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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7화 (8/225)

7화 도시 칼리스덴

***

“저기, 아까 그거 어떻게 한 거야?”

덜컹거리는 마차 안. 러셀은 부상자들을 싣던 곳에 누워 있었다. 원래 자리하고 있던 자들은 모두 말에 타거나 밖에서 걷고 있었다. 트롤을 물리친 러셀에 대한 그들의 존중과 배려였다.

혹은 인간 같지 않은 그를 두려워했거나.

그들은 나주렉이라는 이름의 트롤을 물리치고 고개를 넘었다. 산 채로 사로잡지는 못했지만 거의 온전한 상태의 트롤 시체를 얻은 상인들은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더 늦기 전에 칼리스덴 시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뭐가.”

“아까 그거 말이야.”

“아까 그거라고 하면 내가 아냐? 그리고 담배 없어? 한 대 피고 싶은 기분인데.”

“저번에 너 다 줬잖아! 그게 마지막으로 남은 거였거든! 지가 가져가 놓고!”

“이블린님. 러셀님은 부상 중이십니다.”

옆에 앉아 러셀을 돌보던 엘레노아가 말했다. 그녀는 금발을 늘어트린 채 손바닥으로 성력을 내뿜고 있었다.

“윽···, 미안.”

이블린이 사과했다. 엘레노아는 황금빛이 넘실거리는 손바닥으로 러셀의 전신을 훑었다. 다친 부위가 아니라 발끝부터 시작해서 정강이, 허벅지, 골반, 복부, 가슴 순으로 천천히 넘어왔다.

손으로 직접 만지지도 않는데 어째선지 촉감이 느껴지는 듯한 감촉에 러셀이 엘레노아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눈을 감은 얼굴 그대로 집중하고 있었다.

곧 빛나는 손이 왼팔과 오른손에 닿자 조금씩 그 부기가 줄어들었다. 곧 그의 손과 팔이 다치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메슥거렸던 속도 가라앉았다.

러셀은 가만히 손을 쥐었다 펴보거나 팔을 들어 돌려봤다. 부담 없이 움직였다.

엘레노아가 담담히 말했다.

“뼈가 부러졌었어요. 당분간 크게 힘을 주면 안 돼요. 특히 러셀님은 더더욱.”

“왜?”

“근육이 많으시니까요. 방금 살펴보니 전신에 근육이 꽉 차 계시더군요.”

성력으로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러셀이 생각하는 사이 엘레노아가 말을 이었다.

“러셀님의 근육은 경이로운 근질을 갖고 있습니다. 절대 인간 수준이 아닙니다. 마치 아인종, 그것도 드래코니안이나 칼디르족에 가깝습니다. 그만큼 뼈도 무척 단단하고요. 트롤과 정면으로 주먹을 부딪쳤음에도 부러진 것에 그친 건 순전히 러셀님의 육체가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흠. 아인종에 비견될 정도라고? 워낙 어릴 적부터 날랬던 몸이라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가 드래코니안이나 다른 수인들을 만난 것도 아니었으니 비교 대상이 마땅치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하지만 지금은 부러진 상태를 봉합한 상태입니다. 완전히 붙지 않은 상태에서 힘을 내면 근육이 부풀면서 뼈를 밀어낼 거고, 그럼 다시 부러질 겁니다.”

“당분간이라면 얼마나?”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이주일 이상 정양해야 해요. 하지만···.”

“난 다르지.”

“네. 마력을 다루시니까요.”

마력을 다루는 마법사나 마투술사나 유파에 따라 고유한 치유술이 있다. 마법사야 힐이나 큐어 같은 치유 마법도 있고, 마투술사는 내부의 생채력을 강화시켜 치유 속도를 빠르게 하는 비술 등등이 있었다. 엘레노아는 그걸 감안해 말한 것이다.

엘레노아가 말했다.

“나이에 비해 가진 마력의 크기 또한 상당하시더군요. 성력의 섣부른 남용은 당신의 마력과 충돌할 수 있어 뼈의 봉합에만 신경 썼습니다. 그래도 사흘에서 나흘 정도는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주의하지.”

“그럼 잠시.”

“응?”

엘레노아는 다시 손을 들어 러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목부터 시작해서 턱과 볼, 코, 눈두덩과 이마를 세심히 훑는다.

“얼굴은 안 다친 것 같은데.”

“이마에 작은 상처가 있습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그랬나? 러셀은 고개를 갸웃했다가 가만히 있었다. 사실 기분이 괜찮긴 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미인의 손길을 받을 수 있겠는가.

“으음···.”

지켜보던 이블린이 뜻 모를 침음을 흘렸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이쯤이면 괜찮지 않나 싶을 때 쯤 엘레노아가 손을 떼고 물러났다. 어째 금이 갔던 왼팔이나 오른손보다 더 오래 있었던 것 같다.

