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7/71)

-어떻습니까?

-눈이 즐겁군.

-아주 좋아.

-특히 가운데 있는 아이가 더 매력적이구나.

영욱이 준비한 작전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세 괴인들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춤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영욱이 셋의 춤을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대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력을 보여주십시오.

-싸움이 조금 전에 끝났으니까 조금 더 쉬고 나서 도전하기로 하지.

-그래. 숨은 고르고 해야 승산이 높아지지.

-맞아. 컨디션 회복을 위해서는 한잠 푹 자고 하는 게 나을 거야.

-그저 몸만 살짝 풀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세 분들의 기운을 흡수해서 더 강해졌다는 사실도 잘 압니다. 그러니까 공짜 춤만 구경하고 말겠다는 거지요? 그렇지요?

영욱은 무려 열 개에 달하는 라이트닝 볼트를 만들어 내서 당장이라도 발사할 것처럼 굴었다. 어차피 쉴 수는 없으니 결단을 내리라는 촉구였다. 자신과 싸우든지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괴인을 골라서 싸우든지.

-우린 공짜 싫어해.

-맞아.

-그런 걸 먹으면 꼭 체하는 법이지. 하지만 지금은 좀 피곤해서 쉬었다가 싸우겠다니까.

나머지 괴인들이 세기는 센 모양이었다. 도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뭉그적거리는 세 괴인을 상대로 결정적인 도발을 날려야 했다.

-혹시 여자를 취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신 건가요? 그렇게 늙어 보이지 않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그럴 수는 있겠죠.

-감히 우리를 뒷방늙은이 취급하는 거냐?

-맞아. 고자 취급하고 있잖아.

-이런 취급을 받고도 우리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어?

-그럼 실력을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당연하지.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괴인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른 노역장으로 이동했다. 영욱에게로 오려다가 라이트닝 볼트의 숫자가 몇 개 더 늘어난 것을 보고는 방향을 돌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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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서부터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노역장에 있던 괴인 셋이 죽어나갔고, 그들을 이긴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노역장에 있던 세 괴인들이 아홉 번째, 열 번째, 열한 번째 노역장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괴인들에게 도전을 했다.

애들 장난과 같은 일들이 실제로도 벌어질 수 있는 이유는 영욱이 경품으로 내건 세 여자들이 너무나도 예뻤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녀들의 모든 행동을 훔쳐보면서 침만 삼키고 있었던 괴인들이기에 영욱의 제안에 이렇게 솔깃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영욱이 만들어낸 라이트닝 볼트도 한몫했지만 그들이 자신할 수 있는 무력을 동원해서는 결코 여자들을 얻을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영욱이 전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였고.

여자를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녀들의 주인인 영욱이 자발적으로 상납하는 것인데 그것을 제안 받았으니 다들 어처구니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싸움은 치열하게 하루 동안이나 지속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아홉 번째, 열 번째, 열한 번째 노역장에 둥지를 틀고 있던 괴인들이 무난히 승리했다. 

덕분에 영욱도 특별한 유나를 아주 많이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은 곧 특별한 기계체조의 기운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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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실력을 증명해보여야 하는 건가?

-잘 아시는군요.

-좋아. 

-대신에 춤 구경이라도 조금 해야겠어. 괜찮겠지?

이번에 승리한 괴인들은 계약 조건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화끈하기까지 했다. 물론 영리하게 보너스를 챙기는 것도 있지 않았다.

-당연하지요. 얘들아!

한 번 있었던 일은 관례慣例가 되는 법이다. 은영과 소희 그리고 화리는 영욱의 지시에 따라서 또다시 야한 춤을 추어야만 했다.

-뱅뱅 도는 쟤는 빼.

-예. 화리야! 너는 그만해.

-아니, 왜?

-자꾸 빙빙 돌아서 어지럽다고 한다. 그것 말고 좀 요염한 춤 없어?

-살사 댄싱도 출 줄 아는데 그거라도 춰?

-됐으니까 그냥 좀 쉬고 있어. 스트립쇼가 아니라면 춰봐야 소용없을 것 같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괴인들의 이목은 온통 은영에게로만 쏠려 있었다. 만일 소희가 은영보다 예쁘지 않았다면 그녀마저도 춤을 추지 못하게 했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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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타!

-저승길을 떠나려는데 모처럼 눈이 호사를 하는군.

-그러게 말이야.

