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56화 (57/225)

56화 악마 로고스

용은 러셀의 머리 바로 위에 떠 있었다. 협곡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고개를 들어 용을 바라봤다. 절벽의 좁은 틈으로 비춰지는 은회색 구름 아래에 흰 비늘의 용이 네 장의 날개를 펄럭였다.

머리부터 꼬리까지는 7에서 8미터 정도 될까. 몸체는 유연했고, 네 개의 다리와 발은 강인했다.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는 네 장의 날개는 폭도 폭이지만 좌우의 길이가 훨씬 길었다.

위로 빳빳이 쳐든 기다란 목과 머리, 뒤의 난 네 장의 날개, 아래로 늘어트린 꼬리. 도합 여섯의 꼭짓점을 그리는 흰 비늘의 용이 막 벼락을 퍼부어냈던 전류를 갈무리했다.

머리에 솟은 두 개의 세 개의 뿔과 청회색의 눈, 슬쩍 벌려져 있는 입의 이빨에서 푸른 전류가 실뱀처럼 파직거렸다.

-크흐으윽···!

정통으로 벼락 숨결을 맞은 악마, 퓨메론스칸이 한 쪽 무릎을 꿇고 신음을 흘렸다. 전신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몸통 절반을 가로지른 벼락은 퓨메론스칸에게 커다란 상흔을 입혔다.

오른 팔이 통째로 날아갔다. 무구인 증오의 채찍 또한 벼락에 정통으로 맞아 재가 되버렸다. 악마의 힘이 상처를 수복하려 했으나 용의 힘은 그 재생마저 방해했다. 퓨메론스칸이 울부짖었다.

-왜! 왜 용이 여기 있는 것이냐! 너, 로고스의 종복! 설명하라!

“저, 저도 이게, 무슨 일인지, 도무지······.”

벽의 중턱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던 헤로케닌이 말을 더듬었다. 그라고 알 턱이 없었다. 헤로케닌이 근래 들었던 용의 소문은 기껏해야 북동부의 어느 도시에서 용이 나타났다가 누군가에게 죽었다는 것 뿐······. 헤로케닌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아래의 러셀을 쳐다봤다.

“······설마!”

용살자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도무지 휙일된 것이 없었다. 덩치는 산만 해졌다가도 가냘퍼졌고, 썼던 무기는 대검이었다가 도끼로 변했다. 외형에 대한 것도 악마 저리가라 할 정도로 흉악했다가 눈 색깔로 퍼랬다느니 보랏빛이었다느니 하는 허무맹랑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그 모든 것과 일치하는 사내가 서 있었다.

검고 긴 머리칼은 꽁지머리로 묶었고, 키와 덩치가 장대한 남자. 추운 날씨에 코트 하나만 달랑 입었고, 옷으로도 미처 가려지지 못한 우람한 근육들. 백색의 외날 도끼와 묵색의 대검을 쓰고, 무엇보다 눈이 자청색으로 빛나는 자.

어떻게 지금까지 눈앞에 두고도 못 알아봤는지 스스로도 모를 지경이었다. 헤로케닌의 목구멍에서 간신히 쥐어짜낸 침음성이 내뱉어졌다.

“용살자?”

러셀은 위의 헤로케닌을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악마 숭배자는 그 웃음을 보며 끔찍한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종복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로고스 또한 러셀을 보고 있었다.

“으악! 으아아아!”

헤로케닌은 갑자기 믿을 수 없는 힘을 내며 온몸에 감겨져 있던 사슬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초록색의 불길한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그의 전신에서 새어나오더니, 사슬을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악마 숭배자는 온몸으로 부식된 사슬을 끊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그의 팔다리에 피가 튀어오르고,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갔지만 멈추지 않았다. 처참한 꼴이 된 헤로케닌은 절뚝거리며 뒤편의 거대한 입 같은 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러셀은 너덜너덜해진 가방을 벗어서 던져버렸다. 그가 헤로케닌에게 가려는 것을 안 얼음의 악마, 퓨메론스칸이 몸을 일으켰다.

-너와 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 크아아악!

다시 한 번 용의 입에서 쏟아지는 벼락의 줄기. 처음의 것보단 약했는지 퓨메론스칸은 바로 전류를 흩어버렸다.

-이, 빌어먹을 것이!

