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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49화 (50/225)

49화 훈육

***

한 남자가 오체투지한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뒤통수만 보이고 있는 남자에게서는 검은 머리칼과 로브밖에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엎드린 곳은 넓은 공동 비스무리한 공간이었다. 중앙에는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에는 녹색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장작 하나 없이도 공중에서 자연발화하고 있는 불꽃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예상치 못한 방해물이 나타났습니다. 교회의 성기사 두 명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한 명입니다.”

쿠르릉. 녹색 불꽃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남자는 머리를 더욱 조아렸다.

“아니오. 달은 아닙니다. 태양 루테온입니다. 성기사 한 명은 보잘 것 없으나 다른 한 명은 유의해야 합니다.”

다른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남자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개념과 의지에 조곤조곤 답했다.

“다른 한 명은 짐작가지 않습니다. 코트를 입고 있는 자였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백색의 도끼와 묵색의 대검을 사용했습니다. 구울을 이용해 죽이려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강한 남자였습니다. 계획의 변경이나 조금 더 시간을 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침묵. 남자는 뇌리에 어떤 의지가 전해져오지 않아도 잠자코 엎드린 자세를 유지했다. 아직 불꽃은 사라지지 않았다.

석회색의 바닥에 일렁이는 선연한 초록색은 보통 사람에게는 불길함과 섬뜩함을 안겨줄 테지만, 악마 숭배자 헤로케닌에게는 무엇보다도 영광스러운 빛이었다.

곧 다시 의지가 전해져왔다. 그리고 의지만 전해진 것도 아니었다. 제단 위의 초록색 불꽃에서 한 줄기의 얇고 가느다란 불길이 뻗어나왔다.

그 불길은 헤로케닌의 앞 지점에서 뭉치더니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돌로 변했다.

그 정체를 알아본 헤로케닌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처들 뻔 했다. 그만큼 놀라웠다. 헤로케닌은 가까스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감사합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제단의 불꽃은 전보다 더 크기가 작아져 있었다. 불길이 뭉쳐져 만들어진 돌을 생성하는데 힘을 소모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헤로케닌은 그 추측이 맞다고 생각했다. 저 돌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바닥에 비치던 녹색의 잔영이 서서히 사라졌다. 헤로케닌은 공동을 밝히던 불꽃이 사라졌음에도 몇 분을 더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머리맡에 떨어져 있는 돌을 주웠다.

주먹만 한 크기의 돌. 표면에 문양이 음각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동굴 바닥에서 굴러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하지만 이 가치를 아는 자는 그야말로 군대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헤로케닌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준비는 거의 끝났다. 거기다 예상치 못한 선물까지 받았다. 지려야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용이라도 나타난다면 모를까.

하지만 용은 모두 죽거나 사라졌다. 남은 것은 희석된 피를 가진 용족들뿐.

문득 헤로케닌은 방금 떠올린 용의 생각에서 가지를 뻗치며 이어지는 어떤 상념을 같이 떠올렸다.

정체를 숨기며 도시와 작은 마을을 지나칠 때,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북동부의 도시에서 용살자가 나타났다는.

용살자라면 용을 죽였다는 것이고, 그건 용이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소문을 진지하게 믿는 자는 없는 듯했다. 그저 부족한 안주를 대신하기 위한 씹을 거리가 필요했을 뿐. 그리고 그건 듣고 있던 헤로케닌도 마찬가지였다.

“설사 용이 나타난다고 해도, 막지 못한다. 일어나야 할 것은 일어난다. 그것이 순리니까.”

헤로케닌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돌을 품에 넣고 공동을 나왔다.

또 남은 것은 흰 늑대와 작은 늑대뿐이다. 하지만 흰 늑대는 다 죽어가고 있으니 내버려두어도 알아서 사라질 것이었다.

작은 늑대 또한 마찬가지다. 시간이 더 흘렀다면 모를까, 지금의 상황에서는 거추장스런 장애물, 그 이상 이하도 안 되었다. 헤로케닌은 클클 웃었다.

“고작 강아지 정도에 불과하지···.”

***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몇 개 있는데.”

울카는 허리를 세웠다. 두 눈에는 호박색 빛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누구도 나한테 개, 강아지, 멍멍이라고 부르지 못해.”

“혹시 알고 있나? 늑대와 개의 유전적 차이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0.04%밖에 안돼.”

