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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68화 (69/225)

68화 전조 (2)

그런 면에서 카이는 특이한 오크였다. 러셀은 그가 불칸이라는 이름을 외치자 피부에서 타올랐던 붉은 기운을 생각했다.

붉은 기운은 순간적으로 카이의 힘을 세 배 넘게 증폭시켰다. 그 잠깐의 증폭만으로도 전투의 판도를 바꾸는 데는 넘치는 힘일 것이다. 물론 러셀에게는 미치지 못했지만.

러셀은 벌써 저만치 멀어지는 카이 일행들을 보다가 아엘라시스를 돌아봤다.

“교회에 가볼까?”

“그래!”

둘은 광장과 분수대를 넘어 계단을 올랐다. 교회는 그 계단의 위에서 높이 솟은 건물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날개와 칼, 저울의 형상. 정의의 신, 아카서스의 상징이다.

교회 안은 바깥에서 보인 것보다 넓었고, 그만큼 한적했다. 고요는 이 자리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는 듯 했다. 기도하는 자들 몇몇이 보였고, 그들은 침묵함으로서 고요를 깨트리지 않았다.

중앙에 뚫린 길 양쪽에 긴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벽에 달린 창문에서 투과된 햇빛이 알록달록한 색깔로 네모난 형상을 그렸다.

사제는 아까의 그 남자 사제 한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가 러셀과 아엘라시스를 발견하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창공의 정의에 어리는 영광을.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안이 궁금해서 들어왔소. 꼭 용건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편하신 대로 시간을 보내다 가셔도 됩니다.”

“나 잠깐 저 신상 좀 구경하고 올게.”

아엘라시스가 말한 신상은 교회의 끝에 자리하고 있는 석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네 쌍의 날개를 가지고 한쪽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쥔 여신상이었다.

러셀이 끄덕이자 아엘라시스는 달려갔다. 그러다가 예상보다 더 크게 울리는 발소리에 놀라며 속도를 줄여서 걸어갔다.

소녀를 귀엽다는 듯 보던 사제에게 러셀이 말했다.

“혹시 성수도 파나?”

사제는 약간 경계의 표정을 얼굴에 띄웠다.

“그렇긴 합니다만······.”

“얼마지?”

사제는 가격을 말했고, 러셀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꽤 비싸군. 수량은?”

“지금 딱 한 병 정도 남아있습니다. 드릴까요?”

“괜찮소. 잠깐 구경만 하고 가지요.”

“알겠습니다. 좋은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사제는 인사하고 물러갔다. 러셀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저 젊은 사제에게서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신성력이 발현되는 일은 드물다. 단지 믿는다는 것만으로 신의 힘을 쓸 수 있다면 신을 안 믿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허나 실제로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사제들은 많이 없다. 신이 신도에게 자신의 힘을 허락하는 이유, 그 과정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어쨌든 신의 힘이니까.

괜히 성녀나 성기사, 이단심문관들이 존경 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짐작도 할 수 없는 신의 뜻에 의해 힘을 부여받은 자들이니.

또한 그렇기에, 신성력이 사라졌을 경우 극심한 탈력감, 좌절감,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러셀, 나 다 봤어. 나가자.”

어느 새 교회를 한 바퀴 돌아보고 온 아엘라시스가 말했다. 백발의 소녀는 지루하다는 표정이었다.

“다 구경했어?”

“응. 별 거 없던데. 조용하기만 하고.”

“원래 그런 공간이니까.”

두 사람은 교회를 나왔다. 아엘라시스가 배가 고프다고 했기에 러셀은 시장으로 향했다.

거리에는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가득했다. 구름이 해를 가릴 때마다 찬란한 햇살이 비췄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아래에는 인부들이 벌거벗은 등으로 햇살을 맞으며 망치질, 톱질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을 보수하는 작업이다. 안전모를 쓴 난쟁이 하나가 도면을 이리저리 보며 지시를 내렸다.

