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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59화 (60/225)

59화 새싹의 계절 속에서

러셀은 말했다.

“넌 재능이 있어.”

울카는 무(武)에 대한 재능이 있다. 들어보니, 그녀는 어머니나 다른 사람에게 싸움법을 배우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 마을에서 만나고 싸웠을 때, 러셀도 감탄했던 박투술은 온전히 울카 스스로가 쌓은 실력인 것이다.

“하지만 근육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마력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해. 신체가 가진 근력과 순발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울카의 마력은 거의 수인화를 하는 데 쓰이는 게 대부분이었다. 물론 수인인만큼 마력을 쓰지 않아도 신체 능력만으로도 대부분의 일은 해결이 됐겠지만.

울카는 이번 전투를 통해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수인화는 물론 강력하지만 지속시간이 짧다. 풀리고 나면 제대로 거동도 하지 못할 정도로 지치게 된다.

“일단은 몸으로 직접 알려주는 수밖에 없겠지.”

러셀은 간단히 몸을 풀고는 코트를 벗고 간단한 셔츠와 바지차림으로 앞에 섰다.

울카와 러셀, 두 사람은 숲지기 시마렌의 집에 있었다. 시마렌은 아내를 여의고 아들과 둘이 살았다. 그러나 시마렌이 숲에서 실종되고, 이어 아버지를 찾아나선 쥬드도 같이 실종되니 자연히 빈 집이 되었다.

하일른과 제스가 먼저 다녀가며 임무의 성공을 알린 촌장, 체르도는 슬퍼하면서도 기꺼이 빈 집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이 없어 쌓인 먼지를 치우고, 가구를 정리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아준 식량과 술이 창고로 들어갔다.

“시마렌도 고마워할 겁니다. 그런데 쥬드가 아직 숲에 있다고요.”

“잡아야지.”

허나 울카 혼자서는 아직 둘라한을 잡기가 애매했다. 거기다 레이스까지 같이 있지 않았나.

“잡게 해줄게.”

러셀은 마나가르마의 부탁을 충실히 이행했다. 어떤 부모든 자신이 죽고 나면 남은 자식을 걱정하기 마련이다. 러셀은 전생이든 현생이든 부모가 되어 본 적은 없었다.

전생은 그럴 만한 상태가 아니었고, 현생은 거부했다. 하지만 현생에서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은 알았다.

하루.

“흐압!”

울카가 내뻗은 주먹을 가볍게 흘리며 러셀이 훤히 드러난 몸통에 주먹을 쏘았다. 가볍게 톡, 때린 것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공격이 막혔다면 바로 다음 수를 생각해. 하지만 공격하려는 지점을 똑바로 보는 건 상대방에게 나 어디 공격할거라고 알려주는 짓이지. 부위를 보지 말고 전체를 봐.”

울카는 대포에라도 맞은 것처럼 날아가다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엄청 아프다. 그에게 엉덩이를 맞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아픔이었다.

허나 울카는 그대로 쓰러지지 않고 벌떡 일어나 재차 달려들었다. 러셀은 충실히 울카의 공격을 받아주었다.

사흘.

“네 신체 제어력은 뛰어나. 하지만 그뿐이지. 진짜는 근육의 제어를 하는 동시에 마력의 제어를 함께 행하는 거야.”

울카의 주먹은 완전히 뻗어지기 전에 중간부터 걸렸다. 발차기, 어깨, 무릎, 팔꿈치 등 전신을 이용한 모든 공격의 궤도를 러셀은 훤히 보인다는 듯 막고 흘렸다.

아래서부터 올려치는 어퍼컷은 손바닥에 막혔다. 곧바로 러셀의 발차기가 옆구리로 직격해온다. 하지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속도였다. 울카는 발차기를 무릎을 차올려 막으면서 공중으로 뛰어올라 되차기를 날렸다.

러셀은 허리만 뒤로 젖혀 피해냈다. 울카의 길쭉한 다리가 그의 가슴팍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기만 하며 빗나갔고, 그녀의 자세는 무너졌다.