열심히 잔상무 구경을 하고 있는 괴인들은 인생의 마지막 여운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들로서는 열두 번째, 열세 번째 그리고 열네 번째 노역장에 있는 괴인들을 당할 자신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도전 자체를 번복할 의사는 전혀 없는 듯했다. 언젠가는 시도하리라고 벼르고 있던 도전이 영욱에 의해서 주선되었을 뿐이지 영욱의 농간에 의해서 놀아나는 것은 전혀 아닌 듯했다. 

-세 분은 파이팅이 조금 부족하신 것 같군요. 이길 자신이 없나요?

-파이팅만으로는 싸움을 이길 수 없는 법이지.

-우리는 조금 다를 거야. 적어도 우리들 중의 하나는 이길 테니까 말일세.

-약속을 꼭 지켜야 해.

-당연하지요. 이기시면 누구를 원하시든지 간에 드리겠습니다.

영욱은 파이팅이 부족한 괴인들에게 보상을 크게 걸었다. 여자 셋 중에서 괴인들이 원하는 여자는 딱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서 하는 소리다. 괴인들은 여자를 취하는 것보다 예쁜 여자가 추는 야한 춤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그야 당연히 은영이라는 애지.

-헐! 이름도 알고 계셨습니까?

-흠! 워낙 춤이 예사롭지 않아서 눈여겨보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이름도 알게 되었지. 하하!

-그녀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꼭 이기도록 하십시오.

-당연하지. 하하하!

세 괴인들은 힘을 내서 다른 괴인들이 있는 노역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확률이 그리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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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 동안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승자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열두 번째, 열세 번째 그리고 열네 번째 노역장에 있는 괴인들이었다. 이들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다.

-우리에게도 춤을 보여 줘야지.

-맞아. 사람 차별하는 겐가?

-물론 그전에 추었던 춤도 모두 훔쳐보긴 했지만 춤이란 누구를 위해서 추느냐가 중요한 법이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영욱은 자존심 강한 괴인들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계략에 빠진 단순함보다 승부를 피하지 않는 그들의 강직함이 더더욱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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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은 손짓으로 은영에게만 춤을 추라고 했지만 혼자만 추라는 지시에 은영이 선뜻 응하지 않고 버텼다.

-뭐해?

-왜 나만 추라고 하는 거야?

-다들 보는 눈이 있어서 네 춤이 최고라는데 어쩔 거야? 내가 출까?

-얼마나 더 춰야 하는데?

-이번이 거의 마지막이야.

-거의?

-지금의 관객들이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번째 괴인들과 싸울 분들이거든.

열두 번째, 열세 번째, 열네 번째 괴인들이라고 하는 말보다는 조금 더 듣기 좋은 소리였다. 조삼모사朝三暮四도 가끔은 필요했다.

-그럼 그들과의 승자를 위해서 또 춤을 추어야 하잖아.

-당연하지. 하지만 이들 중의 하나는 이길 가능성이 있는 모양이야. 자신감이 철철 넘치더라.

-그럼 어떻게 되는데?

-더 이상 춤으로는 우려먹을 수가 없게 되는 거지.

영욱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은영을 살짝 협박했다. 시키는 대로 어서 춤을 추지 않으면 직접 몸으로 때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설마하니 나를 징그러운 괴물들에게 넘기거나 하진 않을 거지?

-다, 당연하지. 네가 없으면 미인계가 불가능한데 내가 미쳤냐?

-왜 말을 더듬고 그래? 보나마나 나를 넘기겠다고 했겠지. 안 그래?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 혹시라도 이기는 괴인이 생기면 그냥 배를 쨀 생각이니까 말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몰라?

마지막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영욱은 계속해서 그 말로 은영을 회유했다. 은영이 춤을 추지 않으면 자신이 세 괴인을 상대로 싸워야 하니까 영욱으로서도 필사적이었다. 그렇다고 은영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헤드 스핀을 돌면서 열심히 라이트닝 볼트 마법을 연습하는 중이니까.

-나를 팔아넘기려고 했구나. 정말 실망이야. 그렇다면 나도 오빠를 다시 생각해봐야겠어.

-그럼 유일하게 너만 팔리는 상황인데 어떻게 하냐? 예쁜 네가 참아야지. 안 그래?

-예쁜 게 아니라 내 잔상무가 요염해서겠지.

-맞아. 그게 그거잖아. 아무튼 빨리 춰! 어서!

-아, 알았다니까. 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니까. 호호호! 그런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춤이 추어질지 모르겠네.

