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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10화 (11/225)

10화 침공

“이번에는 서점으로 가볼까.”

전리품도 처분하고 새 무기도 얻었겠다. 빈손과 두둑해진 돈 주머니, 등에는 대검을 맨 러셀은 대장간 거리를 빠져나와 책방 골목으로 향했다.

햇님은 벌써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장간에서 있던 시간이 예상보다 길었다. 하늘은 떠다니는 구름 몇 점만 걸린 채 쾌청했다.

러셀의 곁을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냥 도시의 주민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들보다는 갑옷과 무기를 갖춘 용병들이 훨씬 많이 보였다.

아무래도 아까 필리 아줌마가 말한 것처럼 성주가 대대적으로 용병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책방 골목에는 대장간 거리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골목을 오갔다. 책방 골목이 그렇게 넓거나 한 것도 아니었기에 끝은 쉽게 짐작이 가능했다.

칼리스덴 정도 되는 도시니 서점이라도 있는 것이지, 보통은 책을 구경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일단 종이 자체가 싼 값이 아니니까.

러셀은 그나마 규모가 큰 서점 앞에 섰다. 가판대 앞에는 다양한 책들이 쌓여 있었다. 정리되어 있진 않았다. 하나하나 들여다봐야 하는 형식인 듯 했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안경을 낀 노인이 러셀을 반겼다.

“안녕하시오. 뭐 찾는 책이라도 있으시오?”

“마법과 관련된 책이 있습니까?”

“응?”

러셀의 물음에 노인이 눈썹을 찌푸렸다. 노인은 위아래로 러셀을 훑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누가 봐도 전사 같은 차림을 하고선 마법 서적을 찾다니. 심부름인게요?”

“아니오, 내가 관심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없겠습니까?”

“에잉, 그런 건 마탑이나 대학에 가야지 여기 서점에서 그런 전문 서적을 팔겠소? 여긴 동물도감이나 소설 따위를 파는 곳이란 말이오.”

러셀은 이후에도 다른 서점들을 들러봤으나 모두 같은 이야기를 했다.

혹시나 싶었던 러셀은 역시나, 라는 심정이 되어 책방 골목을 빠져나왔다. 남은 건 이제 담배를 파는 상점을 찾는 것과 상회에 들러 경매 대금을 받는 것이었다.

상회 직원이 줬던 지도를 꺼내 상점 거리를 찾으려 했을 때였다.

“잠시만.”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천천히 돌아보자 그곳엔 또 다른 흑요정이 있었다.

하루에 흑요정을 두 번이나 만나는군.

새로운 흑요정은 꽤 키가 컸다. 어림잡아도 180은 되어보였다. 그건 이제까지 러셀이 봐온 이세계의 어떤 여자보다도 큰 키였다.

알리샤의 건강한 갈색 피부와는 다른 색이었다. 진한 분홍빛 같기도, 옅은 보랏빛 같기도 한 피부는 햇볕 아래서 매끈하면서도 요사스런 붉은 빛을 흘렸다.

흰색의 긴 머리카락은 풀어둔 채 놔뒀고, 눈동자는 붉은 색이었다. 날렵하면서도 커다란 눈, 곧은 코, 피부보다 붉은 입술이 눈에 띄었다.

길게 위로 뻗은 보랏빛 귀에는 쌍으로 맞춘 동그란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요정답게 예쁘장한 얼굴은 냉막한 무표정이어서 생기 없는 인형 같았다.

질긴 검은 가죽 옷이 여성적인 곡선에 딱 맞게 들러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자켓을 입었다.

아래에는 검은색의 가죽 바지와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튼튼한 가죽 부츠가 다리와 발을 감쌌다.

허리춤에는 똑같이 검은색의 로브자락이 치렁거리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묶고 다녔던 것인지 끝은 헤지고 찢어져 뾰족뾰족했다.

가죽 부츠와 바지, 옷까지 모두 시커먼 색이고 그 피부색 마저 옅은 보랏빛이니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정령이라도 서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강자였다. 그가 잠깐이지만 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만큼.

흑요정이 말했다.

“길 좀 묻고 싶어. 내가 이 도시는 처음이라서.”

“······.”

러셀은 세 발자국 쯤 떨어져 있는 흑요정과의 거리를 쟀다. 만약 달려들 경우 무리 없이 그의 칼이 상체를 가를 수 있는 거리였다.

