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50화 (51/225)

50화 협곡으로

***

울카는 악을 질렀다.

“십팔!”

러셀은 담담하게 말했다.

“다섯 개 추가.”

울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뒤돌아 러셀을 쳐다봤다.

“왜?!”

“설마 이유를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그냥 숫자 센 거잖아! 지금이 딱 십팔 번째고!”

“그전까지 열여섯, 열일곱을 말하다가 갑자기 말하는 방식을 바꾸면 비슷한 발음에 의해 나에게 욕설을 하고 싶다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게 그다지 어렵게 생각되지 않는군.”

울카는 그 긴 말을 듣다가 지쳐 헉헉 거렸고, 그래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러셀은 굳이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열아홉 번째의 손바닥이 울카의 커다란 엉덩이를 내리쳤다.

“꺄우악!”

“숫자.”

“이이이······ 이 악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어. 나 사람이야. 그러니까 숫자 세.”

“꺄욱! 스, 스무울···.”

“열아홉이지.”

“으아아아악!”

마을 사람들은 멍하니 서서 둘을 지켜봤다. 키가 큰 남자가 무릎 위에 얹은 여자의 엉덩이를 때리는 모습을.

두 사람의 성별을 바꾸고, 나이도 한 쪽을 조금 올린다면 어느 집에서나 여상히 벌어지는 훈육, 혹은 체벌을 하는 모습이겠으나.

때리는 남자가 바로 어제 막 들어왔던 외지인이고, 맞는 여자가 이십 년 동안 마을을 알게 모르게 지켜줬던 수호신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지극히 당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눈은 하늘에서 내린다거나 하는 종류의)이 실시간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으로 기묘한 건,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울카가 절대로 먼저 자리를 박차고 떠나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찰싹!

“하악! 스, 스물 두울···.”

울카의 엉덩이를 때리는 러셀은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인의 나이를 인간 식으로 환산했을 때 울카는 아직 열여섯 정도의 나이다.

이세계에선 약간 이르긴 해도 그럭저럭 한 명의 성인 언저리쯤으로 인정하는 나이기도 하다. 유전적 차이에 의해 신체의 성장에는 고저가 있겠지만.

하지만 울카는 말투나 행동이 유치해도 확연히 성숙한 어른 여성의 몸이었다. 가슴은 풍만하고 허리는 잘록하며, 골반 또한 크게 발달되어 있다. 그 외에는 군살 하나 없이 잔 근육으로 꽉 찬, 아주 탄탄한 몸매였다.

그리고 러셀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여자의 엉덩이를 때려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지금 그 경험을 최초로 겪는 지금이 참 신기하고도 경외스러웠다.

신기한 건 전생에는 여자 손 한 번 잡지 못하고 죽었던 자신이 이렇게 다 큰 여자의 엉덩이를 때리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경이로운 건 울카의 엉덩이가 경이로웠다.

울카는 맨발 맨다리를 그대로 드러낸 차림이었다. 거의 핫팬츠에 가까운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그 말은 러셀의 손바닥과 직접 맞닿는 피부의 범위가 아주 넓다는 뜻이었다.

손바닥을 내리칠 때마다 그 충격이 피부 위를 타며 파문을 그리면서 퍼져나갔고, 늑대 귀와 꼬리가 쫙 펴졌다가 축 늘어졌다. 경이로웠다.

그는 거의 무아지경으로 울카의 엉덩이를 때렸고 울카는 마찬가지로 거의 울면서 숫자를 셌다.

그리고 기묘한 감각을 느끼는 것은 울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뭔가, 뭔가 이상했다.

아프기는 했는데 아프지 않은 이상한 느낌. 숲이나 산에 들어오려는 여러 괴물들과 맞서 싸웠던 울카는 여러 가지의 고통을 알았다.

오크의 검과 창은 날카로운 아픔을 주었고, 고블린의 침은 온몸이 간지러운 고통을, 트롤의 나무 몽둥이 같은 것은 둔탁한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 러셀이 때리는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이상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맞을 때는 화끈한 아픔이 내달려 머릿속에 꽂혔다가도 곧바로 시원해지고, 그게 다시 반복됐다.

마치 불과 얼음을 반복해서 대고 있는 것 같은 감각 속에서 전기 같은 찌릿함, 혹은 오싹한 소름이 느껴진다는 것을, 울카는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숫자가 불려졌다.

