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봄비 (2)
***
쏴아아아······.
약한 비가 내렸다.
북부의 산맥에서 불어온 차가운 구름과 바람은 산맥의 끝자락에서 중부의 따뜻한 공기를 만나자 비가 되어 대지를 적셨다.
쏴아아아······.
하늘과 대지의 조곤조곤한 대화.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얼굴색이 어두웠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기에 하늘은 더 어둑해지기만 할 뿐 밝아지진 않았다. 아마 동이 틀 때까지는 저 표정을 고수할 것이다.
땅은 비에 젖어 짙어지고 질척해졌다. 그 질척해진 진흙을, 어떤 신발이 뭉개며 짓밟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발이 걸음을 옮겼을 때 그 밑창에는 진흙이 묻어있지 않았다.
그 신발의 주인은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을 끌고 어떤 여관 앞에 섰다.
이 작은 마을에 있는 단 하나의 여관이다. 하나밖에 없는 여관이기에 이름도 붙여져 있지 않았다.
여행자나 상인, 혹은 모험가들이 마을에 들러서 묻는 건 여관이지 여관의 이름이 아니니까. 그래서 마을 사람들도 그냥 여관이라고만 할 뿐 구태여 이름을 붙여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 마을은 근처에 작게나마 흐르는 강과 깨끗한 물이 나오는 우물 덕에 생겨난 마을이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깨끗하게 정비된 가도와 치안을 유지하는 왕국, 혹은 영지의 순찰대들 덕분에 목책도 세워져 있지 않은 작은 마을이었다.
낮은 울타리만이 마을의 둘레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망루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얼마나 평화 속에 젖어 있는 곳인지 알 것 같았다.
그자는 여관 한쪽의 마구간으로 말을 끌었다. 말은 투레질 한 번 하지 않고 손에 이끌려 지붕 아래로 들어갔다. 주인에 대한 신뢰가 보였다. 말의 갈기를 쓰다듬어준 자는 곧 여관 문을 열었다.
딸랑, 딸랑하고 문에 달려있던 놋쇠 종이 흔들림에 맞춰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은 여관의 중노미(음식점, 여관,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남자)가 식탁을 닦다가 고개를 들어 인사했다.
“어서 옵쇼!”
그리고 중노미는 바로 대걸레를 어디에 두었는지 확인했다. 손님의 신발에 묻어있을 진흙을 닦기 위함이다.
바깥에 비가 오고 있었고, 마을대로는 젖어 진창이 되었을 테니까. 벽에 기대어놓은 대걸레를 확인한 중노미가 손님에게 걸어갔다.
“어?”
중노미는 당황했다. 바닥은 깨끗했다.
지금 여관 한쪽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시끄럽게 술을 마시는 손님들 덕에 한 번 닦아낸 이후 그대로였다.
투명한 물방울만이 로브에서 뚝뚝 떨어져 바닥에 점점이 찍히고 있었다. 그마저 많은 양은 아니었다.
중노미는 그제야 새로 온 손님을 바라봤다. 그보다 큰 키에 로브와 후드를 덮고 있는 손님은 얼굴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손님은 주변을 휘 둘러보다가 근처의 자리에 앉았다.
중노미는 다급히 다른 식탁 위에 놓여있던 물 주전자와 컵을 갖고 와 손님 앞에 놓았다. 그리고 손수 물을 채워주었다. 손님은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혼자십니까?”
중노미의 물음에 손님은 컵을 내려놓았다.
“그래. 저녁 식사 1인분과 하룻밤 숙박. 얼마지? 아, 그리고 마구간에는 내 말도 있어.”
일순 여관이 조용해졌다. 얼굴을 보이지 않은 그자의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이었다. 왁자하게 떠들던 남자 용병들도 대화를 멈췄다. 혼자 앉아서 식사하던 남자도 이쪽을 쳐다봤다.
남자라고 착각할 수 없는 그 목소리는 분명 여인의 것이었고, 그런 목소리는 이런 외진, 혹은 한적한 마을에서 듣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만큼이나 홀로 여행 하는 여인 또한 드물었다.
중노미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아, 저녁 식사 1인분과 수, 수박 아니 숙박 말씀이십니까? 마구간에는 말도 있고요?”
“그래. 여물과 물을 넉넉히 넣어줬으면 좋겠어. 오면서 다른 마을에 들리지 못했거든.”
