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욱은 아나스타시아와 입을 맞추는 한편 그녀의 옷을 벗기면서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면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흔해빠진 애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새겨진 마법진부터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그녀의 몸에는 수없이 많은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꽃도 있고, 나비도 있고, 심지어 용 문신도 있었다. 하지만 영욱은 그것이 단순한 타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녀가 언급했던 마법진들이었다.
흔히들 문신이 조폭의 상징이라고들 알고 있다. 특히 호랑이 문신이나 용 문신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걸로도 유명하다. 사실 그것은 상징성만이 아니라 그것이 마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는 자가 용 문신을 하면 오히려 몸에 해롭다는 게 그 바닥의 정설이다.
몸에 새겨진 문신은 문신의 주인이 감당할 수만 있다면 아주 강한 힘을 제공하거나 끝없는 지구력을 제공하거나 본인의 힘보다 서너 배는 더 강한 마법을 일시적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조폭의 몸에 새겨진 문신만 봐도 간이 오그라드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상대가 호랑이에 가까운 맹수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나스타시아의 몸에 새겨진 마법진들 역시 그녀가 조용한 바벨탑을 운영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일 공산이 컸다. 그리고 개인적인 무력을 증진시키거나 상대의 기운을 빼앗는데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욱은 자신의 동정童貞을 희생하면서 트랜스파워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이제는 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주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사실상 자랑이 아니고 멍에에 가깝던 숫총각 딱지를 떼는 대가는 아주 컸다.
기운의 교환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아나스타시아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녀는 영욱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고 그저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교환 과정도 그렇지만 영욱이 전해준 기운은 그녀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영욱 역시 이 새로운 경험에 가슴이 터져나가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아나스타시아가 가진 기운은 수천 만 종류나 되었기 때문이다. 기운의 종류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영욱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되니까 '심봤다'를 외치는 것으로도 도저히 해갈될 수 없는 환희를 느꼈다.
기운의 교환 작업은 아주 느리고 끈질기게 이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교환하는 기운의 양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러큐비로 불리는 아나스타시아가 운영하고 있는 조용한 바벨탑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 방대하기 때문이다.
영욱 역시 둘큐비로부터 빼앗은 기운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니 이 빅딜 작업이 순식간에 끝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길고 길었던 교환 작업이 끝나고 둘은 다시 둘이 되어야 했다.
-정말 좋아요.
-처음치고는 괜찮은 편이었죠? 하하!
-그게 아니라 기운의 품질이 정말 좋다는 말이었어요. 호호!
-쩝! 그 말이었군요. 아나스타시아가 가진 기운도 아주 다양해서 저도 무척이나 좋습니다.
-우리, 앞으로도 자주 이런 시간을 가지도록 해요.
-애프터 신청은 제가 하려고 했는데 한 발 늦었군요. 그런데 저야 좋지만 이미 숫총각과 숫처녀가 아닌데 이런 효과가 있을까요?
꼭 숫처녀와 숫총각만이 이런 교환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교환할 것이 서로 간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보다는 못하겠지만 영욱 씨께서는 부단히 노력하시는 분이시니 또다시 교환할 수 있는 기운이 생기지 않겠어요? 저도 새로운 기운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거고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면 굳이 금욕禁慾 생활을 할 이유가 없겠지요. 하하!
-이제 진정한 시니어의 반열에 오르신 걸 축하해요.
-저는 영원한 프레시맨입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거든요.
영욱도 자신이 시니어가 된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니어라는 말에는 늙은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나이 먹는 게 두려운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시니어가 정점이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은 퇴보만 있으니까요.
-이렇게 좋은 것을 제가 왜 여태까지 미뤘는지 아세요?
-왜죠?
-그야 아나스타시아를 만나기 위함이었죠. 하하!
영욱은 아나스타시아와의 포옹을 풀지 않은 채로 립 서비스를 이어나갔다. 현란할 정도는 아니지만 처음치고는 제법이었다.
-호호호! 아부도 잘 하시는군요. 하지만 저도 좋아요.
-아쉽지만 이제는 이별해야 할 시간이군요.
-시작이 있으면 항상 끝이 있는 법이지요. 또 놀러 와도 되겠죠?
-당연하지요. 잘 가요. 내 사랑!
-네. 허니!