“됐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하루는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알았어. 고마워.”

러셀이 감사인사를 하자 엘레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저희가 인사를 해야 할 입장입니다. 거두어주세요.”

아무래도 더 대화를 하다간 나흘 전 우룩크와 싸웠을 때와 똑같은 양상으로 대화가 흘러갈 것 같아 러셀은 미소만 지었다.

그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하며 참고 있던 이블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력 간섭이었어.”

“어?”

그 다짜고짜 내지른 선언에 러셀이 의문성을 냈다.

“아까 네가 트롤이 내뿜은 화염을 흩어지게 한 거 말야. 마력 간섭이라고.”

“마력 간섭···.”

이블린의 말을 못 알아들은 건 아니었다. 트롤이 마치 용처럼 불을 모아 뿜어낸 공격을 러셀이 손끝 하나로 막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녹색 눈은 반짝거리고 콧김을 훙훙 뿜었다.

“마력 간섭, 마법 파훼, 주문 역산, 뭐로 말하든 결과는 비슷하거나 같지. 현상을 무위로 돌리는 것. 넌 아까 그걸 했던 거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네 무술에 그런 묘리가 숨겨져 있나? 아니면 누구한테 배운 거야?”

“딱히 배운 건 아니야. 그냥 마법이 일어나는 과정을 반대로 펼친 거지.”

“내 말이 그 말이야. 요점은, 그건 정말 어렵다는 거고. 수준 높은 마법사들이나 서로가 내뱉은 주문의 요결을 파악하고 역산, 파훼하면서 자신의 주문을 완성시키는 수법으로 싸울 수 있지. 하지만 넌 마법사가 아니잖아?”

“흠.”

러셀은 말없이 검지를 세웠다.

“파이어.”

화륵.

검지 위로 불꽃이 타올랐다. 이블린이 러셀의 손가락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엘레노아는 푸른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이블린이 말했다.

“···어떻게?”

“나흘 전에 네가 보여준 불덩이를 보고 나름대로 연구했지.”

“연구를··· 했다고? 어떻게?”

“잠들기 전에 계속 생각했지. 그러더니 되더군.”

그 태평한 러셀의 말에 이블린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지금의 인류는 마법 문명을 이룩하고도 남을 것이다. 거기다 주문 한 줄, 시약 하나를 얻기 위해 구르는 수련생들이나 문하생들, 학생들도 없을 것이다. 이블린이 빼액 말했다.

“그게 말이 돼?”

“안 될 건 또 뭐야?”

러셀은 검지 위의 불곷을 퉁기더니 곧 손가락 끝과 끝, 사이 사이로 능숙하게 불꽃을 다뤘다. 그 경이로운 마력 조작 능력에 이블린은 절로 입이 벌어졌다.

“아니, 그게, 허어···.”

바보 같은 감탄사를 내뱉던 이블린은 약간 고개를 숙였다. 마차 천장에 달린 호롱불 밖에 광원이 없었기에 그녀의 얼굴은 드리워진 머리카락 아래로 금세 어두워졌다. 그 아래서 그녀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아련하게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원소 마법이 특정한 매개체 없이 순수한 의념으로 발현이 가능하긴 해. 하지만 그걸 룬어나 주문, 수인도 모르는 채로 그저 의지와 마력만으로 구현된다는 건 특수한 혈통이나 마력기관 없이는 불가능할 텐데. 가설을 바탕으로 마탑과 대학이 연구에 돌입한 지 어언 천 년이 지났지만 아직 인간의 육체가 마력을 바탕으로 마법을 이루기 위해선 독자적으로 마나 홀을 만들거나 서클을 이루는 방식 외에는···.”

저러다 쓰러지겠군. 멀뚱하니 러셀과 엘레노아가 이블린을 구경했다. 그러다 그녀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블린의 녹색 눈이 러셀의 자안을 직시했다.

“보라색 눈···.”

“응?”

“···아니야.”

대화가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이블린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고, 러셀은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그보다는 체내의 마력을 순환시켜 부상을 회복시켰다.

가만히 눈을 감고 감각을 하나씩 거두니 바깥의 소음이 점차 멀어졌다. 그의 의식은 곧 왼팔과 오른손에 닿았다. 부러졌던 뼈는 성력의 작용으로 잘 붙어 있었다.

러셀은 마력을 운용해 본연의 치유력을 더 강화, 가속시켰다. 마력이 뼈와 근육에 스며들며 이전보다 더 단단해지고 질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엘레노아는 사흘에서 나흘은 휴식해야 한다고 했지만, 러셀의 생각으로 이틀이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충분해 보였다.