양쪽 허리에는 두 자루의 외날도가 비스듬한 반원을 그리며 가죽 밸트에 매달려 있었다.

삐딱하게 서 있는 자세에는 이렇다 할 틈이 보이지 않았다. 옷으로 가려져 있음에도 암사자처럼 흉포하면서도 유연한 근육이 맥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러셀은 흑요정의 손이 허리춤의 손잡이에서 움찔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이 분명했다. 러셀의 머릿속에서 미래를 보는 것처럼 현실적인 시뮬레이션이 돌려졌다.

대검을 뽑아 내려친 동시에 흑요정이 역수로 쥔 칼이 막아서고 러셀의 옆구리로 다른 칼날이 베어 들어온다. 러셀은 물러서서 막아내고, 흑요정이 달려들고, 그리고···.

상상은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펼쳐졌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건 러셀 스스로의 근육 움직임과 바로 앞의 흑요정이 긴장시킨 근육의 움직임으로 그려낸 환상이었지만 더 없이 사실적이었다.

“······후.”

문득 아직 별다른 말도 섞지 않았는데 벌서부터 상체와 하체를 나눠줄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실소가 흘렀다. 살인마 같은 생각을 다 하고. 많이 물들었어.

아마 그의 예민한 감각에 잡히지 않은 사람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 듯 했다.

러셀이 굳은 표정을 풀고 몸에 힘을 풀자 묘하게 긴장 중이던 흑요정도 슬쩍 다가왔다.

“날카로워. 깜짝 놀랐어.”

“미안. 내 감각에서 벗어난 사람은 처음이라 긴장했다.”

“그래? 나도 예의가 없었던 것 같아. 미안.”

고개를 꾸벅 숙인 흑요정이 말했다.

“방금 말했다시피 길 좀 묻고 싶어서. 여기서 대장간 거리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

대장간 거리라. 러셀은 어떤 예감이 들었다.

“여기서 멀지 않긴 한데···. 왜 굳이 날 부른 거지?”

“네가 등에 매고 있는 칼집의 문양이 내가 아는 것이거든.”

셰계수의 문양은 칼집에도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 해도 눈에 띌 만큼 큰 것도 아니었는데. 눈이 좋은 모양이었다.

“이 근처에 요정의 문양을 새기는 다른 요정 대장장이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불렀어.”

“알리샤와 아는 사인가 보군.”

흑요정의 눈이 조금 커졌다. 놀란 듯 했다.

“···그 아이가 이름을 가르쳐 줬네. 흔치 않은데.”

“무슨 관계인지 물어도 되나?”

“그 아이의 언니야.”

언니라. 자세히 생김새가 묘하게 닮았다. 특히 커다란 눈매가 비슷했다.

흑요정이 말했다.

“렉시. 보다시피 흑요정이야.”

“···러셀.”

“동생이 여기서 대장간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왔어. 안 본지 꽤 되기도 했고 잘 지내는 지 확인도 할 겸 해서. 그런데 길이 너무 복잡해. 벌써 두 시간이나 여기를 빙빙 돌고 있었어. 그 와중에 세계수의 문장을 새긴 널 발견했어. 그래서 말을 걸었어.”

“그래, 알았다.”

러셀이 지도를 들자 렉시가 반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훅, 하고 알 수 없는 향기가 났다.

“우리가 있는 곳이 여기다. 이 골목에서 왼쪽으로 튼 다음에 쭉 직진. 그러다가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간 다음···.”

그가 상세하게 길을 알려주자 렉시는 집중하면서 들었다.

“···해서 가면 대장간 거리다. 이해했나?”

“이런 대도시는 오랜만이라 그런지 계속 길을 잃기만 했어. 거기다가 길 좀 물어보려고 해도 다 슬슬 피하기만 하고. 하여튼 흰 피부만 좋아하지. 피부색차별주의자들.”

아무래도 피부색 때문에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한 듯 했는데···. 그의 알바는 아니었다.

렉시는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가르쳐줘서 고마워. 널 만나서 다행이야. 친절한 인간은 오랜만이야.”

“그래. 잘 찾아가길 바라지.”

“나중에 술이라도 한 잔 사주고 싶어. 혹시 머무는 여관이 있어?”

술이라. 좋지. 남이 사주는 술은 더욱.

“란쉬무어의 바람이라는 여관. 여관 거리에 있다.”

“알았어.”

렉시는 그를 일별하고 걸어갔다. 골목길로 들어가 사라지는 그녀를 보던 러셀도 몸을 돌렸다.

