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48화 (49/225)

48화 울카 (2)

“난데.”

울카는 홱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오른손을 살짝 들고 있었다.

울카는 발부터 머리까지 남자의 전신을 쭉 훑었다. 가죽 부츠와 바지는 튼튼해 보였고, 다리는 길쭉했다. 키가 컸다. 울카는 자신보다 키가 큰 남자는 처음 보았다.

근육질의 탄탄한 상반신에는 얇은 검은 셔츠 하나와 은빛 문양이 코트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울카는 왜 그렇게 얇은 차림으로 이 추운 계절을 다니냐고 묻지 않았다.

자신부터가 매끈한 다리와 팔, 어깨와 가슴 위를 드러낸, 체온 보호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차림새였으니까. 물론 그건 울카가 수인 족이기에 인간보다 높은 체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울카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긴 머리카락은 뒤로 묶은 꽁지머리였고, 코와 입가에는 검은 수염이 수북했다. 이목구비는, 뭐, 그럭저럭 남자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그의 눈이었다. 자청색의 신비로운 빛깔로 빛나는 눈. 울카는 어머니가 똑바로 쳐다보지 말라는 말도 무시한 채 남자를 노려보았다.

러셀은 갑자기 자신을 째려보는 늑대 수인 족 여자에게 굳이 눈싸움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똥오줌을 치우게 하는 수고를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여자, 아니 사람으로서의 사회적 이미지를 배려해준 러셀의 마음씨는 안타깝게도 울카에게 담이 약한 남자라는 평을 주고야 말았다.

“하! 눈을 피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 고추 떼라, 자식아!”

여인네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말투였으나 그 말에 놀라지 않은 것은 마을 사람들뿐이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울카야!’ 라거나 ‘성격 확실하구만!’ 따위의 말만 중얼거렸다.

울카는 계속 말했다.

“어머니는 널 인정하고 내게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맡겼지만, 그래도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감히 내 어머니에게 건방진 언행을 가한 것과 월광의 축복을 받은 것에 대해서! 네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시험할 것이다!”

하일른과 제스는 눈만 끔벅거렸다. 도대체 대화의 진도를 따라갈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그런 울카의 막무가내인 행동은 익숙한 것인지 놀라지는 않았다.

잠자코 듣고 있던 러셀이 말했다.

“시험이라면?”

“나랑 싸워라! 날 이기면 널 인정하고 협곡으로 데려가 주겠다. 하지만 날 이기지 못한다면 협곡으로는 데려가 주되, 월광의 축복은 회수하겠다. 날 이기지도 못하는 네게는 과분한 축복일 테니.”

이 여자가 마나가르마의 딸인가 보군. 거기다 길잡이라.

꿈속에서 만났던 마나가르마는 집채만 한 크기의 늑대였는데, 그 딸은 왜 수인 족일까? 거기다 이리 안하무인인 태도라니. 나이가 의심스러웠다.

생각하던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게 뭔가. 러셀은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 주의였다. 거기다 수인 족을 직접 만난 건 처음이라 흥미롭기도 했다.

“그래. 응하지.”

울카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도망치지는 않는구나. 교회 밖으로 나와라. 마을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그러고는 훌쩍 뒤돌아 교회를 나가버렸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그 뒤를 따라 우르르 나가버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울카는 오래 전부터 우리 마을을 지키고 보살펴온 아이입니다. 수호신님의 따님이시기도 하고, 가진 괴력 또한 엄청납니다. 수 년 전에는 마을에 쳐들어온 괴물 멧돼지를 상대해서 일격에 머리를 부숴 죽여 버리기도 했지요.”

“노인장께서는 뉘시오?”

러셀의 물음에 백발백염의 노인이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갈 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른 사람은 에놀드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이 마을의 촌장, 체르도라고 합니다.”

러셀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이 세계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은 그만한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었다.

“러셀이오. 방금 오래 전이라고 했는데, 또 아이라고도 하는군. 저 수인 족의 나이를 아시오?”

“아니오, 그건 모릅니다. 제가 중년일 적에도 저 모습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행동거지나 언행이 도저히 성인 같지는 않아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하긴, 척 봐도 다혈질인 성격으로 보이기는 했다. 수인 족은 오래 산다고 들었다. 대략 인간 수명의 두 배에서 세 배 정도이던가.

거기다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지만 골밀도나 근섬유의 질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장 약하다고 일컬어지는 토끼 수인도 한 번의 뜀으로 제 키의 세 배가 넘는 높이를 넘을 수 있다.