기운의 교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나스타시아는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잃은 것은 고작 순결 하나뿐인데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으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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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여서 둘의 관계를 훔쳐보고 있던 둘큐비가 나타나더니 따지기 시작했다.
-그녀와 관계를 가지다니 미친 거 아닙니까?
-왜? 부럽냐?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몰라서 그래요?
-몰라. 어떤 존재인데?
-남자의 정혈을 흡수해서 말라죽게 만드는 색녀라고요. 색녀신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그런데도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멀쩡해진 영욱이기에 둘큐비는 그게 더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처녀던데 어떻게 색녀신이라는 거야? 그런 것도 가능해?
-남자의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그녀의 몸은 당연히 처녀겠죠.
-아무튼 몸은 처녀 맞잖아.
-실제로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실컷 구경해 놓고서도 자기가 본 것이 실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만큼 아나스타시아의 능력은 상상 이상임을 인정하는 소리기도 했다.
-나만의 상상이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너도 봤잖아.
-꿈을 깨십시오. 제발!
-이렇게 많은 기운을 교환했는데도 꿈이라고? 꿈은 네가 꾸는 거야. 하하하!
-제가 보기에도 너무 생생해서 좀 이상하긴 하지만 제 말을 믿는 게 좋을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서도 안 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역시 진실은 아닐 수 있지.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결과야. 꿈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결과물이 중요하다는 거지. 잘 새겨서 들어.
둘큐비가 본 것과 영욱이 본 것이 다를 수도 있다. 아나스타시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테니까. 그리고 영욱이 꿈을 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달라졌다는 점이다.
-혹시 주인님도 그 방면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것 아닙니까?
-네 말대로라면 아직도 숫총각 딱지를 떼지 못한 내가 무슨 재주를 부려? 몽정夢精이야 숱하게 해봤지만 그건 꿈이잖아.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서로의 경지가 엇비슷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죠. 귀신을 속일 수는 있어도 저는 못 속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아나스타시아는 귀신보다 훨씬 고단수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아무튼 둘큐비는 많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만큼이나 찌질한 줄 알았던 영욱이 총각 딱지를 뗀 것이 확실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아네. 공정한 거래란 서로가 비슷한 입장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힘이나 지식이나 기술이나 모든 것이 엇비슷해야 하지. 하하하!
영욱과 달리 둘큐비는 둘의 결합을 질시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3강들 역시 질색할 일이 분명하다. 그러니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실제로 관계를 가졌을 리 없다. 둘큐비가 지적한 것처럼 둘은 영욱의 꿈속에서 관계를 가졌다.
하지만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이미 육체를 초월할 정도의 힘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니 영혼의 결합을 통한 기운의 교류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교환이 아니라 교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가 잠시 동안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교류가 가능했던 것이다. 실제로 두 사람이 보낸 시간은 일주일 이상이었지만 영욱의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니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몇 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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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진실마저도 나머지 3강 QB들은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것은 그들의 능력이 신을 자처할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둘이 붙어먹는 현장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러큐비 아나시타시아와 영욱이 동시에 강해진 것을 느끼지도 못한다면 3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려하던 파국은 오지 않았다. 전면전을 통한 도발을 준비 중이던 일큐비는 돌연 전쟁 준비를 멈추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어차피 세상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약하다고 해도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굳이 싸우지 않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그것은 극단적인 대결과는 상충되는 의미지만 실제로는 극단적인 대결보다는 타협과 절충이 더 많이 존재한다. 여러 아가리들 역시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상으로
영욱이 조용한 바벨탑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건강한 꿈을 통해서 잃었던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팔다리가 뜯겨나가거나 눈알을 뽑히는 따위의 악몽을 꾸지는 않았다.
드림헌터들이 예전의 박상태처럼 그런 사냥을 시도하다가는 오히려 된통 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모험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흘러서 겨울방학이 끝나고 전국의 대학가는 일제히 개학을 맞이했다. 강원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욱도 4학년 1학기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서 학교로 향했다. 이제는 대학 졸업장 따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다닌 게 아까워서 졸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교문 앞에 서있던 은영이 영욱을 발견하고는 쪼르르 달려왔다. 영욱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오빠!"
"누구세요? 혹시 저 아세요?"
하지만 영욱은 자신을 껴안으려는 은영을 얼른 피하면서 정색을 했다. 아나스타시아라면 모르겠지만 벌건 대낮에 애정행각을 벌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장난치는 거야? 설마 아직까지도 삐친 거야?"
