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울카
***
나뭇잎의 맥을 타고 흐르던 이슬이 잎사귀의 끝에 맺혔다. 뒤따른 이슬들을 받아들이며 점차 부풀었다.
이슬의 세상은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하늘은 아래에 있고 대지는 위에 있다. 그리고 대지에는 한 남자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이슬을 쳐다보고 있었다. 곧 이슬이 떨어졌다.
톡.
이슬은 남자의 미간에 튕겼다.
남자는 자신의 미간에 떨어진 이슬이 두 갈래로 갈라져 눈에 스며드는 것을 막지 않았다.
“왜 피하지 않았지?”
“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반대였다면?”
“색다른 경험을 했겠지.”
러셀은 상반신을 일으켰다. 눈에 고였던 이슬이 눈물처럼 볼을 타고 흘렀다. 그는 차가운 이슬을 털어냈다.
그는 숲에 있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난 풀밭 위로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난 숲이었다. 아까의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여긴 꿈이 맞다. 꿈꾸는 자야.”
러셀이 고개를 돌리자, 숲속에서 한 마리의 하얀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는 컸다. 아주 컸다. 긴 주둥이로 러셀을 한 번에 삼켜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흰 털은 반짝이며 동시에 부드러워 보였고, 네 다리는 굳건했다. 거대하고 흰 늑대가 말했다.
“난 마나가르마라고 한다. 꿈꾸는 자야. 달의 신실한 종복이며, 또한 감시자이기도 하다.”
“러셀.”
러셀은 담담히 말하며 마저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도 눈높이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하얀 늑대는 달 같이 푸른 눈동자로 러셀을 보았다.
러셀은 주위를 둘러보다 말했다.
“오랜만이군. 이런 경험도.”
흰 늑대, 마나가르마가 눈웃음을 지었다.
“환상 공간에 들어온 것이 익숙하다는 말투구나.”
“한 달 전에 이런 곳에서 치고 박고 싸운 적이 있어서.”
“그래. 네가 가지고 있는 검이 보인다. 나힐니르. 또 마지막 서리도 보이는구나.”
“마지막 서리?”
“네가 같이 갖고 있는 도끼 말이다. 최후의 서리 거인이 남긴 숨결이 깃든 것.”
루드비히나 이스메니오스도 알려주지 않았던 도끼의 이름을 웬 늑대에게서 들었다.
“오랜 불면을 앓던 자들이 안식에 들었구나. 다행인 일이다.”
러셀이 말했다.
“날 여기에 왜 데리고 왔지?”
러셀은 로고스 마을의 에놀드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든 참이었다. 에놀드와 그의 아내, 샐리가 넘치도록 환대를 해준 다음이었다.
성기사 하일른과 제스는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여관으로 갔다. 그에게 뭔가 하고픈 말이 있던 것 같았으나, 겨울의 밤은 이르게 찾아와 다음을 기약했다.
마나가르마가 말했다.
“악마 숭배자를 만났을 테지.”
“싸우기도 했지.”
“구울은 그자의 작은 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자가 곧 일으킬 것들에 비해서도 그렇다.”
러셀은 팔짱을 꼈다.
“말해보시오.”
“악마 숭배자는 로고스를 깨우려 하고 있다.”
“로고스? 이 마을 이름인데.”
“그 이름의 원 주인이다. 수천 년 전, 달의 여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수십 개의 조각이 되어 협곡에 떨어진 악마다. 그리고 지금 악마 숭배자 하나가 그를 깨우려 하고 있다.”
러셀은 머리를 긁적이며 옆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댔다. 꿈속이지만 현실 같은 감촉이 등에 전해졌다.
“고작 악마 숭배자 하나로 악마가 깨어나나? 당신 역할은 뭔데?”
“무구한 시간의 흐름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 불신자들과 악마 숭배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신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다른 차원들은 경계를 허물며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악마는 그 시간 동안 충분한 힘을 쌓아 다시 합쳐지고 있다. 난 달의 여신이 직접 축복을 내린 신수로서 로고스를 억누르고 있었으나, 내 생명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아이는 아직 어리고, 노련하지 못해. 악마가 일어나면 죽고 말 것이다.”
이쪽도 부모인가. 아비인지 어미인지는 짐작하기 어려운 목소리라 성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러셀은 어쩐지 부드러운 말투나 태도에서 여성체의 느낌을 받았다. 그가 말했다.