촌장 체르도는 말했다.

“하나 그 무력만큼은 대단합니다. 저희 마을의 어떤 장정도 이길 수 없지요. 아니, 웬만한 기사님들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러셀님이 걱정스럽군요.”

“괜찮으니 걱정 마시오. 그런데 수호신이라 함은?”

러셀은 짐작하면서도 물었고, 그 물음에는 에놀드가 답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마을을 지켜준 하얀 늑대입니다. 그분 덕분에 저희 마을에는 괴물들이 아주 적지요. 숲으로 흘러들어오는 족족 늑대들이 쫓아버리니까요. 사람들에게도 우호적이라 길을 잃은 길손이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이 마을로 안내해주기도 합니다. 신기한 경험을 한 길손들을 웃음으로 반겨주는 것이 저희 로고스 마을의 오랜 전통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에놀드와 체르도 촌장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듣고 있던 하일른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촌장님. 근래 이 마을에 벌어진 실종 사건과 괴물의 등장은 저희가 쫓고 있던 자의 소행임이 분명합니다. 저와 제스가 그자를 처단할 테니, 안심해도 좋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촌장이 하일른에게 고개를 숙일 때 에놀드는 근심어린 어조로 러셀에게 말했다.

“울카가 말린다고 들을 아이는 아니니, 제가 할 말은 그저 다치지 않게 해달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부디 잘 대처해주십시오.”

러셀은 에놀드가 은연중에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마 자신의 소문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하지만 에놀드는 어제부터 지금까지 러셀에게 자신의 의문이 맞는지 직접 물어보진 않았다. 배려있는 행동이었고, 러셀은 그게 썩 마음에 들었다.

“알겠소. 나가보시오. 이 성기사와 할 대화가 있으니.”

체르도 촌장과 에놀드는 교회 바깥으로 나갔다. 남은 것은 러셀과 두 성기사였다. 하일른이 말했다.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까의 수인 족이 말한 길잡이나 협곡으로의 안내, 월광의 축복에 대해서 말입니다.”

러셀은 코트 안쪽에서 나힐니르를 꺼냈다. 하일른은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제스는 그것 참 신기하다는 얼굴이었다.

러셀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간밤의 꿈에 마나가르마라는 이름의 거대한 흰 늑대가 나타난 것과, 그가 부탁한 것에 대해서. 하일른은 악마라는 대목에서 탄식을 내뱉었다.

“악마!”

제스도 안색이 창백해졌다. 러셀이 말했다.

“이름은 로고스라 하더군. 협곡과 마을 이름의 원 주인. 오래 전 달의 여신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여러 개의 조각으로 갈라져 협곡에 떨어졌다고 했소. 이제까지 마나가르마가 악마를 억누르고 있었으나, 자신의 생명이 거의 다 한 지금 시점에 악마 숭배자가 악마를 돕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했소. 머지않아 악마 로고스가 깨어나면 중북부는 마물과 마인들의 소굴이 되어버릴 것이라며. 그래서 자신의 딸을 길잡이로 보내준 것 같소.”

“이럴 수가. 헤로케닌이 왜 이 멀고 먼 중북부까지 도망쳐왔나 했더니, 그런 의중이 있었군요.”

제스가 중얼거렸다. 하일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도 왜 여기까지 온 것인지 궁금했는데, 지금 모든 실마리가 풀리는군. 악마 로고스라. 교회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구나. 아, 월광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이 룬 어요. 늑대가 새겨주었지.”

러셀은 나힐니르의 검신을 보여줬다. 그곳에는 달을 뜻하는 룬 어가 새겨져 있었다. 하일른은 작게 감탄했다.

“고대의 룬 어군요. 그것도 강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지금은 거의 잊혀진 룬 어입니다. 달의 사원에 가면 크게 놀라겠군요.”

제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글자 아닙니까?”

“공부 좀 하거라. 제스. 현대의 룬 어는 마법사들의 연구를 통해 이것저것 잡다하게 넣은 언어지만 고대의 것은 그렇지 않았다. 보다 단순한 의미를 넣을수록 룬 어는 강해졌지. 하지만 지금은 그 방법이 실전되었고, 마법사들은 남은 룬 어들을 통해서만 고대의 커다란 발자취를 짐작할 뿐이다. 러셀님의 검에 담긴 월광은 강한 룬 어다. 이 정도면 하나의 성검으로 받아들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제스는 감명 받은 얼굴로 주억거렸다. 하나도 못 알아먹은 표정에 하일른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일른은 러셀에게 말했다.