퓨메론스칸이 얼음 검을 생성해 던지자 용은 네 개의 날개를 유려하게 움직이며 피했다. 한 바퀴를 빙 돈 용은 러셀의 머리 위에서 정지했다. 날개 죽지가 유연하게 움직이며 위아래로 날개를 펄럭일 수 있었다.

그 사이 러셀이 달려들어 발차기를 먹였다. 퓨메론스칸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다시 벽에 깊숙이 처박혔다.

“러셀!”

“러셀님!”

뒤에서 울카와 늑대, 성기사들이 마물들을 학살하며 달려왔다. 마물들은 용의 존재감에 변변찮은 저항도 못하고 무참히 죽어갔다. 곧 그들이 러셀의 지척에 이르렀다. 제스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 가방에 들어있던 게 용의 알이었군요?”

“그렇소. 그래서 말하기가 어려웠지.”

“이해합니다. 직접 보고서도 몰랐을 거예요. 그게 진짜 용의 알인지는 둘째치고서라도, 그걸 들고 다닌다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제스는 새삼스런 눈으로 위의 용을 바라봤다. 신화나 전설에서 묘사되는 것보다 작았지만, 그럼에도 용은 아름다웠다. 러셀이 말했다.

“저 얼음의 악마를 맡아주시오. 난 굴속으로 도망간 놈을 죽여야겠소.”

하일른이 끄덕였다.

“이왕이면 저희가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인원을 나눠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지요. 가십시오!”

하일른은 빠르게 러셀과 자신들의 전력을 계산했고, 그 혼자서라도 로고스와 그의 종복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미 용을 상대로 이겨 목숨을 취한 전사다. 달리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

울카가 말했다.

“끔찍하게 죽여줘.”

“노력해보지.”

러셀은 훌쩍 뛰어올랐다. 한 번의 발돋움으로 10미터가 넘는 높이의 중턱에 다다른 러셀은 바로 앞의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퓨메론스칸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악마는 당장 눈앞에서 시퍼렇게 눈을 뜬 용과 늑대인간, 두 성기사를 상대해야 했다.

-······중간계에 나왔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었군.

설마 오자마자 용살자에 이어 용, 달의 사도와 태양의 성기사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니. 하지만 혹한의 지옥에서 온 악마는 벽에서 빠져나와 투지를 불살랐다.

잃어버린 오른팔 대신 왼팔을 치켜들고, 거기서 다시 마력으로 생성한 얼음의 대검을 쥐었다.

악마 또한 수백 년을 살면서 패배보다 승리를 쌓아 발 아래 둔 자. 오른팔을 잃었음에도 악마의 전신에서 타오르는 투기와 사악한 마력은 강대했다.

퓨메론스칸이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박차 달려들었다.

용과 울카, 성기사 두 명도 악마에게 마주 돌진했다.

얼음의 대검이 휘둘러지며 궤적을 따라 서리 폭풍이 내달렸다. 그 위로 용의 벼락이 쏟아지고 울카의 은빛 손톱이 허공을 물들였으며 성기사의 황금빛의 성력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

러셀은 깊은 구멍 속을 달렸다. 마력이 깃든 눈이 자색으로 빛났다. 도망간 헤로케닌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닥에는 무리하게 마나가르마의 사슬을 빠져나오느라 큰 상처를 입은 헤로케닌의 피와 살점이 길게 이어져 있엇다.

핸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남긴 빵조각을 따라가듯이 러셀은 피와 살점의 이정표를 따라 깊숙이, 더 깊숙이 들어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러셀은 구멍의 크기가 갑자기 거대해지는 한 공동에 다다랐다.

벽면에 따라 횃불 거치대가 줄지어 둥글게 걸려 있었고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천장은 높았다. 대략 10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천장에는 종유석이 군데군데 뾰족한 끝을 아래로 세운 채 매달려 있었다. 오래 전 멈춰버린 시계의 고정된 시침 같은 모습들이었다.

공동의 중앙에는 제단이 있었고, 바로 그 앞에 헤로케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러셀은 코트 속에서 마지막 서리를 꺼냈다.

한 손에 백색의 외날 도끼를, 다른 손에 묵색의 대검 나힐니르를 든 러셀이 저벅저벅 걸었다. 공동에 그의 발자국 소리가 웅웅 울렸다.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인지 무릎을 꿇고 있던 헤로케닌이 그를 돌아보았다. 러셀은 흠칫 놀랐다.

아까까지 멀쩡했던 그의 얼굴, 눈코입에서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은 뻥 뚫려 있었고, 그 안은 암흑이었다.

