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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87화 (88/225)

87화 다시 길로

저 눈은 무엇인가? 루넬바스는 태어나서 맹세코 저런 눈은 처음 보았다.

자청색으로 빛나는 불길한 눈. 마치 빨려 들어갈 것 같다. 혼란 속에서, 루넬바스는 겨우 침을 삼켰다.

언제 이리 입안이 말라 있었는지. 텁텁한 느낌이 혀와 입천장에 그득했다. 대사막의 모래를 씹고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렇단 말이지.”

반말이었지만, 루넬바스는 그걸 지적할 용기도 들지 않았다. 러셀의 눈이 점점 빛나고, 루넬바스가 석상처럼 딱딱히 굳어가는 찰나.

“그럼 됐소.”

촛불을 훅, 하고 끈 것 마냥 모든 기세가 사라졌다. 빛나는 듯 했던 러셀의 눈은 어느새 원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됐다고?”

“그렇소. 난 또 이상한 말을 들어서 말이오.”

루넬바스는 무슨 이상한 말을 들었냐고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걸 물어보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단련된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마나를 받아들여 마력을 정제한 자들은 바라든 바라지 않든 기민한 감각과 신체를 얻게 된다.

마력의 성질은 술사들의 의지에 따라 바뀌게 되는데, 기사나 전사, 용병 같이 몸을 쓰는 자들은 신체의 강력함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된 육체적 단련이 뒤따라야 했다.

반대로 마법사들, 마녀들은 마력을 통해 세계의 규칙을 바꾸는데 더 큰 소망을 갖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한 주문과 수인을 알아야 했다.

등가교환의 법칙. 하나를 대가로, 하나를 얻는다.

그리고 마력을 수련하는 자들은 전사고 마법사고 할 것 없이 목숨의 위협에 대해 더없이 선명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건 어찌보면 세계가 알려주는, 혹은 보여주는 운명이라고 해도 좋다.

루넬바스는 여기서 러셀에게 더한 추궁이나, 행동을 보일 경우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느꼈다.

생과 사의 저울에서 죽음 쪽으로 자신의 추가 기울게 될 것이다. 루넬바스는 아직 더 살고 싶었다.

“허허. 무슨 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아엘라라는 그 소녀와 자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네. 이미 영주가 의뢰한 유물들의 진위여부와 그 마력을 파악해야 하는 일들이 바쁘다네. 그것 말고도 다른 연구들도 많이 있고······.”

“그럼 다행이고.”

러셀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루넬바스는 자신과 러셀이 있는 곳이 마탑의 응접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러셀이 내뿜은 기세가 워낙 거세고 흉흉하여 루넬바스는 자리하고 있던 장소도 잊어 먹고 있었다.

“계속해서 우리에게 관심 가지지 않길 기대하지.”

러셀은 응접실에서 나갔다. 홀로 남은 루넬바스는 식은땀으로 젖은 이마를 쓸어내렸다.

“빌어먹을.”

절로 욕설이 나온다. 까마득하게 어린 놈과의 마력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는 것, 마탑의 마스터로서 자존심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 복합적이었다.

늙은 마법사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타오른 것 만큼이나 피시식 꺼졌다.

무릇 마법사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비현실적, 혹은 초 현실적 현상을 다루는 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비 현실과 초 현실 모두 현실이라는 토대가 있어야 설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러셀은 비 현실과 초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자였다. 최소한 루넬바스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세상에, 그 끔찍한 어둠과 암흑이라니.

현실적인 늙은 노 마법사는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가 지금이 아닌 건 확실했다. 이곳은 그의 본거지인 대 마탑이 아닌 영지의 작은 마탑에 불과하고, 그의 연구 기반이나 도구들도 이곳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루넬바스는 잠시 응접실의 소파에 앉아 자신에게 엄습했던 러셀의 마력과 기세를 떨쳐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건 쉽지 않았다.

***

“또 작별이네.”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이블린은 마탑에서 나와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가 북적이고 있었다. 이제 막 장사를 하려는 상인들, 식당을 여는 주인들, 상행을 다시 시작하려는 행상인들이 가득했다.

