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구울 (2)
***
겨울의 시체는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여름이었다면 벌써 지독한 냄새를 흘리며 벌래들을 꼬여냈을 테지만, 지금은 겨울이었다. 그것도 북부에 가까워 오랫동안 이어지는 겨울.
러셀과 부자가 떠난 지 두어 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 자리에는 늑대 여럿이 맴돌고 있었다. 허나 그건 시체를 먹기 위함이 아니었다.
늑대들은 코를 킁킁 거리며 부서진 마차, 사람과 구울의 시체를 번갈아 살폈다. 마치 탐정이 탐문수사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뭉툭한 앞발로 시체를 밀거나, 얼어서 부서져 버린 구울의 조각들을 보며 늑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곧 귀를 쫑긋 세우고 길 한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재빠르게 숲 사이로 달음박질치며 사라졌다.
늑대들이 나무 사이로 사라지고 난 후, 두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하얀 말을 탄 두 사람은 모두 말처럼 흰 판금갑옷을 착용했다. 등에는 망토를 둘렀다.
금빛 태가 둘러진 판금갑옷은 한 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웠고, 흉갑 정중앙에는 빛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말의 안장에는 커다란 방패와 장검이 매여 있었다. 마찬가지로 흰 바탕에 금빛 테두리와 빛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갑옷 안쪽에 검은 후드를 착용하고 그것을 머리에 둘러쓰고 있던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마차와 시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둘 중 보다 덩치가 큰 쪽이 두툼한 장갑을 낀 손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구울의 조각을 들었다.
나머지 하나는 가지런히 정리된 시체들 앞에서 성호를 그으며 명복을 빌었다.
“제스. 이리로 와바라.”
“아, 예! 하일른님!”
제스라 불린 자가 구울 조각을 들고 있던 덩치 큰 성기사, 하일른에게 달려왔다. 하일른은 교회의 견습 성기사들에게 ‘무거운 하일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키와 덩치 또한 상당해서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할진 모르나, 그 별명의 원인은 하일른의 엄숙하고도 묵직한 목소리에 있었다
“이걸 봐라.”
제스는 하일른이 있는 곳으로 걸어 그가 내민 구울 조각을 받았다.
“구울의 시체 조각이군요.”
“다른 건?”
“아, 다른 거. 음. 딱딱하고, 얼어붙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하일른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스. 누누이 말하지만, 조금 더 시야를 넓게 가져라. 왜 구울이 여기 있으며, 어떻게 죽었고, 조각나서 얼어붙어있는지 생각해봐.”
제스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무거운 하일른’은 그 목소리답게 성격도 진지하고 진중해서 농담이나 가벼운 말투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기서 제대로 대답해야 했다. 안 그러면 이번에도 정식 성기사로 발탁되지 못하고 또 견습으로 남을지도 몰랐다.
“음. 일단 저희가 쫓고 있는 악마 숭배자, 헤로케닌이 이곳 근방에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교회가 수집한 정보도 그렇고요. 그리고 구울이 어떻게 죽은 건지는, 음.”
제스는 손바닥에 차가운 구울 조각을 든 채 주위를 빙 둘러봤다.
“총 다섯 마리고, 상대한 사람은 한 명인 것 같습니다. 말을 타고 있었고, 날카로운 날붙이로 그었네요. 그리고 이것과 똑같이 다 얼어붙어 있고···. 겨울이라 그런 것 아닐까요? 북부의 겨울은 항상 다른 곳보고 혹독하지 않습니까.”
하일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완전히 만족스런 표정은 아니었다. 그가 말했다.
“일단 헤로케닌에 대한 것과 구울들을 죽인 사람이 한 명이라는 걸 알아챈 건 잘했다. 하지만 구울은 다섯 마리가 아니였어.”
“예?”
“저길 봐라.”
하일른은 손가락을 들어 나무 사이를 가리켰다. 그곳에 마지막 구울 한 마리가 상반신이 잘려나가 죽어 있었다. 그 앞으로는 나무 세 그루가 쓰러져 있었다.
“시체에 남은 흔적을 보면 날붙이가 맞지만, 칼은 아니다. 그보다는 도끼에 가까워. 거기다 이렇게 얼어버린 건 냉기와 관련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얼린 다음 잘라서 부순 건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지만.”
“냉기 마법을 쓰고 도끼를 쓰는 마법사라···.”