***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들으며 나온 러셀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었다. 이블린의 말대로 마탑 그림이 그려져 있는 상점에서 담배를 팔았다.

러셀은 손을 모아 마력을 이용해서 불꽃을 피워 담배에 불붙였다. 깊게 빨아들이자 이블린이 줬던 것하고는 다른 향이 폐 깊숙이 번졌다.

달큰하면서도 중독성은 적은, 안전하지만 그만큼 비싼 담배였다. 담뱃갑 1개에 은화 한 개. 담뱃갑 하나에 담배가 열 개 쯤 들어 있었고, 러셀은 종류별로 다섯 갑을 샀다. 번갈아가면서 괜찮은 담배를 골라낼 생각이었다.

유프렌 약초로 말았던 것이 일시적으로 마력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것은 오감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마약을 피운 적은 없지만 피웠다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담배 때문일까. 아니면 영문도 모른 채로 죽고 난 후 이세계에 다시 태어나서, 어찌어찌 적응 중인 지금의 삶 때문일까.

러셀은 가만히 서서 담배를 피웠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배가 다른 이복 누나. 그 무정해 보이는 검정 눈. 하지만 그 안에 가득 들어찬 욕망을 러셀은 알고 있었다. 처음 그녀를 마주하고 난 후부터 러셀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 눈동자···.

그는 피식 웃었다. 늙은 가신들. 가주는 능력 있고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지. 난 화려하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누구 부릴 만한 성격이 못 됩니다. 누나더러 하라고 하세요.

그때.

대앵-! 대앵-! 대앵-!

높게 선 탑 꼭대기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뿔나팔 소리도 들렸다.

러셀의 상식으로 미루어 볼 때 종소리는 적의 침략에 대한 경고. 뿔나팔 소리는 병력을 모으는 소집 신호였다

홀린 듯 서 있던 시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를 재촉하듯 종소리와 뿔나팔 소리는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러셀은 담배를 피우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대로에는 온갖 소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상점들은 가판대와 상품들을 안으로 들이 면서 문을 닫았고, 아이를 데리고 있는 부모들은 울기 시작한 아이들을 안거나 업으며 집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미처 들이지 못한 과일들이나 음식들, 소도구들, 그릇들이 깨지거나 버려진 상태 그대로 바닥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위를 또 다른 사람들이 짓밟으며 길은 더 더러워졌다.

하지만 혼잡했던 시장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마치 예전부터 이런 일을 겪어왔던 것 마냥. 어쩔 수 없이 흘리는 것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소중한 재산은 꼭 안은 채 골목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성에서 왔을 기사들과 병사들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중무장을 한 투구를 쓴 기사들과 도끼 창을 든 젊은 병사들.

그때 러셀의 앞에 한 여급이 보였다. 란쉬무어의 바람이라는 산뜻한 이름의, 그가 머무는 여관에서 일하는 여급. 아침에 들었던 이름이 뭐였더라···. 그래. 샤샤.

“어어, 어어어.”

샤샤는 밀과 곡물이 든 포대를 들고 낑낑거리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에 두 포대를 드는 건 아무리 봐도 무리였다. 지금만 봐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빠르게 길을 오가던 누군가가 그녀를 툭 치자,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균형이 무너지며 뒤로 넘어져갔다. 샤샤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 응?”

샤샤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뒤로 넘어가려던 자신을 받쳐준 상대를 쳐다봤다.

정오에 떠 있는 태양 때문에 역광이 비춰 얼굴이 검게 물든 남자. 어둠 속에서 입에 물린 담배의 불빛과 보랏빛의 아름다운 눈이 보였다.

그녀는 그 아름다운 눈을 가진 남자를 한 명 알고 있었다. 바로 오늘 아침에도 식사를 차려주며 훔쳐봤던 얼굴의 남자.

“러셀님?”

“내 이름 맞아.”

러셀은 그녀의 등을 받치던 팔에 힘을 주며 샤샤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두 개의 포대를 모두 들어올렸다.

“어어, 안 그러셔도 돼요. 제가 할 수 있어요.”

“됐습니다. 빨리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네에. ···고맙습니다.”

러셀은 긴 다리를 성큼성큼 뻗으며 걸어나갔다. 그 옆을 샤샤가 다급히 따랐다. 그녀는 러셀의 옆 얼굴을 힐끔거리다가 러셀의 말을 한 박자 늦게 들었다.