“꺄윽! 스물, 다서엇! 우아아앙······!”

울카는 울어버렸다. 생전 처음의 고통에, 거기다 자신이 지키던 마을 사람들 앞에서 맞아버렸다는 수치심에, 그리고 자신을 이겨버린 남자에 대한 분함에. 목을 놓아 울었다.

러셀은 약간 당황해서 울카를 일으켜 세웠고, 울카는 저도 모르게 앞에 있는 것을 안아버리며 울었다.

러셀은 왜 울카가 때린 자신을 껴안고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몰차게 떼어버리기도 뭐 해서, 그냥 등을 토닥여주었다. 생각해보니 누나나 동생도 맞고 나서는 곧잘 어머니의 품에 안겨들었던 것 같다.

울카는 그런 러셀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버리겠다는 듯이 꼬옥 껴안았다. 마치 회초리를 들었던 아버지에게 아이가 안겨들 듯.

짝짝짝······.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누가 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올려 박수쳤다.

짝짝짝짝짝······.

촌장 체르도가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고, 휴 씨는 눈가에 눈물을 매단 채 박수를 쳤다. 에놀드와 샐리는 대견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고, 에단은 뭔지는 모르지만 어른들이 치니 나도 친다는 식으로 해맑게 박수를 쳤다.

성기사 하일른과 제스도 똑같이 손뼉을 부딪쳤다. 제스는 박수를 멈추지 않으며 조용히 하일른에게 고개를 기울여 물었다.

“사람들이 치니까 저도 치긴 했는데, 왜 박수치는 거죠?”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저 울카라는 아가씨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것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예에?”

“······.”

하일른은 입을 다물어버렸고, 그래서 제스는 아리송한 표정이 되었다.

엄숙한 회색의 하늘 아래서, 목책을 두른 마을의 중심부에 우는 여자와 그를 껴안은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지나가는 북풍도 고개를 갸우뚱 할 만큼 요상한 풍경이었으나, 그걸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울카가 울음을 그쳤을 때,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다가와 고생했다며 어깨를 두드릴 때 도망치지 않은 것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 이면에는 어머니 마나가르마의 전언과 가지고 있는 자존감 등등이 있었지만, 그것이 칭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한바탕의 소동 이후, 러셀과 울카, 그리고 하일른과 제스는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여관 식당에 들어와 있었다.

여관의 이름은 늑대가 물어다준 손님이라는 이상한 이름이었지만, 마을 사람과 직접 겪은 손님은 모두 납득한 작명이었기에 실제로 이상하다고 말한 사람은 많이 없었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았다.

제스가 음식을 들고 오는 여관주인에게 질문했다.

“왜 여관 이름이 늑대가 물어다준 손님입니까?”

여관주인은 오랜만에 듣는 질문에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식탁에 스튜와 소시지와 훈연한 고기가 담긴 접시와 식기를 놓으면서 말했다.

“저희 로고스 마을은 워낙 외진 곳에 있다보니 찾아오는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우리 착한 울카가 늑대를 보내서 마을로 인도하게끔 해줬지요.”

“아아.”

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은편에 앉은 울카를 바라봤다.

“말씀대로 상냥하시군요. 아가씨.”

울카는 무시했다. 제스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하일른을 쳐다봤다. 하일른은 눈빛으로 제스를 꾸짖고는 말했다.

“길잡이로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충은 여기 있는 러셀님에게 들어서 알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확실하게 들어두는 편이 좋겠지요.”

길잡이라는 반응하지 않던 울카는 러셀이라는 이름에는 몸을 움찔, 떨고 말았다. 조심스럽게(왜 그러는지는 자기도 모르면서) 고개를 돌린 울카는 러셀이 여상스럽게 스튜를 마시고 고기를 뜯자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 큰 차이는 없을 거야. 오래 전 여신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악마 로고스가 협곡에 떨어지고, 어머니가 그를 억누르고 있었지. 달의 여신을 섬기는 늑대들 중에서도 선별된 늑대만이 그 영광된 자리를 맡았고, 그 다음은 내 차례였어. 하지만 악마 숭배자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악마는 이른 시간에 깨어났고, 어머니는 많은 힘을 잃었어. 난 아직 준비되지 못했고. 그래서 당신들을 협곡으로 안내하는 길잡이를 맡은 거야.”