울카는 러셀의 말을 무시했다. 몰라서 무시한 건지 알고서 무시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러셀은 한 가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울카는 화가 났다. 그것도 엄청.

다시 바닥을 박찬 울카가 달려와 길고 매끈한 다리를 휘둘렀다.

기세가 흉흉한 것이 두꺼운 통나무도 단번에 부러트릴 듯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증언한 것이 사실이라면 실제로도 부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선 건 통나무가 아니라 러셀이었다. 울카의 다리는 러셀의 왼손에 턱 잡혔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던 기세를 생각하면 너무나 손쉬웠다.

그러나 울카는 잡혔다는 것에 실망하지 않고 남아있던 한 발로 뛰어올라 다시 발차기를 날렸다.

머리와 상반신을 숙여 발차기를 피한 러셀은 아직 쥐고 있던 다리를 끌어당겼고, 그대로 울카의 복부를 후려쳤다. 울카는 아까처럼 발로 바닥을 딛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렀다.

“쿨럭, 컥, 커허억···.”

식도를 타고 쓴 물이 올라왔다. 침이 질질 흘렀다.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엎어진 채 위액과 침에 젖은 바닥을 보던 울카는 러셀이 손속을 뒀음을 깨달았다.

방금의 일격은 타격보다는 밀어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울카는 더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으아아아아!”

울카가 달려들었다. 주먹, 팔, 팔꿈치, 어깨, 무릎, 발 등 박투술에 가까운 몸짓이 러셀에게 쏟아졌다. 일견 그것은 마구잡이로 뿜어내는, 악다구니에 가까운 몸짓으로 보였다.

허나 러셀은 그것이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사상과 기술이 접목된, 무술이라 불러도 될 만 한 것임을 느꼈다.

하얀 늑대, 마나가르마가 가르친 것일까? 아니면 울카, 그녀가 스스로 습득한 것일까. 둘 중 무엇이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울카는 무에 재능이 있었다.

러셀은 침착하게 울카의 공격을 받고, 막아내고, 흘리고, 끊었다.

얼굴을 노리는 강맹한 주먹질은 고개만 옆으로 젖혀 피하고 낭심을 노리는 무릎은 마주 무릎을 세워 막았다. 관자놀이를 노리는 팔꿈치는 손등으로 올려 타점을 흘리고 옆구리로 날아드는 발차기는 중간부터 발길질을 날려 끊어냈다.

“이익!”

울카가 아래로 훅 꺼지며 바닥을 쓸었다. 러셀은 가볍게 뛰어올라 다리를 접으며 피했고, 울카는 회심의 눈빛을 번쩍였다.

아주 잠깐의 체공시간이었지만 울카에게는 차고 넘치는 공격 기회의 순간이었다. 이대로 원 밖으로 밀어내면 그녀의 승리였다.

공중에 뜬 것을 노리며 어깨로 밀어내려던 공격은, 그러나 러셀이 두 손으로 울카의 어깨를 뒤로 밀어 넘기며 수포로 돌아갔다.

러셀이 세게 밀어버렸기에 앞으로 나동그라진 울카가 벌떡 일어나며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 울카는 바로 뒤돌아 막 등을 보이며 바닥에 내려선 러셀에게 돌진했다.

그때 러셀이 사라졌다. 갑자기 사라진 러셀의 모습에 당황한 울카는 발목에 강한 충격을 받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러셀은 방금 울카가 바닥을 쓸었던 공격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러셀은 피했지만 울카는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균형을 잃고 공중에서 버둥거리는 울카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러셀의 주먹이었다.

쾅!

모골이 송연해지는 소리가 들리며 울카가 뒤로 날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입을 쩍 벌린 채 둘의 싸움을 지켜봤다. 아까까지 시체 하나 치우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태어났든, 흘러들어와 정착했든, 로고스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알고 있던 불변의 진실 중 하나가 지금 깨져나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울카는 무적이 아니었다.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회색의 하늘을 보며, 대지에 회색의 고슴도치 같은 긴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늘어트린 울카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코에서 짙은 비린내가 느껴졌다. 손으로 훔치자 진득한 빨간 피가 잔뜩 묻어나왔다. 얼굴 전체가 화끈화끈했다. 아니, 몸 전신이 뜨거웠다.

심장은 이제까지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뛰고, 혈관을 흐르는 피는 초원의 야생마처럼 내달렸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 없었다.