-나중에 어떤 부탁이라도 하나 들어줄 테니까. 얼른!

-약속한 거다. 호호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잘 아는 은영은 자신의 가치를 한껏 높였다. 그것은 영욱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것이었고, 영욱도 버텨보다가 어쩔 수 없이 백지수표 하나를 발행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보나마나 자신과 결혼해 달라는 요구일 테니 그 정도라면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은영에 대한 서운함이 거의 사라지고 다시 그녀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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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싸움에서 승리한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번째 괴인들도 은영의 춤을 감상한 후에 이틀 동안 열심히 싸우다가 결국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덕분에 영욱은 아주 특별한 유나로 배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기운을 흡수해서 유나를 만들려던 영욱의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이젠 어떡할 거지? 이 층에는 우리가 강함을 증명할 상대가 없는데 말이야.

-맞아. 우리가 열여덟, 열아홉, 스무 번째 노역장의 괴인들이지.

-위층에 있는 녀석들이라도 꺾어야 여자들을 상납할 건가?

마지막 승리자들은 기고만장해서 영욱에게 세 여자의 신병 인수를 요구했다. 하지만 영욱은 별로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위층에는 허접들만 있는 것 같던데 좀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래층에도 허접들뿐인데 어쩌라고?

-너 설마 우리들끼리 싸우라는 것은 아니겠지?

-일종의 대련이라고 봐야겠죠. 부실한 저도 세 여자를 거느렸는데 설마 한 여자로 만족하시겠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무엇보다 춤추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세 괴인들 중 하나가 영욱의 마지막 카드를 들추었다. 하지만 들춘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영욱은 세 여자 중에서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세 괴인의 상잔을 부추겼다.

-사실 그 점이 좀 그렇긴 해.

-그렇다고 우리 셋이 싸우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

-나도 이왕이면 춤을 잘 추는 애가 좋아. 걔 이름이 아마 은영이라고 했지?

-그야 나도 마찬가지지.

-그럼 나보고 양보하라는 소리야?

-그렇다면 남자답게 승부를 가리자. 벌써 수십 년 동안 차일피일 미뤄왔던 승부가 아니더냐.

셋은 자연스럽게 대결 모드로 들어갔다. 그만큼이나 은영의 매력은 독보적이었다. 영욱은 이러한 괴인들의 반응으로 자신의 계획을 성공할 수 있는 일등공신이 바로 은영임을 알게 되었다. 남자들의 반응이 이 정도라면 그녀와 결혼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럴까?

-당연하지. 그런데 '프리 포 올free for all' 방식이냐?

-우리 중에서 2대 1 싸움을 작당할 만큼 비겁한 자는 없으니까 그렇게 싸워야겠지.

영욱이 물꼬를 터주자 세 괴인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숙제를 해결하는 심정으로 대결을 자처했다. 피아로 나뉜 게 아니라 피, 피, 아로 나뉜 게 특이한 점이라면 특이한 점이었다. 

영욱은 제 3의 눈을 동원해서 세 괴인의 삼자 대결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전에 벌어졌던 모든 대결들 역시 녹화를 한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들의 대결은 차원이 달랐다.

이들이 바로 말로만 듣던 주니어 수준의 실력자들이었다. 늙은이들이니까 시니어라고 부르는 게 일견 옳을 것도 같지만 경지로 따지는 거니까 아쉽게도 시니어까지는 아닌 듯했다.

주니어가 왜 이런 곳에서 정체를 숨긴 채로 둥지를 틀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서로의 서열을 정하는 일에만 목숨을 걸었다. 은영의 가치가 그만큼 클 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들이 가진 힘을 영욱에게 전해주려는 듯한 인상마저도 지울 길이 없었다.

싸움은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결국 세 괴인의 싸움은 공멸로 끝이 났다. 마지막 순간이 오자 처음부터 그러기로 작정했다는 듯이 세 괴인이 동시에 충돌했고, 엄청난 폭발로 대미를 장식했다. 그들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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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은 자신의 추측이 들어맞았음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 설마?

-뭐가 설마라는 거지?

-그러게. 우리가 공멸할 줄 몰랐던 건가?

-네 녀석이 마지막 도전자라는 걸 알고 있나?

세 괴인의 육체는 벌써 흩어졌지만 영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영욱과 이야기를 나눌 만큼의 힘은 남겨두었던 것이다.

-그런가요? 몰랐습니다.

-너만 처리하면 이 조용한 바벨탑은 더 이상 도전자를 상대해야할 의무가 없어지지.