제스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 짐작 가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단신으로 여섯의 구울을 참살할 수 있는 실력자라면 대단한 마법사이자 전사일 것이다.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굳이 도움이 필요할까요? 헤로케닌은 감히 교회와 맞서지 못하고 꼬리를 뺀 도망자에 불과합니다. 저희 둘만으로도 충분할 듯 싶은데요.”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지 마라, 제스. 그리고 헤로케닌은 만만한 악마숭배자가 아니야. 서너 명의 성기사와 사제들이 포위했음에도 결국 목숨을 건지고 살아나간 자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긴 했겠지만.”
하일른은 다른 구울들의 시체도 훑어보더니 마지막으로 부서진 마차와 사람들의 시체들에게 향했다.
그는 시체를 넘어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길을 쭉 살폈다. 성인으로 짐작되는 두 개의 발자국, 그리고 어린 아이의 작은 발자국. 그리고 말의 발굽 자국까지.
그 흔적들은 어느 쯤에서 한 사람의 발자국과 말의 발자국으로 바뀌었다.
“마차의 사람들은 다 죽은 게 아니야. 최소한 두 명이 살아남았다. 하나는 아이고, 하나는 보폭의 크기를 보아 남자.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일지도 모르겠군.”
제스는 하일른에게 감탄의 시선을 보냈다. 그는 아무리 살펴봐도 어지럽게 널린 것들 밖에 보이지 않는데, 하일른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들을 유추하는 걸까.
“구울을 죽인 자가 자신의 말에 두 사람을 태우고 자신은 걸어갔군. 마음씨가 좋은 자야.”
“그런 것 같네요. 보기 드물죠. 이런 사람.”
“음.”
시체와 그들이 누워있는 바닥을 보던 그는 흰 눈 위에 어지럽게 밟혀진 발자국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늑대도 왔었군.”
제스도 다가오더니 똑같이 발자국을 발견했다. 제스가 말했다.
“늑대 무리야 숲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녀석들 아닙니까. 시체들을 먹으려고 했던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도착했을 때 보여야 했겠지. 이렇게 발자국만 남기고 떠나버린 게 아니라.”
“그것도 그렇군요. 음··· 도대체 뭘까요.”
“이건 나도 잘 모르겠군. 제스, 시체들을 모아라.”
“아, 옙.”
두 성기사는 말과 사람들의 시체에 신성력으로 일으킨 하얀 불꽃을 놓았다. 하얀 불꽃은 따뜻하게 타오르며 천천히 품에 안긴 것들을 금빛의 재로 만들어 하늘로 올려보냈다.
객사한 이들의 시체를 짐승들이 함부로 뜯어먹지 못하게끔 하는 배려였다.
하일른이 후드를 벗자 제스도 후드를 벗었다.
후드를 벗자 드러난 하일른의 얼굴은 미남이었다. 금빛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 그리고 강한 이목구비를 가졌다.
제스는 흑갈색의 어두운 머리칼에 연한 눈동자, 그리고 수염이 막 자라나기 시작한 청소년의 얼굴이었다.
둘은 각자 성호를 그으며 타오르는 불꽃에 고개를 숙였다.
“부디 루테온의 전당에 들기를.”
곧 두 성기사는 다시 후드를 쓰고는 말에 올라탔다.
“그들이 이곳을 떠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끽해야 두 시간 쯤.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도 있을 거다. 이 앞에 마을이 있나?”
“예, 로고스라는 이름의 마을입니다. 근처의 협곡 이름이 로고스 협곡이라 그대로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좋아. 출발한다.”
“예!”
두 성기사는 말을 내달렸다. 바람을 맞은 망토가 요란하게 펄럭였다.
다그닥, 다그닥 힘찬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고, 그들이 떠난 자리는 다시 조용해졌다. 시체를 불태우는 하얀 불꽃만이 타닥, 타닥 소리를 냈다.
곧 시체들이 완전히 재가 되고, 바람에 업혀 하늘로 오르자 불꽃도 꺼졌다. 사라졌던 늑대들이 다시 나타났다.
늑대들은 조용히 흔적을 보다가 몸을 돌려 숲으로 달려갔다. 자신의 친구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
푸르렀던 하늘에 점차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눈이 내릴 듯 했다.