“언젠가 또 만나겠지.”

“거의 반년만에 만났는데, 다음에 만날 때면 거의 1년은 지나있는 거 아냐?”

“그 정도까지 걸릴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이제 어디로 가?”

러셀은 잠깐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오에 가까워지는 시간. 아침 안개를 물리친 태양이 느릿하게 천공을 오르고 있다.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 봐야지. 아직 중북부니까.”

엄밀히 말하면 북부에 조금 더 가깝다. 러셀은 여기서 조금 더 내려가보고, 동쪽이나 서쪽으로 갈지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동쪽에는 대수림이 있고, 그 아래에는 항구도시가 있다.

중부에서 서쪽으로 가면 제국이 나온다. 제국······. 인류 문명의 첨단. 그곳도 한 번은 가봐야 하는데.

러셀은 생각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이블린이 천천히 걷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마탑에서부터 검은 보리 향 여관이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다.

이블린이 말했다.

“요즘 정세가 이상하다는 소문이 많이 들리고 있어. 중부의 성주들이나 산자락의 괴물들이 날뛰고 있대. 조심해.”

“그들이 더 조심해야 할 텐데.”

“그건 그렇지.”

이블린은 이 커다란 남자를 보며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였다.

이블린은 처음 러셀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게 벌써 작년이었다. 대학 과제를 위해 무작정 나섰던 여행. 무슨 용기와 자신감이 있어서였는지 덜컥 상행에 올랐다.

북동부의 도시로 가는 상행에서 괴물의 습격은 일상이었고, 그렇기에 그녀 또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십 년 넘게 배운 공부와 마력이 무가치한 쓰레기가 될 뻔한 순간에서, 러셀은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이후 칼리스덴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 그 중심에는 항상 러셀이 있었다. 모두가 그를 붙잡길 원했지만, 그는 미련 없이 떠났다. 지금도 그렇다.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왔다. 러셀은 이블린과 악수를 나눴다.

“인사는 필요없지?”

“그래.”

이블린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몸을 돌렸다. 빨간 머리가 물결을 치며 휘날렸다. 옅은 라임향을 느끼며, 러셀도 여관으로 걸었다.

***

러셀은 돌아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음 여정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기에 넉넉히 싸야 했다.

가장 먼저 행해져야 할 장비 점검은 빠르게 끝났다. 러셀의 차림새는 간편했다.

라몬 에란디스 영주가 챙겨준 상의와 하의, 가죽 장갑 두 켤레, 그리고 질 좋은 부츠. 여벌의 옷들은 어김없이 마법의 코트, 바엘에 들어갔다.

묵색의 대검 나힐니르와 백색 외날 도끼 마지막 서리도 코트 속에 갈무리하고 나자 간단하다 못해 단출해 보였다.

아엘라시스는 여전히 갑옷을 입기 싫어했다. 러셀은 그냥 놔두기로 했다. 인간의 몸으로 변신하고 있는 지금도 잠깐 방심하면 동공이 길쭉해지거나 관자놀이에서 뿔이 튀어나오는 그녀에게 갑옷까지 입히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그녀의 육체는 언뜻 가녀려 보이지만, 용의 다른 몸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비늘처럼 단단하진 않다. 그럼에도 기민한 신체감각은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그리고 러셀은 그 외에도 다른 방어 수단을 생각해두었다. 힐끔 그림자를 쳐다본 러셀은 곧 카이를 바라보았다.

카이는 맨몸을 드러낸 상체에 바지와 부츠만 신었다. 다른 장비는 착용하지 않았다.

짐에 들어가는 물품들은 다양했다. 일단 식량이 그랬다. 러셀과 아엘라시스는 물론이고, 카이도 만만찮은 양의 음식을 먹어야 했으니.

”저희가 좀 도와드릴게요. 로빈! 와서 감자 껍질 좀 깎아줘!“

로라가 손수 팔을 거들었다. 그녀와 로빈의 도움으로 러셀은 거의 일주일 치가 넘는 양의 식료품을 받았다. 러셀은 품에서 금화를 하나 꺼내 두 남매에게 건넸다.