"이제 보니까 제수 씨였군요. 그래, 상태의 상태狀態는 호전되었습니까?"
상대가 모르쇠 작전이 통할 상대가 아님을 깨달은 영욱은 얼른 약 올리기로 작전을 바꿨다. 상태의 상태가 별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영이 자신을 찾은 것이다.
"여기서 상태가 왜 나와? 나야, 은영이라니까!"
"상태를 모른다면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군요. 사실 은영이란 이름은 처음 듣습니다. 그럼 이만."
"그래봐야 오빠는 나를 벗어날 수 없어. 오빠는 내 운명이니까."
은영은 이미 저만치 멀어지는 영욱의 등을 향해서 큰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전혀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했다.
"개 짖는 소리가 어디서 나지? 수의과대학 쪽에서 나는 소린가? 그리고 이 시궁창 냄새는 어디서 나는 거지?"
"내가 잘못했다니까. 제발 한 번만 더 용서해 줘!"
은영은 영욱의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애걸했다. 하지만 영욱은 은영과 다시 시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미쳤어? 한 여자에게 세 번이나 걷어차일 순 없어. 기네스북에 오를 일 있어?"
"이젠 그런 일 없다니까. 그리고 그건 내 자의로 했던 행동이 아니라는 걸 오빠도 잘 알잖아?"
"몰라! 그리고 나 이제 애인 있어. 그러니 내 옆자리는 꿈도 꾸지 마."
"웃기지 마! 소희 언니와 화리 언니도 떠났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무슨 개소리야?"
은영은 세상이 바뀐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처음에는 조용한 바벨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욱이 둘큐비를 노예로 만든 것의 의미가 실감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 나라의 왕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임기의 제한이 없으니 대통령이 아니라 왕이다.
사실 속물근성에 투철한 소희마저도 영욱의 곁을 떠나는 오판을 한 것은 다분히 영욱을 골탕 먹이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세 여자가 동시에 떠나면 영욱은 어쩔 수 없이 한 여자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 여자 중 어느 누구도 영욱의 방문을 받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다음이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은영만이 영욱 앞에 나타나서 이런 추태를 부리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더 큰 망신을 당하게 될 줄도 모르고.
"개소리는 지금 네가 내고 있어.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따라와."
"당연히 따라가야지.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
"마지막 교양 과목으로 러시아어를 선택했지. 새로 오신 교수님이 완전 퀸카라는 거 너도 혹시 알고 있어?"
"아나스타시아 교수님 말이야?"
지금 강원대는 새로운 퀸카의 등극에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역대 최강이라든지 전설이라는 단어들이 난무하면서 새 퀸카의 등극을 자축했다. 다만 대학생이 아니라 교수라서 대시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적은 게 작년과는 조금 다른 점이었다.
"그녀가 내 애인이야. 나를 만나려고 한국 정부에다 압력을 행사해서 직접 교환 교수로 파견을 나온 거지. 국립대학에 다니니까 이런 일도 다 있네."
"흥! 아예 소설을 써라. 아나스타시아 교수님이 오빠같은 찌질이를 좋아한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어."
"저기 오는군. 아나스타시아!"
"오! 달링. 영욱 씨! 보고 싶었어요."
둘은 백주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진하디진한 애정행각을 벌였다. 얼싸안고 빙빙 도는 것은 물론이고 진한 딥키스도 여러 차례 교환했다. 그리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정도로 진한 스킨십도 병행했다.
"뭐, 뭐야? 혹시 알바 아냐?"
"우리는 결혼할 사이야. 그런데 알바라니?"
"웃기지 마! 오빠 아빠가 국제결혼을 허락할 것 같아? 평생 막걸리만 드시던 분이 보드카를 마시겠어?"
"이미 허락을 받았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지? 그리고 없어서 못 먹은 거지, 보드카를 왜 안 드셔? 우리 아나스타시아가 최고급 보드카를 무제한으로 공급해준다고 했더니 국제결혼이야말로 인류의 우성 유전자를 생산하는 신성하고 숭고한 일이라고 좋아하기만 하던데."