하일른과 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러셀에게 들었던 것, 그리고 자신이 쫓고 있는 목적인 헤로케닌과의 관계가 명쾌하게 정립되었다.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아가씨.”

“그래. 나도 밥 좀 먹어도 될까? 배고픈데.”

“그럼요. 제스. 우리도 먹자.”

“옙. 잘 먹겠습니다.”

한동안은 식기가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약간 이른 점심 식사가 끝나고, 탁자에 앉은 네 사람은 여관 주인이 입가심하라며 내준 차를 홀짝였다. 아니, 홀짝이는 건 러셀 혼자였고 하일른과 제스, 울카는 훌쩍 마셔버렸다. 하일른이 말했다.

“길잡이도 있고, 악마 숭배자를 상대할 전사들도 여기 있습니다. 마법사가 없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러셀님?”

찻잔을 손으로 감싸 온기를 전달받던 러셀이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마법은 한정되어 있소. 제대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여기저기 다니다 얻은 것들이지.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알겠습니다. 저도 약간의 신성 마법은 쓸 수 있고, 악마 숭배자의 마력과 저희의 성력은 상극입니다. 이대로 출발해도 좋을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가방만 챙기고 오겠소. 말을 타고 갈 수 있나?”

러셀이 울카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울카는 화들짝 놀라 러셀의 눈을 피한 채 웅얼거렸다.

“아니. 협곡까지는 이렇다 할 길이 없어. 가려면야 못 갈 것도 없겠지만, 많이 힘들어 할 거야. 말발굽한테 썩 좋은 지형은 아니지. 협곡은 말할 것도 없고.”

러셀은 마구간에 매어놓은 자신의 흑마, 크라이를 생각하며 말했다.

“그럼 걸어가야 한다는 말이군. 얼마 정도 걸린다고 보나?”

울카는 잠시 생각했다. 탁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고민하던 울카가 말했다.

“나 혼자라면 반나절 안에라도 도착할 수 있겠지만, 너희들은 그러지 못하니까. 넉넉잡고 하루에서 하루 반나절 정도?”

“지금 출발하는 게 좋겠군. 아직 이른 시간이니, 빠르게 가면 하룻밤 야영한 후 새벽이나 아침에 도착하면 되겠어. 각자 준비한 후 마을 입구로 가면 되나?”

울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일른과 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저희 무구가 아직 방에 있어서.”

“나도 뭣 좀 사야겠군. 마을 입구에서 만나지.”

두 성기사가 여관 2층으로 올라가고, 러셀은 바깥으로 나왔다. 뒤이어 약간 허둥거리는 몸짓으로 울카가 따라 나왔다.

“왜 그래?”

“어?! 뭐가?!”

“···아니다.”

러셀은 그대로 마을 상점 거리로 향했다. 울카는 어미 오리를 뒤따라가는 새끼 오리처럼 러셀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을이었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러셀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잡다한 것들을 샀다.

울카는 러셀의 코트 속으로 랜턴, 천막, 담배, 각종 식량 같은 것들이 끝도 없이 들어가자 눈을 크게 떴다.

“그, 그거 뭐야?”

“코트.”

“아니,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이건 그냥 코트야. 주머니에 뭘 좀 많이 담을 수 있는.”

러셀이 간단하게 말하자 울카도 그냥 납득해버렸다. 그러면서도 신기한지 뒤에서 러셀의 코트 옷깃을 잡으며 비비적거렸다.

마을 시내를 돌아다니자 울카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거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인사했다. 정육점의 휴가.

“여, 울카! 눈 안 부었냐?”

잡화점의 소녀가.

“울카 언니! 이거 붓기 가라앉혀 주는 풀이예요!”

짓궂은 남자 아이가.

“누나! 아까 왜 울었어?”

“저리 가악!”

울카가 빼액 소리 지르자 어느새 모여 있던 아이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다. 그러면서도 아예 도망치지 않고, 골목과 골목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며 혀를 삐죽 내밀며 키득거렸다.

울카가 성난 발걸음으로 쿵쾅거리며 다가가자 꺄악 소리 지르며 완전히 흩어졌다.

러셀은 씩씩 거리는 울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인기 폭발이시군.”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울카가 사뭇 눈을 치켜뜨며 째려보자 러셀은 장난스레 손을 올렸다.

