀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있던 늑대 괴물 몇이 목책에 가까이 서 있는 상단과 사람들을 발견했다.

“어, 어.”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크와아악!”

두 마리의 늑대 괴물이 바닥을 파헤치며 돌진해왔다. 카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나서려는 찰나.

파지지지직-!

“크뤠에게게엑!”

“크라가라라악!”

나힐니르가 박혀있는 지점을 넘어서려는 순간, 대검의 검신에 새겨져 있던 달의 룬이 빛나더니 두 늑대 괴물을 태워버렸다.

사람들은 다시금 멍한 표정이 되어 잿더미가 되어버린 괴물 늑대와 대검을 번갈아 쳐다봤다.

전투는 이제 막바지였다. 처음의 반구형으로 퍼지던 냉기 폭풍이 수십 마리를 얼렸고, 러셀은 그놈들이 냉기의 주박에서 풀리기 전에 박살을 내버렸다.

이족 보행을 하는 놈, 사족 보행을 하는 놈 상관없이 공평하게 허리가 썩둑 잘려 쓰러졌다. 피와 내장은 얼어붙은 채 단단히 고정되었다.

괴물 늑대를 이끌던 대장 괴물이 으르렁거렸다. 놈을 따르던 괴물 늑대들은 이제 다 죽어 쓰러졌다.

대장 괴물이 발톱을 세우며 몸을 날렸다. 길어진 발톱은 웬만한 단검에 맞먹을 만큼 날카롭고 길었다.

긴 갈고리 같은 손톱들이 거친 파공성을 남기며 러셀의 얼굴을 긁으려 들었다. 러셀은 허리를 뒤로 젖혀 피했다.

손톱은 그의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커다란 동작 뒤에는 항상 빈틈이 오기 마련이었고, 러셀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도끼가 네 번 움직였다. 놈은 사지가 잘린 채 땅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이제까지 그랬듯이, 피는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괴물의 덩치와 힘, 속도를 봐도 너무 허무하게 끝난 싸움이었다. 그만큼 러셀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주위는 온통 얼음과 서리 조각들 투성이였다. 다 얼어붙은 시체 파편들이었다. 사지가 잘린 늑대 괴물이 구슬프게 울었다.

“끼잉, 끼이이이······.”

그는 도끼를 땅에 박아놓고 손으로 괴물 늑대의 가슴을 꿰뚫었다.

“케에엑!”

단말마를 내지른 놈은 곧 축 늘어졌다. 러셀은 그놈을 일별하고는 손에 든 심장을 쳐다봤다.

“이스칼리아. 나오지 않고 대답만 할 수 있나?”

-······날 잊어먹은 줄 알았더니.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한 건 그쪽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부르지도 않을 줄은 몰랐느니라.

러셀은 귓가에서 흥흥 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삐진 건가.

“이거, 뭔지 알겠나? 난 마법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군.”

그가 쓸 수 있는 마법은 대게 전투용으로만 쏠려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종류의 마법은 그의 마안으로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뭘 알아야 본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행히 그의 그림자에는 마법사 한 명이 들어있었다. 800년 전의 마법사이긴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음. 흑마법 종류 같기는 한데······.

흑마법?

-이 상태로는 알 수 없다. 만져봐야 알 듯한데.

“알겠다.”

러셀은 도끼를 집어 든 다음 마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보폭이 넓은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목책 앞에 도착했다.

그는 도끼를 어깨에 걸친 다음 목책 위를 바라봤다. 뒤쪽으로 해가 마지막 빛을 뿌리며 저물고 있었기에 러셀의 그림자는 거대해져서 목책을 덮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그림자의 거인이 마을을 굽어보는 듯했다.

러셀은 딱 한 마디만 했다.

“나와.”

모두가 누굴 말한 것인지 알았다. 시선을 한데 받은 쉐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의 입에서 꼬리를 뒤로 만 똥개 같은, 처량한 신음성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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