“되도록이면 몸의 중심을 가운데에 두고 바닥을 발에 붙여. 날 수 있는 게 아니면 공중으로 뛰는 건 자제하고.”

곧바로 러셀의 뒤돌려 차기가 울카의 몸에 작렬했다. 다급히 양팔을 교차해 막았지만, 짧은 거리에서 날렸음에도 러셀의 공격에는 발경의 묘리가 담겨져 있었다.

다시 쾅 소리가 나며 울카가 뒤로 굴렀다.

닷새.

“이이익!”

촤앙!

울카는 처음부터 손을 늑대의 것으로 변화시키더니 단도같은 손톱을 빼어들었다.

러셀이 전력으로 덤벼도 된다고 며칠 전에 이미 말했고, 울카 또한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괜찮으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다섯 개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목을 잡아 찢으려는 기세로 날아들지만, 러셀은 손등으로 울카의 손목을 틀어 타점을 빗겨냈다. 동시에 뱀처럼 그녀의 팔을 타고 오르더니 그대로 울카의 몸이 허공으로 날았다.

바닥에 등이 부딪히기 직전, 울카는 거센 몸놀림으로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 두 발로 땅을 디뎠다. 늑대의 발로 변했던 손이 다시 인간의 것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러셀이 가르쳐줬던 일련의 움직임을 그대로 이어갔다.

발에서부터 올라오는 충격이 체내의 마력과 호응했다. 무릎, 골반, 등, 어깨, 팔꿈치, 주먹으로 이어지는 근육의 이어지는 동작이 물 흐르는 듯이 자연스럽게 호응했다. 극점이 주먹에 모이고, 그대로 발출됐다.

콰앙!

암석끼리 충돌한 듯한 굉음이 울렸다. 러셀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그의 발이 새긴 고랑이 조금이지만 새겨져 있었다.

“하악, 하악, 하악.”

한 순간에 모든 힘을 쏟아낸 울카가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 그러나 표정에는 기쁨만이 가득했다.

러셀과 수련을 이어나간 지 5일. 발경을 익힌 것이었다. 하지만 울카의 기쁨은 단순히 발경을 펼쳐냈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됐다!”

러셀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아니, 이걸 진짜 일주일 안에 배우네.

“그럼 약속한 대로 해주는 거다?”

“야, 나 그런 취향 없다니까······.”

“해주기로 했잖아!”

울카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성난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러셀의 멱살을 아래로 잡아끌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입술을 부딪쳐왔다.

러셀은 그의 입술을 잡아먹을 듯이 덮쳐오는 울카를 가만히 내버려뒀다. 땀에 젖은 입술은 짭짤했다.

며칠 간 몇 번이나 맛보았음에도 부족하다는 듯 울카의 혀가 그의 입안을 침범했다.

처음 그를 덮쳤을 때의 어설픈 혀놀림은 이제 없다. 완전히 요부가 되어버린 듯 러셀의 입천장과 볼 안쪽, 혀와 혀 아래를 공략하는 솜씨가 탁월한 것이, 그녀의 재능이 무술 쪽에만 치우쳐져 있지 않다는 훌륭한 증거였다.

러셀 또한 거부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인, 그것도 수인이라는 특별한 종족이지 않은가. 늑대의 귀와 꼬리는 그에게도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었고, 상상한 바는 거의 맞았다. 특히 귀의 뒷부분과 꼬리와 피부가 맞닿는 부분이 울카를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오늘은 아마 다른 방식으로 자지러질 것 같긴 했지만.

크라이와 새끼용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둘을 바라봤다. 러셀은 말과 용을 힐끔 보더니 속으로 한숨을 한 번 쉬고 울카의 허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꺄악.”

새된 비명을 지르며 울카가 러셀에게 꼬옥 안겼다. 이후 벌어질 일이 상상이 된 것인지 피부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오늘은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마력을 더 두껍게 둘러쳐야겠다고 러셀은 생각했다.