“다른 성기사들도 있었을 텐데.”
“왜 너에게 왔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태양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나는 달의 일원으로서 함부로 다른 신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하려야 할 수 있겠다만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불쾌한 경험만이 남을 테지.”
그래서 날 골랐다는 거군. 러셀은 납득했다. 그럼 이제 중요한 것이 남았다.
“보상은?”
마나가르마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늑대의 표정이라 짐작하기 힘들었지만, 러셀은 그러리라 생각했다.
“···악마의 준동은 너희 인간들에게도 위험한 사건이다. 자칫하면 중북부가 악마와 마인들의 소굴로 변해버릴 수도 있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설마 맨 입으로 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물론 아니다. 나힐니르에 영구적으로 달의 축복을 담아주겠다. 월광의 룬을 새겨주도록 하지. 앞으로 지하 세계의 마물들과 싸울 때 유용할 것이다.”
그거야 어차피 그놈들하고 박 터지게 싸워야 하니 주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러셀은 그럭저럭 받아들였다. 무기 강화의 기회는 많이 찾아오는 이벤트가 아니었으니까.
“너도 싸울 때 돕나?”
러셀의 물음에 마나가르마는 고개를 저었다. 부드러운 흰색의 털이 그 움직임에 파도를 치며 흔들렸다.
“난 지금 악마를 감시하고 억누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내 덕분에 악마 숭배자도 쉽사리 로고스를 깨우지 못하고 있지. 하지만 시간문제일 뿐. 내 힘은 빠르게 흩어지고 있고, 육체의 수명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전투에 도움이 되진 못할 것이다.”
“아쉽군.”
이런 집채만 한 크기의 늑대면 여러모로 유용할 것 같았는데.
“말해둘 것이 있다. 마을에서 실종된 자들이 있지 않느냐?”
늑대의 말대로 였다. 러셀은 처음 로고스 마을에 들어섰을 때를 기억했다.
회색 하늘 아래의 어두운 분위기가 안개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집의 창문에서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고, 길을 오가는 자들은 많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자들도 바쁘게 볼 일만 마치고 돌아가고 싶다는 듯 걸음이 빨랐다.
영문을 모르고 짖는 개소리와 이따금씩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만이 마을에서 들리는 소리의 전부였다.
저녁 식사에서 에놀드의 아내, 샐리는 근 일주일 간 숲지기와 그의 아들, 그리고 사냥꾼 몇몇이 숲에서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했었다.
그 때문에 며칠 전부터 교회에서 모여 논의했으나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고도 했다.
마나가르마가 말했다.
“악마의 마력은 사특한 힘으로 사람들을 홀리고 끌어들인다. 인간들의 감정은 악마에게 더할 나위 없는 식사이자 향신료이고, 그들 삶의 유희거리이기도 하지. 일주일 후에는 이 마을 사람들의 태반이 사라질 것이고, 그 이후에는 괴물들의 소굴이 될 것이다. 악마의 보금자리가 차려지는 것이지. 악마는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고 유혹한다. 끌리지 않게 조심해라.”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악마 숭배자, 그리고 악마 로고스. 근 한 달 하고도 반 만에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있을 듯 했다.
뭉근하게 타오르던 투쟁심이 불씨를 타닥거리며 피어오를 준비를 마쳤다.
“어디로 가면 되오?”
“협곡으로. 마을 뒤쪽의 숲을 넘어 가면 절벽이 보일 것이다. 그 안쪽에 협곡이 있다.”
“듣기로 꽤 멀다고 하던데. 여기 살던 마을 사람들이 아니면 찾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숲이라 길도 없을 것이고.”
“그건 걱정마라. 길잡이를 붙여줄 것이니.”
“길잡이?”
러셀이 되물었을 때, 그는 주변의 시야가 천천히 흔들리는 것을 깨달았다. 잠에서 깨어나는 신호였다.
지평선이 무너지고 나무들이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튀어오른 나뭇잎들이 하늘을 갈망하듯이 높게 솟구쳤다.
사라지는 꿈속의 공간에서, 흰 거대 늑대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 거대한 몸체가 나뭇잎 사이로 파고들었다. 늑대는 사라지고 있으나 목소리는 여전히 크게 울렸다.