물론 결혼 승낙은 아직 받지도 않았다. 미묘한 국제 정세를 고려해서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은영을 놀리기 위해서 영욱이 지금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둘은 이미 사실혼事實婚의 관계이니 새빨간 거짓말이라고는 볼 수 없다. 보드카에 관한 이야기도 사실이고.
"늘 진 씨 아저씨와 막걸리만 마시더니 이제는 보드카를 마셔? 혼자서?"
"당연히 사부님도 같이 마시지."
"진 씨 아저씨를 다시 사부님으로 모시기로 했다면 혹시 소희 언니와 결혼하기로 한 거 아냐?"
"소희는 배경태와 살림을 차린 지 이미 오래되었어. 그런데 무슨 염치로 결혼을 강요하겠어?"
배경태는 지금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 살인미수죄와 도주한 사실까지 보태서 특별가중처벌을 받아서 10년을 썩어야 한다.
그러니 소희가 배경태와 살림을 차렸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속물근성의 대명사인 소희가 옥중 뒷바라지 따위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영욱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면 상대의 눈에는 피눈물이 나는 게 요즘 새로 생긴 율법이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기관이나 국가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영욱은 요즘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을 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진실로만 세상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제발 나에게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줘! 응?"
"넌 상태나 잘 보살펴. 어차피 걔 없이는 못 살잖아."
"그럼 치료해 주든가."
"내가 미쳤어? 그리고 무면허 의료 행위는 불법인 거 몰라?"
"대가를 지불할게."
결국 은영이 영욱을 찾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상태의 치료를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돈?"
"응."
"얼마?"
"1억."
"10억."
영욱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열 배의 수고비를 요구했다. 비싼 자동차나 성능이 좋은 오토바이의 수리비용이 보통 차나 오토바이와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같은 맥락으로 보자면 은영이 저렇게까지 나올 정도로 박상태의 성능은 아주 우수한 듯했다. 그러니 영욱으로서도 비싼 수리비를 요구할 수밖에.
"2억!"
"9억!"
"제발 3억에 해 줘."
"내가 미쳤어? 싫으면 다른 의사를 찾아봐. 합법적으로 고치라니까. 아참, 배경태에게 물어보면 유능한 의사를 소개해줄 지도 모르겠다. 그 새끼도 하마터면 고자가 될 뻔했던 적이 있으니까."
쉽게 고칠 수 있을 것이라던 영욱의 예상과는 달리 상태의 상태를 호전시켜줄 의사와 드림헌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영욱이 건 저주 마법의 강도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고능도의 세로토닌은 그저 눈속임이었을 뿐이었다.
"4억 줄게. 제발 그 인간 좀 살려줘."
"8억 주면 예전보다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지."
"그렇다면 5억."
"7억!"
"좋아. 6억 줄게. 더는 없어."
"좋아. 송금이 확인되면 내가 좀 만져주지."
영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입금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만져? 어딜 만져?"
"바로 그 부분. 그래야 죽었던 부위에서 새 살이 돋을 거 아냐?"
"갑자기 웬 사이비 교주 행세야?"
"싫어? 싫음 말고."
"아, 아냐. 하지만 그 돈을 구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나야 상관없지만 좀 더 서둘러야 할 거야. 너무 늦으면 백약百藥이 무효할 테니까."
영욱은 다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김샜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돈도 없으면서 치료비를 흥정한 것은 좋은 매너가 아니라는 분위기로 몰아갔다.
"병 주고 약 주는 주제에 그런 말이 나와?"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에이즈처럼 전염성 성병의 일종이야. 난잡한 성 관계를 가지는 남자들에게서 발병되는 병이니까 말이야."
영욱은 자신이 병을 걸리게 했다는 말에는 전혀 대꾸하지 않았다. 왜냐면 박상태말고도 그런 병에 걸린 자들이 속출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감히 나를 색녀로 몰겠다는 거야?"
"이웃 나라에서 그 신종 전염병이 들불처럼 번지는 거 몰라서 그런 말을 해? 솔직하게 말해서 그 나라 사람들이 상당히 밝히는 편이라는 것은 상식이잖아. 그리고 또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고."
"그게 모두 오빠의 소행이잖아. 안 그래?"
"얘가 정말 큰일 날 소리만 골라가면서 하네. 안되겠다. 박상태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던 걸로 하자. 입금하지 마. 입금해도 치료해줄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그럼 오로지 오빠만이 치료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이 안 들겠어?"