***

일주일 째. 울카는 거의 완벽하게 발경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원체 육체의 능력이 좋고 마력 또한 충만했기에, 러셀 정도의 실력자가 가르쳐주자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기술을 습득한 것이다.

러셀 또한 누군가를 이렇게 직접 가르쳐주는 경험은 생소한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다 생각한 것을 다시 펼쳐주는 시간은 그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타이밍이 맞게도 늑대들이 찾아와 둘라한과 레이스의 행적을 발견했다고 알려왔다. 울카는 바로 숲지기의 아들, 쥬드의 몸을 빼앗은 둘라한을 죽이고 시신을 되찾아오기 위해 숲으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돌아왔다.

간략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시마렌의 시체는 완전히 불타 사라졌었지만, 쥬드의 시신은 그럭저럭 온전했기에 치러줄 수 있었다.

숲지기 시마렌과 쥬드 모두 오랫동안 마을에 살았던 이웃이었다. 허나 장례식은 축제의 다른 얼굴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러셀과 울카는 여관에서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음식과 술을 먹었다. 술은 하나같이 도수가 엄청났다.

식도를 후끈하게 덥히는 것이, 그야말로 차가운 불이라 할 만 했다.

노을이 지고 밤하늘에 휘영청 푸른 달이 걸렸다.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달빛이 술잔에 담기는 것을 보며 러셀은 조용히 술잔을 들어 달을 비웠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갈 거지?”

러셀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던 울카가 문득 말했다. 한 차례 열락이 지나간 울카의 오두막 안은 아직 뜨거운 공기가 떠다녔다.

어둔 밤하늘은 이제 새벽으로 물들어갔다. 청명한 푸름이 동에서부터 다가오고 있었고, 그만큼 이별의 시간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러셀은 말없이 울카의 귀를 쓰다듬었다. 울카는 조용히 속삭였다.

“난 아직 이곳을 떠날 수 없어. 다음 보름이 올 때까지 우리 엄마를 데리고 있어야 하니까. 그 후로도, 이 마을과 협곡을 지켜야 하고.”

그건 달의 늑대들이 대대로 이어온 사명이었다. 이제는 봉인된 악마도 사라졌지만,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을 정리할 수는 없었다.

러셀도 울카에게 모든 걸 정리하고 같이 떠나자는 식의 말을 꺼내진 않았다. 이곳은 울카가 태어나 자란 곳이고 그녀의 고향이다.

울카에게는 울카의 삶이 있다. 러셀에게 러셀의 삶이 있는 것처럼.

울카가 말했다.

“같이 살자고 하고 싶지만, 내 욕심이겠지. 너한테서는 바람의 냄새가 나.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스치는 바람.”

그녀의 이빨이 러셀의 목을 물었다. 몇 번 그렇게 잘근잘근 물더니 선명한 입술과 이빨 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언젠가, 네가 머무르게 된다면. 방랑을 마치고 날개를 누이게 된다면. 날 불러줘. 그곳이 어디든 달려갈 테니까.”

“······그래.”

울카의 몸이 러셀의 위로 완전히 올라갔다. 러셀은 누운 채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오른쪽 반신에 새벽의 잔영이 닿는다. 울카의 여성적인 선을 타고 흐르는 푸른 물감. 러셀은 그런 울카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다듬지 않아 고슴도치처럼 삐죽삐죽한 회색의 숱이 많은 머리카락. 어둠 속에서 처연하게 빛나는 호박빛 눈동자.

한 줌의 빛만 있어도 어둠을 꿰뚫어보는 러셀은 그녀의 볼에 흐르는 은루를 보았다. 뭐라 말하려는 그의 입술을 울카의 입술이 덮었다.

나오지 못한 말은 혀와 혀의 치열한 자리싸움에 밀려 어디론가 밀려 사라졌다.

***

러셀은 바지를 입고 셔츠를 입은 뒤 코트를 걸쳤다. 부츠까지 신고나자 더 이상 챙겨야 할 것은 없었다. 마을에서는 이미 넘치도록 환대와 배웅을 받았다. 고기와 술도 충분히 받았다.