이길 수 없다.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쌓았던 자부심의 탑이 흔들리고, 무너졌다.

울카의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그것도 거의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으며.

세 걸음 정도의 원이라 했지만 러셀은 그보다 적은 두 걸음, 혹은 한 걸음 내의 반경에서 울카의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울카는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까 러셀이 말한 나이대로라면 고작 스무 살, 그녀의 절반 밖에 살지 못한 생인데. 지금의 울카보다 강했다. 범접할 수도 없을 만큼.

“계속 그대로 누워만 있을 거야? 항복인가?”

울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이 남자는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울카는 코에 마저 남은 핏물을 닦고는 바닥에 뿌렸다. 강렬하면서도 뇌쇄적이었던 그녀의 얼굴은 코와 입가에 피가 덧칠되어 있었지만, 더 야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듯도 했다.

“아직 아니야.”

러셀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지금 그의 예민한 감각에 뭔가가 잡혔다. 울카의 체내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러셀의 감각은 그것이 의지와 마력, 그리고 수인이라는 종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가능성이 세상에 구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울카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매끈했던 하얀 피부에 회색의 거친 털이 돋아났다. 뼈가 우득거리면서 늘어났다가 커지기를 반복했다.

주둥이는 길게 튀어나오고 손과 발은 길쭉한 손톱이 튀어나온 짐승의 것으로 변했다. 등허리쯤부터 튀어나와 있던 늑대 꼬리는 더욱 길쭉해지며 풍성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더 뒷걸음질 치는 자신의 다리를 붙잡지 못했다.

하일른이 중얼거렸다.

“수인화(獸人化)라니. 대단하군.”

그 자리에 선 것은 키가 2.3미터에 달하는 늑대인간이었다. 늑대인간이 포효했다.

“크와아아아아-!”

러셀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이젠 하다하다 변신이냐.”

늑대인간이 달려들었다. 늑대인간의 공격은 흉포했다. 아까의 울카가 펼치던 무술은 끝자락도 보이지 않는, 짐승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단검 같은 손톱은 그야말로 바위도 갈라버릴 수 있을 만큼 예리해보였다.

이제 늑대인간의 키가 더 커졌기에 위에서 덮쳐오는 공격은 그림자가 드리워질 정도였다. 허나 러셀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원에서 벗어나지도 않았고 코트에서 무기를 뽑지도 않았다.

그저 직선으로 이어지는 만큼이나 단순한 공격을 회피하고, 훤히 드러난 옆구리에 주먹을 먹였다.

거대한 늑대인간의 몸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 퍼졌다. 늑대인간은 입가에서 한 줄기 피를 흘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더 흉포해졌다.

“크아아악!”

러셀과 늑대인간의 싸움은 그야말로 초근접전이었다. 조금만 몸을 비틀어도 상대의 털, 옷에 닿을 만큼 가까웠다.

러셀은 늑대인간이 아까와는 다르게 발을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보다는 손과 새로 생겨난 공격 수단을 쓰는데 더 집중을 기울이고 있었다.

텁, 하고 위아래로 다물어지는 늑대의 주둥이를 피한 러셀이 바로 주먹을 꽂았다.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희고 날카로운 이빨 몇 개가 공중에서 눈처럼 흩날리고, 늑대인간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크르르르르···.”

늑대인간의 커다란 손이 입가에 흐른 피를 닦았다. 러셀은 늑대인간의 주둥이를 유심히 살폈다. 이빨이 부러지거나 뽑혔던 자리에 새로운 치아가 나고 있었다.

재생력까지 좋으시고. 러셀은 피식 웃었다.

이대로는 승부가 빠르게 나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저 상태가 얼마나 유지되는지는 몰라도 앞으로 몇 분은 더 지속될 것 같았고, 러셀은 오래 끌고 싶지 않았다. 슬슬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카아악!”

늑대인간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 튀어왔다. 러셀과 가까워지는 어느 지점에서, 늑대인간은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높이 들어올렸다. 주먹을 망치처럼 내리치려는 자세였다.

그런데 러셀은 그 흉흉한 자세를 보면서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바로 앞에 훤히 열린 가슴과 복부가 있는데도 그곳에 주먹을 내지르거나 발로 차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후우웅!

늑대인간이 깍지 낀 주먹을 내리치고,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1초 후의 피떡이 된 러셀을 상상했다.

“그르르, 그으으으···.”