“길잡이에게 네 검을 보여주면 알 것이다. 부디 소중히 대해다오.”
러셀은 길잡이가 누군지 물으려 했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나가르마의 주문에 의해 그의 몸이 추방되고 있었다.
곧 숲과 늑대가 완전히 사라지고, 암흑이 찾아왔다.
러셀은 눈을 떴다.
***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수십, 혹은 수백 차례 소설이나 영화, 만화의 도입부에 들어갔을 문장과 연출을 떠올리며 러셀은 상반신을 일으켰다.
에놀드와 샐리, 그리고 에단의 집. 러셀은 2층의 손님용 방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잠자리는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딱딱한 땅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나았다.
러셀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바깥 공기는 차가웠다. 시리도록 상쾌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가 하얀 숨결이 되어 허공에 흩뿌려졌다.
개지 않은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다. 북부의 이상할 것 없는 하늘이었다.
아직은 마을이 깨기 이른 시간인지 길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날부터 피부에 와 닿던 알 수 없는 불길함만이 그늘 곳곳에 살얼음이 되어 응어리져 있었다.
문득 러셀은 간밤에 꾸었던 꿈과 대화를 상기했다.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코트를 들어 그 안쪽에서 나힐니르를 꺼냈다.
묵색의 대검이 손에 쥐어졌다. 검을 천천히 살피던 러셀은 곧 중간의 하얀 색 검신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것을 발견했다.
달을 뜻하는 룬 문자. 그것이 검신의 아래쪽에 새겨져 있었다. 마나가르마가 무기에 부여해준 월광의 축복이었다.
러셀은 검을 들어 이리저리 휘적거렸다. 대검은 룬 문자 하나가 추가된 것을 빼면 전과 똑같았다.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칼날은 머리카락도 배일만큼 날카롭긴 했지만 그건 원래 그렇다. 마력도 불어넣어 봤지만 대검은 잠잠했다. 러셀은 투덜거렸다.
“어떻게 쓰라는 거야?”
패시브인지 액티브인지는 말해줘야 할 거 아냐. 결국 러셀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다시 코트 안쪽에 나힐니르를 넣었다.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놀드였다. 그가 문 바깥에서 말했다.
“러셀님? 일어나셨습니까?”
“일어났소.”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내려가겠소.”
“네.”
러셀은 코트를 입었다. 당장 서늘하게 느껴졌던 공기가 멀어지며 몸이 따뜻하게 덥혀졌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온도조절 마법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러셀은 침대 아래에 둔 가방을 열었다. 알은 여전한 모습으로 들어 있었다. 껍질을 톡톡 두드리자 전보다 더 단단해진 질감이 느껴졌다.
파충류의 알은 보통 껍질이 완전히 여물면 부화가 임박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용이 파충류의 범주에 들 수 있는가가 의문이겠지만.
계단을 타고 내려오자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에놀드와 샐리가 식탁 위를 음식이 담긴 접시로 꾸미고 있었고, 에단이 식기를 놓으며 도왔다.
귀리와 콩이 들어간 죽, 삶은 오리알, 뭔지 모를 풀과 약간의 닭고기가 담긴 아침 식사였다.
에단은 러셀에게 괴물과 싸웠을 때 어땠는지, 어제 같이 들어온 성기사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건지를 묻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의 엄한 시선에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러셀은 작게 웃으면서 설명해줬다.
“···남은 구울들이 한 데 모여 커다랗게 됐지. 키는 2미터가 훌쩍 넘었고 덩치도 아주 컸어. 그때 성기사 둘이 와서 신성력을 내뿜자 놈의 피부가 지글지글 끓어올랐지. 괴물은 비명을 질렀고, 내가 놈을 상대하는 사이 성기사가 검을 들어 마무리했다. 구울은 그렇게 죽었지.”
“우와아···.”
남자 아이는 실감나는 러셀의 전투 묘사에 흠뻑 빠져들었다. 숟가락에서 덩어리 진 죽이 뚝뚝 떨어졌지만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게 풍성한 건지 아닌지 모를 식사를 거의 마쳤을 무렵, 갑자기 집 대문을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에놀드가 외쳤다.
“누구시오?”
“에놀드! 나네! 휴!”
에놀드는 걸어가 문을 열었다. 휴는 약간 작은 키에 수염이 덮수룩하고 머리는 벗겨진 남자였다. 휴가 말했다.