그는 새근새근 잠든 울카에게 모포를 덮어준 뒤 오두막을 나섰다.

마당의 한쪽,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곳에서 흑마 크라이와 새끼용이 잠들어 있었다.

크라이는 러셀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을 반짝 뜨더니 네 다리를 힘차게 휘저으며 일어섰다. 따뜻한 몸에 기대고 있던 새끼용이 콩,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길쭉한 목을 들어 잠에 취한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던 새끼용을 러셀이 안아들자, 새끼용은 바로 그의 품에 파고들며 다시 잠을 청했다.

러셀은 피식 웃고는 새끼용을 안은 그대로 크라이에 올랐다. 그리고 잠시 오두막을 돌아보았다.

아담한 오두막은 나무들의 호위를 받은 채 우뚝 서 있었다. 먼 동이 터오면서 찬란한 햇살이 나무에 뿌려졌고, 오두막도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며 빛났다.

러셀은 그 슬프도록 아름다운 집에서 고개를 돌렸다.

“가자.”

크라이가 천천히 다리를 옮겼다.

달빛의 성력과 나무들이 교묘한 위치를 통해 들어오는 사람, 나가는 사람 모두를 막는 미로를 형성했지만, 러셀의 눈은 그 모든 것을 꿰뚫고 출구를 향해 나아가는 올곧은 길을 걸었다.

끼익, 하고 나무문의 경첩이 소리를 냈다. 하지만 러셀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늑대들이 다각거리며 걸어가는 그들을 배웅했다.

러셀은 그렇게 겨울의 협곡, 울카의 집을 떠났다.

***

새싹 속에 든 봄이 기지개를 폈다.

2월 말이었지만, 대륙의 중부는 벌써부터 싱그러운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 북부와는 확연히 다른 기후 덕분이다.

달라진 공기의 냄새는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전생부터 여행을 꿈꿨던 사람에게는 닿는 모든 것이 새롭다.

엉덩이 아래로 사박거리는 풀의 감촉이 느껴졌다.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는 훈훈한 남풍의 바람. 모닥불에서는 장작이 타들어가며 불티를 허공으로 흩날렸다.

봄이 온 것을 반기는 건 식물들만이 아니었다. 풀벌레들 또한 겨우내 울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분풀이 하듯이 날개를 비비며 울었다.

러셀은 코트에서 햄과 소시지를 꺼내 나뭇가지에 꽂아 모닥불에 기대어 세워놓았다. 한 소녀가 그의 옆에 앉아서 꼴깍꼴깍 침을 삼켰다.

푸른 빛이 도는 백색의 머리카락에 청회색의 눈동자. 인형같이 아름다우면서도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깔 덕분에 어디 숲속의 정령처럼 보이는 소녀였다.

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녀가 슬금슬금 나뭇가지에 꽂힌 소시지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러셀이 말했다.

“아엘라. 아직 다 안 익었어.”

“···어떻게 알아?”

“올린 지 십분도 안됐으니까.”

“이미 염장한 고기니까 생으로 먹어도 되잖아?”

“그래도 익혀먹어야지. 그냥 먹으면 너무 짤 거야.”

아엘라는 툴툴거리며 손을 거뒀다. 러셀은 픽 웃으며 물통을 들어 물을 마셨다. 그때, 그의 귀에 수풀을 밟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소리도.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는 아니다. 최소한 셋 이상.

러셀의 감각은 곧바로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인영들을 감지했다. 그들은 모닥불의 불빛을 보고 다가오는 듯 똑바로 직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러셀은 가만히 기다렸다. 아엘라는 신경도 쓰지 않고 모닥불만 노려보다가 연기에 찔끔 눈물을 흘렸다.

낯선 이들은 점점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모닥불의 빛이 닿는 반경에 들어섰다. 그들은 모닥불 근처에 앉아있는 두 사람, 러셀과 아엘라를 보고 멈춰 섰다. 러셀이 말했다.

“불이 필요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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