상인들은 오늘이 상인 인생 망하는 날이라고 부르짖으며 호객했다. 아마 그들의 인생이 망하는 날은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무기들을 전시하는 곳 앞에서는 자신의 반려를 두고 고민하는 전사들이 서 있었다. 어떤 전사가 쌍칼을 들었지만, 결혼 생활이 그러하듯이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숫자 이상의 무기는 그를 꽤 힘겹게 만들 것이다.

러셀은 그 쌍칼에서 어떤 흑요정 하나를 떠올렸고, 그래서 슬쩍 웃었다.

러셀과 아엘라시스가 시장을 나왔을 때 아엘라시스의 손에는 양념이 발라진 꼬치, 말린 과일, 채소와 고기가 들어간 빵 등 군것질 거리가 가득했다.

그때 러셀은 자신을 지켜보는 어떤 시선을 느꼈다. 그는 그 시선의 방향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마차와 짐을 실은 수레가 바삐 오가는 길 너머에서, 한 남자가 그를 보고 있었다.

나이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남자의 옷차림은 여느 용병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옷차림이었지만, 다른 것은 그 눈이었다. 러셀을 탐색하는 듯한 그 눈동자에는 포식자와 피식자를 가리는 붉은 광채가 서려 있었다.

남자는 러셀이 똑바로 바라보자 설마 자신을 알아차리라고는 예상 못 한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인파에 몸을 가리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러셀의 눈은 그가 시야에서 사라져도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골목 틈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러셀이 눈을 가늘게 뜰 때, 옆에 있던 아엘라시스가 만두 비슷한 빵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거 맛있다! 먹어봐!”

러셀은 아까 그 남자를 생각하며 아엘라시스가 건네준 빵을 크게 한 입 물었다. 그러자 아엘라시스가 소리쳤다.

“그렇게 많이 먹으면 어떡해! 한 입만 먹으라고 준 건데!”

여관에 돌아오자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음과 주황, 노랑이 섞인 천연의 색들이 하늘과 건물, 사람들을 물들였다.

검은 보리 향 여관의 홀에는 어제처럼 사람이 가득하진 않았다. 그저 테이블 몇몇에 손님 둘, 셋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러셀은 그 중 한 테이블에서 레메론과 페일, 그리고 이블린을 발견했다. 레메론이 러셀에게 손을 들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던 이블린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도 밝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왔네.”

“기다리고 있었나?”

“조금. 얼마 안 됐어.”

러셀은 지나가던 로빈에게 흑맥주 두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맥주는 금방 왔다. 아엘라시스도 러셀의 옆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이블린이 그걸 보고 말했다.

“마셔도 돼?”

아엘라시스는 그녀를 힐끔 바라 보기만 했을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러셀이 말했다.

“괜찮아. 어떻게, 이들이랑 합석하고 있었군.”

“아까 만났었거든. 거기다 널 알고 있더라고.”

“갔던 일은 잘 처리됐나?”

“아, 던전? 그게, 조금 이상해. 영주가 던전으로 가는 길목을 폐쇄했어.”

“폐쇄?”

듣고 있던 레메론이 부언했다.

“예. 저도 그래서 돌아온 참입니다. 영주 없이 알아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더군요.”

“뭘 알아보려고 했는데?”

러셀의 물음에 페일이 답했다.

“고대 요정 왕국에 대해서. 그 이상은 말 못한다.”

러셀은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캐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때 로빈이 슬쩍 다가오더니 그들의 식탁에 여러 안주가 담긴접시들을 차렸다. 얇게 저민 과일들이나 양념을 두르고 구운 고기, 채소들이었다. 러셀이 말했다.

“시킨 적 없는데.”

로빈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고마우신 분한테 이 정도는 해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이것들 저희 누나가 먼저 갖다 주라고 한 거예요. 누나가 다 만들기도 했고요.”

러셀이 주방을 보자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로라가 화들짝 놀라더니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는 픽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고 전해줘.”

“또 한 건 하셨구만? 뭔데? 나도 알려줘.”