“아, 알겠습니다. 동화 여덟 닢입니다.”
여인은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중노미는 손님의 손이 하얗다는 것과, 참 곱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늘고 길쭉한 손은 태어나서 물이라고는 한 번도 묻히지 않은 것 같았다.
“음.”
여인이 작은 신음을 냈다. 손에 잡힌 건 동화 네 개 밖에 없었다.
“이런. 동화가 다 떨어졌네. 은화도······. 이런.”
중노미는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돈을 안 받을 수는 없다. 당장 급료가 까일 것이고, 정강이 또한 여관 주인에게 까일 것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중노미는 자신의 판단이 섣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인이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든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에 중노미는 두 번 초를 갈았다. 촛불은 밝았고, 그 밝음 아래서 금화는 스스로 빛을 내는 듯 반짝였다.
“금화밖에 없군. 자, 여기.”
멍해진 중노미에게 손님이 말했다.
“안 받니?”
“예? 아, 예! 죄송합니다!”
중노미는 허리를 푹 숙였다. 그러자 손님은 여전히 아름다운 목소리로 웃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아, 그게, 저.”
“됐어. 받아. 그리고 거스름돈도 좀 갖다주고. 은화랑 동화 비율은 반반 씩.”
“네, 네!”
중노미는 금화를 받으면서 힐끗하고 눈을 올렸다. 금화도 금화지만, 이 여인의 얼굴 또한 무척이나 궁금했다.
하지만 손님의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머리에 푹 눌러 쓴 후드 때문이었다. 아주 살짝 드러난 하관만 언뜻 볼 수 있었다.
턱은 갸름했고 입술은 붉었다. 피부는 깨끗하고 희었다. 하지만 그뿐이었고, 코 위는 볼 수 없었다.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까딱였다. 중노미가 부엌으로 들어간 사이, 여인은 품속에 주머니를 넣고 다른 것을 꺼냈다.
그건 지도였다. 그것도 대륙과 그 위의 산맥, 초원, 산, 계곡이 표시되고 왕국들의 국경과 영지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 가치를 제대로 아는 자에게는 천금으로도 살 수 없을 것이었으나 여인은 아무렇지 않게 지도를 다뤘다.
여인은 자신이 떠나온 곳부터 지금 도달한 곳까지의 위치를 손으로 그어보았다. 손가락은 죽 그어지다가 이전에 들렀던 마을 중 하나를 짚었다. 톡톡, 두드렸다.
로고스. 바로 위에 로고스 계곡이 위치한 이 마을은 몇 달 전 흉흉한 일이 있었다. 때가 겨울이었을 무렵이다.
겨울의 숲속에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잡아가고, 죽었던 시체가 일어나는 괴이한 현상.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오래 전부터 그들 마을을 지켜주던 수호자가 있었으나, 사건은 쉬이 해결되지 못했다.
그때 광명교에서 온 두 명의 성기사와 마을의 수호 늑대, 그리고 검은 머리 남자에 의해 사건은 해결되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마을 사람들도 잘 몰랐다. 돌아온 성기사들은 그저 괴물을 처치했노라고 말할 뿐이었다. 마을의 수호 늑대는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숲속의 보금자리에서 쉴 뿐 찾아오지는 않았다. 검은 머리의 이방인은 왔던 것처럼 훌쩍 떠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직접 알아보고자 숲으로 들어갔다. 숲을 탐색했던 마을 사람들은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다.
깊숙한 숲 한가운데에 그득하던 불타고 스러진 잿자국. 그건 분명 사악한 마력과 주문에 의해 죽음을 딛고 일어난 시체, 언데드들의 흔적이었다.
거기에 숲 바깥 쪽의 계곡에는 흰 안개가 그득했다. 그 안개는 무서우리만치 차가웠다. 그 시점에서 마을 사람들은 계곡 안쪽까지 들어가진 않았다.
그래서 여인은 직접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진 전투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소수의 인원들이 다수의 무언가와 전투를 치른 흔적이었다.
깨지고 부서진 암석들과 말라붙어 있는 많은 핏자국들은 당시 전투의 치열함을 짐작하게 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 중 가장 눈여겨 볼 만한 것은 머리가 잘려나간 한 시체였다.