“······왜. 조금만, 일주일, 아니, 하루의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이리 급하게 진행하진 않았을 텐데. 왜. 왜 너 같은 놈이 온 것이냐. 왜. 왜애애애!”

준비는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시체들의 군대로 힘을 빼고, 협곡 바닥에 냉기의 안개를 깔았다. 로고스가 직접 마력을 정제해 만들어준 룬석을 이용해 지옥, 뤼플하임으로 통하는 차원문도 열었다.

과연 차원문에서 나온 마물들은 집요하고 흉포했으며 이름 난 악마 퓨메론스칸도 소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충분히 달의 사도가 만든 사슬을 풀어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생명과 육신을 깎아가며 무리하게 풀어버릴 게 아니라.

약간의 시간. 그것만 있으면 되었는데.

“세상 일이 다 뜻대로만 되겠냐.”

러셀은 들고 있던 도끼를 던졌다. 허공에 새하얀 서리를 흩뿌리며 날아간 도끼는 헤로케닌이 빠르게 들어올린 손과 거기서 뿜어진 주문에 의해 타점이 빗나갔다.

머리를 노렸던 도끼는 대신 헤로케닌의 왼 손목을 갈랐다. 러셀이 도끼를 회수하고 다시 던지려는 찰나, 헤로케닌은 남아 있던 팔을 들어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인간의 팔로 보였던 왼손과 달리 오른팔은 시커먼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어깨죽지 바로 아래의 상완부터는 다른 괴물의 팔을 접합 시킨 것 마냥 크기가 맞지 않는 팔이 달려 있는 것이었다.

러셀은 어깨 죽지에 있는 잘려나간 흔적이 전에 하일른이 말했던, 교회와의 전투에서 끊었던 팔의 흔적임을 알았다. 악마의 힘으로 재생시킨 건가?

하지만 자신의 오른팔을 드는 헤로케닌의 표정은 두려움에 젖어 있었다. 그는 오른팔을 보며 입술을 덜덜 떨었다.

“아, 안돼···!”

악마의 오른손은 바로 가슴팍을 푹 찔러버렸다. 러셀은 멈칫했다. 뭐하는 거야?

우직, 우직 하고 갈비뼈가 우그러지는 소리를 냈다. 꺼내든 손에는 검은 색의 피를 울컥울컥 토하는 심장이 들려 있었다. 헤로케닌은 자신의 심장을 끔찍한 공포가 서린 눈으로 바라봤다.

“쿨럭, 로고스여, 제발······.”

그의 입가에서 검은 피가 토해졌다. 하지만 오른손은 멈추지 않았다.

오른 손은 헤로케닌의 심장을 머리 위에 올리더니 힘을 콱 주었다. 손아귀에 잡혀져 있던 심장이 터졌다.

심장은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헤로케닌을 완전히 적시고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 정도였다. 사람 주먹보다 약간 큰 심장에 들어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큭.”

신음을 내뱉은 러셀이 눈가를 손으로 감쌌다. 그의 눈이 검은 피에 담긴 원혼을 보았다.

이제까지 헤로케닌이 도시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학살하고 고문하고 괴롭히고 정신을 붕괴시킨 피해자들의 원혼들이었다. 피 속에 흐르는 비명들이 들렸다.

-아아아악!

-살려, 살려주십시오!

-아이만은! 제발, 아이만은!

-엄마아!

-서, 선생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으악! 내, 내 팔! 내, 팔, 그라라락.

그는 잠시 환상을 보았다. 검은 기름 같은 피에 함유된 원혼들의 주마등들이었다.

불타오르는 마을, 괴물로 변한 채 가족의 머리를 뜯어먹는 괴물들, 아기를 껴안은 채 등을 보이는 어머니를 무참하게 가르는 발톱, 도망치는 아이의 가슴팍을 꿰뚫는 얼음송곳.

힘없는 자들에 대한 세계의 가혹한 처벌이었다. 힘이 없는 것은 죄가 되었다.

그가 눈을 감아도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눈꺼풀 속에서 더 선명했다. 러셀은 다시 눈을 떴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그의 눈빛은 차갑게 번뜩였다.

음습하고 사악한 마력이 담긴 핏물이 헤로케닌의 몸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아, 으아, 으아아아아-!”

마치 석유를 뒤집어쓴 것 같은 헤로케닌에게서 확 하고 불길이 치솟았다. 선연한 초록색의 불길이었다.