당연히 금화를 보는 두 남매의 눈이 퉁방울만하게 커졌다. 로라가 손사래를 쳤다.

”아, 아녜요! 저희를 구해주신 것도 있는데, 이렇게 많이는······.“

”받아둬. 나 돈 많다.“

직접 세어보진 않았지만, 돈은 넘치도록 많았다. 칼리스덴 성주에게서 받은 것도 있고, 이스메니오스의 방에서 얻은 것도 있다. 거기다가 라몬 에란디스 영주에게서 따로 받은 금화와 은편까지.

아마 웬만한 작은 영지의 1년치 세금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황송해하는 로라와 다르게 로빈은 조금 더 도전적인 얼굴로 러셀을 바라봤다.

”할 말 있냐?“

”예. 저, 저도 러셀 님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러셀은 로빈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밤색 머리카락에 밤색 눈동자. 주근깨가 다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 근래 키는 좀 큰 듯 했지만, 그래봤자 러셀의 허리춤을 간신히 넘는 소년에 불과했다.

뒤편에서 루크와 로라가 조마조마한 얼굴로 로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로빈의 부탁이 허무맹랑한 것으로 치부될까 안타까운 모양.

러셀은 쭈그려 앉았다.

”강해지고 싶다고?“

로빈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생각했어요. 다른 길드들이 보호세를 받으러 올 때마다, 나도 힘이 있어서 보호세를 내지 않고도 우리 여관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톰과 스튜어트가 뜨끔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카이도 괜히 찔리는지 눈을 돌리고 있었다.

”2주 전에 그 괴물들 때도 그랬어요. 최소한, 우리 누나랑 할아버지, 여관의 가족들만큼은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강해질 수 있을까요? 러셀 님처럼?“

러셀은 그런 소년을 찬찬히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투시 능력을 개방했다.

투시력은 현대에선 누구나 꿈꾸는 능력 중 하나로 손꼽히나 그 실체는 사실 견디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인체의 심장이 맥동하며 피를 받아들이고 다시 내뿜는 모습. 허파가 쪼그라들었다가 다시 펴지는 과정. 혈관과 혈관, 근육과 신경이 전기적 신호에 이완됐다가 수축하고.

내장들의 활발한 운동. 배설물들이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광경을 직접 보게 되면 하루 종일 입맛을 잃을 수도 있다. 집에 있을 적 되도록 사람을 만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혔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제 웬만한 눈의 능력들을 조율하게 된 지금은 원하는 것만 집어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마력 회로 같은 것. 러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가 로빈에게 말했다.

”뒤로 돌아서 앉아라. 가부좌 틀 줄 아냐?“

”가부좌요?“

”이렇게 앉는 거다.“

꿀꺽. 로빈은 침을 삼키고 뒤로 돌아앉았다. 러셀이 직접 소년의 다리와 팔 위치를 잡아주었다.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려는 것임을 직감한 루크가 카운터에서 나왔다. 로라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 하려는 건가?“

러셀이 묵묵하게 말했다.

”이 꼬마가 강해지고 싶다잖습니까. 지금껏 고생했으니 조금 도와주려고 그럽니다.“

”아니, 방에 들어가서 하지 않고?“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하려는 사람의 의지만 강하다면.“

제각기 일을 하던 톰과 스튜어트는 바로 여관의 문을 닫았다. 내려와 있던 레메론과 페일도 흥미진진한 얼굴로 하는 양을 지켜봤다.

아엘라시스는 머리를 꼬았고, 카이는 근처에서 팔짱을 꼈다. 러셀은 천천히 로빈의 등에 손을 얹었다. 일순 바람이 불 일 없는 여관의 1층에서 바람이 후웅, 불었다.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감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봤다.

”입은 열지 마라. 반신불수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로빈은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러셀은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의 마력이 아니다. 러셀의 마력은 감히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다.

산들바람이던 것이 폭풍의 바람처럼 요동쳤다. 하지만 그 모든 바람은 바깥으로 퍼져나가지 않았다. 어느새 전개한 러셀의 마력 역장이 바람을 붙잡아놓은 탓이다.