그 시체는 원래 인간으로 보였다. 허나 피부가 완전히 탄화되고 쪼그라들어 있었다. 여인은 그 시체에서 거의 사라져간, 하지만 약간 남아있는 사특한 기운을 느꼈다.
그건 북부의 최심부에서도 깊숙한 곳, 마수와 마물들을 지배하는 우두머리의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정신과 육체를 오염시켜 이형의 것으로 뒤바뀌어 버리는 이계의 기운.
여인은 협곡의 위를 살폈다.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서너 마리의 늑대들이 협곡 위에서 여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늑대들과 여인은 잠시간 서로를 지켜보았다.
곧 늑대들은 모습을 감췄다. 여인도 협곡을 벗어나 다시 로고스 마을에 돌아왔고, 몇 가지의 정보를 얻은 후 떠났다. 그리고 지금 이 작은 마을에 와 있었다.
“식사 나왔습니다.”
부엌에서 중노미가 나와 여인의 식탁에 접시와 식기를 내려놓았다. 여느 작은 마을 여관들이 그렇듯 호화스런 음식은 아니다.
아침부터 잡다한 채소와 고기를 넣고 푹 끓였을 스튜는 저녁때까지 계속 끓이는 경우가 많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국물은 점점 더 진해지고, 건더기만 새로 넣는 식이다. 그래도 주방장, 혹은 여관 주인의 솜씨가 괜찮은 것인지 푹 우린 국물 특유의 잡내는 많이 나지 않았다.
여인이 중노미에게 말했다.
“고마워.”
“별말씀을······.”
중노미의 말끝이 흐려졌다. 여인이 내내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은 것이다.
중부에서는 약간 보기 힘든 검은 머리카락이 출렁이며 내려앉고, 단아한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드러난 눈동자는 흑요석처럼 반짝이며 빛났다.
중노미는 입을 헤 벌렸다. 16년간 이 작은 마을에서만 살아온 그는 이런 미인을 만난 것이 난생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건 어느새 조용해진 채 말없이 술을 홀짝이며 여인을 훔쳐보던 용병들 무리나, 구석에 혼자 앉아있는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중노미는 그녀가 요정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귀는 뾰족하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의 것처럼 둥글고 작은 귀였다.
그때 부엌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안 들어오고 뭐하냐! 양파 껍질 안 벗길 거야!”
“가, 갑니다!”
중노미는 부엌으로 가면서도 여인을 힐끔거렸다.
여인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들은 신경 쓰지 않고 저녁을 먹었다. 식사는 빠르게 끝났다. 습관 탓이다. 추운 곳에서 온 여인은 느긋한 식사는 해본 적이 많이 없다.
마수들은 사람의 끼니를 챙겨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 끼니를 채우기 위해 습격해온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전투에서 식사는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먹는 것만이 중요시된다.
그래서 여인에게 같이 식사를 하지 않겠냐고 묻기 위해 찾아온 남자는 겸연쩍은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 주전자를 들어 컵에 물을 따르던 여인이 가까이 다가온 남자를 올려다봤다. 남자는 그럭저럭 모험가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기름을 먹인 가죽 갑옷과 심장과 어깨를 보호하는 철제 보호대, 칼을 맬 수 있는 소드 벨트. 칼은 매여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남자가 방금까지 식사하고 있던 식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여인이 말했다.
“내게 용건이 있나?”
자연스러운 하대였지만 그 외모에 너무 잘 어울리는 말투였기에 남자는 감히 지적하지 못했다.
“아. 그게, 혹시 식사라도 같이 할 수 있을까 하여······.”
“왜?”
남자는 주저하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너무 아름다우셔서······.”
여인은 피식 웃었다.
“칭찬은 고마워. 하지만 난 이미 식사를 다 마쳤고, 이제 쉬고 싶군. 가주겠어?”
남자는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물러났다. 붉어진 얼굴만큼이나 드러난 표정은 쑥스러움으로 가득해서 남자가 얼마나 순박한 사람인지 알려주는 듯했다.
남자가 물러나자 이번에는 저편에서 술을 마시던 용병 무리 중 두엇이 일어섰다.
