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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의 마안기사-0화 (프롤로그) (1/225)

0. 프롤로그

***

나는 태생적으로 약한 몸을 타고 났다.

천식, 비염, 아토피 등 살면서 자살을 바라게 만드는 지병들.

그래도 충실히 살았다.

노동은 못해도 머리는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명문대 졸업장으로 기업 문을 두드려도 면접에서 줄줄이 탈락했다.

결국은 어릴 적의 취미를 되살려 글로 벌어먹었다.

집과 카페를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면서 버킷 리스트를 몇 개 세웠다.

그 중 하나가 세계여행이었다. 죽기 전에는 꼭 하고 죽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그거다. 그거.

그런데 어느 날 심상치 않은 증상에 병원을 찾았더니,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남은 생은 기껏해야 6개월.

언젠가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빌어먹을.

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부모, 애인, 친구. 없다.

나는 남은 돈을 전부 기부하고 남은 돈으로는 혼자 게임을 했다. 손가락과 눈은 움직일 수 있으니까. 내가 고르는 건 언제나 근육질의 남캐다.

호리호리한 총잡이도, 가는 마법사도, 유연한 도적도 필요없다. 오직 근육 빵빵한 전사. 두 주먹과 대검으로 괴물들을 쳐 죽이는 전사!

그렇게 수 십 개의 RPG, 로그라이크, 다크소울 같은 게임에서 스토리와 캠페인 모드를 마치고, 만렙을 찍고, 현질을 하며 내 가상 캐릭터를 찬란하게 만들었다.

고가의 갑주와 무기를 착용하며 번쩍번쩍 빛나는 내 근육남캐좋아(내 캐릭터 아이디는 어떤 게임이든 이로 통일되어 있다)와 반비례 하듯이 내 몸은 점점 더 야위어져만 갔다.

거울로 비춰본 내 꼴은 처참했다. 비쩍 말라 갈비뼈가 다 드러나는 상체, 볼살 하나 없는 해골 같은 얼굴, 기아 같이 가느다래진 팔다리. 이제 물 컵 하나조차 들기 힘들다. 그나마 남은 수명을 늘리는 약은 너무 독해 하루에도 수십 번을 토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집을 청소했다.

내 시체를 처리하러 와주는 분들에게 실례니까. 봉투에 돈도 넣었다. 든든하게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시라고.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을 내 빈소. 이제 와서 조금 후회가 든다. 약한 몸으로도 얼마든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을 텐데.

애인은···. 시발.

눈이 감긴다. 안 그래도 무거웠던 팔다리가 물 먹은 솜같이 늘어지는 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이 괴물만 죽이고 가고 싶은데.

검지가 힘겹게 마우스 커서를 누른다. 거의 끝까지 닳았던 보스의 체력 바가 검게 물들더니 YOU WIN! 문구가 떠올랐다. 근육남캐좋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양 팔을 번쩍번쩍 든다. 승리 세레모니다.

그래, 너라도 승리해야지.

난 패배했다.

쿨럭, 쿨럭.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때, 이게 글로만 보던 회광반조인가. 축 늘어졌던 팔다리에 힘이 샘솟았다. 본능적으로 이게 몇 분도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힘겹게 컴퓨터를 끄고 전등을 켰다. 내가 산 수의를 입고 미리 비닐을 씌워둔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이 얼마나 친절한가. 내 시체 방수포도 준비해주고. 특수청소 업체 분들도 울어주지 않을까.

관에 들어가는 흡혈귀 마냥 양손을 배꼽 위에 얹어 나란히 포갰다. 좁은 방을 밝히는 천장에 달린 전등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이 세상에 남길, 내 마지막 말이 한숨과 함께 내뱉어졌다.

“시발, 총각귀신으로 떠돌긴 싫은데.”

이왕이면 이세계에서 존나 튼튼한 몸으로 환생이라고 했으면.

그리고 내 꿈은 이루어졌다.

괴물과 악귀나 날뛰는 이세계에서 뼈대 좋은 가문의 자제로 태어난 것이다. 재능도 충만하고 몸도 끝내주고, 다 좋았다. 다 좋은데, 딱 하나.

“이거 눈깔 어떻게 안 되냐.”

거울 속에 비춰지는 불길한 보랏빛 눈.

동화 속에서는 흔히 악마, 마왕의 눈으로 불리는 자안.

난 마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가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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