-그래서 약한 저를 일부러 택했다는 말씀이군요.

-맞아. 하지만 너에게 시간을 준 것은 바벨탑의 명백한 실수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도 시간을 다룰 수 있는 자니까.

-그리고 이렇게 약아빠졌는데 어떻게 질 수 있겠어?

-그렇다면 제가 선배님들을 대신해서 이 두 번째 바벨탑을 처리해야 하는 겁니까?

세 괴인뿐만이 아니라 20명의 괴인들이 모두 영욱에게 기운을 전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영욱이 정해준 시나리오대로 매끄럽게 연기를 했던 것이다. 그들로서는 호승심을 억누르면서 미루어두었던 마지막 승부를 즐길 수 있어서 좋기도 했을 것이다.

-당연하지.

-진상의 하늘에 닿겠다는 우리들의 욕심이 과했어.

-그래서 이런 괴물이 태어나게 된 거야.

-조용한 바벨탑의 실체가 뭐죠?

-네 짐작처럼 몽마와 비슷한 녀석이야. 하지만 그 크기는 웬만한 나라보다 크고, 힘은 거의 신에 가깝지.

-몽마신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거야.

-그런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죠?

영욱은 기가 막혔다. 환수들이 큰 편이긴 하지만 산보다 큰 놈도 보지 못했는데 이건 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신에 가깝다는 힘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서 그 크기에 압도당했다.

-그건 네 녀석이 알아서 해야지.

-우리가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벌써 처리했겠지.

-무거운 짐을 떠맡기고 가서 미안하지만 너라면 꼭 해낼 수 있을 것 같구나.

-저는 아직 선배님들만큼도 강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괴인들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의 힘으로는 어림없음을 잘 알기 하는 푸념이었다. 하지만 이미 대결은 시작되었으니 피하거나 무를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꼭 힘으로 상대를 이길 수는 없는 거야.

-넌 힘이 부족해도 잘 이겨왔잖아. 안 그래?

-꼭 이기도록 해. 그리고 우리가 구경할 수 있도록 그 여자에게 춤도 자주 추게 해. 알겠지?

이제는 이별해야할 시간이 온 듯했다. 괴인들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있었다.

-예. 선배님들, 잘 가십시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

-항상 우린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맞아. 우리가 넘겨준 기운들이 바로 우리들의 실체인 셈이니까 말이야. 하하하!

그들 역시 다른 내단들처럼 영욱의 몸 안에서 둥지를 틀었던 것이다. 조용한 바벨탑과 싸우는 것을 지켜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은영의 춤도 지켜볼 것이고. 하지만 소멸당해도 같이 당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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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좀 걸렸지만 가장 어려울 것 같았던 201층의 대청소 작업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영욱은 괴인들의 기운을 흡수하고 그들의 싸움을 되새김질하는 과정에서 기계채조 80%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그냥 탈출만 하는 게 아니라 조용한 바벨탑을 거꾸러뜨려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지만 어찌 보면 그게 그거니까 실망하지는 않았다. 

탈출을 하게 되더라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바벨탑에게 무방비 상태로 쫓길 확률이 높으니 처음부터 탈출이 아니라 바벨탑을 처리할 생각도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능력이 부족해서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부딪쳐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꼭대기 층까지 오르겠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사실 영욱은 층 하나만 폭발시키면 그 충격으로 바벨탑이 추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괴인들의 대결로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내뿜은 막대한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끄떡도 없었기 때문이다.

층을 이루는 물질은 물리적으로는 뚫을 수 있지만 에너지로는 절대로 뚫을 수 없는, 이상한 성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환수의 뱃속으로 일부러 걸어 들어가서 난장판을 만들었던 식의 작전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작전은 중심 회전축을 두 동강으로 분질러버리는 방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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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욱은 중심 회전축에 붙어서 맹렬하게 회전하다가 순간이동으로 몸의 축을 180로 바꾸었다. 물구나무를 서서 헤드 스핀을 하다가 그 속도를 이용해서 화리처럼 발레리나의 스핀으로 회전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치지지직. 커헉!

회전 방향이 반대로 바뀐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영욱과 회전축 쌍방향으로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선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충격은 여태까지 지켜보고만 있던 조용한 바벨탑의 개입을 불러들였다. 이제 최후의 결투를 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의 형상을 한 조용한 바벨탑이 영욱의 앞에 나타나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다.

-이봐!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보고도 모르겠어? 

-자살하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잘못 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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