둘 다 덩치가 좋았고, 얼굴과 드러난 팔뚝에 새겨진 큼직한 흉터들은 그네들의 인생 굴곡이 그다지 평탄치는 않았음을 온몸으로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한 놈은 계속해서 히죽히죽 웃는 것이 정신이 약간 이상한 듯 보였다. 형제로 보이는 닮은 얼굴의 다른 한 놈은 히죽이는 남자를 뒤에 두고 여인에게 다가왔다.
그는 슬쩍 여인의 차림새를 훑었다. 검지만 고급스런 원단을 쓴 것이 분명한 로브, 그 안의 잘 갖춰진 여행자의 옷차림이다.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는 것인지 허리춤에서 삐져나와 있는 칼자루가 보였다. 그 칼자루 또한 예사 칼이 아닌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의 흰 손에 칼을 오래 쥐어서 생기는 굳은살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저 칼은 그저 어리숙한 여행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값비싼 옷차림과 칼, 호위도 없이 돌아다니는 여인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물론 속으로만.
웃지 않는 놈이 말했다.
“안녕하시오. 잠깐 대화 괜찮으시겠소?”
여인은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뭔데?”
“큼. 다름이 아니라, 여인 혼자서 여행을 다닌다는 것이 퍽 인상 깊어서 그랬소. 혹여 목적지가 같으면 여행길을 더 안전하게 도와주고 싶은데.”
여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헤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아 이쁜아아악!”
아까부터 헤헤 웃던 놈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놈의 커다란 손이 여인의 작은 손에 잡혀 우그러지고 있었다. 여인은 자신의 어깨를 짚으려던 놈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구석에서는 막 여인을 돕기 위해 일어나던 남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는 호리호리한 여인이 그보다 두 배는 큰 덩치의 사내를 손쉽게 제압한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남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댔으면 그 이후의 일도 짐작했어야지.”
“그 손 놔!”
형제로 짐작되는 놈이 달려들었다. 놈의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손이 쫙 펴진 채 날았다. 목표는 여인의 긴 머리카락이었다.
눈살을 찌푸린 여인은 여태껏 우그러트리고 있던 다른 용병의 손을 놓고 손바닥을 피했다. 거기서 더 물러나지 않고 깊숙이 파고든 여인의 주먹이 훤히 열린 놈의 가슴팍을 때렸다.
뻑!
가죽 갑옷에 선명한 주먹 자국이 새겨진 놈이 캑캑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고통에 겨워하면서도 놈은 새빨개진 눈으로 여인에게 재차 달려들려 했다.
“그만!”
그때 뒤편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무리의 중심에 앉아있던 놈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빠르게 걸어와 자신의 부하 두 놈을 후려쳤다.
쩍, 하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
“한심한 놈들.”
“죄, 죄송합니다, 대장.”
부하 둘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였다. 정신이 약간 모자란 놈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대장이 여인에게 말했다.
“미안하오. 내 부하들이 모자라게 굴었군.”
“부하의 모자람은 곧 상관의 모자람과 같지. 간수 잘해.”
“······명심하지. 실력이 상당하시군. 어디의 기사이시오?”
“아니.”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녀에게 대장이 물었다.
“혹시 어디 쪽으로 가시오?”
“남쪽.”
“중부로? 당신도 전쟁에 참여하러 가는 것이오?”
전쟁이라. 여인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누굴 찾으러 가는 길이야.”
“누구를?”
“당신네들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마.”
그 말에 대장의 눈초리가 서늘해졌다.
“우리가 누군지 아시오?”
“아니.”
여인은 거기서 대화를 더 잇지 않았다. 여관 주인과 중노미는 홀에서 들린 큰 소리에 부엌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식탁이나 의자가 부서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다가오는 여인을 보자 화들짝 놀라 밖으로 나왔다.
“거스름돈이랑 열쇠.”
“예? 아, 여기, 여기 있습니다.”
중노미는 다급히 미리 계산해 놓았던 거스름돈과 열쇠를 여인에게 건넸다.
“열쇠에 방 번호가 적혀져 있습니다.”
“알았어.”
계단에 오른 여인은 방문을 찾아 들어섰다. 간단한 구조의 방은 탁자 하나와 침대 하나로 단출했다. 문을 잠근 여인은 매고 있던 가방을 탁자 위에 놓고 침대에 누웠다.
비가 내내 와서 그런지 꿉꿉했다. 내 집, 내 방의 침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불편함이 엄습했다. 여인, 이루실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 걔는 이런 게 뭐가 재밌다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