“사실 어떻게 하면 러셀님에게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려 했는데, 다행히도 일이 풀리는군요. 그래도 물을 건 물어야겠지요. 러셀님, 저희를 도와서 악마 숭배자 헤로케닌을 잡아주시겠습니까?”

“그러지. 날 죽이려 한 놈이야. 똑같이 되갚아줘야지.”

하일른은 환한 표정이 되었다. 제스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교회는 러셀님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나중에 제가 따로 보상도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에 러셀은 문득 코트 안쪽에 넣어둔 한 소개서를 떠올렸다. 칼리스덴 도시를 떠날 때, 사제 엘레노아가 자필로 적어준 소개서.

분명 교회의 지부에 찾아가 그것을 내밀면 숙식과 숙박, 거기다 성수까지 싼 값에 살 수 있다고 한 소개장이었다.

하지만 러셀은 지금 그 소개장을 꺼내들어 두 성기사를 놀래키지 않았다. 그건 나중에 해도 충분했다. 지금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나갑시다. 어린 늑대 한 마리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러셀이 앞장서 먼저 교회를 나섰다. 하일른과 제스는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제스가 속삭였다.

“하일른님, 괜찮겠죠? 촌장의 말대로라면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것 같던데. 수호신의 딸이라잖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 러셀이라는 자라면 그리 걱정되지 않는다. 아주 강한 남자다.”

“그렇습니까?”

제스는 아리송하다는 표정이었지만, 하일른은 알았다. 러셀이 얼마나 강한 전사인지.

신성력으로서, 또 검술의 경지로서도 높은 경지에 이른 하일른은 러셀의 뒷모습에서 빈틈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은 성갑을 두르고 검을 장비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러셀은 갑옷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단출한 옷차림이다.

물론 저 코트가 대단한 마도구이고 방금 보았던 묵색의 대검이나 전에 구울과 싸울 때 보았던 백색 도끼도 범상치 않은 것이긴 했지만, 맨 손의 러셀을 상대로도 승산이 점쳐지지 않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다행히 이번에 저자의 실력을 조금이나마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제스, 눈을 크게 뜨고 잘 지켜보아라. 강자의 대결은 직접 싸우는 것 말고 참관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알겠습니다, 하일른님.”

***

“왜 이렇게 늦은 거냐!”

광장으로 나오자 울카가 발을 쾅쾅 굴렀다. 그럴 때마다 광장의 바닥을 이룬 돌이 내려앉았다.

주위로는 마을 사람들이 빼곡하게 광장을 둘러 싼 채 멀찍이 서 있었다. 집에 숨어있던 자들도 다 나온 것인지 무척 많았다.

러셀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반대편에 섰다.

“미안하군. 사죄의 표시로, 하나의 조건을 걸어주겠다.”

“조건?”

울카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러셀은 바닥을 둘러보다가 돌맹이 하나를 집어 둥근 원을 하나 그렸다. 러셀의 보폭으로 세 걸음 정도의 원이었다. 러셀은 원 안에 들어가 섰다.

“···지금 뭐하는 거냐?”

“난 이 원을 벗어나지 않겠다. 내가 이 원에서 벗어나게 만들면 네 승리다.”

“···뭐라고?”

울카가 어처구니없어 하며 입을 벌릴 때 러셀이 말했다.

“너 나이가 어떻게 되냐?”

“···그건 왜 묻지?”

“난 스무 살이다.”

울카는 이를 갈며 대답했다.

“···마흔 다섯이다.”

인간 나이로 치면 대략 열다섯에서 열일곱 살 정도인가. 어리진 않았지만, 다 컸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나이긴 했다.

“내가 이렇게 불리한 조건을 걸었으니 나도 원하는 것 하나쯤은 있어야 공평하겠지.”

“···뭘 요구하려고? 설마 노예-.”

러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걸 요구하진 않아. 아주 간단한 거야. 이기고 나서 말하지. 수락하겠나?”

“······.”

“이봐, 넌 가진 게 많아. 날 이기든 지든 넌 날 협곡에 데려가준다고 했지. 내가 지면 가져가는 건 월광의 축복이고. 거기다 난 이 원에서 나가면 진다는 조건까지 걸었다. 어떻게 봐도 네가 더 유리한 입장 아닌가?”