영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 입을 열었다.
"그럼 조선시대의 명의 허준은 죽일 놈이겠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네 주장대로라면 자기가 몹쓸 병을 퍼뜨린 후에 모른척하고서 치료했을 테니까. 원, 별 이상한 주장도 다 있네. 아침부터 재수 없게 똥 밟았잖아."
"똥 밟았다니? 그 말 취소하지 못해?"
"영욱 씨! 수업 시작할 시간이에요. 가요."
아나스타시아가 은영과 영욱 사이를 막아서면서 둘의 싸움을 교묘하게 뜯어말렸다.
"그래. 얼른 들어가자."
"어딜 가? 아직 내 말이 안 끝났잖아."
"……."
영욱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나스타시아와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로 강의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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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칭 '특발성 지속발기후성 괴사성 질환'이라는 신종 질환이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줄여서 특지괴질이라고 부르는 이 병은 박상태가 앓고 있는 병과 같은 병이다.
세계 굴지의 제약회사들이 앞을 다투어서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지만 모두가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로서는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오로지 영욱뿐인데 의사면허증이 없다는 이유로 진료 행위가 금지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에서 회복된 사람들의 공통된 점은 영욱을 안다는 사실이었다. 기 치료술이라고도 불리는 영욱의 치료술은 괴사된 부분을 몇 차례 주물럭거리는 것만으로도 죽었던 부위에 새 살이 돋아나게 만든다.
성욕性慾은 인간의 다섯 가지 욕망 중에서 세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욕망이다. 특히 돈이 많은 부자들은 이 특발성 지속발기후성 괴사성 질환을 가장 큰 천형天刑으로 여겼다. 이 병에 걸린 자들은 다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 병은 불임의 확산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유발시켰다. 가뜩이나 인구가 줄어들어서 고민인 선진국들은 이 병으로 인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인구의 감소는 곧 국력의 감소를 의미하고 그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또한 이 신종 전염병은 지독한 가려움증을 동반해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지진의 발생 빈도가 늘어나고 지진의 강도가 커져서 불안한 판국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정확한 감염 경로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질병 발생국가에서의 모든 수출 행위가 금지되기에 이르자 단순한 전염병 이상의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계는 이 병의 발생국과 미발생국으로 크게 나뉘어서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한국 역시 박상태의 발병으로 인해서 발생국 요건에 해당된다.
하지만 아직은 전염 사례가 전혀 없다는 점을 내세워서 미발생국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아나스타시아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발생국 연합에서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주축이 되어서 무역 규제 철폐를 요구했지만 미발생국의 반응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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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은 아나스타시아를 이용해서 나노 캡슐로 만든 치료제를 얼마 전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약사나 의사 면허가 없으니 러시아의 대형 제약회사를 통한 판매였다.
제약사에 의하면 생체전기로써 산소를 발생시키는 이 나노 캡슐은 괴사된 부위에 충분한 농도의 산소를 공급해서 세포의 재생을 촉진시킨다고 주장했는데 놀랍게도 괄목刮目할 만큼의 효과를 나타냈다.
물론 치료율이 아직은 50% 정도라서 박상태는 아직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미운 놈은 절대로 고쳐주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 정도의 불완전한 약효라도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서 최대 주주인 영욱과 아나스타시아는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으로 이민 갔던 이희승 교수가 자신이 나노 캡슐 제조의 원조임을 주장하며 미국 제약회사를 등에 업고 이 신종 전염병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산소를 발생시키기는 했지만 효과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영욱과 아나스타시아가 이 모습을 보고서 배꼽을 잡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치료 효과는 나노 캡슐의 표면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에서 나오는 거야. 다만 쿨 타임이 길어서 영구적인 치료 효과를 누리기는 어렵지. 하하하!"
"자긴 머리가 너무 좋아. 호호호!"
"그래야 몇 개 더 팔아먹을 거 아냐. 물건을 판매할 때는 효과가 영구적인 마법진을 써서는 안 되는 거야. 적당한 시점에서 고장이 나 주어야 재구매가 이루어지는 거야. 이젠 알겠지?"
"자본주의는 아직도 잘 모르니까 자기가 잘 가르쳐 줘야 해."
"나만 믿어."
이렇게 해서 큰 부자가 된 영욱과 아나스타시아는 화염대룡을 타고서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