에놀드와 에단은 마차에서 나올 적부터 두툼한 옷과 망토를 둘러 여몄다. 나무와 나뭇가지 사이로 갈라져 불어오는 바람은 칼날 같이 차갑고 날카로웠다.
에단은 코와 볼이 빨개진 채 아버지의 품에서 덜덜 떨었고, 그건 에놀드도 마찬가지였다.
에단은 그들이 타고 있는 말, 크라이 앞에서 여유작작하게 걸어가는 러셀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어린 소년의 머릿속에는 지금 저 러셀이라는 이름의 아저씨가 참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무기도 없이 그 끔찍하게 무서운 괴물들을 물리친 것도 그렇고, 이 한겨울이나 다름없는 날씨에도 겨우 코트 하나 입고 걸어가는 것도 그렇다.
자신과 아빠는 얼어 죽을 지경인데 말이다. 그리고 아이는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법이다.
“안 추워요?”
“응?”
러셀이 돌아보자 코가 빨개진 에단이 코를 훌쩍이며 그를 보고 있었다.
“왜. 추워보이냐?”
“네. 코트 하나만 달랑 입고 있잖아요. 그리고 괴물들은 어떻게 죽인 거예요?”
에단은 먼젓번에 한 질문의 답도 듣지 않고 바로 다음 질문을 날렸다. 그 아이답다면 아이 다운 모습에 러셀은 웃음을 흘렸다.
“왜 웃어요?”
“아니. 그냥. 널 보니까 내 동생들이 생각나서.”
“동생이요?”
“그래.”
“나랑 비슷해요?”
“아니. 그래도 너보단 나이가 많을걸. 걔네들도 너 만할 때는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었지.”
조마조마하게 아들과 러셀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에놀드는 의외로 러셀이 잘 받아주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걸어오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아이를 불편해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러셀은 곧잘 아이의 질문을 받아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에단은 처음 했던 질문들은 곧장 잊어버린 채 마을에서 자신이 골목대장을 했다는 것, 마을 뒤쪽의 협곡에서 숨바꼭질을 하면 자신이 맨 마지막에 잡힐 정도로 날랬다는 것,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애가 둘이나 있다는 것 등등을 자랑했다.
러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단, 내가 충고 하나 하지. 치정 싸움은 위험해.”
“치정 싸움이 뭔데요?”
“사랑싸움.”
에단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요? 좋은 거 아녜요?”
“아냐, 임마. 너도 크면 알게 될 거다.”
“전 다 컸는데요!”
“나중에 진짜 크면 반대로 말하고 싶어질 걸.”
정겹게 대화를 나누던 러셀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자 크라이도 바로 멈췄고, 에놀드와 에단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러셀을 쳐다봤다. 에놀드가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저씨?”
러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예민한 감각에 뭔가가 걸려들었다. 그들의 먼 뒤쪽에서 다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귀를 기울이자 그건 무언가가 네 발로 달리는 소리였다. 육중했고, 빨랐다.
러셀은 크라이의 뒤로 걸어가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해 나무 사이를 살폈다. 시야가 순식간에 확대되고, 숲에서 여럿의 괴물들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구울들이다. 수가 꽤 많은데. 바로 이쪽으로 오고 있어.”
“예?! 어, 얼마나 되는 겁니까?”
“한 수십 마리쯤.”
에놀드가 깜짝 놀라고, 에단은 딸꾹질을 했다. 아비와 아들의 머릿속에는 바로 몇 시간 전의 끔찍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단 여섯 마리에 무장한 용병들이 죽어나갔다. 그런데 수십 마리라니?
“아, 아빠!”
“쉬이, 침착, 침착해라, 에단. 러셀 님, 어떡하면 되겠습니까?”
순간 에놀드는 러셀이 그들을 내린 후 혼자 말을 타고 가버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쨌든 러셀은 타인이고, 그들의 목숨을 챙겨줘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러셀은 그런 말을 하지도,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다.
“이제 마을이 얼마 안 남았다고 했었나?”
“예? 아, 예! 앞으로 십분 만 더 가면, 아니 빨리 달리면 오분 안에도···.”
“그럼 먼저 가. 나도 뒤따라가지.”
에놀드는 잠깐 멍해졌다가, 러셀의 말을 알아차린 후 외쳤다.
“자, 잠깐, 잠깐만요. 지금 여기 남아서 저 괴물들을 죽이겠다는 겁니까?”