울카는 익숙하지 않은 행동, 그러니까 머리를 굴렸다. 이제껏 어머니의 품에서, 그리고 산과 숲, 계곡에서는 머리를 쓸 일이 없었다. 쓸 일이 없었고, 가진 힘으로 모든 게 해결이 됐으니까.

그래서 울카는 러셀의 물음에 별다른 반박 의견을 떠올리지 못했다. 저 남자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반경까지 제한했잖은가?

울카는 그런 행동의 이면에는 러셀의 충분한 자신감이 있으리란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오직 저 건방진 놈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리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살다 살다 지고 싶어 환장하는 놈은 처음 보는군. 네 멍청한 요구를 수락하지.”

오오오.

마을 사람들 주위로 가벼운 감탄이 떠다녔다.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 무슨 일이냐 물었고, 교회에 있었던 자들이 설명했다.

“뭐? 저 덩치 큰 놈이 울카와 싸운다고?”

“아 그러니까 저기 서 있지. 지금까지 뭐 들었어?”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울카 쟤 엄청 세잖아? 그런데 또 저 원에서 나가면 지는 걸로 한다고? 돈 거 아냐?”

“내 말이. 오늘 시체 하나 치우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 인정사정 안 봐주는데, 울카는.”

거듭 이어지는 실종으로 침체된 마을에 기묘한 흥분이 떠돌았다. 그건 오랜만에 방문한 마을의 수호자, 울카의 존재도 있었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성기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러셀 때문이기도 했다.

북부의 하늘은 정오가 가까워져도 여전히 흐렸다. 날씨는 쌀쌀해 사람들 모두 두터운 옷깃을 여며 체온을 단속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마을 광장에 서 있는 두 사람은 겨울이란 계절을 온 몸으로 부정하는 듯 했다.

울카는 옷을 입은 부위보다 노출된 부위가 더 많아 뭇 남성들의 하반신을 오므리게 만드는 차림이었고, 러셀도 코트 하나만 걸친 가벼운 차림이었다.

울카는 러셀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곳에 섰다. 그녀가 말했다.

“무기 같은 건 없나? 안 보이긴 하는데.”

“너도 맨손이잖아. 나도 똑같이 상대해야지.”

“하. 후회하지 마라.”

“안 해, 그런 거.”

강렬하면서도 진한 이목구비가 일그러지며 울카가 으르렁거렸다. 늑대 귀에 호박색 눈동자, 송곳니까지 드러내니 정말 늑대 같았다.

“아저씨?”

러셀이 고개를 돌리자 마을 사람들 틈에 에단이 놀란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옆에는 에놀드와 샐리가 서 있었다.

러셀은 손을 작게 흔들어주고는 다시 앞을 쳐다봤다.

“선공을 양보하지. 어차피 움직일 수도 없으니.”

“···하!”

울카는 코웃음을 치고는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두 다리는 옆으로 넓게 잡았고 허리와 상체를 숙인 다음 왼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오른팔은 약간 위로 치켜들었다.

맹수가 사냥감을 덮치기라도 할 듯한 진중하면서도 무거운 자세였다. 울카가 말했다.

“내 이름은 울카. 달을 신봉하는 늑대 마나가르마의 하나 뿐인 딸이며, 협곡과 숲을 수호하는 자다.”

그에 반해 러셀은 그냥 팔을 늘어트린 자세로 서 있었다. 세 걸음밖에 되지 않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자세는 그리 많지 않다. 러셀은 짧게 말했다.

“러셀. 여행자.”

울카는 그르렁거리는 낮은 울음을 흘리더니,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거리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울카의 모습이 고무줄처럼 길게 늘여진 것 같은 착시를 느꼈는데, 그녀가 워낙에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그런 것이었다.

허나 러셀의 눈에는 울카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러셀은 울카의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으로 내리치는 공격을 왼발을 축으로 하고 몸만 돌려서 간단히 피했다. 그리고 왼주먹으로 울카의 오른 옆구리를 때렸다.

퍽!

울카가 튕겨났다. 울카는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고는 다리를 아래로 했다. 발바닥이 바닥에 끌리며 치이익 하는 마찰음이 들렸다.

울카는 찰나지간에 막아낸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러셀의 주먹을 막은 왼손이었다. 그러다 꾸욱 쥐어 주먹을 쥐었다.

“···그래. 나름 한 수가 있다는 거지?”

“한 수는 무슨.”

러셀은 울카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 팔을 들어 손등을 내민 자세에서 손을 까닥였다.

“들어와라. 멍멍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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