“···에? 예? 뭐, 뭐라고 하셨어요?”

“이게 무슨 일인지 아냐고 물었습니다.”

“아, 아. 제가 얼핏 듣기로, 서문 쪽으로 괴물들이 다가오고 있다고···, 들은 것 같아요. 저, 그리고 말 놓으셔도 돼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걸었다. 괴물들이라. 도적단 놈들이 그냥 도적단이 아닌가 보군.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그들은 어느새 여관 거리에 들어섰다.

그때 그들의 옆을 지나가며 병사들을 이끌던 지휘관 하나가 그를 가리키며 외쳤다.

“너! 용병이냐!”

러셀은 두 개의 포대를 한쪽 어깨에 얹은 자세 그대로 손가락질을 하는 지휘관을 가만히 쳐다봤다.

비늘 같은 철편을 이어붙인 갑옷, T자로 파여 눈과 코, 입술 약간이 드러난 투구. 허리춤에 매인 장검이 보였다.

뒤의 병사들은 누비와 군데군데 사슬을 덧댄 갑옷을 입고 도끼 창을 들고 있었다.

러셀을 올려다보는 시선들은 어쩐지 맹했다. 아마 지금 자신이 뭘 입고 어디 서 있는지도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샤샤는 덜덜 떨면서 러셀의 뒤에 서서 지휘관과 병사들, 러셀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렇다만.”

“그렇다면 성주님의 명령에 따라 동원에 응하라! 지금 용병들은 모두 서쪽 문으로 향하고 있다!”

“···응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되지?”

차창!

지휘관이 검을 뽑아들었다. 샤샤가 비명을 질렀다.

“감히 프레드릭 성주님의 명을 받들지 않겠다는 것이냐!”

그가 검을 뽑자 뒤의 병사들도 창을 겨눴다. 하지만 그 끝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불복하면 감옥에 갇힐 것이다! 그리고 전투 이후 죄목을 물어 사형에 처하게 해주지!”

이거 참.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이것들만 안에 놓고 가지.”

“뒤의 작부년은 손이 없나, 다리가 없나! 알아서 들고 가라고 해! 어서···, 윽?”

호통을 치며 검을 내리칠 듯 가까이 다가오던 지휘관은 갑자기 몸이 굳었다.

러셀의 자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시에 지휘관의 귀에 삐- 하는 이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근육이 감전이라도 당한 듯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크, 어, 어억···?”

주위의 배경이 순식간에 멀어지더니 바로 앞에 놓인 러셀의 모습이 거인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자가 삽시간에 지휘관의 전면을 덮었다.

샤샤와 병사들은 갑자기 부들부들 떨면서 침을 흘리는 지휘관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는 간질 환자처럼 몸을 떨었고 눈은 게게 풀려 있었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은 정면이 아니라 위를 향하고 있었고 눈꺼풀을 닫지 못해 메말라진 각막 위로 눈물이 차올랐다.

물끄러미 그를 보던 러셀은 곧 눈에서 마력을 거뒀다.

“헉! 허억! 흐악!”

그러자 지휘관은 주박에 걸려 있다가 풀린 듯 격한 숨을 내쉬면서 눈물을 후두둑 흘렸다. 이를 악문 신음이 흘렀다.

“이, 이···! 무슨 마술을···!”

마술은 무슨. 러셀은 조용하게 말했다.

“포대만 여관에 놓고, 바로 가지.”

그의 여상스러운 태도에 떨던 지휘관은 분노와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보다가 억지로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병사들을 이끌고 길 너머로 사라졌다.

러셀은 거의 다 피운 담배를 끝까지 빨아들인 다음 툭 튕겼다. 담배꽁초는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흩어진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샤샤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멀어지는 병사들과 러셀을 쳐다봤다. 그는 아랑곳 않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부엌에 놓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반말 하셔도 돼요.”

“그래? 알았어.”

그는 곡물 포대를 부엌 한 켠에 내려놓았다. 주인장은 다른 볼 일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 쪽에 새로 나놓은 식재료들이 보였다. 좋군. 이번에는 좀 채소를 먹었으면 했는데.

“돌아오면 맛있는 저녁을 기대해도 되나?”

“예? 아, 예! 그럼요! 다치지 말고, 성히 돌아오세요!”

샤샤는 문득 방금 한 말이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 남편을 배웅하는 것 같다고 느껴 얼굴을 확 붉혔다. 러셀은 별 말 없이 벨트를 고쳐 매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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