그는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마나를 끌어모아 자신을 통로로 해서 로빈에게 불어넣었다. 남들은 볼 수 없는 마나의 거친 흐름이 그의 눈에는 보였다.

무지갯빛의 춤사위 같은 현장이다. 프리즘에 반사된 빛처럼 총천연색의 빛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로빈의 마력 회로가 반응했다.

두근, 하고 심장이 박동했다. 로빈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새로운 감각이 심장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순환하고, 굽이치며, 죽 이어지는 길들이 열리고 다듬어진다.

마치 오랫동안 피가 통하지 않았던 신체 말단에 갑작스럽게 다시 피가 통하는 듯한 기분.

”이제 말해도 된다.“

로빈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방금, 그게?“

”회로가 열리는 감각이다. 이걸 잘 기억해라.“

로빈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러셀은 바로 손을 뗐다. 로빈이 그의 마력을 느끼고 미쳐버리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

그가 방금 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좋았다. 일단 다른 사람의 신체 내부를 투시해서 마력 회로를 찾는 일부터가 그랬다. 거기다가 아주 미세한 양의 마나로 회로를 자극해 차츰 각성시키는 일이었다.

러셀은 손을 주억거렸다. 아주 오랜만에 한 것인데, 옛날에 했을 때보다 더 쉽게 됐다. 사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향상된 마력 제어력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집에 있을 때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리라 확신했기에 러셀은 로빈의 마력 회로를 열어 줄 수 있었다.

로빈이 아주 어리고, 불순물 또한 많지 않았기에 쉬운 것도 있었다. 거기에 근래 동안 워낙 강력한 마력을 지닌 존재들과 가까이 있다 보니 이미 회로의 상당수가 열려 있었다.

아마 아엘라시스의 존재 이유가 가장 클 터였다. 그녀는 용이었으니까. 용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의 마나에 관심을 받는 종족이다.

그런 아엘라시스 곁에서 매일 시중을 들고 밥을 차려주고 하다 보니, 로빈의 의지에 맞물려 신체가 각성의 준비를 마친 것이었다.

의지가 먼저 따르지 않으면 마나는 반응하지 않는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지만, 운과 기회도 기다리는 자가 잡을 수 있는 법이었다.

로빈이 러셀에게 넙죽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러셀을 바라보는 로빈의 시선은 마치 신도가 신을 직접 만난 것 같았다. 마치 지라크가 러셀을 보는 것과 비슷한 시선.

루크가 난감해하면서도, 기쁨이 어린 표정으로 러셀에게 말했다.

”괜찮은 건가? 사실 우리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이유를 잘 모르겠구만.“

”2주 동안 크라이와 아엘라를 잘 보살펴줬지 않습니까. 지금 그 값을 다 치르는 중이니 부담 갖지 마십시오.“

러셀이 말했다. 로라가 로빈을 부축하며 일으켰다. 로빈은 아직도 자신의 몸에 새로 생긴 새로운 감각이 신기한지 연신 비틀거렸다.

”그리고 강해지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기회도, 나 같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로빈에게는 기회와 사람이 모두 있으니 해준 것 뿐 입니다.“

루크는 러셀의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러셀이 로빈을 보며 과거의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다.

”얼마나 마력을 정제할 수 있는지는 네 의지에 달렸다. 자체적으로 회로가 열렸으니 가만히만 있어도 마나가 흡수되겠지만, 통제력을 잃으면 회로가 닫혀버릴 수도 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몸을 단련해라.“

로빈은 다시 한번 허리를 푹 숙였다.

”알겠습니다!“

러셀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러셀은 자신 몫의 짐 가방을 챙겨 코트에 넣었다. 카이도 가방을 들어 어깨에 멨다.

러셀 일행이 나가자 레메론과 페일도 뒤따랐다. 루크와 로빈, 로라, 톰과 스튜어트가 여관 앞까지 나와서 그들을 배웅했다.

”잘 가시게! 다음에 오면 흑맥주는 언제나 공짜로 주겠네!“

”또 오세요!“

”잘 있어!“

크라이에 탄 아엘라시스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러셀은 빙긋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다시 길을 떠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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