“그래.”
러셀은 바로 대답했고, 그래서 에놀드는 잠깐 머뭇거렸다.
“위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물론 러셀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괴물들이 수십이나 있으면···.”
“괜찮아. 그리고 구울은 사악한 괴물이다. 죽일 수 있을 때 죽여두는 게 나아.”
그리 말한 러셀은 안장에 매달려 있던 가방을 떼서 어깨에 걸치고 크라이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먼저 가 있어라.”
크라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푸르릉 거렸다. 에단은 아까 그렇게 재잘거렸다는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러셀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러셀은 담담하게 말했다.
“둘이 여기 있으면 방해밖에 되지 않아. 크라이는 세 사람도 거뜬히 등에 지고 달릴 수 있겠지만 속도는 확연히 느려질 거야. 그럼 구울들이 바로 따라잡겠지. 저놈들의 기동성은 늑대와 맞먹어. 그럼 나 빼고 다 죽겠지. 난 걱정 말고 가.”
“아저씨.”
러셀은 자신을 부르는 에단의 머리칼을 쓱쓱 헝클어트렸다. 그리고 에놀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아들을 지켜야 하지 않냐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에놀드는 러셀의 자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며칠 전의 식당에서 자안의 남자에 대한 지나가는 소문 하나를 들은 것을 기억해냈다.
“혹시, 당신은···.”
러셀은 기다리지 않고 크라이의 엉덩이를 훌쩍 내리쳤다. 그러자 크라이가 길게 울더니 달려가기 시작했다. 에놀드는 갑자기 달려나가는 말에 놀라며 고삐를 꽉 쥘 수밖에 없었다.
에단인 아비의 품에서 고개를 내밀어 뒤를 보았다. 하얀 겨울숲, 검은 나무 사이에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은빛 문양이 새겨진 코트는 바람에 밀려 조용히 펄럭였지만 그 주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백색의 하늘과 대지의 중심에서 수직의 검은 선을 그리고 있는 러셀은 소나무처럼 꼿꼿하고 당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울들이 당도했다. 여전히 혐오스런 외관이다.
러셀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다시 도끼를 꺼냈다. 몸체와 날이 하나로 이뤄져 있는 백색의 도끼가 서리를 흩뿌렸다.
“카아악!”
제일 앞서 달리던 놈이 러셀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른팔에 달린 날카로운 갈퀴 손톱이 휘둘러졌다.
러셀의 도끼가 허공에 얼음 조각을 만들며 마주 휘둘러지고, 구울의 오른 팔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짧아진 팔에 당황한 구울의 머리가 그대로 둥실 떠올랐다. 러셀의 도끼가 다시 횡으로 그어진 것이었다.
떠오른 머리는 공중에서 얼음 덩어리가 되었고, 바닥에 떨어졌다.
파삭. 털썩.
차례대로 머리가 부서지는 소리와 어깨가 허전해진 구울이 앞으로 쓰러진 소리였다.
러셀은 아까처럼 구울들이 달려들 줄 알고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구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의 포악한 괴성과 쩍쩍 다물었다가 벌리던 네 갈래의 입도 조용히 놔둔 채로 러셀을 응시했다.
그때, 수십 의 구울들 중 하나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리고는 눈을 번들거리며 러셀을 노려봤다.
그 시선에서 이질적인 마력을 느낀 러셀은 도끼날을 아래로 하고 자루 위에 손을 턱, 올리고 말했다.
“그래, 개새끼를 죽였으면 개 주인이 나와야지.”
과연 그의 말대로 일어선 구울은 꾸득꾸득 소리를 내며 몸이 변이했다.
네 갈래로 갈라진 입은 얼굴 안쪽으로 말려들고, 역관절의 다리들은 곧게 펴지더니 두 발로 땅을 밟았다.
노파처럼 굽어있던 등도 쭉 펴지면서 상체를 세우니 러셀보다도 큰 키의 괴물이 되었다.
괴물이 옆으로 죽 찢어지는 입가를 벌렸다. 상어의 이빨 같이 날카로운 치아가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괴물은 쇳덩이를 흙바닥에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누구냐?”
“러셀.”
괴물은 황당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나?”
러셀은 씩 웃더니 도끼 자루를 어깨에 걸쳤다.
“알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죽고 죽일 사이에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