“눈 그렇게 뜰 거야? 한 대 더 맞을래?”

“······.”

러셀은 울카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울카는 바로 달려 나가 버렸다. 질풍을 일으키며 달아나는 울카 때문에 대로 곳곳에서 소란이 연출됐다.

“어멋!”

“우악!”

“음머어.”

물이 찬 양동이를 들고 가던 처녀가 옆으로 팔을 뻗었고, 옆에 지나가던 남자가 물을 뒤집어써 비명을 질렀으며, 달구지를 끌며 걷던 황소가 울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멀리 사라지는 울카를 보던 러셀은 고개를 살살 가로젓고는 에놀드의 집으로 향했다.

크라이는 마구간에 잘 있었다. 러셀은 여물통에 가득 담긴 여물에 미소를 지으며 크라이의 갈기를 쓰다듬어줬다.

“살만 하냐?”

크라이는 푸르릉 거리면서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러셀은 씨익 웃고는 목을 긁어줬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못 데려갈 것 같다. 여기서 쉬고 있어. 늦어도 내일, 아니면 모레에는 올 거다.”

크라이는 검은 색의 큰 동공을 꿈벅거리며 투레질했다. 그 몸짓이 난 괜찮으니 너나 몸조심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러셀은 마구간을 나와 에놀드의 집 문을 두드렸다. 에놀드는 어디로 간 것인지 샐리가 문을 열어줬다.

“어머. 울카는요?”

“···왜 나한테서 울카를 찾는지 모르겠소만.”

“왜 그럴까요? 호호호.”

“됐소. 내 가방 아직 위에 있습니까?”

“아, 예. 갖다드릴까요?”

“아니오, 내가 가지.”

러셀은 간밤에 신세를 졌던 방에 들어가 가방을 들었다. 알은 안에 얌전히 들어있었다. 러셀은 가방을 어깨에 매고 내려왔다. 샐리가 다가와 물었다.

“어디 가시나요?”

“협곡으로.”

샐리는 굳은 표정이 되어 러셀을 쳐다봤다.

“그러시군요. 조심하세요.”

러셀은 에놀드의 집을 나와 마을 입구로 걸어갔다. 먼저 도착한 것인지 하일른과 제스, 울카, 그리고 촌장이 서 있었다.

성갑과 방패, 검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야영용 가방을 든 성기사가 러셀을 발견했다. 제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건 코트에 안 넣으시는군요?”

“중요한 물건이라 그렇소. 출발 준비는 된 거요?”

하일른이 대답헸다.

“예. 러셀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저희도 방금 왔습니다.”

“그럼 출발하지. 울카?”

“···어? 어, 어.”

“길잡이가 앞장서야지.”

어쩐지 멍한 표정이던 울카가 발을 옮겼고, 그들은 출발했다. 촌장 체르도가 그들을 배웅하며 인사했다.

“부디 몸 조심히, 잘 해결되길 바랍니다.”

두 성기사가 성호를 그으며 고개를 숙였다.

“루테온의 이름으로, 충실히 임하겠습니다.”

러셀은 촌장에게 고개만 끄덕였다.

회색의 하늘은 고른 빛을 지상 전체에 내리쬐었다. 공기는 하얀 숨결이 맺어질 만큼 싸늘했다. 울카는 그들을 이끌다가 어느 지점에서 길을 벗어났다.

뽀드득, 하고 눈이 신발에 밟히며 딱딱한 신음을 흘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검은 나무와 하얀 눈이었다. 그 외에는 조용했고, 고요했다. 까마귀 우는 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제스가 훅, 훅 숨을 내뱉었다.

“이 숲 끝에, 악마가 있군요.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그냥 악마 숭배자 하나만 잡는 줄 알았는데. 악마를 잡고 돌아가면 교단에서도 저를 엄연한 성기사로 임명해주겠지요?”

러셀은 제스를 쳐다봤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예? 왜요?”

“클리셰거든.”

“클리셰? 그게 뭡니까?”

“제스, 그만. 울카님,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울카는 말없이 앞장섰다. 그 뒤를 작은 가방을 어깨에 맨 러셀과 두껍고 큰 가방을 짊어진 성기사 둘이 뒤따랐다.

그들은 마을과 길을 벗어나 검은 숲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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