가만히 있던 엘레노아가 입을 열었다.

“러셀님.”

“응?”

“칼리스덴에는 무슨 용무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별 거 없는데. 그냥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큰 도시니까. 마침 전 마을에서 이곳으로 간다는 상행 호위 의뢰를 받은 것도 있고.”

“그럼 소문이나 전설에 이끌려 찾아가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무슨 소문이 있나?”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다만 도시 바깥으로 소란스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군요.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흠.”

러셀은 갑자기 왜 이 금발의 성직자가 이런 말을 하는지 짐작 가지 않았다. 같이 다니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헤어질 때가 되니 갑자기 센티해지기라도 하셨나.

“당신에게는 많은 시선이 닿아 있습니다. 저의 주께서도 당신을 지켜보시고요.”

“그래? 뭐라 하시던?”

“···신께서는 함부로 말씀을 전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봄으로 그 의미를 깨닫게 하고자 하시지요.”

“눈빛만 보고 알아채야 한다니,

“신들의 시선이 닿은 자는 모두 인세의 고난을 짊어지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만약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어, 그래.”

그러고는 엘레노아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다. 뭐야? 선교라도 할 줄 알았더니. 그냥 이렇게 말을 끝내네.

그렇게 생각에 잠긴 마녀, 눈을 감은 성직자, 마차 천장을 올려다보며 드러누운 전사를 태운 마차는 계속해서 길을 따라갔다. 그 뒤로 푸른 달이 뒤 쫒았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가 나타났다. 도시를 둘러싸 있는 커다란 강이 먼저 눈에 띄었고, 강 주위로는 허리보다 낮게 자란 풀들이 가득한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칼리스덴. 북동부의 무역 도시이자 관문으로서의 역할도 겸한 큰 도시였다.

도시를 둘러싼 외성은 커다란 돌로 빈틈없이 쌓여져 있었고, 그 높이도 상당했다. 듣기로는 오래전 고대에도 존재했던 도시의 터를 닦아서 그대로 쓰고 있다고 했던가. 사실 지금 인류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대도시들은 고대의 유산들을 이어받은 경우가 많았다.

트롤을 물리친 이후 별다른 습격은 없었다. 도시의 모습에 상인들은 환호를 올렸고 용병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상행 호위는 유난히 힘들었어.”

“내 말이. 뭐 주워먹을 게 있다고 괴물들이 그렇게 난리였는지.”

러샐은 마차에서 내렸다. 거의 도착했기에 속도는 경보 수준으로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엘레노아가 말했다.

“더 누워계셔도 되는데요.”

“온몸이 근질거려서 안 되겠어. 치료도 다 됐잖아?”

러셀이 어깨를 빙빙 돌리자 엘레노아도 더 말을 꺼내진 않았다. 러셀은 마차 옆을 걸으며 도시를 살폈다.

밤이 늦었음에도 외성 바깥으로는 도시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 이어져 있었다. 성벽 위로 솟은 초소와 횃불 덕에 어둡지 않았고, 도시 안쪽에서 새어나오는 빛도 근방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흠, 이 시간대에 저렇게 줄이 길다니. 다른 관문들도 있을 텐데.”

상인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행히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챙이 좁은 투구를 쓰고 도끼 창을 든 경비병들은 신분만 검증되면 바로 들여보냈다.

경비병들은 트롤 시체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제지하지는 않았다. 러셀이 호위하는 상행은 무리 없이 통과했다.

도시는 밤이었음에도 시끌시끌했다. 추위에 강한 참나무로 지어진 낮고 높은 건물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고, 그 벽마다 횃대에 걸린 횃불이 타오르며 주변을 밝혔다.

북동부 최대의 도시답게 인간 말고도 다양한 종족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짤막한 다리로 어딘가로 바삐 걸어가는 난쟁이, 맹수의 얼굴과 사람의 몸을 지닌 수인들. 요정은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데.

그밖에도 어째서인지 무장한 병력들이 길거리를 많이 오갔다.

“세상에, 저것 좀 봐.”

“트롤이잖아? 뭐 저렇게 커?”

“거의 온전한 모습의 트롤 시체라니, 신기한데.”

러셀의 상행은 많은 시선을 받았다. 당연히 행렬의 중간쯤에서 짐마차에 싣고 있는 거대한 트롤 시체 덕분이었다. 축 늘어진 사지를 아무렇게나 늘어트리고 목이 반쯤 돌아가 있는 트롤 시체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또 러셀 자체도 많은 시선의 대상이었다. 아무래도 그만한 키를 가진 인간은 보기 힘든 것이었으니까. 수인들에 필적하는 키와 덩치를 가지고 용모도 수려한 러셀이었기에 뭇 아가씨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자연스레 양옆으로 길이 트여졌고, 사람들은 감탄의 시선으로 용병과 트롤 시체를 쳐다봤다. 남자 아이 몇몇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서 트롤의 손이나 발을 만졌다가 도망치기를 반복하다가 어머니에게 호되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상인들은 제가 해치운 것도 아니면서 코를 높게 들고 어깨를 으쓱였고, 용병들은 킥킥 거리면서도 시민들의 시선을 즐겼다.