이블린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로빈은 아예 빈 의자를 가져와 앉더니 러셀의 무용담을 자신이 한 것 마냥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꾼의 재주가 있는지 로빈의 이야기는 실감나고 박진감이 넘쳤다. 첫 만남의 그 수줍어하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레메론과 페일도 이블린처럼 처음 듣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빠르게 로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레메론의 눈은 거의 빛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짝거렸다.

제 3자를 통해 자신의 격투 능력에 대해 찬사를 듣던 러셀은, 문득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 늦게 레메론과 페일, 이블린도 마찬가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러셀님이 손가락으로 푹푹 찌르니까 톰닌이랑 스튜어트가 자지러지면서······. 왜 그러세요?”

러셀이 말했다.

“손님이 왔군.”

여관의 문이 열리고, 두 여자가 들어왔다. 로빈은 반사적으로 어서 옵쇼를 외치며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런 로빈을 러셀이 잡았다.

소년이 영문을 몰라 러셀을 보자 그는 고개를 약간 저었다.

“가만히 있어.”

그 동안 두 여자는 여관을 휘 둘러보다가 그와 딱 눈이 마주쳤다. 둘 다 얼굴이 쌍둥이마냥 비슷했다. 러셀은 턱에 점이 난 쪽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둘을 구분했다.

쌍둥이 여자는 십대 후반 혹은 이십대 초반으로 보일 만큼 젊었다. 피부는 탱탱했고 검은 머릿결에는 윤기가 흘렀다. 입술은 피를 묻힌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붉었다. 등에는 검을 매고 있었다.

턱에 점이 있는 여자가 말했다.

“네가 러셀이냐?”

러셀은 삐딱하게 앉은 자세로 둘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저번에 우리 애들이 신세를 졌다지.”

러셀은 로빈에게 고개를 돌려 질문했다.

“아는 사람들이냐?”

“어, 아뇨. 전 항상 카이나 톰닌, 스튜어트만 봤는데요. 이분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에요.”

턱에 점이 없는 여자가 말했다.

“그 놈들은 이제 볼 수 없을 거다.”

“······왜요?”

“죽었을 테니까.”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 기류는 난데없이 여관에 나타난 두 여자로부터 파생되고 있었다. 그것을 감지한 손님들이 화급히 자리를 떴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주방에 있던 루크와 로라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걱정과 두려움이 섞인 얼굴로 바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러셀이 말했다.

“그래서? 둘이 날 어떻게 하려고?”

“신세를 졌으면 갚아야지. 그게 아무리 덜떨어진 놈들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그런 것치고는 뒤에 달고 온 놈들이 많은데.”

그의 말에 점이 있는 여자가 눈썹을 움찔했다.

“······그걸 느꼈다고?”

“내가 감이 좀 좋아서. 눈도 좋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레메론과 페일은 각자 탁자 아래 놓아둔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이블린은 조용히 마력회로를 달구며 주문을 준비했다.

러셀과 아엘라시스만이 태연한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난입자들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이 좋던 안 좋던 상관없다. 넌 여기서 찢어져 죽을 테니까.”

“꽤 늦게들 오셨군. 마치 밤이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

“아까도 말했지만 난 러셀이다. 니들은?”

턱에 점이 있는 여자와 없는 여자가 순서대로 말했다.

“···리도스.”

“리베스.”

여관 홀은 전날 밤처럼 환했다. 부지런한 로라가 다 녹은 초를 버리고 새 초를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쉼 없이 하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촛농은 자신의 몸체를 흘러내리다 차츰 식어 굳었다.

하지만 전날 밤과는 달리 흥겨운 음악 소리,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춤추던 춤사위들은 없었다. 이곳에는 단 아홉 명 뿐이었다.

바깥에서는 안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직 황혼의 시간이었고, 술에 취한 용병이나 모험가들, 영지민들이 노래를 부르기에는 늦은 것도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그때, 리베스가 엄청난 속도로 등에 맨 검을 뽑아들어 러셀에게 내질렀다. 레메론과 페일, 두 엘프마저 잠깐 놓쳤을 정도로 강렬한 빠르기와 힘이었다.