“로로로고고고스스스니니니임임임-”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목소리가 주인을 찾으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계획의 틀어짐을 안 악마는 가차없이 종복의 생명과 그가 담았던 마력, 원혼을 불태웠다.

헤로케닌은 산채로 불타고 있었다. 피부 위를 흐르는 화염뿐만 아니라 그 내부에서도 불이 타올랐다. 텅 비어버린 눈구멍에서, 코에서, 입에서, 귀에서, 전신의 땀구멍에서.

가느다랗고 커다란 불길들이 마그마처럼 분출했다. 그리고 공동과 러셀을 연둣빛으로 물들이는 불길이 거세게 불타오르며 한 형상을 빚어갔다.

우둑, 우두두둑.

검은 인영이 빠른 속도로 커졌다. 발과 다리가, 하반신이 부풀어오르고 위의 상반신도 똑같이 부풀었다. 검은 색의 몸체에 초록색의 선명한 균열들이 줄지어 일어났다.

그곳에 선 것은 키가 러셀보다 약간 큰, 2미터 10센치 정도의 거한이었다. 온통 검은 피부는 빛조차 반사하지 않았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초록색의 불길을 내뿜는 균열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이마 양쪽에서 크게 솟아나 머리를 두른 두 개의 뿔과 그 사이에서 또 다른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까마득한 오래전. 제국과 왕국도 없고 문명의 기틀이 간신히 세워지던 세상에서 달의 여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던 악마, 로고스가 종복을 잡아먹고 일어섰다.

-천 년의 세월이 무상하군. 고작 하루가 모자라 이리 변변찮게 부활하다니.

로고스가 중얼거렸다.

그때, 악마의 한 손에서 검은 기류와 불길이 치솟더니 커다란 대낫이 나타났다, 로고스는 곧장 그것을 들어 짓쳐온 묵색의 대검과 백색의 도끼를 막아냈다.

굉음과 함께 공동이 우르르 떨렸다. 천장과 벽,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종유석이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아래로 떨어져 박살났다.

로고스와 러셀은 순식간에 수십 번의 공격을 주고 받다가 대치 상태로 들어갔다. 까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기며 서로의 얼굴을 명암으로 깜박이게 만들었다.

날붙이의 공격은 결국 선으로 이뤄져 있고, 선과 선의 부딪침은 점이다. 누구 하나의 힘이나 기술이 약하면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여 머리나 어깨를 노릴 수 있는 치명적인 일격으로 전환이 가능하겠으나.

지금 러셀과 악마는 동수를 이룬 채 무수한 수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서로의 눈빛, 비틀어지는 발동작, 허리의 방향, 어깨의 움찔거림 등을 통해 언제 어느 때 점에서 선으로 이어지며 다음 공격을 이어나갈지의 순간을 가늠하고 있는 것이었다.

악마는 고작 인간의 기술이 자신과 비슷함에, 러셀은 변변찮게 부활했다는 놈의 힘이 무지막지하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잠깐만 방심해도 바로 밀릴 정도로 로고스의 근력은 강력했다.

계속 이어질 것 같던 대치는 동시에 끝났다. 도끼가 횡으로 배어오자 로고스가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거대한 불길이 바닥에서 치솟는 것과 러셀이 뒤로 몸을 내뺀 것은 거의 같은 순간으로 보였다.

불길은 그저 솟아오른 것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뱀 같은 형상이 되어 러셀을 덮쳤다.

물러났던 러셀은 마지막 서리에 마력을 불어넣고 바닥에 내리 꽂았다. 공동 바닥에 박힌 도끼에서 엄청난 냉기가 퍼져나오면서 악마의 불길에 맞섰다.

서리와 불의 뱀이 충돌하고 공멸했다. 삽시간에 자욱한 수증기가 공동을 가득 채웠다.

짙은 수증기가 시야를 가렸음에도 로고스와 러셀은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시 몸을 날렸다. 로고스는 대낫의 자루를 양손으로 쥐고 위에서 찍어오는 대검을 막았다.

힘과 힘의 충돌에 공기가 확 밀려났다. 공기의 밀림에 덩달아 수증기도 바깥으로 걷혔다. 로고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냐, 그 모습은.

러셀의 전신에는 갑옷이 입혀져 있었다. 마치 흉악한 악마의 외골격을 그대로 갑옷으로 만든 듯한 외형. 진짜 악마의 초록색 눈과 악마 갑주를 입은 러셀의 자청색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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