“어제 성기사가 둘이나 오지 않았나? 지금 교회에서 촌장님이 그분들과 이야기 중이시네. 실종자들을 찾아달라고 말이야.”
에놀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촌장님이? 영주님에게 전갈을 보낸다고 하지 않았어?”
“이 사람아, 영주님한테는 언제 가고 또 언제 오나? 지금 상황에 성기사가 두 분이나 찾아온 거 보면 모르겠어? 그분들도 뭔가 수상쩍으니 오신 게지! 식사 다 마쳤으면 교회로 오게! 나도 먼저 가 있겠네!”
휴는 그렇게 외치고는 길을 따라 달려가 버렸다. 에놀드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다가 뒤를 돌아 러셀을 바라봤다.
“가보시겠습니까?”
“그러지. 나한테도 할 말이 있다 했으니.”
교회는 마을의 중심부에 있었다. 십자가가 크게 새겨진 나무 문을 여니 안쪽에는 이미 마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었다.
그 사이에서 하얀 성갑을 두른 성기사는 눈에 확 들어왔다. 그리고 하일른도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선 러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러셀님!”
하일른이 크게 외치며 손을 들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성기사에게 보내던 호의적인 눈길과는 확연히 다른, 배타적인 눈들이었다.
아무렴 러셀의 모습은 여러모로 성기사와 비교될 만한 모습이긴 했다. 머리칼은 떡 졌고, 다듬지 않은 수염은 거칠게 자랐으며, 코트만 입은 얼어 죽기 딱 좋은 차림새였으니까.
거기다 아무런 무기도 장비하고 있지 않으니 무슨 미친놈 보는 것 같은 시선도 있었다.
러셀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사람들 사이를 해쳤다. 그를 아무리 미친 놈이라 봐도 러셀의 키와 덩치는 여기 있는 모든 남자들보다 컸다. 그래서 혈기어린 젊은이들도 함부로 덤벼들진 않았다.
하일른은 가까이 온 러셀에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간밤은 잘 주무셨습니까?”
“덕분에. 어제 나한테 말하려 했던 게 뭐지?”
“아, 그것 때문에 지금 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마을의 숲지기와 그의 아들, 그리고 사냥꾼 몇이 숲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는군요. 거기다 밤마다 이상한 괴물 울음소리도 들린다고 합니다.”
“당신네들 목적이랑 비슷해 보이는 현상이군.”
하일른은 굳은 얼굴이 되어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막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쾅 하고 문이 세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워낙에 커서 문짝이 부서지진 않았나 걱정이 들 정도였다.
두 번째로 시선들이 문을 연 자에게 모여들었다. 그 사람은 혼자였다. 그 자의 정체를 알아본 마을 사람들이 반가운 목소리를 냈다.
“울카! 어쩐 일이야?”
“볼 일이 있어서.”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온 거야?”
“그냥.”
“진작 좀 오지!”
“생각나면.”
꽤 친한 것인지 울카라는 자는 이런저런 인사를 받아주며 걸어왔다. 짧은 단답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익숙한 듯 했다.
그리고 울카가 러셀과 하일른, 제스 앞에 섰다. 울카는 키가 컸다. 170센티미터는 넘는 듯 했다.
춥지도 않은지 맨살이 노출된 부위가 많았다. 한쪽 어깨에는 사슴 가죽 털로 장식된 가죽 견갑을 착용했지만 그 외에는 야성적이라 표현해도 무방해보였다. 무기로 보이는 것도 착용하지 않았다.
제스는 울카의 어느 특정 부위를 뚫어져라 보다가 하일른의 강맹한 주먹에 정수리를 얻어맞았다. 웅크려 앉아 머리를 비비는 제스를 무시한 하일른이 말했다.
“수인 족이시군요. 저희에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아가씨?”
그의 말대로 울카의 머리에는 한 쌍의 동물 귀가 쫑긋 솟아있었다. 늑대의 귀였다. 눈은 호박색이었고, 눈동자가 작아서 삼백안이었다. 정면으로 보기에는 약간 무서운 눈이었다.
회색의 머리카락은 길어서 엉덩이까지 닿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다듬지 않은 듯 길이가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언뜻보면 고슴도치가 연상되기도 했다.
울카는 호박색의 눈동자를 번뜩이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여기 러셀이란 놈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