홀에서 밝게 빛나는 빛들에 반사되는 검은 일순 타오르는 불꽃처럼 빛나며 러셀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는 금방이라도 두 쪽이 날 것 같았다.

차앙!

하지만 검이 살을 배는 피륙음은 나지 않았다. 러셀이 그보다 빠른 속도로 코트 자락에서 빼낸 하얀 도끼가 리베스의 검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도끼에서 느껴지는, 예상보다 강한 근력에 눈가를 좁혔다. 여리여리한 몸에서 나온다고는 믿기지 않는 힘이었다.

그러나 리베스 또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런 인간이 자신의 일격을 막아낼 줄은 몰랐다. 오크인 카이를 이겼다고 해서 그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내질렀는데, 이 인간은 쉽게 막아낸 것이었다. 거기다 하얀 도끼, 마지막 서리에서 내뿜어지는 냉기에 리베스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물러나!”

리도스가 외쳤으나 러셀이 더 빨랐다. 그가 쾅 하고 발을 구르자 바닥에 균열이 갔다. 추진력을 얻은 러셀의 도끼가 리베스의 칼을 위로 튕겨냈다.

리베스는 황급히 검을 잡아 휘둘렀다. 러셀은 도끼날로 막아냈고, 동시에 이 여자가 힘만 뛰어날 뿐 검술에 대한 것은 하나도 모르는 생 초짜라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평범한 자라면 그런 검술 실력을 알아챌 사이도 없이 죽었을 것이고, 검술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자라도 그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오직 지금의 러셀만이 그런 그녀를 압도할 수 있었다.

리베스의 검술 실력이 시원찮다는 것을 안 러셀의 움직임이 간결해졌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리베스와는 정 반대였다.

그의 도끼가 신묘한 움직임을 그리더니 도끼날의 아랫부분으로 리베스의 칼날을 잡아챘고, 그는 손목을 돌렸다. 그러자 자루와 도끼날에 끼인 칼날은 챙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도끼가 지속적으로 내뿜은 냉기에 의해 칼날의 한계가 진즉 넘어있는 상태였기에 그리 쉽게 부러졌다.

가뜩이나 창백했던 리베스의 얼굴은 이제 밀랍 인형 같았다. 표정은 단 하나의 의미만 담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안······!”

러셀의 도끼가 종으로 그어졌다. 리베스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그녀의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단 몇 초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로라와 로빈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리베스는 바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러셀은 눈을 크게 떴다. 붉은 실선이 그어진 리베스의 몸뚱아리는, 놀랍게도 그 단면이 꿈틀거리며 서로 붙으려 하고 있었다. 허나 그의 도끼에서 뿜어진 냉기에 얼어붙어 쉽지 않은 듯 했다. 어쨌든 정상적인 생명체가 보일 수 있는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러셀이 그것을 보며 다시 도끼를 휘두르기 직전, 괴성을 내지르며 리도스가 달려들었다.

그때 이블린이 두 손을 모으며 주문을 쏘아냈다. 강력한 주문의 힘에 리도스가 여관의 벽을 부수며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뭐야, 도대체?”

질린 얼굴의 이블린이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리베스를 내려다봤다. 레메론과 페일도 칼을 뽑아든 채 혐오감이 서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레메론이 끔찍하단 어투로 말했다.

“악마입니다.”

“이게?”

“여간 괴물 같지는 않군요. 사악한 기운이 느껴져요. 그것도 남에게서 생명력을 갈취하는 종류의. 거의 모든 악마들이 그렇긴 하지만······.”

그때 쿵, 하고 러셀의 도끼가 리베스의 목을 잘랐다. 그러자 리베스의 꿈틀거림이 멎었다. 러셀은 시체의 입을 들췄다. 유난히 뾰족한 송곳니가 하얗게 번뜩였다.

“흡혈귀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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