곧 상회에 도착하면서 임무는 끝났다.

용병들은 의뢰 완수서와 보수금을 받고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몇몇은 여관 거리가 있는 쪽이었고, 그 외 대다수는 으슥한 뒷골목이나 유흥가로 걸어갔다. 그들은 모두 가기 전에 러셀에게 인사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떠났다.

마차에 얻어 탔던 다른 이들도 인사하며 멀어졌다. 러셀은 다프네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잘 가라.”

“고마웠어요, 오빠!”

저게. 러셀은 피식 웃었다.

마지막에서야 오빠라고 불러준 소녀를 향해 손을 흔들자 옆의 부모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곧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도노반이 다가와 러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러셀님. 러셀님 덕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별말씀을.”

도노반은 러셀에게 묵직한 돈주머니와 인장이 찍힌 증서를 건넸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처음 제시했던 호위 대금보다 배는 많은 은화가 들어 있었다.

그 다음 증서를 읽어보니 호위 임무에 대한 임무 완수와 추가적인 보상들이 적혀 있었다. 우룩크나 다른 괴물들의 습격을 막아낸 것, 트롤을 물리친 것 등등이었다. 다른 괴물들 처치에는 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아마 보상을 완료했다는 표시 같았다. 트롤 처치에만 줄이 그어져 있지 않았다.

“트롤 시체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잘 모르겠군요. 무슨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그럼요. 이렇게 온건한 상태의 트롤 시체는 드뭅니다. 아마 마법사들이 눈에 불을 켤 테지요. 괜찮으시면 저희가 경매에 내놓고 팔고 싶습니다.”

“경매?”

“네. 마침 내일이 경매가 돌아오는 날입니다. 운 좋으신 겁니다, 여차하면 그냥 파는 것보다 더 큰 돈을 버실 테니까요.”

“그럼 그렇게 하지요. 수수료는 없습니까?”

“수수료는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러셀님 없었으면 잡지도 못 했을 괴물 아닙니까. 또 길을 되돌아서 빙 돌아왔어야 했을 테니까요.”

상인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수수료를 제한다고 해도 트롤이다 보니 상회에 떨어지는 돈도 만만찮기 때문이겠지. 러셀이 물었다.

“알겠습니다. 돈은 언제 받으러 오면 되겠습니까?”

“내일 저녁에 상회에 오시면 되겠습니다. 아, 우룩크에게서 얻은 갑옷이나 무기들도 저희가 맡아두겠습니다.”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머지 상인들과도 인사했다. 도미닉, 도슨이 차례로 와서 손을 흔들었다.

“고마웠다네, 젊은이. 그 용력이 부럽구만.”

“감사했습니다, 러셀님. 다음에 또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남아있던 사람은 엘레노아와 이블린이었다. 엘레노아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덕분에 안전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나도 치료해줘서 고마웠다. 잘 가.”

그러자 엘레노아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무표정했던 얼굴에 웃음이 지어지자 주변이 화사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남정네들 시선이 대번에 그녀로 모일 정도였다.

“그럼.”

인사를 건넨 엘레노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소를 지웠다. 그리고 몸을 돌려 저편으로 사라졌다. 허, 참. 이쁜데. 자주 좀 웃고 다니지.

성직자가 사제복을 펄럭이며 길가로 사라지고, 이블린이 쭈뼛거리면서 인사했다.

“큼, 나도 뭐, 덕분에 잘 도착했어.”

“그래. 나도 네 마법 잘 봤다.”

“···혹시 같이 다닐 생각 없어?”

“너랑?”

“응.”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혼자 다니고 싶군. 다음에 보자고.”

“휴. 그래.”

“아, 잠깐만.”

“어! 왜?!”

러셀의 부름에 이블린이 재빨리 돌아섰다. 그 환한 표정에 서린 기대감이 보였지만, 러셀은 피식 웃고 말을 이었다.

“담배 괜찮던데, 그거 어디서 사냐?”

“···상점 거리에 가서 찾아봐. 간판에 마탑 표시 박혀있는 걸로. 거기서 아마 팔 거야.”

“고맙다. 잘 가.”

“···흥!”

이블린이 쿵쾅거리면서 걸어가고 러셀은 킬킬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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