러셀은 피떡이 되지 않았다. 그는 양팔을 들어 올려 손으로 늑대인간의 손목쯤 되는 부위를 잡고 있었다.

놀랍게도 늑대인간은 러셀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울카였을 때도 통나무를 부수고 수백 킬로그램의 바위를 집어 던질 수 있었다. 수인화를 한 지금은 그 이상의 일도 가능할 것인데.

하지 못했다.

늑대인간은 이빨을 악물면서 온몸에 힘을 줬다. 전신의 근육이 수축, 이완을 반복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러셀은 천천히 팔을 내렸다. 그러자 늑대인간의 팔도 똑같이 아래로 내려왔다. 어느새 깍지 꼈던 손도 풀려 있었다.

그가 힘을 주며 팔을 아래로 내릴수록 러셀보다 큰 늑대인간은 점점 몸을 수그려야 했다. 종국에는 다리가 꺾이며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늑대인간을 무릎 꿇린 러셀이 말했다.

“나를 봐라.”

늑대인간은 저도 모르게 러셀을 올려다봤다. 그의 자청색 눈과 마주친 순간, 늑대의 호박색 눈이 크게 커졌다.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까 울카가 겪었던 수인화의 과정이 반대로 다시 일어나는 것이었다. 주둥이는 줄어들어 인간의 코와 입이 되고, 얼굴과 전신에 돋았던 회색의 거친 털은 피부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뼈는 우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짧아지고 작아졌다.

늑대인간은 그렇게 울카로 돌아왔다.

러셀은 씨익 웃었다.

“내가 이겼지?”

울카는 멍한 표정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경멸, 후의 분노 같은 감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응. 네가 이겼어.”

“월광의 축복은?”

“네 소유야. 넌 자격이 있어.”

“좋아. 그럼 승자의 요구를 이행할 차례군.”

러셀은 울카의 손목을 놓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전히 원이 그려져 있는 자리 가운데였다. 러셀은 영문을 몰라 하는 울카를 보며 자기 무릎을 툭툭 쳤다.

“여기 엎드려.”

“···뭐?”

“우리 어머니는 당신의 자식들을 정말 사랑하셨지만, 훈육하실 때는 망설임이 없으셨지.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볼기짝을 후려치셨어. 그런데 네 어머니는 널 오냐오냐해주기만 한 모양이니 별 수 있나.”

물론 러셀에게 사심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건방지게 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다.

울카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입은 벌어지고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다.

“그, 그, 그러니까 내, 내 엉덩이를 때리겠다고? 우리 엄, 아니 어머니도 안 한 걸?”

“그럼 안 할 건가?”

“미친, 당연하-.”

“위대한 늑대, 마나가르마의 딸이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니. 실망인데.”

울카의 떨리던 몸이 덜컥 굳었다.

“난 이 좁은 원에서 나가면 진다는 조건까지 걸었다. 그걸 수락한 건 너였고. 게다가 넌 수인화를 할 수 있고, 그걸 한다는 말도 사전에 말하지 않았잖아? 그런데도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하는 건가?”

“으으으···.”

러셀이 하는 말은 모두 맞았다. 울카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개, 아니 늑대였으니까.

머뭇머뭇, 쭈뼛쭈뼛 거리던 울카는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늑대인간이 다시 울카로 돌아오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을 힐끔 본 울카가 울상인 얼굴이 되어 속삭였다.

“하, 할 테니까 다른 곳에서 하면 안 될까? 응? 나 여기 마을 수호신이란 말이야···.”

러셀은 단호했다.

“내 알 바 아니야. 엎드리기나 해.”

“우으으···. 이건 말도 안돼···.”

울카는 러셀의 무릎에 엎드렸다. 싸움이 끝나자 다가오던 마을 사람들은 저게 뭐하는 건가,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직 아이를 둔 부모들만 저게 어떤 자세인지 알아차렸다. 에놀드와 샐리가 헛웃음을 흘렸고 에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울카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차마 다른 사람들을 볼 수가 없어서였다. 늑대 귀는 앞으로 축 처졌다. 꼬리도 마찬가지였다.

러셀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딱 열 대만 때린다. 맞을 때마다 숫자 세. 제대로 못하면 추가할 거야.”

“얼른 하기나 해···!”

러셀은 어깨를 으쓱이고 오른손을 내리쳤다. 울카는 비명을 질렀다.

“후끼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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